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모델의 본질을 찾아서 : 노동시장과 교육시스템의 정합성>
오늘자 <한겨레>에 "중소기업 강국의 길"이란 제목 하에 거의 3개 면을 독일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한겨레에서는 독일의 세계적 중견기업(이른바 hidden champion) 이야기를 실었고, 새누리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도 독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자 <Finamcial Times>에서도 독일의 노동시장에 관한 글을 두개나 실었습니다. (하나는 "Why the US is looking to Germany for answers"이고 다른 하나는 "Germany eyes action on worker shortage"입니다. 기사는 현재는 구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한겨레와 FT의 공통적인 내용은 독일 직업교육 시스템의 우수성입니다. 독일에선 초등학교를 마치면서 대학에 갈 학생과 직업교육을 받을 학생을 일단 구분합니다. 그리하여 16세가 되면 거의 절반 정도의 학생이 직업교육의 길로 나아갑니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이 80% 이상인 것과 크게 다르지요.
전적으로 이런 독일 시스템 덕분인지, 아니면 유로의 도입으로 인해 독일의 실질임금이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하락한 덕분인지, 아니면 그 둘 모두의 덕분인지 알 수는 없지만, 독일 경제는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잘 나가고 있습니다. <메르켈 총리 이전의 사민당 총리에 의해 단행된 HARZ IV라고 하는 노동 및 사회보장 개혁(개악?)도 영향을 미쳤겠지요.> 유로존 국가의 평균실업률이 12%가 넘는데 독일은 6%를 밑돌고 있습니다.
한겨레 기사나 FT 기사는 모두 이렇게 잘 나가는 독일경제의 원인으로 독일 직업교육 시스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시스템이 잘 나간다고 당장 그걸 그대로 우리나라에 도입할 수는 없겠지만, 그 잘 나가는 것의 본질을 이해할 필요는 있겠습니다. (제가 강조한 덴마크 등의 <유연안정성>모델도 그 본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FT의 기사에서 제가 발견한 그 본질은 바로 노동시장의 요구와 교육제도의 정합성인 것 같습니다. FT는 독일에 대비한 미국의 문제점으로서 "The US faces a deepening mismatch between what its labor market needs and what the education system is producing."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미국에선 한편으로 skilled labor가 부족하고(논란의 여지는 존재함), 다른 한편으로 overqualified labor가 넘칩니다. 후자의 구체적인 사례로서, 대학학위를 소지한 인력의 절반 가량이 학위가 필요없는 직업에 종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과거에 비해 훨씬 심각해졌습니다. 1970년과 지금을 비교한 수치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과거엔 택시 기사의 1%만이 대학졸업자였는데 지금은 15%이며, 판매사원 중 5%였던 대졸자가 지금은 25%이며, 놀랍게도 지금은 청소부 중에서도 석사학위 소지자가 5%나 된다고 합니다.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에서는 직업교육이 잘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역사적 전통도 있을 것이지만, 대졸자와 고졸자의 실질임금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게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미국에서도 독일이나 북유럽에 비해선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격차가 큽니다. 따라서 그동안 불필요한 교육인플레가 발생하고, 아울러 적절한 숙련인력의 확보가 어려워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에서도 이와 관련된 연구가 어디엔가 있을 듯합니다만, 저의 전공분야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있으면 공유하십시다. 어쨌든 미국보다 학력인플레가 더 심한 한국은 현재 미국이 직면한 문제를 앞으로 마찬가지로 떠안게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한국의 큰 제조업체를 오랫동안 운영해오신 분에게서 제가 여러 해에 걸쳐 가르침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 분은 "한국의 제조업에는 미래가 없다"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사용하신 바 있습니다. 그분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오늘자 FT 기사를 보면서 얼핏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한국경제의 미래와 관련해서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므로, 혹시 가능하면 내용을 좀더 보충해서 제 블로그에서 다뤄볼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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