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통신

베를린 통신 (11) : 통합진보당과 조선노동당의 미래는

동숭동지킴이 2013. 11. 17. 22:49

 

<베를린 통신 (11) : 통합진보당과 조선노동당의 미래는>

 

 

GH 정부가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현재 재판 중인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더불어 이는 통합진보당 및 우리 민주주의의 운명을 좌우할 커다란 고비가 될 것 같습니다.

 

 

나아가 이는 장차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때 조선노동당의 운명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독일에서는 동독 집권당이었던 SED(독일사회주의통일당)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Die Linke(The Left)로 변신하였는데, 조선노동당은 어찌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이런 식으로 조선노동당 문제를 본격적으로 따져본 글은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통합진보당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민주주의 문제를 점검해보는 것과 아울러, 통일 이후 한국의 정당구조에 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사실 저는 법학자가 아닌데다 아직 통합진보당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서, 이런 문제에 대해 단정적인 결론을 내릴 형편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저 쟁점이 무엇이고, 이와 비슷한 사안에 대해 독일에서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정리해볼까 합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이 우리의 자유롭고 민주주의적인 질서를 위협하지 않는 지극히 정상적인 정당이고, 아니 어느 다른 정당보다도 그런 질서를 위해 고군분투하는(예컨대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에 대해 치열하게 규탄집회를 벌이는) 정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이번 정당해산 청구는 천부당만부당한 횡포일 것입니다. 이들의 생각이 옳다면 통진당 해산청구 문제에 대해 특별히 왈가왈부할 필요가 아예 없습니다. 통진당 해산청구는 GH정권이 유신 회귀를 추구하는 하나의 시대착오적인 행태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이석기 사건을 비롯해 과거 통합진보당 세력의 행적에 대해 우려와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정권의 사상과 정책에 대해 통진당 세력이 동조하는 게 아닌가 하는 문제 때문입니다.

 

 

최근 통진당의 김재연 의원은 TV에 출연해 통진당이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김재연 의원의 당내 위치가 그런 기밀(?)을 알 수 있는 위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직접 지령을 받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행태가 문제가 될 수는 있습니다.

 

 

지금 통진당 구성원 중 어느 정도가 아직도 과거 주체사상파적인 사고와 행동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국가보안법의 존재 때문이겠지만, 이들은 공개적으로 북한정권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법무부가 문제 삼은 강령도 정당해산으로까지 가야 할 만큼의 문제거리는 아닌 걸로 보입니다. 북한에서 동무나 인민이란 말을 쓴다고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을 모조리 빨갱이로 취급하는 것과 그리 크게 차이 나지 않는 태도를 법무부가 보이고 있지요.

 

 

그러나 일심회 사건(민주노동당 간부의 성향을 북한 정권에 넘겨준 사건) 당시 그런 행위자를 제명시키는 데 반대한 세력이 지금의 통진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북한 정권의 핵무기를 옹호했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북한정권의 시대착오성을 한 번도 인정한 바 없습니다.

 

 

아니 북한정권이야말로 빛나는 항일투쟁의 정통성을 보유한 정권이고 세계적으로 미제국주의에 아직도 저항하는 가냘프지만 용감무쌍한 정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북한 김일성의 항일투쟁은 상당 정도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고, 이라크 침략이나 세계적 도청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이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항일투쟁이 현재의 시대착오성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북한은 인민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주체사상에 입각한 국가라기보다는 당, 나아가 수령의 주체성만 강조하고 인민의 주체성은 사실상 말살한 국가에 가깝지요. 따라서 주체사상은 차라리 김일성주의라고 불려야 하지요.

 

 

또 미국의 패권적 행태에 문제가 많지만, 그렇다고 북한식 방식으로 저항하여 인민을 굶어죽고 고달프게 만드는 것 역시 정당화될 수는 없겠지요. 이미 중국과 베트남은 그런 어려움에서는 벗어났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정권에 동조하는 듯한 통합진보당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세력이 역시 시대착오적인 GH정권에 투쟁하고 있다고 해서 “적의 적은 동지”라는 논리를 적용할 수도 없습니다.

 

 

GH정권의 운동 벡터(vector)는 유신시대를 지향하는 시대착오성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 시대착오성은 전근대적 봉건체제에 유사한 북한정권에 비하면 덜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의 성숙으로 인해 유신시대로의 전면적 회귀는 불가능한 상황이지요.

