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모저모 (5) : 거국통합내각을 생각해보자
오늘자(11월 29일) 한겨레에 ‘거국통합내각은 어떨까’라는 칼럼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지면의 제약 때문에 내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래에 한겨레 칼럼을 옮겨놓고, 이어서 그 내용을 보충하는 글을 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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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국통합내각은 어떨까) 한겨레 11. 29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기는 했다. 최악의 사태는 피한 셈이다. 그러나 어찌해야 안 후보 지지층을 온전히 넘겨받을 수 있을지 문 후보 쪽은 고민중인 모양이다. 그래서 선거대책위원회에 안 캠프 인사들을 배치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는 듯싶다.
하지만 사람 몇몇 끌어당기기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있다. ‘안철수 현상’을 끌어안아야 한다. 그래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낡은 정치에 실망한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안철수 현상이라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탔던 안 후보조차 올바른 정치혁신 방안을 펼치지 못했다. 의원 수 줄이기처럼 과녁에서 빗나간 방안에 집착했던 모습을 보라.
낡은 정치란 무엇인가. 거기엔 여러 행태가 있다. 재벌·관료·거대신문을 비롯한 특수이익집단에 정치가 휘둘리며, 정치인이 부당한 특권을 행사하고, 정당들이 ‘너 죽고 나 살기’로 극단적 대립을 보이는 게 그런 예들이다. 이를 바로잡는 혁신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정치의 맥을 찾아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현재 대선국면에서 문 후보는 이런 정치혁신을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관련 공약에 이어 ‘거국통합내각’에 의한 여야 대협력을 새롭게 내걸면 어떨까 싶다. 혹시 참여정부 시절 대연정 제안의 악몽이 되살아날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후보에 대한 공격과 상충하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상황을 냉정하게 따져보자. 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여소야대라는 커다란 제약 아래 놓인다. 새누리당의 동의 없이는 진보개혁적 법안과 예산안 통과가 어렵지 않은가. 그렇다고 새누리당 의원들의 약점을 이용한 의원 빼내오기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때문에 거국통합내각과 같은 역발상이 필요해진 것이다.
거국통합내각은 그 공약으로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한다는 점에서 지지자를 무시하고 내던진 참여정부의 대연정 제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박 후보가 패배하면 새누리당 안에서 박정희 독재의 향수에 젖은 수구세력이 약화될 수 있다. 이리되면 이미 새누리당 일각에서도 호응하는 경제민주화, 복지, 남북한 평화협력의 여야 공동추진이 절대로 불가능하리란 법이 있겠는가.
안 후보 지지층이나 중도층을 흡수한다고 정책들을 어설프게 우향우시키기보다는 통 크게 여야 대협력을 제창하는 게 안철수 현상의 ‘소통과 통합’ 정신에도 들어맞지 않을까 싶다. 정치혁신의 기본방향은 서유럽과 같은 ‘합리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의 생산적 경쟁체제’의 정립이다. 우리도 이제 여야가 반대를 위한 반대에 골몰하는 증오정치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그런 시대정신을 문 후보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안 후보 지지층 흡수 자체에 집착하기보다 안 후보 쪽은 물론 새누리당과도 협력하겠다고 하면 안 후보 지지층은 자연스레 다가온다. 거국통합내각은 ‘문재인-안철수 공동정부’의 확대판인 셈이다. 문 후보는 후보등록 직후 기자회견에서 합리적 보수세력과도 함께하겠다고 천명했다. 거기서 한 발짝 더 뛰면 되는 일이다.
