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고유의 글

2014. 3.25일자 추억의 글: '벌거숭이 임금님'과 '새 정치'

동숭동지킴이 2020. 3. 25. 11:09

<'벌거숭이 임금님'과 '새 정치'>

요즘의 한국정치를 보면, 어릴 때 동화책에서 읽은 '벌거숭이 임금님'(안데르센 작)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한번 기억을 더듬어 볼까요. 옛날 옛적 임금님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새 옷'을 맞추어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알고보니 옷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옷 아닌 옷을 만든 사기꾼 재단사들은 "구제불능의 멍청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옷감으로 만들었다"고 설레발을 쳐놓습니다. 때문에 옷이 보이지 않는 왕실 신하들도 멍청이라고 할까봐 왕에게 자기 생각을 털어놓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임금님은 그 옷 아닌 '새 옷'을 입고, 즉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상한 꼴을 보고도 백성들도 차마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합니다. 무엄하기도 하고 멍청이라고 놀릴까봐 걱정되어서입니다. 오직 순진무구한 어린애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외치는 것이지요.


'새 옷'이 애당초 옷이 아닌 것처럼, 안철수가 주창한 '새 정치'도 사실 정치가 아님이 드러났습니다. '헌 정치'도 아니고 아예 정치가 아니었습니다(없을 無자 '무 정치').

예전에 그가 주장한 국회의원 축소와 마찬가지로, (새누리당이 수용하지 않는) 기초단체 정당공천 폐기도 정치를 죽이는, 즉 옷을 벗기는 일이니까요. 좀더 강하게 표현하면, 안철수의 정치는 죽일 殺자 '살 정치'인 셈입니다.


임금님이 바라는 멋진 옷을 만들 실력이 없는 사기꾼은 아예 옷을 만들지 않고 임금님을 벌거숭이로 만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멋진 '새 정치'를 외쳤지만 그 내용을 채울 실력이 없는 안철수는 정치를 제거해 야당의 옷을 벗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애당초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자질이 부족한 안철수는 이런 걸 '새 정치'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마치 임금님이 자신이 벌거벗은 줄 모르고 멋진 옷이라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부 잘하고 머리 빨리 돌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천동설론자'가 적지 않습니다.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물들을 지칭해서 제가 만든 용어입니다. 제가 이전 글들에서도 여러 사례를 들어 말씀드렸지만, 안철수는 바로 그런 '천동설론자'의 대표격입니다. 


안철수는 기업을 할 때도 그랬고, 정치판에 들어서서도 그랬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갑작스럽게 사퇴할 때도 그랬고, 이번에 당통합을 결정할 때도 공식의사결정기구를 우습게 만들고 독단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조그만 벤처기업에서는 그게 통할 수도 있지만,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정치판에선 그게 통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들은 그걸 아직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당수가 거기에 같이 휩쓸리고 있습니다. 기초 정당공천 폐지와 관련된 일부 야당정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벌거벗지 않았고 자기 눈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셈이지요.

이런 점에서 서울시장인 박원순이나 대구시장 후보인 김부겸의 발언도 실망스럽습니다. 그리고 기초단체 문제에 대해 아무 말도 않고 있는 다른 광역단체 야당후보들도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있는 걸까요. 광역단체장이 되면 밑바닥의원들의 지원 없이는 일을 제대로 하기 힘들텐데 어쩌자는 이야기인가요. 자신만 당선되면 그만인가요.


밑바닥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의 실정을 이렇게 모르고 무슨 정치를 한다는 이야기일까요. 야당의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바로 이렇게 정치와 생활의 밑바닥과 유리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벌거숭이 임금님과, 그와 정치생명을 같이 하는 일부 인사들과, 또 벌거벗은 걸 애써 외면하려는 또다른 집단이 지금 야당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서야 한국 정치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지요.


지금이라도 당원전원 투표를 결행하거나(2단계의 문항 구성 - 호남 예외 여부는 2단계문항에서 결정하는 게 좋겠지요), 제가 주장했던 대로 지도부 결단에 의해 "호남 이외의 정당공천 부활" 노선을 택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눈을 감고 있는 몇몇 인물들이 제멋대로 판을 휘젓는 속에서 과연 그런 '눈뜸'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