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통신

베를린 통신 (17) : 스페인을 둘러보고

동숭동지킴이 2014. 1. 5. 04:28

 

 

베를린 통신 (17) : 스페인을 둘러보고

 

 

작년 크리스마스 연후를 전후로 해서 스페인을 다녀왔습니다. 한가로운 팔자이지요.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코피를 쏟은 걸 보면, 제 자신에겐 스페인 여행이 꼭 한가롭지만은 않았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스페인을 둘러보면서 느낀 걸 간단히 소개할까 합니다. 저는 수도 Madrid에서 남쪽으로 이슬람 제국의 중심도시였던 Cordoba를 거쳐, Seville(‘세빌리아의 이발사’의 그 세빌리아)에 이어 Alhambra 궁전이 있는 Granada를 구경하고, 마드리드로 돌아오면서 Toledo를 지났습니다.

 

 

   (코르도바의 이슬람 사원)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가우디 대성당이나 예수의 제자 야곱이 걸었다는 800킬로에 이르는 북부 ‘순례자의 길’을 빼고는 대개의 스페인 관광지를 방문한 셈입니다. 그러니 스페인을 대충 둘러보기는 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현재 저의 독일 체재가 독일에 대한 ‘수박 겉핥기’라면, 1주일 동안의 스페인 여행은 ‘수박 훑어보기’에 지나지 않는 한계를 갖고는 있습니다. 그런 한계 속에서 제 나름으로 느낀 일을 정리해보려는 것입니다. 다만 관광지 소개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해놓았으니, 그건 대폭 줄이고 주로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첫째로, 이질적 집단 사이의 상호공존 문제입니다. 유적지에는 이슬람 문명의 흔적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코르도바의 이슬람 사원(Mosque)이나 알함브라 궁전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라나다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이슬람세력은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의 파괴를 막으려고 싸우지 않고 그냥 물러났다고 합니다.(멋쟁이!)

 

 

                                                             (알함브라 궁전)

 

 

 

그런데 이슬람이 스페인을 통치하고 있을 때에는 이슬람세력, 유대교 세력, 기독교 세력이 평화롭게 상호공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각 세력들은 경제적으로도 전공분야가 달라서 (예컨대 유대인들은 금융업자, 상인 또는 의사), 사회가 분업에 의한 협업 효과를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세력이 전쟁을 통해 무슬림과 유대인을 완전히 몰아내면서 이런 상호공존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개종을 하지 않는 무슬림과 유대인에겐 탈출이나 죽음밖에 없었고, 겉으로만 개종한 무슬림이나 유대인을 가려낸답시고 무시무시한 종교재판(고문을 곁들인)도 행해진 것이지요.

 

 

오늘날 이슬람이라고 하면 9.11 테러와 무지막지한 원리주의자(fundamentalist) 알카이다를 연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세로 거슬러 가보면 오히려 이슬람의 포용력이 훨씬 컸음을 보게 됩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비롯해 이슬람 문명 전반에 대해 언제 기회가 되면 공부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초부터 독일에선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이민을 제한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대연정을 꾸린 CSU와 SPD 사이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루마니아나 불가리아인들이 독일에 몰려와 독일의 사회보장제도에 기생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이런 논란을 부추긴 것입니다. (이른바 빈곤이민 Armutzuwanderung 문제.)

 

 

사실 이질적인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로 유럽은 오랜 옛날부터 고민해왔습니다. 스페인에서의 무슬림·유대인 축출이나 히틀러의 유대인·집시 대량 학살은 그 문제를 폭압적인 방법으로 처리한 것이지요. 오늘날은 EU라는 틀 속에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국인들은 비교적 오랫동안 단일민족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질적인 집단과 어울려 사는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이질성이 심화되어 있는 남북한 인민들이 ‘갑자기’ 합치면 어찌될까요.

 

 

둘째로, 경제 위기 속에서 스페인 사람들의 삶 문제입니다. 스페인은 2007년 세계금융위기를 맞기 전에는 비교적 잘 나갔습니다. 경제성장률도 유럽의 평균 이상이었고, 실업률은 8%정도였으며, 잘 나가는 스페인으로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1998~2008년 사이에 노동력 17% 증가).

