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대 학보 2003. 10.6일자 >
미국의 민주주의와 제국주의
김 기 원 (경제학과 교수)
1년 미국체류 동안 시위라는 것을 오랜 만에 다시 해 보았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하지만 군사독재 시절의 우리와는 달리 너무도 평화적이어서 싱거울 정도였다. 행진 중엔 피켓을 들고 갈 뿐 노래도 부르지 않았다. 겨우 지나는 차량들이 동조의 표시로 경적을 울려줄 뿐이었다. 시위기술은 오히려 우리가 한 수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다만 시위대열은 본인이 살던 유타가 보수적인 지역이었는데도 수백 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참가계층도 다양했고, 아는 미국인 교수는 가족들을 데리고 나오기까지 하였다. 더욱이 반전연설자 중에는 그 도시 시장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쯤 되면 누가 누구를 상대로 시위하는지가 불분명한 판이었다. 물론 전쟁주체들이 몰려 있는 워싱턴에선 양상이 좀 달라, 시위참가자도 수만 명이었고 좀더 격앙된 분위기였다.
어쨌든 이라크 침략을 계기로 미국에선 월남전 이후 오랜 만에 민주화운동이 활기를 찾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유타에서도 시민운동 조직이 여럿 생겨났다고 한다. 또 이 반전세력은 대학생만이 아니라 바브라 스트라이잰드, 해리슨 포드 같은 유명연예인을 비롯해 케네디 상원의원, 고어 전 부통령 등 많은 정치인도 망라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미국의 풀뿌리 민주주의인 셈이다.
그런데 부시대통령은 이 민주주의세력의 저항을 물리치고 침략전쟁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미국국민 다수는 이 전쟁을 지지하였다. 나치스와 일제의 침략이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엔 우선 9/11 테러 이후 미국국민의 공포감과 적대감이 크게 작용한 듯싶다. 그리하여 분별력이 흔들린 많은 미국인들은 사실과 전혀 달리 이라크의 후세인이 9/11 테러의 배후라고 믿기까지 한 것이다.
게다가 언론 특히 방송은 사실의 왜곡과 과장을 일삼으면서 미친 듯이 전쟁을 부추겼다. 이 점에선 한국 수구언론의 왜곡과장만 나무랄 일이 아니었다. 나치스, 일제에서와 마찬가지로 반전세력을 비(非)국민으로 몰아치기까지 하였다. 이런 가운데 부시 정부는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의 위협, 알 카이다 테러세력과의 연계 등을 들이대면서 미국국민을 전쟁으로 몰고 갔다. 이게 바로 유엔까지 무시한 미국의 제국주의세력인 셈이다.
원래 제국주의는 경제적 이익을 도덕적 명분으로 포장한다. 미국 제국주의도 석유군수자본의 이익을 중동의 민주화평화유지라는 명분으로 덮어씌웠다. 그러나 미국이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운 대량살상무기 따위는 거짓임이 드러났다. 파월 국무장관이 유엔에서 제시한 증거들도 엉터리였다. 물론 독재자 후세인은 교체되어야 하지만 그 후세인을 키운 게 누군가. 바로 럼스펠드 현 국방장관 같은 신보수주의의 제국주의세력이 아닌가.
미군은 이라크 정규군은 쉽게 제압했지만 게릴라식 저항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그래서 우리더러 파병해 달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국익도 이야기하고 한미동맹관계도 걱정한다. 하지만 국익이란 게 도대체 무언가. 이라크 재건사업에 한몫 끼자는 것인가. 그게 몇 푼이나 될지 의심스럽지만 아랍인의 분노를 사서 잃게 될 것은 또 얼마일까. 그리고 돈 좀 된다고 아무데나 끼어든다면 조폭과 뭐가 다른가. 많은 유럽선진국들이 파병을 거부한 것을 보라.
파병 않는다고 반미인 것도 아니다. 부도덕한 전쟁에 대한 거부는 미국 제국주의세력이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세력과 손잡는 것이다. 미국국민도 이제 정신을 조금 차려 부시의 인기는 꽤 떨어졌다. 내년 미국선거에선 민주주의세력이 집권할 수도 있다. 사람 죽이는 전투병 파병이 아니라 사람 살리는 의료건설 등 인도적 지원이 우리가 할 일이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소득 2만 달러 달성보다 국제적 존경을 받는 일이 더 중요하다.
'신문잡지 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뺄셈하는 대통령과 노동계 <한겨레신문 2003년 12월 12일자> (0) | 2011.02.17 |
---|---|
정치살리기의 경제학 <한겨레신문 2003년 11월 14일자> (0) | 2011.02.17 |
재계도 고해성사를 (대한매일 2002. 4. 26) (0) | 2011.02.17 |
생산적 이념논쟁을 바라며 (한겨레신문 2002년 3월 30일자) (0) | 2011.02.17 |
DJ재벌개혁의 결산과 반성 (참여사회 2002년 1월호) - 참여사회 (0) | 2011.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