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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20자 추억의 글: 기초단체 정당공천 문제와 정치 innovation

동숭동지킴이 2020. 3. 20. 09:25

<기초단체 정당공천 문제와 정치 innovation>


새민련의 기초단체 정당공천 폐기가 자살행위라는 것에 대해서 이제 여러 사람들이 입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이부영 전 의원의 글을 비롯해 김종철 한겨레 기자의 오늘자 칼럼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한인섭교수도 페북에 같은 취지의 글을 썼습니다.

제가 일주일 전쯤에 글을 쓰고 나서 겨우 이제야 발동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제 글 때문에 발동이 걸렸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는 말입니다. 하하하.)


한국의 정치문제가 주된 관심사가 아닌 저와는 달리, 밥먹고 하는 일이 정치인 직업적 정치가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이렇게 늦게 느끼는 걸 보니 어이가 없습니다. 너무 일상에 매몰된 탓일까요, 아니면 입을 떼는 게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큰 탓일까요.

어쨌든 새누리당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판에, 이제는 새민련이 자신의 약속을 고집하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실제 선거현장에서의 목소리가 이제 점점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선거현장과의 연계가 약한 안철수 진영이 자기들은 별로 답답하지 않으니까 정당공천 폐기 방침을 계속 고집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엉뚱한 의원축소 방침을 단일화협상 과정에서 계속 고집한 경우를 보면 그럴 위험은 존재합니다.

이러다가 끝까지 정당공천폐기를 고집해서 야권의 뿌리가 초토화되거나, 아니면 늦게라도 그 노선을 철회하게 될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요.

새로운 정치문화가 탄생되기 위해서는 새민련과 같은 야당이 거의 초토화되는 게 차리리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건물이 완전히 망가져야 새 건물을 짓기 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를 애들 장난하듯이 하는 게 아니라면, 이런 막가파식 사고는 곤란하겠지요. 이건 앞으로의 총선, 대선과도 관련된 문제이고, 일단 망가진 정치조직이 재건하기는 상당히 어려우니까요.그렇다면 정당공천폐기 철회로 가는 게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냥 옛날 상태로 도로 돌아가는 것은 재미가 없습니다. 아니 재미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을 가지고 놀았다는 느낌마저 줍니다. 어차피 되지도 않을 공약을 가지고 떠든 셈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새민련은 '호남에서의 정당공천 폐기'를 실천하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물론 아마도 이건 새민련의 호남 기득권세력의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큽니다. '왜 우리만 예외로 하느냐'고 말이지요. (사실 호남은 새민련 깃발만 꼽으면 거의 당선이 보장된 '예외' 지역이므로, 예외로 처리해야 마땅하지요.)


하지만 호남에서 정당공천을 폐기한들 새누리당이 당선될 가능성은 작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일부 지역에서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로 당선되면 그건 우리 정치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새민련도 그 정도야 내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지역패권 정치가 약화될 수 있으니까요. 기초단체 정당공천의 폐해가 가장 심각한 지역도 영호남이지 않습니까(새누리-영남, 새민련-호남).

호남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뚫고 '호남 정당공천 폐기'를 주장하면서 새누리당에 '영남 정당공천 폐기'를 요구하면, 이건 명분도 사는 일입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의명분이지요.

이건 아마도 진정한 새정치의 하나의 실천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정치 innovation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슘페터가 말한 innovation 중에는 '생산요소의 새로운 결합'이라는 게 있습니다.


'호남 정당공천 폐기'는 바로 그런 새로운 결합을 의미합니다. 정치적 인자들이 새롭게 결합해서 유권자에게 새로운 정치상품을 선보이는 것이니까요.

innovation이 등장하는 것은 뭔가 막다른 골목에 처했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기업 생산현장에서의 '개선'(도요타 자동차처럼)엔 그런 게 많지요. 지금 기초단체 정당공천 문제를 둘러싼 새민련의 처지도 바로 그와 같습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민련이 이런 innovation을 수행할 정치적 역량이 존재하는가의 여부가, 새민련의 장래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줄 듯싶습니다. 특히 젊은 정치인들(시민단체 및 진보교수 출신)의 분발을 촉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별로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만, 안철수가 얽힌 매듭을 푸는 결단 즉 '호남 정당공천 폐기'로의 방향전환을 스스로 천명하면 이것도 해법의 하나입니다.

이리되면 안철수는 이때까지 까먹었던 점수를 상당히 만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쪼잔한' 인물에서 '큰' 정치를 할 수 있는 재목으로 선보이는 것이지요. 어찌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