 

 

그러다가 2008년부터 경제사정이 크게 악화되었습니다. 부동산가격은 2008~2012년 사이에 1/3이나 하락했고, 마이너스 성장이 계속되고, GDP에 대한 국가채무 비율이 40%에서 70%로 급상승하고, 실업률이 급증했습니다.

 

 

2013년 현재 실업률은 26%이고 청년(15~24세)실업률은 50%에 달합니다.(청년 전체에 대한 청년실업자 비율은 19%임. 학생 등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을 분모에 넣지 않은 실업률이 50%란 뜻임.) 경기 악화 이후 50만 명가량의 외국인노동자가 귀국했는데도 이 정도 입니다.

 

 

실업률 26%는 1930년대 세계 대공황 당시 미국의 실업률 최고치 25%와 비슷합니다. 당시 미국 상황은 영화 ‘모던 타임스’에 따르면,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공장 앞에 몰려들고, 식량배급을 받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있고, 데모대가 거리를 휩쓸던 상황입니다. 물론 영화엔 과장이 있겠지만, 끔찍한 상황이었음엔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업률 26%인 스페인의 거리모습은 실업률 7%인 독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공원엔 실업자들이 꽤 모여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습니다만, 적어도 마드리드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1930년대 미국과 2010년대 스페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사회보장제도의 발전입니다. 1930년대 초 미국은 루스벨트의 개혁이 단행되기 전이라 실업자가 살아갈 길이 막막했습니다.

 

 

반면에, 오늘날 스페인에선 실업자에게 실업수당이 6개월 동안 지급되고, 이번 위기를 맞아 그 기간이 끝나면 특별히 월 50만 원정도의 수당을 지급받는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 어찌될지 모르지만, 사회보장제도의 위력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거지도 이탈리아보다는 눈에 덜 띄었습니다. 이탈리아는 남쪽 지역과 북쪽 지역 사이의 격차가 심각한데(Mezzogiorno 현상), 혹시 그런 두드러진 지역격차가 스페인에는 존재하지 않는 탓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셋째로, 스페인의 후진성 문제입니다. 저는 스페인 여행사의 단체여행에 참가했습니다. 한국여행사로의 여행예약은 (인원이 부족하면) 취소될 위험성이 있다고 해서였습니다. 베를린에서 마드리드까지의 비행기편(저렴한 대신에 취소 불가능한 비행기편)을 미리 예약해 두어야 하는 처지라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여행사의 프로그램 안내에는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한다고 되어있었습니다. 영어와 스페인어 둘을 사용하는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그건 불편할 것 같아서 영어 가이드 상품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일행이 모여서 버스를 타고 보니 사정이 달랐습니다. 여행사가 한 프로그램에 고객을 되도록 많이 끌어모으려고 영어를 하지 못하는 스페인사람들까지 일행에 포함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드리드에서 코르도바까지 버스로 가는 도중에 가이드가 스페인의 역사 등등에 대해 영어로 설명을 하더니 곧이어 똑같은 내용을 스페인어로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버스라는 좁은 공간에서 스페인어를 모르는 사람에겐 소음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소리를 10여분씩 큰 소리로 듣는 것은 너무나 불편했습니다.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고 영어 가이드 상품을 선택한 것인데 회사가 약속을 위반한 것이지요. 소송 잘하는 미국 같으면 아마도 소송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웬만하면 참으려 했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가는 건 무리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가이드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사실 가이드의 잘못은 아니고 회사의 잘못인데 뭔가 방도를 찾아야 했습니다. 영어를 모르는 여행객이 몇 명인가, 이건 약속 위반이다, 도저히 참기 힘들다 등을 말했습니다.