우리 국민의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을 풀어주려면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여야관계의 변화부터 시작해 정당 내부 및 정당과 국민의 관계를 혁신해가면 좋겠다. 물론 여야 대협력을 위해선 거국통합내각 이외의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는 서로를 거꾸러뜨려야 할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양자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취하면서 협력할 때는 협력하고 경쟁할 때는 경쟁해야 한다. 그런 새 정치의 첫걸음을 이번 대선국면에서 보여주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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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한겨레 칼럼을 쓰기 전에 몇몇 지인들에게 거국통합내각에 관해 의견을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적극 찬성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반대 또는 주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대하는 이들은 참여정부 시절의 대연정 제안이 떠오른다든가, 그리 되면 새 정부가 너무 보수화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심지어 제가 이제 현실과 타협하면서 너무 우편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후보쪽이 만약 선거전략으로 거국통합내각을 내세우면 혹시 정치공학이라는 냄새를 풍기지 않을까, 또는 한국사회에서 거국내각은 이미 몇 차례 거론된 바 있어서 별로 신통치 못한 전략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우려에 대해 보충설명하기 전에 우선 제가 왜 거국통합내각이라는 방안에 생각이 이르게 되었는지부터 말씀드릴까 합니다.
제 책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한국의 진보개혁진영은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가”를 논할 줄은 알았으나, 그런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해선 소홀합니다.(<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23쪽)
이번 대선판에서도 교수를 비롯한 여러 인사들이 문재인후보와 안철수후보의 캠프에서 이런저런 좋은 공약들을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정작 당선되고 나서 과연 그런 공약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입니다. 당선되는 게 최우선 과제인지라 모든 에너지를 거기에 쏟기 때문입니다. 캠프나 정당의 인력 풀이 박근혜후보쪽에 비하면 형편없이 협소하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따로 연구할 인력의 여유가 없는 것이지요.
문후보의 책 <운명>(458~459)에 따르면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캠프에선 당선일부터 퇴임 때까지의 국정운영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연도별, 분기별, 월별은 물론 주별, 일별로까지 계획을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책에서 그걸 써놓은 문후보 자신은 과연 이번 대선에서 그런 구체적 실행계획(action plan)을 준비하고 있을까요. 제가 문캠프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니 그걸 알 까닭이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대통령의 국정계획을 세운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여소야대 국회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동의 없이는 법안이든 예산안이든 아무 것도 통과시킬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지요.
문후보는 자신의 책에서 참여정부 당시의 이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정무분야를 직접 취급하지도 않았고, 국회의원들과 본격적으로 교섭하는 일도 담당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 책에서도 그 문제를 논하지 않았습니다만, 생각하면 할수록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무현정권이 헤맨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와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노무현정권이 등장하자마자 한나라당은 대북송금 특검법안을 내놓았습니다. 노무현정권과 김대중세력의 갈라치기에 나선 것이지요. 제 책에서 언급했지만 노정권은 그에 대한 대응에서 서툴렀습니다만, 어쨌든 여소야대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나아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도 여소야대의 결과였습니다. 탄핵의 여파로 잠깐 여대야소인 적이 있었으나 그 기회를 열린우리당이 잘 살리지 못하면서 국회는 보궐선거를 거쳐 곧 다시 여소야대로 복귀했습니다.
그러면서 노정권은 의미 있는 진보개혁적 정책을 제대로 실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연정이라는, 정치적으로 잘못된 제안이 나왔던 것이지요. 진보개혁 의지가 약했던 면도 있겠으나 상황적 요인도 중요했습니다.
한미FTA도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동의를 받을 수 있는 거라도 해보자라는 마음이 작동한 게 아닌가 추측되기도 합니다. 대통령이 되었으면 뭐라도 한 가지는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상황은 사실 김대중정권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DJP연합에 의해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이었으나, 국회는 여소야대였습니다. 그래서 김종필 총리서리는 국회인준을 받지 못해 6개월 동안이나 ‘서리’ 자를 떼지 못했습니다. 김대중정권이 검찰을 동원해 한나라당 의원들의 약점을 이용해 의원들을 일부 빼내왔지만, 그렇다고 여대야소를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정책면에서도 IMF사태라는 위기 덕분에(?) 다소 진보개혁적인 정책을 실시할 수는 있었습니다만, 2년이 지나 IMF사태에서 벗어난 이후엔 역시 한나라당의 반대에 막혀 버렸습니다. 물론 정권 자신의 진보개혁적 의지의 부족도 작용했겠습니다만, 여소야대는 커다란 구조적 제약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소야대는 꼭 진보개혁적 정권에만 해당되는 사안은 아닙니다.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시대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만, 19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정권도 여소야대에 직면했습니다. 그래서 3당 합당을 강행한 것입니다.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도 여소야대에서는 대통령이 맥을 추지 못합니다. 클린턴 정권에선 하원을 공화당이 장악하면서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아 한동안 행정부가 마비되기까지 했습니다.
