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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씨의 억울함과 우리 사회의 치사함 (1)

동숭동지킴이 2011. 3. 25. 02:33

 

신정아씨의 책 <4001>을 독파했다.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첫째로, 본인이 신씨에 대해 갖고 있던 피상적인 인식에 대한 반성이 밀려들었다.  얼마 전 경제문제에 관장하준 교수의 피상적인 사고를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나 역시 신씨에 대해선 피상적인 판단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다만 다행히 장교수와는 달리 그런 피상적인 생각을 글로 쓴 적은 없었다. ㅎㅎㅎ)

 

신씨 사건이 생겼을 때, 불교계에 정통한 분과 이야기하다가 그 분이 신씨를 옹호하길래, 아니 교수가 학위논문을 대필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강하게 반박했던 일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미술계에는 전혀 문외한이었고, 신씨에 대해 신문에서 난 보도조차 제대로 따라가지 않았으면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둘째로, 신씨 책을 보면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말깨나 하고 힘깨나 쓰고 돈깨나 있는 이들의 치사함을 더욱 충격적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자, 교수, 법조인, 재벌가문의 치사한 행태가 너무나 절절히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수백억원 이상의 재산가인 대통령도 치사하게 겨우 매달 몇 백만원 빼먹자고, 빌딩을 관리하는 자신의 회사에 자녀들을 유령직원으로 위장취업시킨 적이 있는 나라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세태다. 하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접하니 느낌이 다르지 않을 수 없다.

 

셋째로, 신씨가 학위논문을 대필한 과오를 범하긴 했지만 그가 당한 억울함은 여러 면에서 충격적이었다. 본인 역시 억울하게 일주일간 유치장 생활을 한 적이 있는지라 그녀의 억울함에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본인은 대학생 시절에 학생들 집회에서 한 마디 했는데, 데모 선동연설도 아니었으나 데모연설로 오해를 받아 경찰서 유치장에서 1주일 정도를 보냈다. 민주화를 요구하다가 구속되어도 억울한 일이지만 본인은 그렇게 장한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체포되었던 것이니 억울하다면 더욱 억울한 게 아닐까.)

 

그리고 신정아씨같은 유명인사도 권력다툼과 선정적 언론의 희생자가 되어 본인의 과오에 비해 과도하게 억울하게 당했는데, 힘 없고 빽 없는 서민의 억울함은 얼마나 클 것인가. 그러니 신씨의 억울함은 우리 사회의 억울함을 부분적으로 드러내는 측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몇 차례로 나누어 책을 읽은 감상을 써볼까 한다.

 

먼저 본인은 신씨의 책을 100% 신뢰하지는 않음을 밝혀둔다. 인간은 신이 아닌지라 아무도 100% 신뢰할 수 없다. 내 자신에 대해서도 믿을 수 없음은 당연하다.  예전에 믿었던 사람들의 진면목 또는 변화하는 모습에 쇼크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학위논문을 대필했던 신씨 글을 어떻게 무조건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일각에서 제기하는 불신론도 수용하기 힘들다. 그녀의 책에는 많은 실명이 등장하는 데 그게 거짓이라면 감옥살이와 손해배상이 천문학적 수준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법률적 자문까지 받은 게 아니겠는가.

사실의 주관적인 해석에선 신씨가 오버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겠지만, 적어도 fact 자체를 거짓으로 치부하기는 쉽지 않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담당은 노무현 대통령과 신씨의 관계를 부정하였다. 아마도 신씨의 나쁜 이미지와 노대통령이 얽히는 데 기분이 나빴으리라. 그러나 양씨는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언론보도를 중심으로 글을 쓴 게 아닌지 모르겠다. 신씨는 책을 통해 노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많은 치사한 인간들과는 달리 당당한 인물이었다고 쓰고 있다. 그러니 양씨는 신씨 책을 비난할 게 아니라 오히려 홍보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신씨가 자신의 학위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에 가 있는 동안 변양균씨와의 관계가 터져나오면서 나라가 떠들썩해졌다. 그러자 노대통령은 신씨의 귀국에 반대했다는 대목이 있다. 다만 책 출간 후 일부 언론에서 쓴 대로 대통령이 신씨에게 직접 연락했다는 표현은 책에 없다. 노대통령이 변씨에게나 청와대회의에서 한 말로 보아야 한다. 신씨와 관련해 계속되어온 언론의 왜곡 모습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검찰 조사가 필요할지 모르는 사람의 귀국을 노대통령이 반대했다는 게 옳은 일인가 하는 비판은 가능하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어른인 변씨가 책임지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고 신씨는 기록하고 있다. 노대통령의 행동이 법률적 정치적 문제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상대적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이다.