 

 

 

(6개 국어에 능통하고 유머가 풍부한 여행 가이드와 함께: Seville 스페인 광장)

 

영어를 못하는 여행객이 6명 정도라고 하길래, 스페인어로 말하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정도를 기대했습니다. 그랬는데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스페인어로 말할 때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스페인어 여행객이 다행히 버스 앞자리에 앉아 있었길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각 도시에 가서 유적지를 돌아볼 때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반복했고 그 때문에 필요한 설명내용이 단축되었습니다. 그래도 유적지에서 스페인어로 말할 때는 듣지 않을 자유가 있으니 버스에서 강제적으로 듣게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어쨌든 회사가 이런 식으로 고객을 기만하는 일은 아마도 독일에서는 없을 것입니다. 한국 여행사에서도 잘 없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페인 사회의 낙후성을 드러내는 일로 여겨졌습니다.

 

 

스페인의 1인당 GDP는 우리보다 조금 높은 29,000 달러 수준입니다. (구매력 기준으로 하면 우리가 오히려 높습니다.) 그러나 다른 유럽 선진국과는 달리 1970년대까지 프랑코의 독재체제가 계속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정당 간부들이 부패혐의로 조사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노조 간부도 거액의 부패 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독재체제가 지속되었던 것이나 부패가 만연한 것은 한국 사정과 비슷하지요.

 

이렇게 스페인은 다른 유럽선진국보다 낙후되었지만 우리 관광버스에는 더 후진 나라의 승객도 타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오랫동안 독재정권이 계속되고 최근에 민선정권을 군부가 쿠데타로 뒤엎은 이집트의 여성과 그 딸이었습니다.

 

엄마는 지금은 아부다비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는데, 나라의 후진성이 그들의 여행자세에서도 드러났습니다. 버스 여행 중에는 중간에 때때로  쉬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런 후 다시 버스로 돌아오라고 한 시간을 한번도 아니고 세번이나 10~20분씩 지각했던 것입니다.

 

그러고도 별로 미안해 하는 기색도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예전엔 Korean Time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많이 사라지고, 여행 중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는 잘 없지요. 나라의 수준이란 이렇게 발전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한편, 독일에서의 가이드 언어 문제와 관련해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하겠습니다. 여러 해 전에 Volkswagen의 본사공장이 있는 Wolfsburg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거기엔 Volkswagen의 여러 자동차 모델이라든가 고객에게의 자동차 delivery 시설 등을 갖추어 놓은 Autostadt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Autostadt를 둘러보면서 가이드가 소개해주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시간대에 따라 어떤 때는 영어로 어떤 때는 독일어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방문했을 때에는 독일어 프로그램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독일어 투어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마침 같이 간 분이 독일어를 잘 하기 때문에 그 분이 내용을 저에게 다시 간단히 통역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진행하더니 가이드가 제 동행자에게 뭐라고 했습니다.

 

 

제 동행자가 저에게 한국어로 통역해주는 것이 다른 참가자에게 거슬리니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참가자(6명 정도)가 그런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고, 그리 큰 소리로 통역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버스 안 같이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서 살짝 저에게 말해주는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그 투어는 공짜가 아니라 돈을 내고 참가한 것이었습니다.

 

 

혹시 이게 독일의 전체주의 경향을 드러낸 것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더 조용히 이야기하라고 하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다수를 위해 소수(개인)를 희생시켰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지요.

 

 

며칠 전에 제 처가 버스를 타는 데 버스가 30분이나 연착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아무 승객도 운전수에게 항의를 하지도 않고 연착이유를 묻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는 좀 취약한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괴테의 나라 독일이 히틀러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것에 의아할 때가 가끔씩 있습니다. 히틀러가 광기에 가까운 연설을 하는 걸 요새도 가끔씩 TV에서 접하면서, 어떻게 괴테의 독일국민이 저런 독재자를 추종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독일은 스페인보다는 질서와 약속을 중시하는 선진국입니다. 하지만 권위에 지나치게 약하고 전체주의적 경향이 아직도 남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아직 잠정적인 생각임.) 북쪽의 덴마크는 자유주의 경향이 보다 강한 복지국가인데, 이런 면에서도 독일과 비교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넷째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소통 문제입니다. 버스에서 마침 캐나다 부부가 저희 좌석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래서 여행 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들과 저녁의 원탁 식탁 자리를 같이 하면서 겪은 일입니다.

