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쌍용차 청문회>
오늘자 한겨레에 ‘안타까운 쌍용차 청문회’라는 칼럼을 실었습니다. 쌍용차 관계자 20여명이 사망한 쌍용차 사태는 한국의 노사관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안타까운 사태입니다. 그래서 이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은 참으로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밝혀야 올바른 해법이 도출될 수 있으므로 공개적인 신문 칼럼을 썼습니다. 아래에 칼럼 글을 옮겨 놓고, 지면 제약으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많이 보충합니다. 트윗에서는 이미 제 글에 대한 욕설이 퍼부어지고 있습니다만, 각오한 바입니다. 다만 노동자들의 아픔을 진실로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비판하더라도 사실과 논리에 입각한 비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안타까운 쌍용차 청문회)
얼마 전 쌍용차 청문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경영위기에 직면한 쌍용차는 2009년 약 2천 6백명의 고용조정(희망퇴직, 정리해고, 무급휴직)을 결정했다. 그 후 노조의 77일간 공장 점거와 경찰력에 의한 강제진압이 이어졌고, 지금까지 쌍용차 관련자 20여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이리하여 쌍용차사태는 국회에서까지 다뤄야 할 큰 사회현안이 된 것이다.
그런데 종일 청문회를 지켜본 필자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진압과정상의 무리를 일부 부각시킨 것 외에는, 진상을 분명히 드러내지 못했고, 향후 대책은 거의 논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몇 주요 증인이 출석하지 않은 데도 그 원인이 있었지만, 청문회의 형식과 내용에서 심각한 문제가 존재했던 것이다.
먼저 청문회의 형식면을 보자. 청문회(hearings)의 말뜻은 듣기 위한 자리인데, 이번 청문회에선 도대체 증인들에게 말할 기회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 경영진이나 회계법인 관계자가 뭔가 설명하려 하면, 의원들이 끊어버리고 그저 “네 죄는 네가 알렸다”는 식으로 호통치기 일쑤였던 것이다. 질의응답에 시간제한이 있는데다 의원들의 쇼맨십까지 작용했던 탓이리라.
앞으론 각 당에서 대표선수 두어 명만 뽑아 전체 5명 정도로 인원을 줄이고, 개별의원에게 질의응답시간을 충분히 주면 좋겠다. 또 이런 사안에선 회사대표와 회계법인에게 먼저 30분 정도 쟁점을 해명할 수 있게 하거나, 아니면 의원들의 질의응답시간에서 응답시간은 아예 계산에 넣지 말아야 할 듯싶다. 그래야 진상에 접근할 수 있을 게 아닌가.
다음으로 청문회 내용면은 어떤가. 어이없게도 제일 중요한 문제 즉 쫓겨난 종업원들을 어찌할 것인지가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공장이 정상 가동되려면 2교대 근무가 이뤄져야 하는데, 1교대도 제대로 되지 않고 매년 천억 원 이상 적자가 나고 있는 현 상황에선 고용을 더 늘리기 힘들다는 회사측 주장을 반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단계적 고용확대 계획을 비롯해 해직자 재취업알선 및 심리치유 문제도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정리해고를 강행하려고 회계를 조작했다는 일부 의원들의 주장도 입증됐다고 하기 힘들다. 논란거리였던 2007년도와 2008년도의 회계 차이 문제를 보자. 2007년도 회계에선 건물, 기계 등의 가치를 ‘취득가액 ― 감가상각’으로 계산했고, 법정관리 신청과 관련된 2008년도 회계에선 미래 수익성 등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라는 회사측 해명을 뒤엎지 못했던 것이다.
쌍용차를 인수했던 상하이차에 대해 ‘먹튀’ 운운하지만, 기본적으로 적자를 벗어날 자신이 없어 한국을 떠났다고 봐야 한다. 흑자라면 왜 손을 털겠는가. 혹시 적자상황에서도 회계조작까지 해야만 한국을 떠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하지만 청문회는 그런 사정을 밝히지 못했다. ‘자산=부채+자본총계’라는 공식조차 이해 못할 만큼 기업을 모르는 의원들이 수두룩한 판에서 뭘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안타까운 쌍용차 사태는 한국의 압축적 공업화 과정에서 경영진과 노조, 나아가 사회 전체가 정리해고 문제를 학습할 기회가 부족해서 빚어진 결과다. 게다가 한편으론 사회보장제도의 미비, 다른 한편으론 거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및 중소기업근로자) 사이의 부당한 격차라는 현실이 존재한다. 쌍용차 청문회 같은 것을 일회성 한풀이 굿으로 끝내지 않으려면, 해당기업에 대한 냉철한 조사와 더불어 한국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 그 해법을 따졌어야 했다. 앞으론 이런 안타까운 청문회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보충>
1. 경찰력 강제진압 문제
* 조현오 당시 경기도 경찰청장이 청와대와 직접 상의해서 (다시 말해 청와대의 힘을 빌려) 상관이었던 강희락 경찰청장의 지시를 뒤엎은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 진압경찰이 위험한 ‘테이저 건’을 노조원 얼굴에 직접 쏜 사실에 대해, 조씨는 경찰이 노조원의 폭행으로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발사되었고 ‘빗맞았다’라고 답했습니다. 비록 경찰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테이저 건 발사에 대해선 훨씬 더 조심해야 할 사안임을 무시한 처사로 보여집니다.
* 경찰이 벽돌을 집어던지고 있는 사진에 대해서도 조씨는 “벽돌을 줍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가, 신계륜 상임위 의장이 “던지고 있는 장면”이라고 지적하자, “어디에 던지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경찰이 위험한 벽돌을 치우기 위해 던졌을 가능성이 0%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무리한 해명으로 보입니다.
