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생뚱맞은 사회적 타협론(2006/9/8) - 한겨레신문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6:03

[세상읽기] 생뚱맞은 사회적 타협론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뉴딜 제안에 대한 반응이 신통찮다. 청와대와 정부가 시큰둥할 뿐아니라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대놓고 비판한다. 재계는 환영하는 편이지만 실행 여부에 회의적이다. 여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덩달아 본인의 인기도 높이려 한 승부수가 왜 이렇게 찬밥 신세일까?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타협이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한다. 군사독재 시대의 억압과 투쟁 대신 민주화 시대엔 대화와 타협이 자리잡아야 한다. 경제가 성숙하면서 과거의 고성장 단계가 중성장 단계로 변모한 지금, 그에 걸맞은 사회적 타협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개발독재 체제를 넘어서 우리 나름의 선진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사회적 타협의 내용이다. 그런데 김 의장의 사회적 타협안에는 독소조항이 들어 있다. 정부가 출자총액 제한제도를 폐지하고 재벌총수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한편, 재벌기업은 투자를 늘리자는 것이다. 그동안 줄곧 재계는 황제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반개혁 조처를 요구해 왔다. 김 의장이 여기에 편승한 셈이다. 학계에선 재벌체제 옹호론자인 장하준 교수가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으며, 좋은정책포럼의 김형기 교수도 비슷한 맥락에서 총수의 경영권 보장과 노동자의 경영참가를 맞바꾸자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제안은 흔히 ‘친재벌’, ‘친기업’이라고 비판받는다. 그러나 이는 사실 재벌총수에 아부해 재벌기업과 나라경제를 위태롭게 만드는 ‘반재벌’, ‘반기업’ 노선이다. 재벌총수에게 황제적 경영권을 보장해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우리는 이미 아이엠에프 사태에서 쓰라리게 경험한 바 있다. 아무리 급변하는 사회지만 이렇게 건망증이 심한가. 총수의 무능과 부패를 바로잡자는 재벌개혁의 의의를 어떻게 그리 간단하게 짓밟을 수 있는가.

 

  출자총액 제한제도가 기업의 실제 투자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나, 경영권 불안으로 투자가 위축되었다는 재계의 보고서가 수치를 왜곡하였다는 점은 이미 충분히 밝혀졌다. 현재 투자에 문제가 있는 쪽은 재벌이라기보다 중소기업이고 서비스업이다. 그런데 이런 실증적 연구결과들을 무시한 채 김 의장과 일부 학자는 총수에게 경영권을 보장해주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얘기한다.

 

  기업의 투자는 수익전망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이뤄져야지 총수에게 준 선물의 답례여서는 곤란하다. 또한 시민단체의 정당한 견제에도 펄펄 뛰는 재벌총수가 노동자의 경영참가를 받아들이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철저한 재벌개혁이 도리어 노동자 경영참가의 필요조건이다. 그리고 경영권이란 경영능력을 통해서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다. 혹시 외국인의 부당한 경영권 공격을 막고자 한다면 국내 투자자가 나서야지 요상한 꼼수를 동원해선 안 된다. 김 의장이 우려하는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가 금융기관 등에서 일부 엿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이런 게 총수 자본주의가 엄연한 재벌에도 만연해 있다고 침소봉대해선 안 된다.

 

  사회적 타협은 우리 시대의 과제다. 하지만 타협을 추진할 능력을 갖춰야 하고 그 타협이 올바른 내용이라야 한다. 뉴딜 대신에 차라리 여당은 사채의 고금리를 규제하고, 성매매 처벌법을 재검토하며, 졸속적인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제동을 걸어, 서민과 개혁세력의 지지를 회복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지지를 기반으로 예컨대 대기업노조가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대기업과 부유층은 세금을 더 부담하며, 그 재원으로 사회복지를 확충하는 것이 사회적 타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쉽지는 않다. 그러나 이는 옳은 일이고, 바람직한 선진국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