 

 

이번 여행은 아침만이 아니라 저녁도 가격에 포함되어 있는 상품이었습니다(독일어로 Halbpension). 그런데 종업원이 뭘 마시겠느냐고 하면서 마시는 음료는 따로 돈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아침 부페에서는 마시는 음료도 그냥 공짜로 주는데, 왜 저녁 음료값은 따로 받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언잖아졌습니다. 저는 식사 때 다른 건 잘 안 마시고 주스나 물만 마시는데, 유럽에선 물 값도 따로 받습니다.

 

 

이 유럽의 물 값은 사실 지금도 납득이 잘 가지 않습니다. 슈퍼에서 사면 1유로도 안하는 1.5리터 물병을 식당에서 시키면 6유로나 받으니까요. 개인별로 물 한잔을 시키면 2유로 정도합니다. 물병으로 계산하면 20센트도 안 되는 물을 그 열배 가깝게 받는 셈입니다. 보관이나 가공을 위한 특별한 서비스가 추가되는 것도 아닙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 일본, 중국 식당에선 공짜로 물을 마시다가 물 한잔에 3천원 가까이 주려니 바가지 쓰는 느낌이 드는 걸 버릴 수가 없네요. 맥주나 와인이라면 또 모르지만, 맹물을 이렇게 바가지 씌우는 건 ‘봉이 김선달’이나 할 노릇이지 선진유럽에서 할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이지요.

 

 

프랑스에선 수도물(eau)을 달라고 하면 공짜로 주는데, 독일에선 그렇게 시키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해 차마 가끔씩 가는 식당에서 그리 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기회 되면 어쩌다 간 식당에서 공짜 수도물(Leitungswasser)을 한번 시켜볼까 합니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어쨌든 기분이 언잖아서 종업원에게 다소 강한 톤으로 ‘no’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종업원도 기분이 언잖아졌는지 앞에 앉은 캐나다 부부에게조차 음료 주문을 받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저는 서구인들인은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들이라 자기들이 필요하면 종업원을 부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종업원이 식사를 가져오고 있을 때도 음료주문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음료를 주문하지 않는데 같은 식탁에서 자기들만 주문하기가 불편했던 것이었습니다. 버스에서 아주 친해진 것은 아니지만 동반자가 된 셈인 우리에게 신경이 쓰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음료를 주문하도록 하려면 어찌 (영어로) 말해야 할까 생각하는 중에 시간은 흘러버리고 결국 타이밍을 놓쳐버렸습니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란 인간관계의 일종입니다. 다른 인간관계(예컨대 연애)에서도 타이밍이 중요한데, 그런 타이밍을 제가 놓쳐버린 것이지요.

 

 

그래서 그 다음날 저녁 시간에 자연스럽게 캐나다 부부에게 우리 때문에 음료를 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문을 받지 않은 종업원 탓이라고 하긴 했지만, 사실 맥주를 시키고 싶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제가 캐나다 부부를 배려하기 위해선 어찌해야 했을까요. 그들에게 먼저 주문을 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고, 그들을 위해 그날만은 음료를 주문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나중에 그들로 하여금 주문을 하라고 말할 수도 있었고, 종업원에게 ‘no'라고 하더라도 천천히 “well~~~, no"라고 했더라면 사정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를 하나도 실천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해프닝입니다. 그러나 이건 제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해프닝이었습니다. 타고 날 때부터 저의 유전자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약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지요. 입시공부에만 매몰되어 온 교육과정, 위도 아래도 없는 교수라는 직업의 특성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보다는 나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인들의 타인에 대한 배려도 그리 잘 발달되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한국인들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인들도 타인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주로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이 많지요. 체면을 중시하고 남들 앞에서 잘난 체 하려는 건 잘 알려져 있지요. 다른 나라에 비해 여자들이 화장과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직장에서 살아남고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약자에게는 위세부리면서 강자에게 비굴한 자세를 취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타인에 대해 나름대로 신경을 쓰는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과 타인에 대한 배려는 다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기본적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입니다. 예컨대 기업주가 종업원의 처지를 역지사지하고, 종업원이 기업주의 처지를 역지사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당이 야당을 야당이 여당을 역지사지하고, 갑이 을의 처지를 을도 갑의 처지를 역지사지하는 것이지요.

