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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를 보며 한반도를 생각한다 (3)

동숭동지킴이 2013. 4. 29. 16:38

 

 

이태리를 보며 한반도를 생각한다 (3)

 

이제 이태리 시리즈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시리즈 (2)를 실은 이후 꽤 시간이 흐르도록 글의 마무리를 짓지 못해서 죄송했습니다. 그리 된 것은 총선거를 치른 이후 두어 달 동안 정부를 구성하지 못했던 이태리의 혼란상황이 일단락되기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새로 임명된 진보파 민주당의 총리 레타가 보수파 베를루스코니 세력과 연정을 구성함으로써 마침내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물론 좌우연정인 만큼 잘 하면 통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겠지만, 잘못하면 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난맥상을 드러낼 위험성도 있습니다.

 

이렇게 정부구성이 늦어진 데에는 이번 총선에서 급부상한 오성(五星)운동(코미디언 출신이 이끄는 신흥정당)이 연정구성에 비협조적이었던 것도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오성운동은 기성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을 바탕으로 등장한 세력입니다.

 

이태리에는 우리처럼 크게 두 개의 정치세력이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는 미성년자와 성매매한 의혹까지 받고 있는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자유국민당이고, 다른 하나는 옛날 공산당이 탈바꿈한 민주당입니다.

 

서유럽에서 공산당의 세력이 가장 강력했던 나라가 이태리였습니다. 요즘 상영되고 있는 우디 알렌의 영화 “로마 위드 러브 (To Rome With Love)”에서도 우디 알렌이 자신의 사위가 공산주의자라고 투덜거리는 장면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 공산당이 소련·동유럽 체제가 몰락한 후 당명을 ‘좌익민주당 -> 민주당’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자유국민당과 민주당 두 정당은 여러 가지로 국민들을 실망시켜 왔고, 그래서 등장한 세력이 오성운동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실망한 세력이 ‘안철수 현상’을 불러온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신선하게 보이는 세력이 정말로 나라 정치를 바꿀 능력을 보여준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1990년대 미국에서 무소속 돌풍을 일으켰던 로스 페로(Ross Perot)는 결국 몰락했습니다.

 

독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해적당(Piratenpartei)이 요즘은 약간 시들해진 것 같고, 이태리의 오성운동도 비슷한 운명에 처할 것 같습니다. 해적당이나 오성운동은 정체성이 모호하고, 더욱이 오성운동은 정국변화의 주도권마저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문국현씨가 신선함으로 잠깐 인기를 끌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치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안철수씨 아니 안철수의원은 어떨까요. 안의원의 등장은 '태풍의 눈'일까요 '찻잔 속의 태풍'일까요.

 

한국의 정치는 워낙 역동적(dynamic)이어서 쉽게 점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안의원에 대해 지난 대선과정에서 언론에 보도된 것과 그와 가까웠던 인물들로부터 들은 바를 근거로 제 나름의 판단을 내려 보겠습니다.

 

한편으로, 안철수 현상의 힘 즉 양대 정당에 대한 염증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다가올 재보선이나 지방선거를 거쳐 2016년 총선에서 안철수 신당은 어느 정도 자리를 확보할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민주당이 영 빌빌거리고 있어서, 호남 지역에서 대안정당으로서의 역할은 주목할 부분입니다. 과거 민주당 깃발만 꼽으면 당선되던 호남지역에서 진정한 정당경쟁이 이루어지게 되면 이건 우리 정당체제를 발전시키는 일입니다. 경제민주화를 위해선 시장의 공정경쟁이 활성화되어야 하듯이, 정치민주화에도 공정한 정당경쟁의 활성화가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만약 유능한 신진세력이 대거 안철수 신당에 합류한다면 민주당에 버금가는 야당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도 않습니다. 아니 아예 민주당을 밀어제치는 제1야당으로 성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이나 미국의 페로 처지로 떨어질 가능성도 작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이유로는 안철수씨 본인이 안철수 현상을 담기에는 너무 작은 그릇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으로서의 내공이 변변찮았던 것이지요. 게다가 독일 해적당이나 이태리 오성운동처럼 정체성이 모호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국회의원 정수 줄이기 따위에 집착했던 모습이나, 단일화 과정에서 억지를 부린 것이나, 대선후보 사퇴 이후 보여준 쪼잔한 자세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물론 그래도 299명 중의 한 명 국회의원이 될 자격은 충분하지요. 그보다 형편없는 국회의원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혹시 안의원 자신이 환골탈태하거나(50줄의 인물이 환골탈태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안철수신당에서 안의원보다 뛰어난 인물이 커나갈 수 있다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어쨌든 안의원의 정치실험 또는 정치사업이 적어도 호남에서 성공을 거두고, 나아가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을 혁신하는 계기로 작용하면 좋겠습니다.

