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와 깡다구>
오늘자 중앙일보에 '유로자전거나라' 장백관 사장에 대한 소개가 실렸습니다(아래 링크 참조). 저는 4년쯤 전에 '유로자전거나라'를 이용해 본 적이 있고, 그때 장사장에 관한 재미 있는 이야기를 가이드에게서 들은 바 있습니다.
장사장은 유로자전거를 설립해 한국인들의 유럽관광에서 '지식관광'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습니다. 예전의 한국인 단체관광은 많은 경우 관광지를 쓱 둘러보고, 사진 찍고, 가이드가 커미션을 챙겨야 하는 가게에 들르는 게 중심이었습니다.
단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10년쯤 전에 핀란드에서 큰 바위 밑 지하에 건립된 교회(이른바 '암석교회')를 들른 바 있습니다. 그때 한국인 가이드는 "들어가 보세요"라는 말만 했고, 여행객들은 그냥 들어가서 쓱 훓어 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일본인 관광객 일행이 그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그 일행들은 모두 귀에 리시버를 꼽고 있었습니다. 무슨 리시버인가 의아했었는데, 누군가가 혼자서 교회 2층에서 뭔가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원래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도대체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살짝 가까이 가보았습니다. 그는 바로 일본인 관광객들 가이드로서 자기 손님들에게 교회 내부 구조와 장식물 등에 대해 리시버를 통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한국의 여행방식과는 다른 일본식 '지식관광'이었습니다. 한국인 단체여행도 물론 관광지에 대한 약간의 소개를 곁들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일본식의 지식관광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습니다.
(원래 일본인들은 공부하는 걸 좋아하기는 합니다. 일본인교수들과 공장조사를 같이 해보면, 이들은 공장방문이 끝난 후 식사자리에서도 계속해서 둘러본 공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데, 쉬자고 하는 여행에서까지 골치 아프게 공부도 해야 하느냐는 생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지식관광에 끼지 않으면 되지요. 하하하.)
이런 일본인 식의 지식관광을 한국인여행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이 장사장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의 여행이 단체여행에서 배낭여행쪽으로 옮겨가는 흐름을 적절하게 포착해서, 그 배낭여행객들을 상대로 지식여행을 확산한 것입니다.
그의 성공으로 인해 유로자전거 이외에도 한국인 배낭객을 상대로 하는 여러 지식여행사가 생겨났습니다. 아울러 단체여행도 과거와 달리 그냥 쓱 둘러보기보다는 설명을 많이 보태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유로자전거가 한국의 여행문화를 한 단계 높인 것이지요. (물론 이는 한국인들의 수준과 욕구가 높아진 것에 상응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유로자전거의 장사장에 관해 중앙일보가 기사로 다루었습니다. 여기선 그 기사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가이드에게서 들은 내용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그와 한국의 요즘 야당 정치가들을 비교해볼까 합니다.
고아 비슷한 처지였던 그는 어릴 때 주먹세계에서 놀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보스가 '너는 공부를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학교에 들어가고 직장에 취직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중앙일보에 소개된 대로 배낭여행객들을 상대로 하는 지식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로마 여행객들을 데리고 자전거를 타고 관광지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유로자전거"란 상호를 씁니다. 하지만 유명한 이태리 '자전거 도둑'들이 여행고객의 자전거를 훔쳐가고, 심지어 전봇대에 고객용 자전거들을 다 매어 두었더니 전봇대를 톱질해서 자른 다음에 훔쳐가기까지 했습니다. 그 이후론 자전거를 이용하지 않고 지하철로 여행객들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사업이 번창해 갔습니다. 이 다음이 재미 있는 대목입니다. 그의 사업이 확대되면서 로마에 있는 다른 한국인 여행사들이 타격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해서 그에게 협박전화가 걸려오더니, 급기야 그의 직원 한 명을 누군가가 두들겨 패고 달아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장사장은 대사관을 통해 한국인 여행사 현지직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 저 사람들이 한 시간 가량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장사장은 아무말 않고 그걸 그냥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놈 이야기도 한번 들어보자"는 말이 나왔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장사장의 영웅담(?)입니다. 그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 나는 딱 3분만 이야기한다. 만약에 내가 이야기하는 도중에 말을 막는 놈이 있으면 그놈도 죽고 나도 죽는다"고 하면서 정강이에 찼던 칼을 꺼내서 책상에 내려 꽂았습니다.
