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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모저모 (3) : 경제민주화와 정치혁명

동숭동지킴이 2012. 10. 17. 16:29

 

 

대선 이모저모 (3) : 경제민주화와 정치혁명

 

대통령 선거판은 이제 점점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각 후보 진영이 positive한 여러 정책을 내놓는가하면, 반대편에 대한 negative 공세도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문후보와 안후보 사이의 단일화 문제도 째깍 째깍 마감시간이 다가오는 가운데,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선거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형편이라, 정작 선거 후 나라통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선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선거라기보다는 선거 이후의 통치입니다. 그와 관련해 경제민주화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세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도 일단 추상적으로는 경제민주화를 주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무얼 할 것인지를 밝히지 않는 ‘이미지 정치’를 계속하고 있지요.

 

새누리당 내 돌아가는 모습을 보건대, 박후보쪽에서 경제민주화와 관련되어 뭔가 의미 있는 정책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김종인 박사가 한낱 선거용 장식품이 아닌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김종인 박사의 경제민주화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깔아뭉개는 이한구 원내대표를 박후보가 그냥 끌어안고 있는 게 그걸 증명합니다. 게다가 최근에 김종인박사가 맡고 있는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에 공약위원회라는 걸 옥상옥(屋上屋)으로 만들었습니다. 김종인박사가 뭘 제안해도 얼마든지 깔아뭉갤 수 있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새누리당의 비주류인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는 그동안 재벌개혁과 관련된 여러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그게 재벌개혁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거라도 통과되면 상당한 진전이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박후보쪽이 그 법안들에 대해 탐탐하게 생각하는 자세를 보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선전용으로 이용하는 차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박후보가 당선되면 MB정부의 재벌정책에서 별로 달라질 게 없습니다. 기껏 공정거래 상의 중소기업 보호조치를 약간 강화하는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건 이미 MB정권도 해 오던 바고, 그런 속에서 재벌독재체제가 완화된 징조가 없습니다.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할 수도 있는데, 그건 기존의 순환출자를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을 뿐이지 개선시키는 조치가 아닙니다. 요컨대 박후보의 경제민주화 조치는 약간의 쇼에 지나지 않게 되겠지요.

 

그러면 문후보나 안후보가 당선되면 어찌될까요. 양쪽에서는 상당히 구체적인 재벌개혁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계열분리명령제 또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둘러싸고 두 후보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양쪽의 기본 골조는 다르지 않습니다. 양쪽 캠프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을 개발한 사람들 사이엔 예전부터 상당한 지적 교류가 있었고, 사고도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효과나 반작용에 대한 판단 여부에 따라 다소 간의 차이가 날 뿐입니다.

 

문후보나 안후보 어느쪽이 당선되더라도 그들이 제시한 공약을 충실하게 실천할 수 있다면, 경제민주화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룰 걸로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당선되더라도 자신의 공약을 실천할 형편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단 양후보쪽이 선거공약을 실천할 의지는 있다고 전제합시다. 하지만 세상이 의지만으로 다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공약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장애물은 아마도 새누리당이겠지요. (재벌이라는 새누리당 배후의 존재는 일단 논외로 하고.)

 

현재 국회 의석수는 300석입니다. 그 중 새누리당이 150석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4.11 총선에서 152석을 차지했으나, 문대성·김형태 의원이 각각 박사논문 표절과 제수 성추행 의혹으로 자진탈당하고, 강창희 의원의 국회의장 선출에 따른 당적포기, 현영희 의원의 뇌물 의혹에 따른 제명으로 148석으로 줄었다가, 이명수 의원의 당적변경(선진통일당->새누리당)과 무소속 김한표의원의 입당으로 150명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새누리당만으로도 의석 절반에 해당하고 새누리당과 이념이 다르지 않은 선진통일당이 4석이고, 탈당한 문대성의원 등 새누리당 원적자가 3명 있습니다. 요컨대 새누리당 계열이 과반을 7석 이상 넘어서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후보 또는 안후보의 경제민주화정책을 법안으로 어떻게 통과시킬 수 있을까요. 문후보나 안후보 어느 쪽도 이에 대해선 심각하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회피하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요.

