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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씨의 억울함과 우리 사회의 치사함 (4)

동숭동지킴이 2011. 4. 8. 16:10



 이번 토막의 주제는 기자들의 치사함이다. 신정아씨가 책에서 가장 격렬하게 분노를 터트린 상대가 바로 기자다.그런 탓인지 책 출간 이후 많은 언론은 신씨를 짓뭉개는 편에 섰다.

 

아예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왜곡해서 쓴 비평이 있는가하면, 진보·개혁을 자처하는 언론에 보수·수구적 관점의 신씨 비난 칼럼이 실리기조차 했다. 성향에 따라 언론사끼리 치고받다가도, 언론 전체를 공격하는 듯한 '돈키호테'에 대해선 공동의 적으로 치부하는 패거리의식이 발동하는 셈이다.

 

물론 신씨가 기자들 모두를 비난한 건 아니다. ‘일부’ 몰지각한 기자들의 행태에 격분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선일보 C기자와 문화일보 신모기자다.

 

C기자는 추행을 한 걸로 나오며, 이 때문에 신씨는 바지만 입고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책이 나오자마자 C씨는 터무니없다고 길길이 뛰었지만 아직까진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C기자의 추행 이야기는 이미 2007년에 국회에서 거론된 바 있다. 신씨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할 때, C기자가 그 시점에서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신씨가 너무 매력적이고 내가 술도 취해서 크게 실수했다. 신씨에게 보상할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싸나이'답게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문화일보 신기자 문제는 더 심각하다. 신기자는 신정아씨와 가까이 지내던 단짝이었는데, 사건이 터지자 태도가 돌변하고 신씨의 누드 합성사진까지 게재했다. '강한 남자' 어쩌구하면서 옛날 저질주간지 선데이서울 같아진 문화일보 기자라서 그런 것인지, 사진의 합성 여부를 떠나서 상식 이하의 행태였다.

 

신정아씨는 그토록 친했던 신기자의 이런 ‘뒤통수치기’에 극도로 분노하고 있다. 신기자의 배신은 좋게 보면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기자정신의 발로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누드 합성사진까지 게재하는 데까지 이어져가는 신기자의 행태는 한 건 하기 위해 시체를 물어뜯는 하이에나에 더 가깝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신씨는 자신이 언론에 의해 규정된 것과 같은 꽃뱀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어서 책을 냈다고 주장한다. 언론에 대해 신씨가 억울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신씨가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몸을 함부로 내던진 건 아니라는 사실은 책에서 인용된 변양균씨의 법정 증언에서 드러난다. 변씨가 신씨의 ‘첫 경험’이었음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

 

신씨 책 이야기는 이쯤하고, 이걸 계기로 기자들의 치사함에 대해 살펴보자. 거듭 강조하지만, 이는 정확히 얼마쯤인지는 모르는 ‘일부’ 기자들의 모습이다.

 

우선 본인의 개인경험부터 털어놓자. 오래 전 서울대 경제연구소 조수로 근무할 때였다. 당시 연구소에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는데 카메라기자들이 취재를 했다. 그런데 카메라를 돌리고 나서는 그 기자단 대표가 촌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연구소 소장님은 예산에 책정되어 있지 않다고 촌지를 안줬다. 그래 놓고선 9시 뉴스에 나오리라 기대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바라는 화면이 나오지 않았을 때의 당혹함이란.

 

(이렇게 세상물정 모르는(?) 소장님은 나중에 총장이 되어 또 세상물정 모르게 데모학생 징계를 요구하는 정부 지시를 거부해 총장직에서 짤렸다. 그게 전화위복이 되어 총리까지 지냈는데 크게 욕먹을 일은 하지 않았다.

 

보수적인 분이었지만, 엄혹한 시절에 신영복선생의 재판정에도 증인으로 출두해 주시는 등 좋은 일도 했다. 진보적인 주장을 펴지만 건전한 상식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나 변절해서 황당한 일들을 저지르는 사람보다는 훨씬 믿음이 가는 분이다.)

 

그때 처음 본인은 “기자는 사회의 목탁이다”는 교과서의 말이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목도한 셈이다.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기자들의 여러 치사한 모습에 접할 수 있었다. 그걸 정리해 보자.

 

첫째가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보수 언론기자들의 치사함이다. 자신들이 싫어하는 정치인이나 단체에 대해선 사실을 멋대로 왜곡한다. '데마고그(demagogue)형 치사함'이라고나 할까. 소련의 KGB 책임자 베리아가 고문을 통해 레닌까지도 스파이로 몰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조선일보 등은 언어적 폭력을 통해 생사람 잡는 일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선 이미 강준만 교수의 책 <조선일보 공화국>이나 조기숙 교수의 책 <마법에 걸린 나라>에 잘 나와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자. 다만 최근 이야기 하나만 보태면 다음과 같다.

 

천암함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재조사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친북좌파로 모는 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이런 의혹제기론자 중 한 사람인 신상철씨가 엉터리라는 걸 입증하는 근거로, 조선일보는 신씨가 황우석씨 편을 들었다는 점을 계속 강조한다.

