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통신

베를린 통신 (15) : 요동치는 한반도 : 장성택의 숙청과 PP-GH의 정적 처리방식

동숭동지킴이 2013. 12. 9. 20:23



<베를린 통신 (15) : 요동치는 한반도 : 장성택의 숙청과 PP-GH의 정적(政敵) 처리 방식>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우선 북쪽을 보면, 제2인자인 장성택이 숙청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쪽에서는 국정원의 대선 불법개입이 GH 퇴진요구로까지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반도가 언젠들 조용한 날이 있었을까마는, 요즘엔 멀리 베를린에 있는 저까지 불안해지네요.


장성택 숙청설이 처음 보도되었을 때는 긴가민가했습니다. 원래 북한 관련보도는 옛날 김일성 사망설을 비롯해 엉터리 보도가 하나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최근엔 탈북자의 증가로 정보가 예전보다 정확해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라크 망명자들이 몸값을 올리려고 (대량살상무기 등에 관한) 정보를 조작한 예에서 보듯이, 탈북자 또는 북한 정보망을 통해 입수한 정보도 정확하지 않거나 과장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숙청설이 나오고 나서 북한 언론에선, “김일성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김일성을 받들어 모셨다”는 글이 나왔습니다. 이건 장성택이 김정은을 제대로 받들어 모시지 않은 것을 비판하는 걸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다 장성택이 공식사진에서 삭제되더니, 마침내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체포되고 죄상이 공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장성택이 과거 두어 차례 근신처분 당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분명한 숙청’이지요.


저는 전문가가 아니고 아직 북한을 공부하는 학도로서 북한과 관련된 정보를 쉽게 입수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하지만 몇 달 전에 우연히 장성택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김정은이 등장해, 김정일이 남기고 간 통치자금 40억 달러를 산업을 재건하는 데 쓰지 않고 물놀이 공원이나 스키장 따위를 만드는 데 낭비해, 간부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김정은을 갈아치우고 장성택을 옹립해야 한다는 말까지 떠돌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정확한 정보였는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저같이 대단한 북한통이 아닌 사람 귀에까지 흘러든다는 것은 거꾸로 장성택의 위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말이 나도는 것을 장성택 반대파가 모를 리 없고 그냥 둘 리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장성택이 50년대 박헌영이나 연안파처럼 쿠데타를 기도했는지 어떤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습니다. <로동신문> 12월 9일자의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에는 장성택의 죄목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당과 김정은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았다는 점만이 아니라 “여러 녀성과 부당한 관계를 가지였으며” 술판을 벌이고, 마약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들은 장성택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이런 죄목은 사실과 그리 동떨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물론 100%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장성택이 2002년 한국의 산업계를 시찰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북쪽 일행이 삼성전자를 방문했을 때, 자판기를 카드로 결제하는 것을 보고 박남기(나중에 화폐개혁과 관련해 처형당했다고 알려진 인물)가 신기해서 이것저것 자꾸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장성택이 “저 자식 그만 하라고 해”라고 했고, 그 말을 전달받은 박남기는 당장 질문을 중지했다고 합니다. 남한까지 와서 지나치게 위세를 부린 것이지요.


또 경주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원래 북한측이 남한에 오면 밤에는 꼼짝 않고 호텔에 머무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장성택은 남측에 술자리를 요구했습니다. 이에 남측은 호텔 근처 단란주점을 전세내었습니다. 하지만 도우미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장은 “아니 이런 술집 말고 여자 나오는 룸살롱 있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남측은 “(여기 단란주점과는 달리) 룸살롱을 가려면 호텔에서 떨어진 곳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면 기자들에게 들킬 수 있다. 그리해서 보도가 나가면 우리는 괜찮지만 당신이 북에서 관찮겠느냐”고 말했답니다.


