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04년 1월 16일자 기고>
외국자본에 대한 미신들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올해는 갑신정변이 일어났던 바로 그 갑신년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제국주의열강의 각축전 속에서 낡은 봉건질서를 깨뜨리려던 김옥균 등의 몸부림이 바로 갑신정변이다. 이런 변혁시도들이 실패한 후 우리나라는 일제식민지로의 전락이라는 서글픈 행로를 밟게 된다. 지금의 상황은 주권을 빼앗길 처지도 아니고 그때에 비해 많이 근대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화의 격랑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낙후된 정치경제체제를 혁파해야 한다는 점에서 120년 전 당시와 일맥상통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선진열강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갑신정변 무렵의 고민은 오늘날 외국자본도입과 관련하여 재현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외국인의 상장주식 보유비중이 40%를 넘고, 제일은행에 이어 외환은행도 외국자본에 넘어가고, 외국계펀드가 SK그룹 비리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외자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란에서 과학이 아닌 미신이 판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우리를 우려케 한다.
그 한편의 미신이 외자에 대한 우상숭배다. 외자만 들어오면 만사형통이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물론 외환부족 상태에서 외자유치는 절실했고, 외자가 선진적 기술과 경영방식을 전수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자는 경제발전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 외자를 별로 받아들이지 않고 선진국에 도달한 일본이나 그 반대로 일찍부터 외자가 많이 들어갔지만 후진국에 머문 중남미국가가 그 증거다. 중요성이 점점 커지곤 있지만 외자는 어디까지나 경제발전을 위해 활용 가능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외자가 군사쿠데타를 지원하여 역사를 후퇴시킨 사례도 있다.
실제 IBM은 최근 납품비리에서 보듯이 선진경영을 보급시키기보단 우리의 썩은 관행에 물들었다. 외국계은행은 관치금융에 저항했을 뿐 바람직한 기업금융기법을 제대로 퍼뜨리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의 논리는 원래 인권의 논리와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노동, 환경, 문화를 무시하는 외자지상주의가 횡행하는 것도 큰 문제다. 한미투자협정을 위해 스크린쿼터제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이 그런 예이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노사관계는 경영진 하기 나름이라는 외국인경영자 발언은 도외시하고 강경노조 탓에 외자유치가 힘들다는 다른 외국인 말만 대서특필하는 언론이다.
이런 외자 우상숭배의 반대편에 둥지 튼 미신은 외자에 대한 마녀사냥이다. 외자가 나라경제를 결딴낼 것처럼 생각하는 게 그것이다. 사실 국가의 기간산업을 아무렇게나 외국에 넘겨선 곤란하다. 또 주요 은행을 연이어 외국계로 만들기보다는 국내기관투자가에 의한 인수를 장려해야 한다. 예컨대 일본생명처럼 삼성생명을 보험계약자 중심의 상호회사로 전환하여 계열분리시키고 은행을 인수케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자본의 범세계화는 대세며 중국은 외자가 성장의 견인차다. 또 우리 자본도 외국에 많이 진출하면서 외자를 배척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볼보가 무노조이던 삼성사업체를 인수하면서 노조를 인정하는 등 선진경영을 선보인다든가, GM대우차가 기업을 수렁에서 건진 것 같은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리고 수구세력의 기득권유지를 위한 사이비민족주의야말로 정말 큰일이다. 이는 친일파인 박정희가 정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반일 관제데모를 부추긴 것과 마찬가지다. 외자로부터 경영권을 지킨다면서 재벌개혁에 딴죽을 거는 주장은 바로 재벌총수의 무책임 불법경영을 조장하자는 것이고 외환위기의 교훈을 망각한 처사다. 따져보면 재벌을 외자에 넘기지 않기 위해서도 재벌개혁에 의해 재벌의 도산확률을 낮춰야 하지 않는가.
갑신정변 무렵의 올바른 정책은 우리의 주권을 확보하면서도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어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원칙은 동일하다. 외자의 긍정적 기능을 최대화하고 부정적 기능을 최소화하려면 내부개혁의 주체적 수행과 외자에 대한 분별력 견지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외자는 천사도 악마도 아님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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