 

 

이런 역지사지가 발달하면 “너 죽고 나 살기” 대신에 “더불어 살아가기”가 사회에 자리잡게 됩니다. 극한투쟁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사회에 殺氣 대신에 生氣가 넘치게 되지요. 그게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입니다.

 

 

물론 역지사지의 논리는 자칫하면 현실의 모순을 은폐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했듯이 부당한 지배자라도 나름의 논리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모순을 그대로 두었다면 노예제사회나 봉건제사회가 지금도 지속되었겠지요.

 

 

그러니까 역지사지의 논리는 그냥 현실을 인정하자는 게 아니라 상대방 특히 반대편의 처지도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잘못 되었으면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해야겠지요.역지사지해야 싸우더라도 잘 싸우고 (知彼知己 百戰百勝), 타협도 잘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바로잡음은 반대편을 박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반대편도 올바른 인간관계 속에서 바람직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IMF사태 이후 재벌개혁에 관한 글을 처음 썼을 때 “재벌개혁은 재벌 죽이기나 재벌 혼내주기가 아니라 재벌 거듭나기”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해 재벌개혁은 재벌 거듭나기를 도와주려는 것이고, 이런 점에서 “재벌개혁은 진정한 재벌사랑”이지요. “피억압자의 해방은 동시에 억압자의 해방”이란 말도 그런 맥락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직도 그런 정신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인간적으로 너무 높은 경지인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하려는 노력은 필요합니다.

 

 

GH를 비판하고 이석기류를 비판하고 노동귀족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에겐 그저 상대방을 박살내려는 살기가 등등할 뿐이지 역지사지하면서 장래의 올바른 인간관계를 내다보는 경우는 드뭅니다.

 

 

“소통의 결핍”이란 바로 이런 역지사지의 결핍을 의미합니다. 우리 사회에선 GH를 비롯한 보수·수구층 만이 소통이 결핍한 게 아닙니다. 진보세력도 독선에 빠져서 소통의 결핍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한국의 똑똑한 인물 중엔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천동설론자”가 많지요.

 

 

그리고 한국인들은 역지사지가 결핍되어 있으니 자기가 남보다 조금 더 많이 알거나 재산이나 권력이 좀더 많다고 쉽게 남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겸허함이 부족하고 부끄러움이 부족한 탓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사회를 너무 폄하했나요. 잘 되자고 하는 비판이니 양해하시길.

 

 

한국사회가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남북의 분단, 압축적 불균등성장, 압축적 고도성장의 종언(終焉)이 그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특수 상황 속에서 타인을 배려할 삶의 ‘여유’가 없어진 것이지요. "빨리 빨리"도 그것의 한 표현이겠지요.

 

 

제가 지적한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을 바로잡아야 이런 문제가 해결되겠지요. 그런데 사회구조적인 해결과 아울러 교육에서도 뭔가 할 게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교육은 주입식 교육에서 이제 창의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제대로 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추격성장(catch-up) 단계가 끝나가고 있으니 당연하지요.)

 

 

그런데 그와 아울러 인성교육의 의미를 한번 되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의 교육 과정을 돌이켜보면 타인을 배려하는 인성교육을 제대로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저 입시공부에만 매달려 왔지요. 게다가 가르치는 교사 역시 역지사지하는 품성이 제대로 되어 있었던 분이 많았던지 의문이고, 더욱이 그걸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에 대해선 제대로 방향이 서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지사지하는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사회의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듭니다. 그러면 그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게 바람직한 선진국의 모습입니다. “역지사지와 소통” 훈련을 학교교육에서 어떻게 수행해 나갈지 하는 것을 교육 관련자들이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으로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입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고교 1학년까지에 대해서라도.

 

 

이상 스페인 여행에서 느낀 것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도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 철도파업과 관련해선 조만간 간단한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