오바마 정권도 지금 재정절벽(fiscal cliff) 어쩌고 하면서 곤경에 처해 있는 게 바로 여소야대 때문입니다. 다만 미국에선 의원들이 당론에 무조건 복종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이른바 cross voting), 일사불란한 우리보다 여유가 있기는 합니다.
제가 비례대표제 중심의 의원내각제를 선호하게 된 것은, 이런 여소야대의 문제가 비례대표제에선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밖에 나라의 리더가 정치척 훈련을 받고 통치를 준비할 기간이 대통령제보다 긴 점도 내각제의 장점입니다. 안철수후보 같이 갑작스레 나라를 통치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내각제에선 애당초 있을 수 없지요.
다만 여소야대 상황을 비교적 잘 헤쳐나간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김교육감이 취임했을 때 예산권 등을 쥐고 있는 도의회는 한나라당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습니다.
때문에 김교육감이 추진하려고 했던 무상급식, 혁신학교, 인권조례는 벽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상급식에 반대한 한나라당 도의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거세지면서 결국 도의원들이 한 발 물러섰습니다.
그리고 김교육감 취임 1년 후에 실시된 도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면서 김교육감의 정책들은 적어도 도의회 차원에선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대신에 MB정권의 교육부가 온갖 훼방을 놓고 있기는 합니다. 어쨌든 국민의 여론과 새로운 도의회 구성을 통해 김교육감이 어느 정도 소신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문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경우엔 어떻게 여소야대 상황을 타개해야 할까요. 우선 당연히 국민들의 여론을 자기편으로 당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게 정치력의 발휘입니다. 정포대(정치를 포기한 대통령)라고 제가 책에서 명명한 노정권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여론이 압도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어느 정도 우위인 형편에서는 나라를 이끌기가 힘듭니다. 지금 국회의원들은 금년 4월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다음 선거는 한참(3년 이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문정권의 정책을 저지해 자신들에 대한 여론이 좀 나빠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일단은 문정권을 사사건건 괴롭히고 싶어집니다. 또 아무것도 제대로 되는 게 없게 만들어 문정권의 무능을 보여주는 게 다음 선거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리되면 정권이 헤매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국회의석 분포가 여대야소로 바뀔 가능성은 극히 희박합니다.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을 합쳐서 과반이 훨씬 넘기 때문입니다. 보궐선거에서 몇 석을 잃더라도 새누리당쪽이 과반을 밑돌 전망은 없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또 김대중 정권에서와 같은 의원 빼내오기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검찰들이 재벌총수의 비리를 철저하게 조사하도록 하는 건 법을 바꾸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남북한 정상회담도 국회의 동의가 필요 없습니다. MB정권처럼 남북교류를 얼어붙게 하는 일을 하지 않고 평화협력을 추구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외교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크듯이, 한국의 진보개혁대통령도 대북관계에선 나름대로의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북관계만을 고려하더라도 야권후보를 지지할 가치가 있다는 데 대해선 이미 여러 번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여소야대에서도 대통령이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기는 합니다.
그러면 이런 정도로 만족해야 할까요. 경제민주화, 복지, 남북한 평화협력을 위해 담대한 발걸음을 내딛는 건 포기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좋습니다만, 아니라면 여야관계에 대한 발상을 근본적으로 전환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때까지 우리 정치에선 여야가 극한대결을 펼쳤습니다. 밤에 만나 룸살롱 등에서 서로 희희낙락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겠습니다만, 적어도 국가대사를 둘러싸고는 격렬하게 맞부딪치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단상을 점거하고 몸싸움하는 일도 흔했습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과 민주세력 사이에선 타협이 불가능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박정희독재의 향수에서 못 벗어나는 수구세력이나 시장만능주의에 빠진 극우세력과의 타협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박근혜후보는 의원직을 사퇴했습니다.(기자회견에서는 “대통령직을 사퇴한다”고 말실수를 했습니다. 이미 대통령이 된 걸로 생각해온 탓일까요. 하하하.) 따라서 선거에서 패배하면 정계를 떠날 공산이 큽니다.