 

이태리 정치 이야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그러면 지난 글에서 예고한 대로 이태리 경제의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다루어볼까 합니다.

 

첫째가 남부 문제입니다. 이태리 남부지역은 이태리어로 Mezzogiorno라고 합니다. 이태리를 관광하면 들르는 고대 폼페이 유적이나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아말피 해안이 있는 지역입니다. Mezzogiorno는 그 지역을 나타내는 말로서, 이태리를 통일한 가리발디가 널리 퍼트렸고, 오늘날 남부지역의 빈곤과 범죄를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지역 간 격차는 존재합니다. 미국에서도 미시시피 주나 테네시 주는 가난한 주에 속합니다. 통일되기 이전의 서독에서도 뮌헨 등의 남부 지역에 비해 북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았습니다. 통일 이후에는 동독과 서독 지역의 격차가 부각되었지요.

 

그런데 이태리의 남부지역과 북부지역의 격차는 다른 나라에서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북부지역은 밀라노 등을 중심으로 공업이 발전하여 독일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반면에 남부지역의 산업은 미발달해서 1인당 소득은 북부의 절반 정도이고 실업률은 2배 이상입니다.

 

게다가 북부인들은 키가 크고 금발인데 반해, 남부에는 그리스와 아랍계의 혼혈로서 키가 작고 머리칼이 검은 사람들이 많아 지역 사이의 차이를 더욱 선명하게 나타내고 있지요.

 

남부와 북부 사이의 이런 격차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격차가 이태리 통일 이후에 본격적으로 두드러졌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통일이 지역간 통합보다 오히려 지역간 분열을 초래한 셈입니다. ‘통일의 역설’이라고나 할까요.

 

만약에 한국에서 지금 갑자기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어찌될까요. 이태리의 남부 문제 못지않은 한반도의 ‘북부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소득격차는 이태리의 남북간 격차보다 훨씬 크고 북한의 실업률은 엄청날 것입니다.

 

게다가 2만 5천명의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2등 조선족에도 못 미치는 3등국민 취급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3등국민의 숫자가 그 1000배로 확대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상해 등 연안지역과 내륙지역의 격차는 큽니다. 하지만 그 격차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완화될 것입니다. 경제성장의 물결이 점점 내륙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으니까요.

 

한반도에서도 통일이 되면 남북한 사이의 격차는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들기는 할 것입니다. 북한에도 인프라가 정비되고 공장이 세워지면서 생활이 향상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세금으로 북한을 지원하는 남한주민의 불만은 고조될 것입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통일이 이뤄져 난민이 남쪽으로 대거 몰리게 되면 남한주민의 불만은 증폭될 것입니다.

 

이태리에서는 남부에 대한 지원에 불만을 가진 북부주민의 심정을 반영하여 북부의 독립을 주창하는 북부동맹이 중요한 정당으로 대두되기까지 했습니다. (지금은 분리독립 대신에 연방제 하에서의 재정독립을 주장합니다.) 남한은 이보다 더 심각하겠지요.

 

북한주민은 북한주민대로 물질적 생활이 일부 개선되더라도 열등감으로 인한 불만이 만만찮을 것입니다. 이건 통일된 동독지역 주민들이 느끼는 열패감보다 훨씬 심각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 사회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훨씬 부족하니까요.