이에 장은 잠깐 고민하더니 그러면 그건 그만 두자고 했답니다. 대신에 호텔로 호스테스를 불러 술자리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건 신뢰도가 꽤 높은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장은 결코 김정은을 대체할 인물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그가 룸살롱에 갔다면 남측이 그가 여자와 노는 사진을 틀림없이 비밀리에 찍었을 것입니다(이미 호텔 여인과의 술자리 사진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면 그는 남측에 결정적인 약점을 잡힌 상태입니다. 그런 그가 북한의 안정적인 지도자가 될 수가 없지요. 그리고 그 정도도 조심하지 않는 인물이 어떻게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한편, 이번 사태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북한정권이 정적을 숙청하는 방식입니다. 북한은 스탈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피비린내 나는 방식으로 정적을 숙청했습니다. 박헌영 일파, 연안파, 소련파 등의 숙청도 소련보다는 희생자가 적었습니다. 아마도 국제적 고립상태였던 스탈린과는 달리 북한정권을 소련과 중국이 그런 대로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장성택의 죄목을 나열하는 방식을 보면, 비록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저열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어쨌든 제2인자였고 김정은의 고모부인데 그냥 조용히 숙청하지 않고 짓밟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으니까요. 물론 장성택의 세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기는 하겠지요.


히틀러는 전쟁 말기 자신에 대한 암살가담 의혹이 있는 ‘사막의 여우’ 롬멜에 대해 비밀리에 자살을 권하고 대외적으로는 엄숙하게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롬멜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어쨌든 정적에 대한 예의를 갖춘 것입니다. (천인공노할 대학살을 저지른 히틀러이지만.)


그런데 김정은 정권은 녀자 문제까지 거론하면서 장성택을 짓뭉개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한국에서 ‘기쁨조’ 어쩌구 하면서 과장보도된 만큼은 아니겠지만, 과연 녀자 문제가 없었을까요. 정권의 품격, 그리고 나아가 북한 사회의 품격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게다가 제대로 된 재판절차를 밟았는지 의심스런 방식으로 장성택의 측근이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근대시민사회의 세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왕조적 독재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지요. 같은 공산당 일당독재국가인 중국에서조차, 최근의 보시라이 재판에서 보듯이 이제는 문화혁명 때처럼 함부로 사람을 처형하지는 않는다는 걸 참고하십시오.


한편, 눈을 남쪽으로 돌려 봅시다. 국정원의 대선 부정개입 사건에 대해 GH가 사과하고 국정원 개혁을 야권과 협의해 실행하겠다고 했으면 그냥 끝날 일입니다. 그걸 GH는 자꾸만 키우고 있습니다.(긁어 부스럼 만들기.)


그리해 마침내 장하나 의원의 GH퇴진 발언에 대해 새누리당이 장의원의 출당-제명을 요구하는 단계로까지 사건이 커졌습니다. 장의원 발언이 아주 적절했다고 저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수십 수백의 댓글 수준이 아니라 2000만건 이상의 트위터를 국정원이 날린 사실이 알려진 마당에(이것도 국정원 등의 불법 선거개입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런 정도의 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박훈 변호사가 ‘대선 무효소송’을 진행 중인 상황이기도 하므로, 선거의 합법성 여부가 아예 논외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 드러난 것만으로 과연 GH가 물러나고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할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 정도 말은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다.


제가 장의원이 쌍용차 청문회 발언을 하는 것을 보니, 아직 한국 사회의 모순 구조와 그 해법에 대한 공부는 여러모로 부족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치란 치고 나갈 때 치고 나갈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고, 그 점에서 장의원은 다른 민주당의원들보다 적어도 기백은 있어 보입니다.

 

물론 기백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기백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그리고 이런 발언이 튀기 위한 객기인지 진정한 기백인지는 앞으로 그녀가 공격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쏟아질 공격 앞에 구차한 변명 따위로 꼬리를 내린다면 그건 한때의 객기에 불과합니다.


어쨌든 새누리당은 이에 대해 “소가 웃을 소리다”하고 넘어가면 될 사안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치 북한에서 ‘장군님’ ('최고존엄')을 결사 옹호해야 한다고 하는 식으로 새누리당은 대응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이 점에서 '종북세력'으로 불릴 만합니다. 새누리당에는 이런 황당한 사태에 제 정신 차리고 있는 인물은 없나요. 아 어찌 이리 남북한이 닮았을까요.