그리되면 새누리당은 격랑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수구세력이 완전히 사라지지야 않겠지만 그 힘이 약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듯싶습니다. 예컨대 지난번 새누리당 당대표 선거에서 2위를 차지한 남경필의원 같은 세력들의 힘이 강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의원은 MB의 형인 이상득 퇴진을 요구한 탓에 MB정권에 의해 사찰을 받았고, 또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을 이끌어온 인물입니다. 만약에 남의원이나 그와 비슷한 인물이 당을 이끌어간다면, 그때의 새누리당은 수구적 보수가 아니라 합리적(개혁적) 보수에 접근하고 있다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합리적'이란 표현은 제 책의 마지막 장에서 말한 Y축의 '개혁적'과 동의어입니다.)
서유럽(당연히 북유럽도 포함하는 개념)에서는 중심적 여당과 야당의 노선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둘다 상당히 힙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정 기간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당이 정권을 잡았다가, 그게 좀 지나치다 싶으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정당이 정권을 잡는 식으로 정권교체가 일어납니다. 시계추처럼 이렇게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하면서 균형을 잡는 것이지요. 우리도 그런 식으로 나아가자는 말입니다.
물론 한국사회가 이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국의 수구세력의 뿌리가 만만찮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변할 가능성을 일단 열어 놓고 국정운영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를 예상해 ‘거국통합내각’을 제안하자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전히 수구세력이 새누리당을 장악하게 된다면 그들은 거국통합내각에 동참하지 않을 것입니다. 동참해서 공동책임을 지기보다는 문정권에 딴죽을 걸고 쓰러트리는 데 골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거국통합내각 제안은 ‘밑져야 본전’입니다. 게다가 거국통합내각의 제안 자체가 새누리당 내에서 합리적 보수세력이 힘을 얻는 데 도움이 됩니다. ‘승자독식’하지 않고 대통령 권력을 나누겠다는 이쪽의 자세가 수구파의 적대 노선을 약화시키겠지요.
그리고 공무원을 미롯한 공공부문에 대한 개혁은 합리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힘을 합쳐야 간신히 성공할 수 있는 과제입니다. 우리의 공공부문들은 고용의 안정성이 민간부문에 비해 높기 때문에 보수(복지혜택 포함)가 상대적으로 낮아져야 공평합니다.(예컨대 몇 년간의 보수동결과 하후상박 체계 수립.)
하지만 그들의 단결된 힘과 표 때문에 어느 하나의 당만으로는 추진할 수 없습니다. 여대야소인 MB정부조차 시도해볼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통합된 힘을 가진 거국통합내각에만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다른 주요 개혁들 중에서도 거국통합내각만이 시도해볼 수 있는 게 꽤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대선판에서는 사실은 안철수후보쪽이 정치쇄신안으로 거국통합내각을 외치고 나와야 했습니다. 이 방안은 몇몇 안철수 지지인사들 사이에서도 제기된 바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안철수 지지자의 블로그에서 확인했습니다만, 캠프의 어느 정도 선까지 그런 제안이 올라갔는지는 모릅니다.)
만약에 안후보가 국회의원 숫자 줄이기 따위의 졸렬한 쇄신안 대신에 거국통합내각을 들고 나왔다면 문-안 대결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원래 거국통합내각은 안후보 이미지 즉 안철수 현상과 가장 잘 어울렸던 방안이니까요. 그리고 그 때문에 문후보가 거국내각통합을 약속하는 것은 안철수 지지자를 끌어오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박근혜 후보쪽에서도 거국통합내각을 들고 나오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금년 1월에 사실은 이회창씨가 거국내각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다만 그때는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할 전망이 약했던 때였습니다.
