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동북아론의 부활을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북한이 핵실험을 결행하고 유엔은 제재를 결의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중국의 태도다. 중국은 한편으론 미·일의 강경 노선을 다소 누그러뜨렸지만, 다른 한편으론 북한 핵실험을 단호히 비판하고 제재에 동참한 것이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대한 중국의 외줄타기 전술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가 한반도 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은 틀림없다.
얼마 전 두만강변을 둘러보니 북한과 중국 사이는 어떤 곳은 바로 육지로 연결되고, 어떤 곳은 바지 걷고 몇 미터만 개울을 건너면 상대 국가다. 최근 철조망이 설치된 지역도 있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 쪽과는 달리 중국 쪽엔 지키는 군인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형편이니 북한이 위기에 처하면 대거 월경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1994년께 시작된 탈북은 2004년께부터는 크게 줄어들었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나아졌고 단속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북한인들이 뇌물을 바치고 도강을 하거나 통행증을 발급받는다. 장사나 친척 방문에 나서기 위해서다. 그리고 두만강 국경엔 곳곳에 독품(마약) 거래를 금지한다는 팻말이 눈에 띈다. 연변에서 발생하는 마약 사건에는 북한이 연루되어 있다고 한다. 북한 군인 등이 아편 따위를 만들어 중국에 밀매하는 듯싶다. 최고위층의 지시 여부는 모르지만 어쨌든 마약이 생계 유지와 부의 축적 수단인 셈이다. 중국으로선 골칫거리이리라.
중국은 북한의 공식무역에서 절반을 차지한다. 이 외에 중국 소상인, 불법 월경자, 친척 방문자들이 보따리나 트럭으로까지 물자를 거래한다. 이런 게 북한을 지탱해 준다. 여기에 북한의 중국 화교들이 맹활약을 해 재산을 불리고 있다. 어느 화교는 집의 자루에 많은 돈을 보관하고 있어 누가 훔쳐갈까봐 집을 못 비운다고 한다. 그만큼 북한과 중국 경제는 밀접히 연결돼 있다.
만났던 어떤 중국 교수는 북한의 살길이 ‘개혁과 개방’이라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관계와, 김일성과 김정일의 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개혁과 개방 전망이 어둡다고 했다. 개혁과 개방은 과거 체제를 일정하게 부정하는 일인데 북한에서 그게 가능하겠냐는 의미였다. 혹시 중국 지도부의 사고도 이와 비슷해서 그것이 북한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태도에 영향을 끼쳤을까.
한동안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수구언론은 그런 우려를 퍼뜨리면서도 그리 되지 않도록 남한과 북한의 교류를 강화하는 데는 반대한다. 참으로 기만적이다. 사실 북한이 동북4성이 되어 북한 인민이 잘살게 된다면 남한이 거기에 결사반대할 필요가 있을까. 다만 90년대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중국이 특단의 지원책을 펼치지 않은 걸 보면 동북4성 운운은 근거가 박약하다.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면서 동북아론은 실종 상태다. 그런데 이라크전쟁에서 보듯이 무책임하게 일을 저지르는 미국을 맹종할 수는 없다. 핵실험으로 위기가 심화된 지금이야말로 남한과 중국은 동북4성, 동북공정 운운하는 대립적 태도를 벗어나 평화적 동북아론을 정립하고 실천해야 한다.
우리 언론은 과거 북한의 대량 아사를 보도하면서 북한 체제를 비판한다. 그런 지적엔 일리가 있다. 그러나 바로 곁에서 그런 대량 아사자의 발생을 방치한 남한의 비인도적 처사를 문제 삼는 언론은 드물다. 핵실험 후 북한 인민이 어떤 고통을 겪을지 걱정되는 바 크다. 북한 정권의 폭주를 막고 북한 인민을 돕기 위해 직접적 이웃인 남한과 중국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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