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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우습게보지 말자 : 최장집 교수 해프닝

동숭동지킴이 2013. 8. 14. 12:04

 

<정치를 우습게보지 말자 : 최장집교수 해프닝>

 

 

최장집교수가 안철수의원쪽의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 직을 사퇴했습니다. 최교수가 안의원과의 '정치적 관계'를 사실상 끊은 셈입니다. 안의원 쪽의 정치세력화가 그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할 거라는 예상은 이미 하고 있었는데, 이런 모습으로 사태가 전개되어가네요.

 

이걸 가벼운 ‘해프닝’이라고 불러야 할지 무거운 ‘사태’라고 불러야할지 약간 애매합니다. 아마도 해프닝과 사태의 중간쯤이 될 것 같습니다. 삼고초려도 아니고 ‘십고초려’해서 안의원이 모신 최교수가 80일 만에 가출했으니 그 정치적 타격은 무시할 수 없겠지요. 다만 안의원과 유명인사가 결별한 경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니까 ‘사태’라고 하기는 뭣합니다.

 

 

두 사람이 왜 결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제까지 행동방식으로 볼 때 양쪽에 다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안의원의 원래 개인적 스타일이나 지난 대선과정에서의 '억지부리기'(단일화 협상조건 등)나 ‘삐치기’(투표 당일 출국 등)를 보면, 그가 최교수 같은 인물을 포함해 개성이 강한 인물들을 충분히 포용할 그릇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선 과정에서 시련을 겪기는 했지만 사람의 내공(Force)이란 게 그리 쉽게 길러지는 게 아니지요.

 

안의원의 개인적 스타일과 관련해서는 저도 어쩌다가 안의원과 가까웠던 인물들로부터 여러 이야기를 들은 게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안의원 쪽의 반론(또는 해명)을 듣지 못한 탓도 있고 해서 굳이 여기서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오늘자(8월 14일) 조선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었습니다.

 

{한때 그와 가까웠던 한 인사는 “안 의원은 갑론을박하는 토론 과정을 끈질기게 지켜보지만 결국 결론은 혼자 내린다”며 “이게 자기 뜻대로 결정한다는 느낌을 주는 듯하다”고 했다. 주변에서는 이런 안 의원의 스타일을 'CEO 출신 특유의 성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겪는 원로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의원을 아직도 지지하는 유창선박사(정치평론가)가 오늘 페이스북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도 소개했습니다.

 

{안철수씨가 안랩 대표할 때 직원들에게 저녁에 회식하자며 소고기를 먹자 했대요. 근데 직원들이 '에이 무슨 소고기에요 우리 회 먹어요' 했대요. 안철수가 거기에 아무런 말을 안 하고 회식 장소는 삼겹살집으로 정했답니다.}

 

제가 들은 안의원 이야기도 거의 비슷하거나 정도가 좀더 심한 내용들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듣고 제가 안의원에 대해 제나름의 별명을 붙인 바 있습니다. “천동설(天動說)론자”라고요.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듯하다는 것입니다.

 

똑똑한 엘리트 중에 이런 천동설론자가 많습니다. 남들이 자신을 떠받들어주기 때문에 거꾸로 자신이 남들을 배려하고 소통하는 자세를 길러오지 못한 것이지요.

 

학자로서는 이런 자세도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원래 괴짜 학자가 독창적인 이론을 만들어내는 법이니까요. 또 그런 성격으로 혼자서 컴퓨터 백신을 개발하는 데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기업의 CEO도 그런 대로 괜찮습니다.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고 잘 파는 방법을 괴짜 CEO가 밀고 나가면 되니까요.

 

그러나 정치는 다릅니다. 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남을 배려하는 소통 훈련이 부족한 천동설론자는 크게 성공하기 힘듭니다. GH처럼 타고난 아버지의 후광이 있다면 또 다르겠지만요.

 

이미 대선과정에서 결합했던 인물 중 이미 여러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지요. 김종인, 윤여준, 이헌재, 박선숙 등등. 이들과 함께 국민들도 떨어져 나가는 것이지요.