 

또 적의 적은 동지라는 논리는 미국이 반공 독재정권을 지원할 때 사용한 논리로서, 세계 인민에 많은 폐해를 끼친 바 있습니다. 예컨대 갖고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근거로 미국이 쳐들어간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도 사실은 미국이 싫어하는 이란과 대립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 전에 미국이 지원했던 나라입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비판하면서 그 논리를 함부로 차용하면 곤란하지요.

 

 

그러므로 통진당의 시대착오성은 바로잡아야 할 대상으로 일단 인정하되, 진짜 문제는 통진당의 시대착오성을 과연 어떻게 다루어야 마땅한가 하는 것입니다. GH정권보다는 더 시대착오적이지만 힘은 훨씬 미미한 통진당에 대해 굳이 정당해산이라는 극약처방을 사용하는 게 ‘옳은가’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아니 옳다 하더라도 그런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오히려 덜 ‘효과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일종의 ‘또라이’들을 괜히 건드려 ‘평지풍파’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반대로 GH의 말대로, 해충이 번지기 전에 조기에 박멸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문제입니다. 따라서 문제를 몇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정리해볼까 합니다. 여러분도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1) 정당해산에 대한 찬반 양론

 

 

먼저 통진당 해산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글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자료가 분량은 가장 많겠지만, 제가 입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그 핵심 내용이 아래 지지 글과 별로 다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첫째로, 헌법학자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의 찬성 글인 “위헌정당 해산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문화일보, 11. 6)를 아래 링크에 소개합니다. 사건을 빨리 처리해 국정혼란의 가중을 방지해야 하고, 정당 해산은 반민주주의 활동을 예방하기 위한 사전 예방적 조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논리에서는 분명한 반민주주의 활동이 행해지지 않았더라도 예방적으로 정당을 해산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1113193330

 

 

둘째로, 아래 링크의 동아일보 사설(11.6)에서는 강령에만 매달리지 말고 실제 활동을 보아야 하며, 이때까지의 활동을 볼 때 통합진보당은 해산시켜야 한다는 쪽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http://news.donga.com/List/3/04/20131106/58705321/1

 

 

셋째로, 장기표씨는 아래 링크 글에서 통합진보당의 강령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그 강령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는 북한정권을 추종하고 있어서 해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법무부 등에서 강령을 문제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입니다. 다만 여기서 문제는 해산시켜야 할 만큼 북한정권을 추종하고 있는가 여부이겠지요.

http://www.newsbaro.com/news/articleView.html?idxno=352

 

 

다음으로 정당해산에 반대하는 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중앙일보 권석천씨의 칼럼을 아래 링크에 소개합니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 중앙일보는 조선일보-동아일보와는 차별적인 노선을 취했습니다. 심지어 극우파로 알려진 김진 논설위원까지 통진당 해산에 반대했습니다.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는 움직임일까요.

 

 

권석천씨는 “생각까지 해산시킬 순 없다”라는 칼럼에서 그렇게 문제가 많은 정당이라면 선거에서 국민의 손으로 사라지게 하는 게 옳다는 점과 해산결정이 내려질 경우 다양한 의견이 숨쉴 공간을 위축시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058517&cloc=olink|article|default

 

 

둘째로, <창비주간논평>(11. 13)에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글 “비상사태에 요구되는 ‘제2의 민주화운동’”을 링크합니다. 그는 정당해산이 “통상의 헌정제도가 효과적으로 지속될 수 없는 비상한 사태에 아주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최후적·보충적으로만 행사되어야 한다” “민주적 기본질서를 구성하는 구체적 요소들에 일부 위해가 되는 행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http://weekly.changbi.com/

 

 

셋째로, <민중의 소리>(11. 18)에 실린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글 “진보당 해산청구 … 사실은 왜곡, 논리는 빈곤”을 링크합니다. 그도 “정당해산제도는 정당의 활동이 헌법의 기본질서를 파괴할 급박하고도 명백한 위험을 야기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작동할 수 있는 예외적인 장치”이며, 통진당의 RO나 일심회 사건을 통진당과 동일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http://www.vop.co.kr/A00000697702.html

 

 

2) 독일의 사례 : 신나치주의 정당의 경우

 

 

서구에서 정당을 해산한 경우는 거의 없고, 오직 독일에서만 중요한 두 차례의 정당해산이 단행되었습니다. 이념대립이 서구 중에서는 극단적인 미국에서조차 공산당이 존재하며 활동에 강한 제약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해산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는 공산당이 주요 정당의 하나로 버젓이 자리잡고 있기까지 합니다(이탈리아에서는 동구권 붕괴 이후 개명). 심지어 지중해 섬나라 국가인 Cyprus에서는 공산당이 정권을 잡아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일본에서도 공산당은 전국 및 지방 차원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에서 이렇게 다른 서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당해산이라는 극약처방을 취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히틀러의 나치스 정권이 끼친 참혹한 폐해 때문입니다.

