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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잠시 떠납니다

동숭동지킴이 2013. 8. 28. 10:53

 

 

<한반도를 잠시 떠납니다>

 

며칠 후 저는 저희 학교 ‘연구년제’에 의거해 서울을 떠나 베를린으로 향합니다. 20년 전에 일본 동경대학에서 1년을 지냈고, 10년 전에 미국 유타대학에서 1년을 지낸 것에 이어, 이제 세 번째 장기해외 연수에 나서는 셈입니다.

 

현재 계획으로는 베를린자유대학(Freie Universität Berlin)의 한국학연구소(Institut für Koreastudien)에서 1~2년간 체재할 것 같습니다. 이 연구소에선 제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고, 또 그 소장인 이은정교수와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이기도 해서 이쪽을 연수지로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반도의 많은 분들이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가운데 저 혼자 외국으로 유람 떠나는 듯해서 꺼림칙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사회적 위화감 조성에 한 몫 하는 느낌입니다.

 

다만 외국생활을 경험한 교수들은 왜 그리 오래 체재하려 하느냐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잠깐 관광하는 것과 장기 체재하는 것은 사정이 다르니까요. 해외생활을 위해선 이리저리 신경 쓰이는 게 적지 않습니다. 우선 식사 챙기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 나이 들면 기억력이 감퇴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해외생활에선 새로운 것에 접하는 즐거움이 존재합니다. 이미 이전에도 베를린을 비롯한 유럽을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만, 이번엔 좀더 차분하게 독일과 유럽을 맛보고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저의 요즘 주된 관심분야는 북한문제이기 때문에 베를린에서 배울 게 있을 걸로 생각됩니다. 동서독이 통일에 이르는 과정, 통일 이후의 이런저런 갈등, 소련·동유럽의 체제 전환과정을 살펴보면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데 어느 정도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그들의 경험을 그대로 한국에 이식할 수는 없겠지요.)

 

물론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독일에 관한 연구는 한국에도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독일 사례와 한반도를 비교한 한국학자들의 연구도 적지 않습니다. 제가 베를린 연수를 통해 뭔가 기여한다 하더라도 그건 이런 기존 연구에 티끌만큼 보태는 정도이겠지요.

 

다만 저는 원래 남한경제를 공부해 왔습니다. 그 때문에 다른 북한 연구자들과는 달리 한반도 전체적 시각을 가지고 북한 문제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기는 합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독일 붐이 불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의 독일공부 모임이 생기기도 했고, 제가 갈 연구소에도 열 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초청연구원으로 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그 숫자가 훨씬 적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미국 등에서도 독일경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Financial Times의 "Why the US is looking to Germany"(2013년 4월 14일 온라인 입력)라는 기사를 참고하십시오. 그 기사의 링크는 http://www.ft.com/cms/s/0/52ad8b04-a2c6-11e2-bd45-00144feabdc0.html#axzz2dVmabni3 입니다.

 

아마도 유럽 국가들 중에서 독일이 비교적 잘 나가고 있는 게 그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과 비교해 독일은 건실한 경제운영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한국에선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도 작용했겠지요.

 

다만 한국은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한(쏠림 현상이 심한) 사회인지라 독일 붐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와 관련해 참고가 될지 모르는 제 개인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 달 전에 강남의 백화점 식품부에 들렸더니 사람들이 엄청나게 줄 서 있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하고 봤더니 독일 Rothenburg 특산의 Schneeballen(“눈과 같은 공” 모양의 과자)을 팔고 있었습니다.

 

Rothenburg는 독일의 유명한 로만틱 가도(Romantische Straße)에 있는 아름다운 중세풍 마을입니다. 저도 예전에 거기서 하루 묵은 적이 있었습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그 마을에서 파는 특산품 중의 하나가 아래 그림에서와 같은 Schneeballen입니다.

 

 

 

 

 

이게 워낙 인기가 있어 우리 백화점만이 아니라 지하철 상가에서도 파는 코너가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독일에 다녀온 관광객들이 늘어난데다 (Rothenburg는 package tour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고 배낭관광객과 같은 자유관광객들이 들리는 곳임), 최근의 독일 붐도 악간 작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다시 그 백화점 식품부를 지나칠 일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줄서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매장 크기도 이전에 비해 크게 축소되어 있었습니다. 아 이게 한국의 유행이구나 하는 걸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근래 한국의 젊은이들이 홍익대 근처의 클럽 등에서 즐겨마신다는 독일의 폭탄주 Jägerbomb(독일의 곡주인 Jägermeister와 Energy-drinks를 혼합한 술)의 경우도 Schneeballen과 비슷한 사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지금은 Jägerbomb 유행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는 분은 댓글로라도 알려주십시오.

 

저는 최근 한국의 독일 붐이 Schneeballen보다야 오래 가겠지만 한때의 유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독일 경제가 항상 잘 나가지는 않을 것이고 부침이 있을 테니까요.

 

저는 이런 한때의 유행과는 거리를 두고 독일 나아가 유럽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 사회는 유토피아는 아니고 그렇다고 지옥도 아닙니다. 우리가 배울 부분도 있고, 경계해야할 부분도 있겠지요.

 

독일을 소개하는 책자로서는 <흥미로운 나라! 독일>, <독일 사회와 문화>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히든 챔피언>이나 <넥스트 코리아>와 같이 독일을 “우리들이 꿈꾸는 나라”로 묘사한 책들도 등장했습니다.

 

물론 독일에는 우리들이 꿈꿔야 할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독일 사회를 그대로 한국에 이식할 수는 없습니다. 또 독일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도 존재할 것입니다.

 

저는 독일 사회라는 거울을 통해 한반도를 비추어보고 독일 사회가 우리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그렇게 낫게 만드는 “기본원리”가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구체적 모습을 그대로 베낄 수는 없지만 기본원리를 우리 나름으로 적용할 수는 있을 테니까요.

 

수십 년을 한국에 살았어도 한국사회에 대해 잘 모르는데, 1~2년 체재한다고 뭘 제대로 알지는 의문입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될 가능성이 크지요. “하나를 보고 열을 아는” 게 아니라 “하나를 보고도 하나도 잘 모르는”(context를 모르는 탓에) 상황이 될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래도 저는 이런저런 나라들에 체재했었고, 외국언론도 어느 정도 계속 접해온 편입니다. 그런 토대 위에서 독일-유럽 사회들을 한반도와 비교함으로써 나름대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체제전환 과정과 같은 특정 분야에 대해선 참고할 부분을 정리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기대를 해봅니다.

 

제가 이제 몸은 한반도를 잠시 떠나더라도 마음이 완전히 떠날 수야 없겠지요.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는 아니니까요. 그러니 베를린에서도 가급적 한반도의 중생(衆生)과 같이 고민하는 자세로 살아보려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해오던 대로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일은 계속할 생각입니다. 다만 한국문제보다는 독일과 유럽에서 보고 느낀 것이 중심이 되겠지요. 요즘은 정보도 글로벌화한 세상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한반도를 떠나면 현장감이 떨어지니까요.

 

이미 유럽 관광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곁들이면서 소개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광지 소개보다 제가 접하는 경제-정치-사회적 편린들을 글로 정리해볼까 합니다. 쓰게 될 글들에 대해선 일단 <베를린 통신>이란 제목을 정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베를린 통신>을 통해 여러분과 소통해볼까 합니다. 다들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에서 보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