 

분단체제가 남한사회에 주는 질곡이 워낙 크기 때문에 통일지상주의가 남한에서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상당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태리의 사례를 볼 때, 그 질곡을 반드시 ‘갑작스런 통일’이란 방식으로 해소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발생하기 마련인 북한문제(남북문제)를 최소화하려면, 제 생각에는 남북한 사이에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면서 북한의 경제수준을 지금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아야 합니다.

 

그 길은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 식으로 개혁(개선)-개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남한이 돕는 방식입니다. 물론 이는 남한이 원한다고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동독처럼 갑작스레 북한체제가 붕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되면 이태리보다 훨씬 심각한 지역문제를 겪을 각오를 해야겠지요.

 

둘째의 이태리 문제로서 관료주의와 부패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 이태리와 같은 남유럽이 북유럽과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똑같이 사회복지의 양적 비중이 크지만 나라가 잘 돌아가느냐 어쩌냐가 바로 이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셈입니다.

 

우리 사회에선 예전엔 유럽을 하나로 뭉뚱그렸습니다. 그리해서 조선일보 같은 보수언론에선 남유럽은 물론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고 도매금으로 비판해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조선일보조차도 북유럽과 남유럽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Financial Times의 보도(2013. 4. 19)를 인용하겠습니다. 4년 전 L’Aquila 지역에 지진이 발발해 300여명이 사망했습니다. 당연히 건물들도 폐허가 되었지요.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폐허가 복구되지 않아 2만여 명이 임시 시설에 수용되어 있다고 합니다. 내란이 계속되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가 연상되지 않습니까. 이 정도면 이태리 관료체제의 비효율성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World Bank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을 설립하는 경우 이태리가 프랑스, 독일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관료체제의 문제이지요. 특히 그런 관료체제의 비효율성은 남부가 북부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비효율적인 관료체제는 당연히 커다란 부패 문제를 낳기 마련입니다.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총리가 마피아과 관련을 맺기까지 했던 나라입니다. 1992년 ‘마니 풀리테 (깨끗한 손)’라는 대대적인 부패척결운동이 전개되어, 3천여 명의 정치인·기업인·관료가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과거에 비해 한국의 부패는 많이 개선된 듯합니다. 한 가지 사례를 제시하겠습니다. 20년쯤 전에 헬멧을 쓴 오토바이 교통경찰이 응급실에 실려 왔습니다. 그 경찰을 치료하려고 장화를 벗기자 백만 원 정도의 현찰이 그 속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교통위반을 눈감아준 대가로 그날 하루에 챙긴 수입이지요. 이제 교통경찰의 이런 부패는 사라졌습니다. 감시카메라가 대신 단속하게 되었으니까요.

 

정치인의 부패 규모도 많이 줄어든 걸로 알고 있습니다. TV가 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대규모 유세에 돈 드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공무원들의 처우가 개선되면서(공무원의 처우가 다른 직업에 비해 지나치게 좋아진 게 아닌가 하는 비판이 제기될 정도입니다), 공무원들의 뒷돈 챙기기도 상당히 줄어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북유럽에 비하면 한국의 부패는 아직 심각합니다. 이명박 정권에서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지 않았나요. 그리고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비리는 아직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말이 많습니다.

 

유흥업소와 관련된 관료의 부패는 크게 줄어든 것 같지 않고, 재계와 유착된 관료의 부패는 ‘퇴임 이후 봐주기’ 같은 변형된 형태로 온존하는 듯합니다. 과거의 정경유착이 정권 우위의 정경유착이었다면, 이제는 재계 우위의 정권유착으로 바뀌어 가면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한국 관료체제의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북유럽식 복지국가로의 길은 험난할 것입니다. 관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확보되지 않는 가운데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해 국민이 쉽게 납득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이태리는 특수이익집단의 기득권이라는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습니다. 베를루스코니의 미디어그룹과 같은 거대기업의 기득권이 공정한 시장경쟁을 저해하고 있는 것은 한국 재벌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한국의 건설업처럼 공공부문의 발주에 의존하여 부패를 만들어내는 국가관련 사업들도 이태리에서는 판을 치고 있습니다. 마피아가 이런 어두운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고, 특히 남부지방에서 이런 비리가 심각합니다.

