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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14 추억의 글: 장하성과 안철수 : 정치세계의 어려움

동숭동지킴이 2020. 9. 14. 11:32

<장하성과 안철수 : 정치세계의 어려움>

장하성교수가 <한국 자본주의>라는 책을 펴내면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아래 링크 참조.) 저도 비슷한 내용의 글들을 쓰기도 했습니다만, 7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인지라 아마도 제 글보다 내용이 훨씬 풍부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분량이 너무 많다고 겁먹지 말고, 사서 관심 있는 부분 부분부터 먼저 읽어가면 되겠지요. 저는 여기서 책의 내용보다는 인터뷰 말미에서 언급한 안철수와의 관계에 대해서 첨언해볼까 합니다.

...

장교수는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재벌개혁운동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입니다. 소액주주운동이라는 방식과 소송이라는 방식을 새롭게 도입했던 것이지요. 저도 그를 통해 재벌개혁운동에 뛰어들었고, 한 동안 언론활동 등을 통해 재벌개혁의 필요성과 방법론을 역설했습니다.

그러면서 장교수를 보니, 제가 알고 있던 진보개혁교수들과는 달리 주의주장만 부르짖는 게 아니라 "일이 되게 할 줄" 아는 교수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옆에서 이것저것 보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저의 주된 관심이 북한문제쪽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근래엔 그와 자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물론 지금도 재벌문제에 완전히 관심을 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가 2012년 대선을 즈음해 그와 자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장교수는 문재인캠프와 안철수캠프 양쪽으로부터 모두 부름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찌해야 좋을지 재벌개혁 운동 등에 같이 했던 사람들로부터 의견을 듣고자 하는 자리였습니다.

저는 당시 안철수란 인물에 대해 자신 있는 판단을 내릴 만큼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장교수에게 어느쪽이 옳은지 확신이 서지 않으면, 어느쪽에도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모인 사람들 중에 저처럼 이야기한 사람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장교수는 안철수에 대해 확신을 가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결국 그쪽 캠프로 갔습니다.

그 이후 선거가 끝나고 안철수가 다시 정치조직을 만들려고 할 때, 장교수는 또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저는 그때쯤엔 안철수에 관해 나름대로 충분한 정보를 확보했고, 아울러 대선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행태를 통해서도 그의 정치적 그릇에 대해 자신있게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안철수에 대해 "이제 안철수에게는 내리막길만 남아있다"고 여러 사람들에게 말해왔습니다.

그래서 장교수와의 그 자리에서 저는 "안철수와 같이 일하려 하지 말라"고 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장교수를 위해서, 다소 기분 나쁘게 들리는 톤으로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때 역시, 모인 여러 사람 중 그렇게 강하게 말한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제가 정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게 강하게 말했냐고요. 물론 예전엔 제가 장교수 등보다 정치에 대해 훨씬 몰랐습니다. 하지만 김상곤 교육감의 선거와 정치투쟁에 관여하면서 정치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노무현정권이 기대에 못미친 것을 나름대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한국정치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해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라는 제 책의 제1부는 한국의 정치-정책 분석이 그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또 어쩌다 한국의 정치고수들에게서 정치를 배울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적어도 장교수나 그의 주변보다는 정치판단력에 자신이 있었고, 그래서 말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도 장교수는 제 조언을 듣지 않았고, 결국 이번 한겨레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안철수에게서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가 이번에 책을 낸 것 같이, 한국 경제와 기업의 장래를 위해 많은 일을 해주길 기대합니다. 사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다른 진보개혁 인사들과는 달리, 일이 되게 할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그가 정치와는 이제 분명한 거리를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교수팀과 장교수가 같이 할 일들만 해도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냥 한 명의 정치가가 되는 게 아니라 정치에서 성공하려면 '천재적 직관'이 필요합니다. 정치란 게 그리 만만한 게 아닙니다. 특히 한국처럼 정치질서가 자리잡히지 않은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독창적 맑스경제학자인 우노코죠도 정치판과 거리를 두었던 것이지요.

한국의 진보개혁인사들도 아직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이 남아 있는 경우엔, 정치판과 거리를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정치판 자체에서 인물이 커나갈 수도 있습니다.

갑자기 이상돈교수 같은 인물을 외부에서 영입하는 방식이 계속되면 한국의 정치판이 거듭날 수 없습니다. 교수나 지식인만이 아니라 현대그룹에서 일했던 이계안씨 같은 인물들도 정치판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기 할 일을 찾는 게 인력의 최적배분에 기여할 것입니다.

정치판의 제의를 받았지만, 계속해서 거리를 두고 있는 분들을 우리 모두가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백낙청 선생님을 비롯해 김상조 교수 같은 인사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그대로 할 일이 있고 이때까지 모범을 보여왔습니다. 굳이 제가 여기서 이름을 거명하지 않겠습니다만, 얼마 안 되는 여러 다른 분들도 신중한 자세를 취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http://www.hani.co.kr/a…/economy/economy_general/6550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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