 

 

히틀러는 1923년에 쿠데타를 일으키긴 했으나 실패하고, 1933년에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집권했습니다. 집권 이후 그는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조작해 공산당을 탄압하고 계속해서 일당독재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니 그는 일단은 민주적인 정당제도의 틀 속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한 셈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게 바로 ‘민주주의의 취약성’입니다. 그런 끔찍한 기억으로 인해 독일은 다시금 나치스와 같은 정당이 등장하지 않도록 정당해산제도를 마련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2차대전 이후 과거 나치당원이 대거 간부로 참여하고 나치 노선을 상당히 계승한 SRP(Sozialistische Reichspartei Deutschlands)가 등장해 일부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자 1952년 헌법재판소에서 해산하게 된 것입니다.

 

 

이 SRP 해산에 대해선 큰 논란이 없었습니다. SRP와 나치가 너무도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SRP의 청년조직에서 셔츠 색깔만이 Hitler Jugend와 달랐을 뿐 조직내용까지 비슷했고, SPR의 간부가 나치의 가스실과 수용소가 불가피했다는 발언까지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흐름을 이어 1964년에 창건된 NPD(Nationaldemoktatische Partei Deutschlands)의 해산 문제와 관련해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선 2000년에 유대인에 대한 폭발물 공격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계기로 NPD에 대한 해산청구가 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Verfassungsschutz(헌법수호처, FBI와 비슷)가 NPD의 일부 지도부를 정보원으로 확보하고 있음이 밝혀지면서, 헌법재판소는 절차상의 근거로 위헌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따라서 NPD가 위헌대상인지의 여부는 심리조차 되지 않은 것이지요.

 

 

그러다 2011년 NPD의 전 간부가 터키인을 살해한 테러조직인 NSU와 연계되어 있음이 드러나자, 다시금 NPD에 대한 해산 논의가 뜨거워졌습니다. 현재 CSU, SPD, 녹색당, Die Linke는 NPD 해산청구를 지지하고 있고, CDU와 FDP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반대하는 이유는 위헌청구가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3) 독일의 사례 : 공산당(KPD) 해산의 경우

 

 

독일 공산당 해산의 사례에 관해선 홍윤기 동국대교수가 프레시안에 잘 정리한 글 “독일 공산당 해산, 통진당 해산의 전례가 될 수 없다”(11. 17)를 링크합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31113193330

 

 

독일에서 신나치 정당만이 아니라 공산당까지 해산시키게 된 데에는 독일의 특수성이 있습니다. 서독의 경우에만 동독과 대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서독의 공산당 해산은 마찬가지로 (아니 더 심각하게) 분단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에서 통진당 해산을 정당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독에서 나중에 공산당을 1960년대 말 이후 다시 합법화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겠지요.

 

 

 

4) 쟁점 정리

 

결국 통진당 해산을 둘러싼 문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통진당의 강령과 행동은 정당해산이라는 극약처방이 필요할 만큼 민주주의 질서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가.

 

 

제가 보건대 강령을 가지고 그 위협성을 논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다만 행동과 관련해선 이석기 사태의 진상이라든가, 북한정권과의 연계성 여부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것 같습니다.

 

 

이른바 이석기 녹취록과 관련해선, 통진당 측에서 일부 문구에 대해선 반론을 제기했지만, 북한정권을 지지하는 발언에 대해선 아직 해명이 없었습니다. 재판과정을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2) 통진당은 그 영향력이 더 약화되어야 할 만큼 시대착오적인 정당이라 할지라도, 그 영향력 약화를 선거라는 절차를 통하는 게 바람직한가 아니면 헌재의 재판이라는 절차를 통하는 게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와 관련해 주대환씨는 오마이뉴스에 “법무부의 ‘오버’는 누구를 도와주고 있는가”(11. 13)라는 글을 올렸습니다(아래 링크). 거기서 그는 헌재는 법률가적 양심에 입각할 때 기각 판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고, 그리 되면 통진당의 기만 살려주게 되니 결정을 내년 지방선거나 2016년 총선 이후로 늦출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헌재가 기각판정을 내릴 거라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지 약간 의심이 들기는 합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25343&CMPT_CD=P0001

 

 

(3) 그리고 만약에 통진당 해산이 결정될 때의 결과가 우리 민주주의 발전에 이익이 될지 폐해가 될지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통진당이 해산되면 통진당에 매년 지급되는 27억원이 절약됩니다. 아마도 그만큼이 다른 정당에 배분될 테니 국민에게 직접적 이익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시대착오성이 심각한 조직에 대한 자금지원은 사라지게 되는 셈이지요.