 

그리고 이태리에서도 거대기업 노조의 기득권은 노동시장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거대기업 노조의 보호벽 속에서 안주하는 insider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과 같은 outsider 사이에 커다란 장벽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2중 노동시장, 분단 노동시장인 것입니다.

 

이런 장벽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노동의 경직성입니다. 이탈리아는 유럽 국가 중에서도 정리해고가 가장 어려운 나라입니다.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과 같은 복지국가의 유연안정성과 크게 다른 셈이지요.

 

함부로 노동자의 목을 자르는 것은 삶의 안정성을 위협합니다. 그러나 이탈리아처럼 경영상의 어려움에 따른 구조조정마저 극히 어렵게 만드는 과도하게 경직적인 노동시장은 경제를 정체시키고 이중 노동시장을 온존시키는 부정적 기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쟁이 강화된 상황에서 그 문제점은 특히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거대기업이나 노조나 모두 경제발전의 걸림돌인 셈입니다. 이태리 대학 교수의 말을 빌리면, “베를루스코니와 그 친구들뿐만 아니라 노조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개혁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한때 이태리 중소기업의 높은 비중을 이태리의 장점으로 파악하는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평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 높은 비중은 대기업으로 되면 노동법의 규제로 구조조정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라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전반적으로는 유연한 편입니다. 그러나 거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에서는 극도로 경직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 사태가 바로 그러한 사례들입니다.

 

그런 경우는 이태리보다도 더 경직적이지요. 이태리에서 한국의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차만큼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격렬한 투쟁이 전개된 경우는 찾기 힘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리 되면 결국 구조조정의 어려움 때문에 산업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심화되기 마련입니다. 이걸 타파하기 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소득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유연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한국도 이태리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태리는 2000~2010년 사이에 1인당 소득성장률이 연평균 0.2% 하락하는 ‘추락경제’의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요즘은 사정이 더 나쁩니다(GDP성장률은 2011년 0.4%, 2012년 -2.3%). 실업률은 2012년에 11% 정도이고 청년실업률은 38% 정도나 됩니다. 남부지역 실업률은 당연히 이런 평균치보다 높지요.

 

한국은 연 8% 정도의 높은 성장률을 보여준 1960~80년대의 고도성장기를 지나 김대중-노무현정권기에서는 4~5%의 중성장단계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다 이명박정권기에서는 2~3%대의 낮은 성장률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우리가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지속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본과 노동이 성숙되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성장산업을 발굴하기가 쉽지 않고 인구의 고령화가 급진전되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장잠재력은 아직 중성장단계 수준입니다. 그걸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는 데에는 관료체제의 문제나 특수이익집단의 기득권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습니다. 여기다 만약 한반도가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채 통일을 맞이하면, 남북한 사이의 문제는 이태리의 남부문제 이상으로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문제는 블로그의 다른 글을 통해 좀더 상세히 다루겠습니다.)

 

이태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MB는 선거 당시 747공약을 내세웠습니다. 마지막 7이 이태리를 앞서서 세계 7대 경제대국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MB 집권기에 747공약은 별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7% 성장률이나 4만 달러 국민소득 같은 게 너무나 허황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7은 어쩌면 조만간 달성될지도 모릅니다. 이태리가 너무도 헤매고 있으니까요.

 

예전에 한국의 어두운 미래를 아르헨티나에 비교하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아르헨티나 수준은 넘어섰습니다. 아르헨티나와는 달리 글로벌 제조업이 활약하고 있고 농업의 과두지주 문제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규모가 이태리에 접근해가면서 경제구조 역시 이태리와 비슷해진다면 그건 큰일입니다. '중진국의 함정'이라기보다는 '선진국의 함정'이라 할 만한 사태입니다. 한국의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문제에서 쓰나미가 몰려올지도 모르는데 수수방관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특수이익집단의 기득권도 개혁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좋은 나라의 모델을 그냥 그대로 한국에 이식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나라의 모습이 그냥 그대로 한국에서 재현될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열되어 있고, 썩어 있고, 굳어 있는 나라가 발전하기 어렵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교훈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