 

아하, 황우석씨 편을 들어 문화방송의 PD수첩을 물어뜯은 대표적인 신문이 과연 어디였던가. 바로 조선일보였다. 어찌 이렇게 치사할 수 있는가.

 

둘째로, 군소언론의 ‘생계형 치사함’이란 게 있다. 지방의 상당수 군소언론사 기자들은 월급이 아주 적거나 아예 없다. 이들은 과연 무얼 먹고 살까. 물만 먹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진보·개혁 세력은 조선일보 등 보수·수구 언론의 횡포에만 관심을 쏟는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에서 직접적으로 더 심한 피해를 주는 쪽은 오히려 ‘양아치’ 기자들일지 모른다.

 

삼성의 이건희회장이 정부를 우습게 보는 마피아 보스 같은 행태를 보인다면, 한화의 김승연회장이 자식 얻어맞았다고 술집에 쳐들어가는 양아치 같은 행태를 보인 것과 비슷하게 기자들의 치사함에도 등급이 있다고나 할까.

 

그러면 군소언론의 일부 기자들은 어떻게 서민을 등치나. 업체나 기관을 운영하다보면 법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없지 않다. 또 법 문제가 아니라 이미지에 관련되는 사안도 있다. 이게 양아치 기자들의 밥이다.

 

치사한 군소언론 기자들은 업체에 찾아가 기사와 광고를 바터(교환)하는 것이다. 보도하지 않는 대신 광고를 싣게 하고, 그 광고료를 회사와 갈라먹기 한다. 광고 대신에 아예 기자가 촌지를 챙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셋째로, 보수·수구 언론이나 군소언론에 국한되지 않는 기자들의 일반적 치사함이란 것도 존재한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치사함이다. 물적 권력이든 정치적 권력이든 지적 권력이든 진짜 힘 있는 자는 좀체 건드리지 못하거나 아부하고, 만만하다 싶은 경우에 손을 보는 기자들이 있다.

 

이런 치사함에 신정아씨도 당한 셈이다. 신씨가 큐레이터 세계를 주름잡을 때는 신씨와 친해 보려고 달려들던 기자들이 신씨가 추락하자 안면몰수하고 발길질을 해대지 않았던가.

 

그리고 광고와 관련해서도 군소언론 같은 양아치 행태는 아니더라도 주요 언론도 치사한 행태를 벌이는 경우가 있다. 보도와 광고를 거래한다는 말은 늘 있어 왔다.

 

대포 광고라 해서 광고주 승인을 받지도 않고 광고를 싣는 일도 있다. 그래 놓고 돈을 나중에 청구하는 것이다. 이런 강매행위가 처벌받지 않는 건 언론사 경우만이 아닐까.

 

촌지는 이젠 많이 줄었다지만 신씨에 따르면 조선일보 C기자는 촌지를 챙긴 사례다. 또 예전엔 선거 때면 기자들 성접대하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종로구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던 정모 변호사가 그래서 말썽나지 않았던가.

 

연예인이 성공하려면 신문사·방송사에 잘 보여야 하고, 그래서 장자연씨 자살 같은 비극도 일어났다. 조선일보 C기자는 아마도 이런 풍토 속에서 신씨를 가볍게 보고 추행하려 했을 수 있다.

 

그러면 이런 기자들의 치사함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다음 글에서 이를 다루면서 연재를 마무리할까 한다.

덧붙여서 교수들의 치사함에 관한 이전 글을 읽은 동료교수가 보내온 우스갯소리를 아래에 소개한다.

 

(며칠 전 facebook을 시작했습니다. 3월(?)부터 가능해진 새 기능을 소개합니다. 이 글을 페이스북에서 읽으신 분이  글 밑의 '좋아하기'를 클릭하면 자신의 친구들에게도 퍼집니다. 물론 '공유하기'를 클릭해서 몇자 써넣으면 더 확실히 퍼집니다.)

 

<척박한 땅에서 우아한(?) 교수되기>

 

1. 국가와 민족 또는 사회 이야기는 안주거리 이상으로 발전시키지 말 것.

2. 외국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말 것.

3. 사무관을 만나고 와서는 장관을 만났다고 할 것 - 결국 같은 놈이니!

4. 자기를 뽑아준 선배교수로부터 절대 독립하려고 하지 말 것.

5. 절대로 다른 교수들과 학문이야기 하지 말 것.

6. 아무도 읽지 않을 논문 편수 늘려서 형식적 연구업적에서 뒤지지 말 것.

7. 누구든 훌륭한 주제와 논의를 제기하면 반드시 그 사람의 이해관계에서 해석할 것.

8. 직급과 돈 이야기는 남이 하기 전에는 하지 말 것.

9.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무작정 따르는 패거리를 만들 것.

10. 자기의 이해관계에 상충되는 일은 사적인 것으로 하지 말고 공적인 것으로 일반화할 것.

11. 진지한 이야기를 비웃음으로 무력화시키는 기술을 습득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