지금은 새누리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박후보가 굳이 거국내각을 제안할 가능성이 낮기는 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승리를 위해 “정쟁을 벗어난 새 정치를 지향한다”면서 거국내각을 먼저 들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박후보가 당선되면 여소야대는 아닙니다. 하지만 국회법이 개정되어 야당(민주통합당 등)이 결사반대하면 법안통과가 만만찮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 국회선진화법(속칭 몸싸움방지법)의 통과로, 재적의원(또는 위원회의원) 3/5 이상의 찬성 없이는 소수정당의 필리버스터(지연전술) 행사를 저지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미국 상원과 마찬가지가 된 셈입니다.(100명의 상원의원 중 6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필리버스터를 저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박후보쪽이 거국내각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그리 되면 진보개혁진영이 난감해집니다. 다만 적어도 아직은 박후보 진영이 그렇게 융통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상 거국내각의 필요성에 대해 보충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이게 참여정부의 대연정과 어떻게 다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연정(coalition)은 원래 의원내각제에서 쓰이는 말입니다. 제1당만으로 다수당이 될 수 없을 때 여러 정당이 힘을 합쳐 다수의석을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다당제 하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보통의 연정은 제1당과 제3당 또는 제4당이 힘을 합칩니다. 제1당과 제2당은 대립하는 가장 큰 세력들이므로 쉽게 손을 잡을 수 없는 것이지요. 대연정은 그런 제1당과 제2당이 힘을 합칠 때를 지칭합니다. 독일에서 행해진 적이 있습니다.
연정이 의원내각제에서 쓰이는 용어고 거국내각은 대통령제에서 쓰이는 용어란 점이 다르긴 합니다만, 그 정신은 같기 때문에 그런 용어 차이에 구애될 필요는 없겠습니다.
용어설명은 이쯤 하고, 대연정과 거국통합내각의 차이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제 책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대연정 자체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대연정 제안은 정략적 성격이 농후했습니다. 상대방과 미리 물밑 접촉을 충분히 하지 않고 정치공세로 던졌기 때문입니다. 또 노정권의 지지가 폭락한 상황이기도 해서, 한나라당이 공동책임을 지는 대연정을 수락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대선국면에서 거국내각을 약속한다면, 선거전략의 의미도 있기 때문에 대연정과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국내각공약은 지금의 박후보나 새누리당에게 제안하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 (재편되어 있을) 새누리당에게 제안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세(지지율 저하)를 돌파하기 위해 대연정을 제안한 것과는 엄연하게 다릅니다.
또한 지금의 거국내각 제안은 그 공약으로 국민들에게 지지를 묻는 방식입니다. 지지했던 국민들의 의사를 저버리고 멋대로 대연정을 제안하는 게 아닙니다. 게다가 당시의 한나라당과 앞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는 새누리당은 성격이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전자가 수구세력 중심이라면 후자는 합리적 보수가 힘을 얻은 상태일 수 있는 것이지요.
이쯤 설명했는데도 거국통합내각 제안을 퇴보로 해석하면 어쩔 수가 없네요. 노무현정권처럼 진보개혁정책을 제대로 실시하지는 못하더라도 새누리당과 타협하지 않고 투쟁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그런 자세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국통합내각을 통해 실현시킬 수 있는 진보개혁정책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아마도 많을 거라는 점입니다. 새누리당도 공동정부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에 무조건 반대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제가 늘 강조하지만 지금은 군사독재정권시대와는 달리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는 시대가 아닙니다. 장렬한 투쟁에 몰두하기보다 대중의 삶을 한 걸음이라도 진전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제 생각에 동의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거국통합내각이 문후보의 선거전략으로 효과가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선거전문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아마추어로서 느끼는 점을 몇 가지 말씀드릴까 합니다.
큰 선거는 이슈, 특히 포지티브한(긍정적) 이슈를 주도하는 쪽이 대체로 이깁니다. 삶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어야 투표할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노무현은 수도이전이라는 이슈로, 이명박은 청계천과 대운하라는 이슈로, 김상곤교육감은 무상급식이라는 이슈로 선거를 주도했습니다.(대운하는 잘못된 정책이지만, 당시엔 많은 이들이 포지티브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문-안 대결과정에서도 단일화라는 이슈를 문후보쪽이 주도했기 때문에 이겼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안후보가 출마 선언 이후엔 도대체 보여준(주도한) 게 없다는 게 말하자면 동전의 뒷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만약에 거국통합내각이라는 이슈로 문후보가 선거판을 끌고갈 수 있기만 하면 승리확률이 높아집니다. 다만 시끄럽게 한다고 무조건 이기는 건 아니고 일단 역사의 흐름에 맞아야 합니다. 이 점에서 극한적 대결을 지양하고 통합으로 나아가려는 거국통합내각은 성공가능성이 높은 이슈입니다.