 

신씨가 노대통령을 언급한 맥락은 적어도 그렇다. 사회적으로 시체가 되면 치사하게 물어뜯는 기자 같은 부류와는 차원이 다름을 신씨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노대통령 사망에 대해 가슴아파하는 내용을 신씨가 적어 놓은 다른 대목을 보더라도 그런 의도를 읽을 수 있다. BBK 사건의 에리카 김이나 전 국세청장 한상률씨를 현 정권이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와 한번 비교해 보시라.

 

또 양씨는 노대통령과 신씨가 만난 적이 없다고 단언했는데, 양씨가 과연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위치였을까. 양씨는 부속실 등에 확인했다고 하지만 부속실이라고 모두 다 아는지 모르겠으며, 부속실 사람들도 노대통령의 명예를 생각해 진실을 그대로 이야기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신씨의 글을 깔아 뭉개버리기엔 외할머니의 소개 등 신씨의 서술이 너무 구체적이다.

 

(추가: 이 블로그 글을 올린 것은 3월 25일인데, 4월 5일에 출판사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노대통령과 신씨가 여러 차례 만났으며, 그 연락을 맡은 여성행정관 이름이 책 초고에선 실려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또 노대통령이 신씨에 대해 대변인을 맡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것에 대해, 청와대에서 검토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노대통령의 말은 대변인 감이라는 이야기였을 것이고 본격적으로 추진하지는 않았을 수 있는데, 양씨는 신씨의 글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듯싶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부터 신씨의 책 내용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따지기 전에 총평부터 해놓자면, 적어도 본인에게는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도 있었고 재미도 있는 책이었다.

 

트위터를 통해 작가 공지영씨는 내용이 지루하니 언론에서 보도한 부분만 찾아 읽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신씨의 책에서는 언론이 얼마나 엉터리인가 하는 걸 피 토하는 심정으로 읊어 놓고 있는데, 공지영씨는 그런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사실 본인은 미술에 대해선 백치인지라 미술 이야기 부분은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공지영씨 시키는 대로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뒷부분(검찰 심문과 재판 과정 등)이 본인에겐 더욱 흥미로왔다. 그래서 갈수록 책에 빨려 들었다.

 

공씨는 신씨의 책이 대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혹시 시기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트위터라는 게 신속성을 요구하다 보니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글을 올린 게 아닌가 싶다.

 

도대체 대필이란 게 무엇인가. 신씨가 전혀 집필작업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 정치가들의 경우처럼 당사자가 이야기하는 걸 대필작가가 각색했다는 말인가.

 

공씨처럼  작가인 경우가 아니면 출판사 편집부에서 원고를 다듬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본인도 책을 세 권 출간했는데, 그 중 두권은 출판사에서 원고 그대로 출간했지만 대중을 상대로 한 책의 경우엔 출판사에서 벌겋게 수정을 요구해 왔다. 이건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인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걸 모르지 않을 공씨가 논문도 대필했으니 이번 책도 대필했을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서문과 본문의 문체가 다르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서문과 본문의 문체가 반드시 꼭 같아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연히 편집부에서 문장을 손봤겠지만, 적어도 정치인들이 대필을 통해 책을 내놓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은 공씨가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100보 아니 1000보쯤 양보해서 신씨가 구술하는 내용을 토대로 해서 다른 사람이 글을 썼다고 하더라고 그게 무슨 치명적인 결점일까. 우리가 신씨의 문장력을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닌가. 본인이 알고 있는 베스트 셀러 중의 하나가 그런 게 있는데, 그 책 역시 그 내용으로 사회적 소명을 충분히 달성했다.

 

문장력이 중요한 문학작품이 아닌 신씨의 책에 대해 학위논문 대필을 빗대서 그것과는 차원이 크게 다른 자서전에 대해 대필 가능성을 흘리는 행위가 공씨의 명성에 걸맞은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지영씨가 실수한 게 아니라면 치사한 행태다.

 

오늘 글은 이 정도로 하자. (혹시 있을지 모를 오해를 피하기 위해 본인은 신씨와 일면식도 없으며 해당 출판사와도 아무 관련이 없음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