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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8.14일자 추억의 글: 지연이체제도와 송금제한제도: 국민의 피부에 한발씩 와닿는 정책을

동숭동지킴이 2021. 8. 14. 10:09

<지연이체제도와 송금제한제도: 국민의 피부에 한발씩 와닿는 정책을>

 

보이스 피싱 문제에 관해 여러 달 전에 제가 페북에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그때 저는 보이시피싱이 한국에 만연해 있고, 제 주위에서도 여러 사례를 목격했다고 했습니다.

정부가 발표하는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실제보다 적다는 걸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신고해 보았자 찾을 길 없다는 걸 피해자들이 알고 아예 신고를 안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실제로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더라도, 아마도 대부분이(저도 포함해)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게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한국에서 극성을 부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에선 계좌이체한 돈을 곧바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걸 금융전문가에게서 들었다는 것도 거기서 소개했습니다.

따라서 보이스피싱의 근본대책은 이체한 돈을 독일 등 다른 나라처럼 하루 이틀 지난 후에야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온라인 쇼핑몰의 거래는 한국에서도 이미 그러하지요.) 그걸 지연이체제도라고 하지요.

"빨리 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에서는 처음엔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의 저항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문화를 "조금 늦더라도 안전한" 문화로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안전의 중요성은 세월호 참사에서도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제가 페북에 그 글을 쓸 때는 우리 정부가 과연 그렇게 제도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약간 놀랍게도 오늘 정부에서는 내년 상반기부터 지연이체제도를 도입하고, 금년 9월부터는 사전에 지정된 계좌 이외로는 100만원 이상의 송금을 허용하지 않기로 한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는 않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정책변화를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게 제대로 시행되면 보이스 피싱은 거의 사라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겁먹고 놀라서 사기범들이 요구하는 대로 했다가 좀 시간이 지나면 정신을 차릴 수 있고, 그리해 진상을 확인하고 송금액 출금정지 조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의 변화가 쌓이고 쌓여서 바람직한 선진사회로 갈 수 있는 것이지요. 제가 지난 주에 제안한 '징병제폐지' 즉 '정예모병제'도 좀더 큰 사안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 개혁정책입니다.

우리 정치인 특히 야당 정치인들은 아주 멋진 정책만 찾을 게 아니라 지연이체제나 징병제폐지와 같이 우리 삶에 밀접한 이슈에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리 하려면 우리 삶에서 무엇이 절실한 과제인지를 "보려는 노력과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겠지요.

 

윤일병 폭행사망사건과 관련해 제가 페북에서 제안했고 허핑턴포스트에서 옮겨실어 꽤 많은 사람이 읽은(댓글만 2천개 정도) 징병제 폐지론은, 제 글에 이어 며칠 뒤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에서도 다루었습니다. (감각이 원래 늦은 이른바 진보언론에서 다룬 기사나 칼럼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 삶에 절실한 과제들을 공론화해가면 조금씩 조금씩 우리 문제도 풀려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사회 문제에 너무 비분강개만 하지 말고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해법을 찾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