또한 거국통합내각을 이슈로 삼을 수만 있으면 박정희-노무현 프레임 따위를 쉽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상대를 쪼잔하게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게 아니라, 통 큰 정치판을 열겠다고 제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다만 박후보가 그런 거국내각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는 인물이라는 점은 분명히 하면서 선거판을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거국통합내각이 혹시 우리편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즉 산토끼를 잡으려다 집토끼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살펴봅시다. 지조를 버렸다고 투표장에 나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선 이렇게 대응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우려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첫째로, 거국통합내각은 박근혜후보가 이끄는 새누리당과 맺는 것이 아닙니다. 대선이후 변화할 새누리당과 함께 가는 거국통합내각입니다. 둘째로, 여소야대 상황에선 경제민주화, 복지, 남북한 평화협력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거국통합내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더 나은 방식이 있다면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면 거기에 따르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박후보쪽이 이슈로 만들지 않기 위해 거국통합내각 문제에 대해 아예 상대를 안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 돼더라도 별 문제 없습니다. 현수막에 내걸거나, Tv토론 등에서 기회 되는 대로 꺼내면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그래서 제가 거국통합내각을 통해 새누리당의 지혜까지 빌리려는 것입니다"라는 식이 될 수 있겠습니다.
현재의 문-박 대결은 이대로 가면 계가(計家)바둑으로 갈 공산이 큽니다. 하지만 거국통합내각 같은 큰 이슈로 판을 이끌 수만 있다면 대마잡기 바둑입니다. 물론 대마잡기 바둑이라는 비유를 하더라도 득표율이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쪼잔한 공방에 머물지 않고 큰 이슈로 싸우며, 승패가 쉽게 판가름난다는 의미입니다.
문후보가 거국통합내각을 제안하더라도 선거에서 큰 이슈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그리 되면 어떻습니까. 그래도 ‘남는 장사’입니다. 옳은 제안을 해 놓고 대선에서 승리하고 나서 실천에 옮기면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정치를 발전시키면 되지요. 그리고 거국통합내각의 내용은 여러 가지가 잇을 수 있겠습니다만, 이왕 인심 쓰는 김에 국무총리 자리도 넘길테니 좋은 인물을 추천하라고 하면 어떨까요.
노무현의 약점은 포용력 부족이었습니다. 거국통합내각 제안은 문후보에게서 그런 노무현의 이미지를 씻어버릴 수 있을 듯싶습니다. 문후보가 노무현에서 출발했지만 노무현을 넘어서는 모습이 되겠지요. 그리고 위의 한겨레 칼럼에서 말했듯이 안철수 현상의 ‘소통과 통합’을 끌어들일 수 있는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이게 안철수 지지층을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은 위의 칼럼에서 충분히 언급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거국통합내각을 한다고 하면, 문캠프에서 한 자리 하려는 사람들 중에는 불만을 가질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장관 한 자리 하려 했는데, 그 확률이 낮아지니까요. 하지만 문캠프 사람들 장관 많이 시키려고 문후보가 대선에 나선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선거에 지고나면 아예 국물도 없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거국통합내각은 단순한 선거전술이 아니고 한국의 정치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려는 시도입니다. 위의 한겨레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합리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생산적으로 경쟁하는 선진정치’로 나아가려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소야대에서는 반드시 거국내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닙니다. 여야 사이가 협력과 경쟁의 균형관계로 바뀌고 나면, 꼭 거국내각을 구성하지 않더라도 협력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계로 이행하기 위해 만약에 문후보가 당선되면 일단 거국통합내각을 구성해 보자는 것입니다.
"버려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칼럼 해설이 길어졌습니다. 이쯤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