이건 근본적으로 GH가 정적을 처리하는 방식을 아버지에게서 잘못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버지 PP(President Park, 당시엔 그리 불렀습니다)가 정적을 어찌 처리했는지 한번 돌이켜 보십시다.


PP는 2인자 김종필을 내치고 난 다음에 등장한 2인자 그룹이 자기 지시를 한 번 거스르자 참으로 끔찍하게 대응했습니다. 김성곤(쌍용그룹의 창업자, 당시 공화당 재정부장), 길재호(육사 8기) 등 당 중진 넷을 중앙정보부에 끌고 갔습니다.


그리해 중앙정보부 요원이 아니라 더 무지막지한 보안사 요원들로 하여금 두들겨 패서 그 고문 후유증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김성곤 길재호 등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김성곤이 자기 상징인 카이제르 콧수염을 다 뽑힌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뿐만 아니라 DJ를 일본에서 납치해 태평양 한바다에 내던지려 했고, 말기에는 YS를 국회에서 제명시켰습니다. 그 사이에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암살하기도 했고요. 이건 북한정권이 정적을 처리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독재정권의 모습이었습니다. 어쩌면 북한정권보다 더 심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한국은 북한과는 달리 1987년 민주화를 거친 다음에는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적어도 함부로 정적을 죽이거나 고문하지는 않지요. 다만 뒷조사를 해서 감옥을 보낸다든가 하는 식으로 하기는 했습니다.


GH는 경쟁자에 대해선 어떤가요. 우선 자기 당 내부에선 아무도 GH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다고 합니다. 2인자가 클 수도 없지요. 잘못했다간 전여옥이나 유모의원처럼 찬밥 신세가 되는 것이지요. ‘GH의 레이저’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전두환을 뒷조사해 숨긴 많은 재산을 토해 내게 한 일을 봅시다. 이건 일단은 잘한 일입니다.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왜 GH는 전두환을 쳤을까요. 궁금합니다.


전두환은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청와대를 장악한 다음에 PP 금고 속에 있던 돈 6억원(지금 60억원 정도?)을 GH에게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GH는 전두환에게 감사해야 할텐데 왜 집권하자말자 전두환을 쳤을까요.


그냥 추측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전두환은 12.12 쿠데타 이후 중앙정보부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김재규가 작성했던 최태민(사이비 목사?)에 대한 보고서도 읽었다고 합니다.(김재규는 이 보고서를 PP에 보고했고, PP가 최태민과 GH를 친국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지요.)


이리해 전두환은 GH와 아주 가까웠던 최태민을 삼청교육대 식으로 군대에 끌고 가 혼을 내주었다고 합니다. 혹시 이 일이 GH가 집권하자마자 전두환을 친 것과 관계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지금 새누리당은 장하나 및 양승조(장하나 의원을 지원사격한 의원)의원에 대한 출당·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시민씨 말마따나 PP정권 말기에 YS를 제명한 것을 연상케 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제가 전에 말했듯이 지금은 유신시대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북한과 달리 성숙된 사회이지요. 따라서 GH는 ‘유신 흉내내기’는 할 수 있을지언정 유신시대처럼 국민을 멋대로 억압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의 정치적(민주주의) 성숙도는 정치적 리더십을 둘러싼 경쟁이 얼마나 자유롭고 공정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북한은 그런 점에선 아직 전근대사회 수준입니다. 남한은 거기선 벗어났습니다만, 민주적 리더십을 체화하지 못한 지도자에 의해 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발 남북한 모두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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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12월 11일

위의 글 내용을 아주 재미있게 표현한 12월 11일자 한겨레 만화를 아래에 링크합니다.

(어쩐 일인지 곧바로 클릭은 안 되므로, 아래 주소를 복사해서 접속하세요.)


http://www.hani.co.kr/arti/cartoon/hanicartoon/6148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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