 

한때 안의원에 대한 지지는 민주당 인사는 말할 것도 없고 박근혜후보의 지지율도 앞섰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지지율은 점점 떨어져 결국 문재인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안의원에 대한 지지는 반사적 지지(여야에 대한 실망)이고 일종의 신기루 현상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그의 정치적 실체가 드러날수록 지지율은 점점 하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 영 신통찮으니 안의원 세력이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는 있습니다. 특히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독주하고 있었으므로 그걸 견제하는 긍정적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의원의 내공을 볼 때 그 세력의 역할은 그까지일 것 같습니다.

 

안의원에 대한 논평은 이쯤 하고, 최교수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최교수는 이른바 진보진영에서 널리 알려진 원로입니다. 진보신문들은 요즘도 그의 인터뷰를 크게 실어줍니다.

 

하지만 저는 최교수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는 정치학을 전공하는 분인데도 현실 정치에 대해선 잘 모르는 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도대체 안의원측과 결합할 때는 무슨 생각을 갖고 있다가 100일도 되지 않아 결별한 것일까요. 아마도 그는 안의원 측의 "내일" 이사장 직을 맡는 것의 정치적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안의원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고 아울러 안의원과 결합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내일’ 이사장 수락이라는 정치적 행위를 선택한 것이지요.

 

현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인물 파악입니다. 정치지도자감인지 아닌지, 유능한 참모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게 정치의 결정적인 부분입니다. 물론 정책도 중요하지만 정책을 밀고나갈 인물의 됨됨이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지요.

 

제 주위의 교수들 중에 안의원쪽과 결합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안의원의 ‘인물 됨됨이’에 대해 나름대로 깊이 고민하고 알아본 경우는 잘 보지 못했습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그저 안의원에 대한 지지율이 높으니까 뭔가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에서 그 진영에 들어간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국민의 지지율이란 것은 변덕이 심하다는 것도 잘 모른 상태였겠지요. 80일만의 결별을 보면 최교수도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최교수는 노무현 정권 말기 "노무현이 잘못 했으니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다"라는 말을 해서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그 말 자체야 틀린 말이 아니지만, 최교수 같은 영향력 있는 인물이 그 말을 하는 경우의 정치적 효과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또 노무현 정권에 대해선 "사이비 민주주의"라고 비판하고는, 이명박 정권에 대해선 "보수적이지만 민주주의"라고 말함으로써 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일관성을 상실하기까지 했습니다. 개인적 기분에 따라 조심성 없이 발언하는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일전에 말씀드렸지만, 최교수는 한국 사회에 대해 "신자유주의 타령' 이외의 분석틀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의 '진보적 자유주의'에도 한국 사회 고유의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 문제와, 그 밑바닥에 있는 진보-개혁-남북한협력의 복합적 관계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밖에도 최교수에 대해서 할 말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그는 정치학을 전공하면서도 현실정치에 대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거나 잘 모르는 분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경제학 전공자 중의 많은 사람들이 현실경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으니, 특별히 정치학자 최교수를 비난하기는 뭣합니다만.

 

사람들이 누구나 정치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한마디 하는 주제일수록 사실은 정말로 어려운 주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문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이든 정치든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이어서 한 마디 하기는 쉽지만,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는 건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뭘 모르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떠드는 것이지요.

 

 

한국에서 정치학교수들이나 정치평론가들의 말이나 글을 보면 '알맹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체로 그냥 뜬 구름 잡는 이야기이거나 양비론에 일관할 뿐, 실현가능한 대안을 내놓는 경우가 드뭅니다. 경제학도 좀 그렇지만, 정치의 경우엔 정도가 더 심합니다.

 

예컨대 최장집교수의 경우에 정당이나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에서 정당과 노동이 제대로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것을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 최교수의 그런 글이 있다면 알려 주십시오.)

 

 

정치학교수나 정치평론가가 특별히 머리가 더 나쁘거나 게으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알맹이가 없는 이유는 한국의 정치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정치는 워낙 변수가 많고 급변합니다. 독재사회에서 민주사회로 넘어가고 있고, 압축적 불균등발전과 분단으로 인해 여러 모순이 뒤엉켜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치학교수가 정치평론가가 오늘 무슨 예측을 하고 내일 틀린 걸로 판명되어도 대부분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런 과오를 따지지도 않습니다.그러니 그냥 질러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학교수나 정치평론가들이야 무책임하게 그냥 질러보지만 직업정치인은 사정이 다르지요. 그러다가 한 방에 훅한 정치인들도 많았습니다. 이민우가 김영삼 말을 듣지 않은 경우라든가, 장기표씨가 김윤환씨와 손잡은 경우라든가, 서석재가 무소속으로 나간 경우가 그런 예들이지요.