 

대통령이 여소야대의 국회와 어떻게 상대하느냐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미국에서도 여소야대일 때는 행정부 기능이 부분적으로 마비되는 일마저 있었습니다(클린턴 대통령 시절).

 

이런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도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의원내각제의 장점은 그것 말고도 있습니다. 대통령후보 캠프에서 졸속적으로 정책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당에서 오랫동안 정책을 갈고 닦을 수 있고, 그림자내각(shadow cabinet)으로 부처운영을 미리 준비케 할 수 있습니다.

 

의원내각제에선 재벌의 의원 포섭이 더 용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선 독일처럼 비례대표의 비중을 크게 늘리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 위기 대처 능력도, 독일 통일의 사례로 보건대 반드시 대통령제가 내각제보다 우월하다고 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의원내각제는 장차의 과제입니다. 기껏해야 지금 대선후보가 공약으로 내거는 걸 생각해 볼 수는 있겠습니다만, 현재 돌아가는 형국으로 보건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그러면 일단 대통령제를 전제로 하고, 문후보나 안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여소야대를 어찌 돌파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볼까요. 역사를 돌이켜 봅시다. 과거 노태우가 1987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1988년 국회의원선거에서 여소야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노태우는 국정운영이 어려워 1990년에 김영삼계와 김종필계를 끌어들이는 3당 합당을 단행하게 된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때는 어땠을까요. 이른바 DJP연합으로 대통령에 당선은 되었습니다만, 국회의석 분포는 여소야대였습니다. 그래서 김종필 총리 임명동의안을 한나라당이 지연시키기까지 했습니다. 김대중 정권은 검찰 수사 등도 동원하면서 의원 빼오기를 했지만, 결국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당시는 IMF사태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야당인 한나라당이 재벌개혁에 정면에서 반대하기는 어려웠고, 약간의 개혁관련법이 통과됐습니다. 그래도 빅딜이니 부채비율 인하 같은 주요 조치들은 입법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행정적 차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자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대북송금 특검을 결의하면서 노대통령을 압박했습니다. 심지어는 탄핵으로까지 몰아붙였습니다.

 

탄핵 역풍으로 2004년 일시적으로 여대야소가 됐지만, 재판에 따른 의원직 상실 등으로 이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웬만한 정치력으로선 과감한 진보개혁정책을 밀고나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정치력의 문제는 제가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라는 책에서 다룬 바가 있습니다.

 

문후보가 당선된다면 문후보나 민주당의 정치력으로 여소야대 국면을 뚫고 경제민주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까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컨대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해서 안후보를 예컨대 총리로 임명하려 한다고 칩시다. 새누리당은 곽교육감과 비슷한 선거 매수행위라고 하면서 동의를 거부할 가능성조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사안인 개혁법안을 도대체 어떻게 통과시킬까요.

 

안후보가 당선되는 경우는 어떨까요. 안후보는 “야당 대통령 되면 여소야대로 시끄러울 것. 무소속 대통령, 국회 존중하면 가능”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무소속인 자신의 위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발언인데, 이 발언이 설득력이 있나요.

 

모든 후보들이 통합을 말하지만 안후보는 자신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특히 ‘소통과 합의’를 통한 통합을 강조했습니다. 소통과 합의에 의한 통합은 좋은 말입니다. 그리고 정치지도자는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해도 소통과 합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수구세력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어버이 연합’에 대해 소통과 합의가 잘 될까요. 정반대쪽의 수구파인 주사파와는 소통과 합의가 잘 될까요.

 

안후보는 수구파와의 한판 승부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지 않아 보입니다. ‘소귀에 경 읽기’라는 말도 있는데, 안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좋은 말로 새누리당과 대화하면 새누리당이 “아 옳은 말씀입니다”하고 덥썩 경제민주화 법안을 받아 줄까요.

 

경제민주화 법안은 모두가 좋아하는 법안이 아닙니다. 재벌이 싫어하고 그 재벌과 이해관계가 밀접한 새누리당은 진정한 경제민주화에는 반대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새누리당의 반대를 어찌 뚫고 나갈 수 있을까요.

