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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글(2014.05.07): 미국-EU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논란

동숭동지킴이 2019. 5. 7. 10:43

<미국-EU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논란>

세월호 참사로 인해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언제 마음이 내키면 세월호 사태도 한번 정리해볼까 어쩔까 생각합니다만, 아직은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자 Berliner Zeitung 신문에 참고할 만한 칼럼이 실려 소개합니다. 거기서 다루는 문제는 세월호 사태의 원인과 약간의 관련성도 갖고 있습니다.

"Die Genzen des Freihandels"(자유무역의 한계)라는 제목의 그 글은 요새 미국과 EU 사이에 논의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에 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기본적으로 양자 사이에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에 비판적입니다.

그 비판의 근거는 제가 한미자유무역협정(한미 FTA)에 비판적이었던 것과 여러모로 비슷했습니다. 물론 저는 한미FTA를 체결하면 한국이 망할 것이라는 식의 극단론을 펼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협정의 내용이 한국에 별 이득은 안되면서 위험은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좀더 상세한 제 주장은 제 책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를 참고하십시오.

위 칼럼이 미국-EU 자유무역협정에 비판적인 이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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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양 지역은 충분히 개방되어 있어서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특별히 이득을 볼 게 없다. (한국에서 FTA 찬성론자들이 그 효과를 과장한 것과는 달리) 독일의 경제친화적인 연구소에서조차도 앞으로 14년간 매년 0.036%의 성장률 인상효과밖에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2) P. Krugman도 주장했듯이 자유무역협정은 시장이 아주 대외폐쇄적이거나 아주 비효율적일 경우에만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국이나 EU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3) 유럽의 기계생산업계나 자동차업계는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규제완화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규제완화가 꼭 필요하다면, 자유무역협정과 별개로 EU 자체가 그걸 처리하면 된다. 그리고 자유무역협정에서 그걸 다루면 규율의 수준이 떨어질 위험성이 존재한다.

4) 미국-EU 자유무역협정은 '투자자 국가 소송제'를 도입함으로써 민주주의적인 법치국가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EU에 투자한 미국기업이 소송을 제기하면 일반법원이 아닌 Schiedsgericht(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가 판결을 내린다.

2012년만 하더라도 58건의 이런 제소가 제기되었고, 현재 총 514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독일정부의 경우 일본 후쿠시마 원전참사를 계기로 원전의 장기적 폐기로 방향을 정했는데, (스웨덴계) Vattenfall 회사가 그런 정책 전환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37억 유로(약 5조 원)의 소송을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제기했다. (Vattenfall의 소송은 1991년의 헤이그 에너지협약에 근거함 것임. 미국-EU사이의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기도 전에, 이미 EU 내에서 이런 식의 국가 상대 소송이 제기되고 있는 셈임.)

더욱이 회사는 국가에 대해 그 분쟁해결센터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데 반해, 국가는 회사의 환경파괴나 인권침해에 대해 그 센터에 제소할 수 없다. 이런 것들은 자본이 법치국가를 정복한(Sieg des Kapitals über den Rechtsstaat)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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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이유 중에서 칼럼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마지막 부분입니다. 저도 한미 FTA에서 가장 큰 문제는 '투자자 국가 소송제'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이 제도는 한미FTA의 독소조항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국민들의 한미FTA재협상 요구가 거세게 일어난 바 있습니다.

그리하여 국회에서도 다시 논의가 되고, 정부내에 검토 팀이 구성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 10일 산업통상자원부는 국회에서 그 독소조항의 수정-폐기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약 일주일 전이네요.

'투자자 국가 소송제'라는 것이 원자력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독일의 사례를 보면, 이걸 도입한 한미FTA는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잠재적 폭탄이 될지도 모릅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이런 종류의 여러 안전위협물들에 대해 총체적으로 재점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