 

 

일각에선 새누리당이야말로 통진당보다 더 문제가 많지 않느냐고 합니다. 쿠데타로 헌법을 유리한 정당의 후신이며, 지금 유신시대로 회귀하려는(적어도 벡터 즉 방향성에선) 작태를 보이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지요.

 

 

물론 새누리당은 통진당보다 힘이 훨씬 센 정당이기 때문에 그 과오의 폐해는 훨씬 심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당해산을 취해야 할 만큼 위험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통진당 해산과 더불어 시대착오적인 국회의원들도 의원직을 상실할 것이므로 그것도 나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의원의 세비를 포함해 보좌관 등의 세비도 절약되니까요.

 

 

그밖에 공개활동이 갖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을 노골적으로는 아니지만 은폐된 형태로라도 활발하게 퍼트릴 수 있습니다. 정당해산은 이런 기회를 차단하는 효과를 갖는 것이지요.

 

 

폐해는 무엇일까요. 우선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말대로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유신시대 부활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강화되는 결과가 되겠지요. 최소한 사회 분위기가 썰렁해집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NPD를 아직 해산시키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해산에 의해 지하로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공개적인 상태로 두고 관찰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통진당이 해산되면 이들은 일종의 ‘순교자’를 자처하면서 지하로 들어갑니다. 이들이 공개적으로 정당활동을 벌임으로써 여러 가지 문제점을 국민들도 알게 되었는데, 그게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나아가 이들은 이제 자기들만의 정당이 아니라 다른 정당 예컨대 정의당, 민주당 등에 분산배치되어 정체와 활동행태를 알 수 없게 됩니다. 실제 PD파가 중심이었던 민주노동당에 이들이 대거 입당해 정당을 장악한 전례도 있지요. 그러니 정당해산의 실효는 별로 없으면서 시끄럽기만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정당이라는 공개적인 활동을 통해 이른바 주사파(정확히는 김일성주의파)의 문제점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김일성주의파도 생겨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지하로 그들을 몰아버리면, 반성의 기회를 오히려 배제할 위험성도 있게 되는 것이지요.

 

 

(4) 통합진보당에 대한 판단은 장차 조선노동당(의 후신)에 대한 판단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동독에선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러자 집권당이던 SED의 정당성이 상실되고, 1989년 12월 SED는 이름을 SED-PDS로 바꾸었습니다. 나아가 1990년 2월에는 인적 구성과 내용도 바꾸면서 PDS로 개명하고, 그 PDS로 1990년 3월 선거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에는 SPD의 HARTZ 개혁에 반대해 SPD를 탈당한 세력과 힘을 합쳐 Die Linke라는 정당을 조직했습니다. 현재 Die Linke의 지지율은 10% 정도로 CDU, SPD에 이어 제3당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북진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조선노동당은 정체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독일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조선노동당이 변신한 정당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북한정권을 더 배려하는 통일이라면, 조선노동당의 지위는 더 커지겠지요. 물론 SED가 당원이 급격하게 줄었듯이 조선노동당 후신의 힘도 과거에 비해 많이 약화되기는 하겠지요.

 

 

Die Linke가 동독 주민의 이익을 상대적으로 더 강조하듯이, 북한주민의 이익을 더 강조하는 세력으로 조선노동당의 후속조직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조선노동당의 엘리트는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엘리트일 가능성도 큽니다.

 

 

통일 후의 조선노동당 후신은 아마도 김일성주의로부터는 탈피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한의 정당보다는 급진적인 성격을 띠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이런 정당을 정당해산 조항에 걸어서 해산시켜야 할까요. 아니 해산시킬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박탈감을 느낄 북한주민의 반발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저는 통진당 해산이 옳은지 청구기각이 옳은지 아직 자신 있게 판단하기 힘듭니다. 다만 이상의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신중하게 판단해 헌법재판소가 옳은 판결을 내려주기 바랄 뿐입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법원이 모든 점에서 항상 옳은 판결을 내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다른 조직에 비해 권력과 금력에 굴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양심적인 결정을 내려주는 조직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그렇다고 GH가 아버지처럼 사법부도 장악하려 한다면, 그건 정말로 유신시대로의 복귀를 의미하겠지요.) 그런 사회적 평판에 걸맞은 판단을 내려주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