 

새누리당이 과반수인데다, 여야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엔 60%의 찬성이 필요하도록 하는 법안마저 제정돼 있습니다. 숫자로 볼 때는 새누리당이 반대하는 법안은 하나도 통과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해법은 무엇일까요.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새누리당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진보개혁은 포기하는 길입니다. 경제민주화도 기존의 법을 강하게 집행하고, 또 법제정이 아니라 정부의 시행령을 변경해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서 진보개혁을 추진할 수는 있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여러 과제 중에 남북한 관계는 새로운 법률 제정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예컨대 남북한이 정상 회담하는 데 국회 동의를 받을 필요는 없지요.

 

그리고 남북한 관계 개선은 경제민주화에 비해 조직된 반대세력의 힘이 약합니다. ‘어버이 연합’과 재벌의 힘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도 외교 문제에서는 대통령의 자율성이 강하고, 마찬가지로 남한의 대북관계 문제도 대통령의 운신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습니다.

 

게다가 북한은 지금 개혁(북한에선 개혁이란 말을 정치체제 전복으로 받아들이니 ‘개선’이라고 하면 좋겠지요)과 개방의 길로 나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상징적인 사건으로는 김일성광장의 노동당사에 걸려 있던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진이 최근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정치적인 사진이나 구호 대신에 “세계로 나가자”라는 구호가 많이 내걸렸다고 합니다.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선·세계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남한정권이 도와주는 일은 경제민주화보다 새누리당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새누리당도 북한의 개선과 세계화에는 반대하지 않으니까요.

 

또한 시대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은 대단히 중요한 국면입니다.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는 다음 대통령에게서 경제민주화보다 남북한 대화협력 쪽의 진전에 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남북한 대화협력도 ‘한반도 차원의 경제민주화’에 해당합니다.

 

만약에 문대통령이나 안대통령이 새로운 법을 제정하지 않고 기존의 법으로 할 수 있는 일에 경제민주화를 한정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법을 제정하려면 정치판의 혁명이 필요합니다. 이게 두 번째의 해법입니다.

 

정치혁명의 길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국민의 지지를 강력히 끌어 모아 새누리당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입니다. 총선은 4년 남았지만 지자체 선거는 다가오고 있으므로 새누리당이 민심을 무조건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재벌의 로비를 받는 개별 의원들이 민심에 얼마나 반응할지는 의문입니다. 민심에 반응케 하려면 문 또는 안 대통령이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해 민심을 끌어당길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 기대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또다른 정치혁명의 방식은 국회구조를 바꾸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여소야대를 허물어뜨리는 방식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예전처럼 검찰 압력 등으로 의원을 빼내는 방식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빼내기 하지 않고 여대야소를 만드는 길은 ‘범국민정당’의 건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누리당에서 약점을 가진 인물들을 빼내기 하는 게 아니라 새누리당의 합리적 보수파들을 집단적으로 포괄하는 범국민정당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며칠 전 한겨레의 김의겸 기자가 “단일화는 국민정당으로”라는 흥미로운 칼럼을 썼습니다. 문재인의 민주당세력, 안철수의 합리적 시민세력과 전문가 그룹, 그리고 진보쪽이 힘을 합쳐 국민정당을 만드는 단일화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미국 루스벨트의 뉴딜동맹이나 스웨덴의 복지동맹처럼 진보의 황금시대를 열어보자는 주장입니다. 정치공학적 단일화가 아니라 새로운 판을 위한 단일화로 나아가자는 좋은 제안입니다.

(김기자의 글 링크는 http://www.hani.co.kr/arti/SERIES/54/555698.html )

 

다만 이리 하더라도 새누리당을 그대로 두는 한, 발본적인 진보개혁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김기자의 제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누리당의 합리적 보수세력까지 끌어들이는 ‘범국민정당’을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새누리당은 TK로 상징되는 수구세력의 집단으로 남겨두고, “민주당 + 안철수세력 + 진보정의당 등 + 새누리당 합리파”를 총괄하는 새로운 범국민정당을 만들 수 있다면, 어려운 경제민주화도 본격화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하려면 판을 뒤엎는 정치혁명이 필요합니다. 문후보든 안후보든 이런 담대한 정치적 비전과 정치력을 가지고 경제민주화를 추진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박근혜후보가 낙선하면 새누리당이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치혁명의 승산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물론 실제로 이런 정치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경제민주화도 어정쩡한 차원에 머무를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비전이라도 일단 한번 크게 가져보는 건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