칼이 번쩍이자 대사관 사람이 혼비백산해 "왜 이러나"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장사장은 "나도 옛날에 주먹 쓰던 놈이다. 말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여행사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나보다 로마에 대해 해설을 더 잘할 놈 있으면 나와 보라. 그런 놈 있으면 내가 사업 때려 치운다"고 소리쳤습니다.
칼을 꺼내든 분위기에 압도되고 또한 그의 논리에 반박하기도 쉽지 않아 모여든 다른 여행사 사람들은 다시는 그에게 시비를 걸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사장은 중앙일보 기사에서 "깡다구"란 말로써 자신의 이런 삶을 표현했습니다.
물론 "깡다구"만이 아니라 그는 로마에 대해 "열심히" 공부한 데 따른 "실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열정을 이해한 회사직원들 역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여행객들을 상대했습니다.
예컨대 유로자전거에 소속된 파리의 어떤 직원은 저에게 놀라움을 안겨 준 바 있습니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관광객을 안내하고는 이어서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채 밤에 무료로 노트르담 사원 앞에 모여든 한국인 여행객들을 상대로 보통 관광일정에는 빠져 있는 장소들을 안내했습니다.
그는 유럽사회 복지에 비해 낙후된 한국사회 복지에 대해 비판의 화살을 날리기도 했고, 마지막 장소인 에펠탑에서는 야경을 보면서 트럼펫을 연주했습니다. 유럽의 사회와 문화를 소개하는 데 대한 강한 열정이 있어서 이런 무료봉사까지 한 것이지요.
장사장의 '신화'(?)는 어쩌면 상당히 과장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와 그의 직원들의 "깡다구" "실력" "열정"은 본받을 만합니다. 특히 한국의 정치인들이 그로부터 배울 게 많을 것입니다.
기업에서의 <깡다구, 실력, 열정>과 나라를 이끌고 가는 경우의 <깡다구, 실력, 열정>은 그 차원이 다릅니다. 참 저는 예전에 정치리더의 <진정성, 비전, 전략전술>이란 표현을 쓴 바 있습니다만 별로 다른 말은 아니지요.
어쨌든 차원은 다르지만, 기업과 정치에서의 개인적 기본자세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다만 집단 구성원 사이의 소통방식은 기업과 정치가 크게 다르고, 안철수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대통령급 지도자 중에 김대중-노무현 정도만이 나라를 이끌고 갈 깡다구와 열정을 가졌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실력은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하지만 지금 야당의 지도자 중에선, 실력은 접어두고 장사장 정도의 깡다구와 열정을 가진 인물조차 찾기 힘든 형편이니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소신이 없으니 이쪽저쪽 눈치만 보는 것이지요.
이렇게 장사장보다 못한 인물들이니, 예컨대 보수수구언론 등이 마치 중세교회가 마녀를 찾아내려는 듯이 던지는 천안함 문제에 대해서도 하나같이 "정부 발표를 믿는다"는 식의 한심한 대답만 하는 것이지요.
민간인 불법사찰을 저지르고 국정원 대선 불법개입을 저지른 이명박정부의 발표를 어떻게 "무조건" 믿을 수 있을까요. 게다가 주한 CIA 지부장과 주한대사를 역임한 그레그가 북한어뢰 격침설에 대해 뉴욕 타임스에 의문을 제기하기까지 한 바 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대학의 이승헌교수 등 몇몇 과학자들이 정부 발표의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제가 누차 지적했듯이, 담대한 지도자라면, "정부 발표를 믿는다"라고 할 게 아니라 "진상을 철저히 재조사해 억울하게 죽어간 국군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아울러 의문의 여지도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게 정답입니다.
그러나 대통령후보건 국회의원후보건 도지사후보건 어느 야당인사도 이에 대해 정면으로 용감하게 맞부딛친 인물은 아직 없었습니다. 장사장 같은 일개 기업인보다 못한 인물들뿐이니 야당이 헤맬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야당정치인들은 우선 장사장 같은 인물에게서 정치하는 자세부터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이게 교과서 지식처럼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니지요. 아아 한국정치의 앞날은 어두울 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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