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뺄셈하는 대통령과 노동계 <한겨레신문 2003년 12월 12일자>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5:38

 

<한겨레신문 2003년 12월 12일자>


                     뺄셈하는 대통령과 노동계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올해엔 굵직굵직한 노동쟁의가 유난히 잦았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은 초기엔 친노조 노선을 걷다가 파업이 잇따르면서 강경대응으로 선회했다. 그러더니 노동자들 자살사태에선 ‘분신을 투쟁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는 어이없는 실언마저 내뱉었다. 원래 대통령은 노동계에 대해 우호적 감정도 가졌지만 그와 동시에 ‘뺄셈을 한다’면서 비판하기도 했는데, 취임 후 후자 쪽 생각이 점점 강해진 셈이다. 그런데 뺄셈 즉 지지세력 떨치기에선 노동계와 대통령 중 정말 누가 더 능했는가.

 

  실상은 대통령이 오히려 한수 위인 듯하다. 현재지지율은 취임초기는 말할 것도 없고 당선시점과 비교하더라도 10%이상 하락했다. 정치개혁 한다면서 민주당세력 제치고, 선거공약 팽개치면서 개혁진영 등돌리게 만든 탓이다. 물론 거대야당과 수구신     문의 반발로 뭔가 제대로 추진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그 와중에 검찰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집값폭등을 억제했으며, 스크린쿼터제를 붙들고 있고, 수구신문에 아부하지 않는 점 등 사줄 만할 부분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수구신문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실제정책에선 그들에게 많이 끌려갔다. 우선 미국에 지나친 저자세를 보이며 명분도 실리도 없는 파병을 추진했다. 또 장수천사업 실패의 악몽 때문인지 경제면에선 겁먹고 개혁포기와 안전제일주의에 빠져버렸다. 환경과 노동문제처럼 갈등이 첨예한 영역의 조정능력도 수준 이하였다. 높은 분들이 불법을 자행하는 터에 씨알이 안 먹히는 ‘법과 질서’ 타령만 되뇌기에 이른 것이다. 화술에서도 장인의 좌익전력시비에 대응했을 때 같은 감동은 느낄 수 없다. 그러니 지지기반이 허물어지지 않겠는가.

 

  한편 노동계의 산수실력은 어떤가. 대통령 말대로 노동계를 곱게 보지 않는 시각이 자꾸 늘어난 느낌이다. 근년의 노동운동이 국민일반이나 진짜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킨다고 비쳐지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수구신문의 왜곡과 과장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사실 많은 사업장에서 노조는 존립조차 위협받고 있다. 또 노조를 파트너가 아니라 적으로 간주하는 경영진, 여간해선 꿈쩍 않는 관료, 미비한 사회안전망 등 노동계를 질책하기에 앞서 바로잡아야 할 과제도 많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노동계 ‘일각’이 개선해야 할 부분도 없지는 않다. 상당수 학자들에게조차 낯선 ‘신자유주의 반대’를 대중적 구호로 내건 정치적 무감각이나 기업이 도산위기에 처했는데도 한사코 해고를 반대한 무책임성이 그런 예들이다. 떼 논 당상 같았던 울산북구 국회의원 자리를 놓치게 만든 파벌대립의 폐해도 만만찮다. 노정교섭을 요구하면서 노사정위원회 참여는 거부하는 민주노총방침도 이해하기 힘들다.

 

  국민지지를 얻는다면서 외자반대 따위의 명분을 내세웠다가 실리만 챙기면 쉽게 명분을 내던지기도 했다. 비정규직 희생을 내몰라하는 정규직노조도 없지 않았다. 대기업노조가 한 해라도 정규직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비정규직이나 하청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이끌어가는 식의 감동은 준 적이 없다. 가압류를 시정하는 운동 말고 가압류피해자 지원기금을 중앙조직에서 조성하는 노력도 소홀했다. 공공성이 큰 부문의 파업에 따른 국민불편에 대한 배려가 충분했는지도 의문이다. 흔히들 프랑스인은 파업에 눈살찌푸리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선 노조 단체협약이 노동자전체에 적용되는 비율이 우리의 10%대보다 훨씬 높은 90%정도여서 노조요구가 곧 다수의 요구로 다가온다.

 

  대통령이든 노동계든 이젠 시행착오를 그만하고 덧셈을 시작해야 한다. 대통령은 청와대와 내각을 개혁적 면모로 대폭쇄신하고 선거공약을 되살려야 한다. 보수세력에 기대려는 헛된 망상 버리고 본래 지지세력 중심으로 정정당당하게 나아가면 된다. 노동계의 지도부와 지도노선도 달라져야 한다. 노동자전체의 이익을 골고루 대변해야 함은 물론 국민경제의 책임 있는 주체로서 지혜로운 전략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새해엔 한번 확 바꿔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