 

작년에 이정희가 진보의 아이콘에서 진보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만약 자신의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의 여론조사 부정이 드러난 바로 그날 저녁에 사퇴했다면 어찌 됐을까요. 아마도 대통령을 바라보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미적거렸습니다. 게다가 통힙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이 드러났을 때 역시 산뜻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자기파들을 위해 회의를 공전(空轉)시켰던 것이지요.

 

세상의 진리탐구는 ‘외줄타기’란 생각이 많이 듭니다. 자칫하면 이쪽 편향에 빠지고 또 자칫하면 저쪽 편향에 빠지기 쉽습니다. ‘중용’이란 게 얼핏 쉬운 것 같지만 ‘외줄 타기’의 성격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는 학문적 진리추구가 아니라 자기 나름의 진리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권력 투쟁입니다. 따라서 자칫 실수하면 한 방에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위험성이 훨씬 큽니다.

 

일본의 몇 안 되는 독창적 마르크스주의자였던 宇野弘藏은 자신이 정치에 뛰어들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자신의 능력 부족을 들었습니다. 정치에서 성공하려면 '천재적 직관력'이 필요한데, 자신에게는 그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宇野弘藏과 달리 한국의 교수들은 정치를 너무 우습게보고 있는 듯합니다. 정치인과 만나 보면 별로 아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수님 교수님 하면서 떠받들어 줍니다. 그러니 자기가 정치판에 가면 잘 할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지요.

 

원래 정치인들은 발톱을 감춘 호랑이들입니다. 그러니 겉으로는 우습게 보이지요. 하지만 권력투쟁의 상대가 될 때는 사정이 다릅니다. 정치선진국에선 사정이 좀 다르겠지만, 아직도 한국에선 권모술수가 난무합니다.

 

그런 권력투쟁 속에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보통 내공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천재적 직관만이 아니라 도인(道人)의 경지가 되어야 하지요.

 

교수들 중에 정치를 우습게 알다가 망가진 경우가 한둘이 아닙니다. 제가 한때 가까웠던 정운찬 교수도 그냥 학계의 원로로 계셨으면 좋았을텐데 정치판을 우습게 알다가 망가진 셈입니다. 이번의 최교수도 마찬가지이지요.

 

한국에서 누군가는 현실정치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수구언론들이 정치인을 매도해서 괜찮은 인물들이 현실정치로부터 멀어질수록 한국의 정치수준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에 돌입합니다.

 

따라서 현실정치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현실정치에 뛰어드는 것을 말릴 필요는 없습니다. polifessor라고 하면서 교수들의 정치참여를 무조건 비난해서도 안됩니다.

 

다만 현실정치에 뛰어드는 경우엔 한국정치의 어려움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도인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망가질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저 겸손하게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고 생각해야겠지요.

 

그리고 일반국민들도 정치와 정치인을 우습게보지 말아야 합니다. 일반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에 정치수준이 대체로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국민들 스스로 수준을 높여야 하겠지요.

 

한국도 독일처럼 제대로 된 시민정치교육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엉터리 언론이 사실상 시민정치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셈인데, 이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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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1) 주간경향 8월 18일 인터넷판

 

주간경향 인터넷 판에 최장잡 교수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왜 그가 안의원과 결별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인터뷰는 안의원의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리는 듯한 느낌입니다. 안의원이 사용하려던 칼이 도리어 자기 자신을 찌른 셈이지요.

 

김종인씨와 윤여준씨는 비교적 조용히 안철수와 결별했는데 최교수는 분노를 터트리고 있네요. 그런데 이 인터뷰는 정치학 전공자인 최교수가 현실정치를 얼마나 안이하게 생각했고, 안의원에 대해 얼마나 그릇된 정치적 판단을 하면서 정치판에 뛰어들었던가도 동시에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사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81716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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