* 조씨는 경찰이 진압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경찰은 10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지만 병원에 실려 간 노조원 부상자가 한 명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의원들은 노조원 부상자가 최소 100명 이상임을 들어서 조씨를 공격했습니다.
이는 청문회에서 제대로 질의응답이 이뤄지지 않은 하나의 사례입니다. 조씨는 “진압에 들어가기 전에는”이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따라서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의원들은 여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마치 조씨가 노조원 부상자가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오해했습니다. 이 오해를 풀려고 조씨가 말을 하려하면 의원들은 말을 끊어버렸습니다.
물론 조씨도 처음에 말을 할 때, 진압 전에는 노조원 부상자가 없었지만 진압 후에는 노조원 부상자가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고의적?)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2. 1년 후 복직 약속 문제
쌍용차 무급휴직자 461명에 대해 1년 뒤 복직시키겠다고 2009년 8월 6일 회사가 노조와 합의했고, 그 약속을 3년이 지나도록 지키지 않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론이나 논객들이 그렇게 글을 써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좀 다릅니다. 합의문건은 “1년 뒤 생산물량에 따라 순환근무가 이뤄질 수 있도록 주간 연속 2교대제를 실시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1년 뒤 무조건 복직을 시키겠다고 약속한 게 아닌 것이지요.
청문회 석상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대해 경영진은 ‘순환근무’가 2교대제를 의미한다는 걸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감옥갔다 최근 출소한 한상균 전 노조지부장도 “당시 여론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동의했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노조도 합의문건 내용이 ‘1년 뒤 무조건 복직실현’이 아님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경영상황과 관련 없이 1년 뒤에 무조건 복직시킬 것 같으면 당시에 해고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1년 뒤에 복직시키는 약속을 어겼다고 비난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비난입니다. 다만 1년 뒤 또는 빠른 시일 내에 복직시킬 수 있도록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영진에게 “경영을 잘못했다”고 비난할 수는 있겠습니다.(물론 경영능력이 있는 경영자라면 현실적으로 그런 경영정상화가 가능했다는 전제 하에서.)
3. 회사를 쫒겨난 노조원의 복직 문제
회사에서 쫓겨난 2,646명 중 2,000 명 정도는 희망퇴직의 형태로 떠나갔고, 461명이 무급휴직자이고, 나머지 백수십명이 정리해고라는 형태로 회사를 쫓겨났습니다. 현대차나 대우차에서와는 달리, 이렇게 쫓겨난 노동자들이 빨리 복직되지 못하면서 사망자가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직되지 못한 것은 기본적으로 경영이 정상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경영부진이 불가항력이 아니라 경영진의 무능에 기인했다면 경영진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주어진 경영상황에서 복직을 무조건 요구하기는 힘듭니다. 제가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7장~8장에서 강조했듯이, 일감이 없고 적자인 상태에서는 고용을 늘리라는 요구가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적자라도 일감이 밀리면 일단 고용을 늘릴 수 있습니다. 그때의 적자는 마케팅 능력부족이나 치열한 경쟁이나 은행 빚 때문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감이 없더라도 흑자상태라면 어느 정도 기간은 과잉인력을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일시적인 불황은 버티면서 숙련인력을 보전하는 것이지요. 이게 조업단축(Kurzarbeit)입니다.
하지만 일감도 없고 적자인 상태에서 무조건 고용을 늘리라는 것은 자본주의기업이 자선단체가 되라는 요구와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돈을 퍼부어주면 모르지만 아니면 그런 기업은 곧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쌍용차는 생산 라인이 3개 있습니다. 이 중 2개 라인은 가동률이 각각 80%, 40% 정도라고 합니다. 3 라인만이 가동률 130%입니다. 가동률 130%란 말은 하루 8시간 노동을 100%라고 할 때 잔업시간과 토요일 특근으로 노동시간이 30% 추가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2 라인에서는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일하고 있고, 겨우 제3라인 1곳에서만 공장이 빡빡하게 돌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쌍용차 제3라인에서와 같은 잔업·특근은 다른 정상적인 자동차회사에서는 으레 있는 일입니다.
주야 연속 2교대 합의에 의해 앞으론 사정이 달라지겠지만, 현대차 등은 2교대로 돌아가면서도 잔업과 특근이 이루어졌습니다. 쌍용차는 겨우 1개 라인에서만 1교대인 상태에서 잔업과 특근을 하고 있으니, 경영정상화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셈입니다.
청문회에서 모 의원은 제3라인에서 잔업·특근을 하지 말고 무급휴직자로 채우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라인의 가동률은 65%(130%÷2)가 됩니다. 그리 되면 3 라인 모두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30% 초과부분만 무급휴직자를 블러들이는 걸 고려할 수는 있겠습니다. 다만 그래도 아래의 결론은 별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쌍용차 사장은 이에 대해, 제3라인의 가동률 130%도 러시아 수출이 일시적으로 늘어서 그런 것이고, 내년부터는 관세 등의 요인으로 그런 특수(특별 수요)가 사라지므로 130%를 유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추가적 고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장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또 다른 사정이 있습니다. 현대차 등에서 정규직의 임금수준이 높은 데에는 잔업과 특근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잔업은 할증임금이 50%이며 특근은 할증률이 더 높습니다. 따라서 잔업과 특근은 자동차 공장의 중요한 소득원인 것입니다.
만약에 제3라인에 무급휴직자를 고용하면 그 라인에서 일하던 기존의 노동자의 소득이 대폭 줄어들게 됩니다. 이런 결과를 기존의 노동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이해관계가 차이가 날 뿐 아니라, 정규직 사이에서도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이해차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무급휴직자로 할지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라면, 무급순환휴직 또는 65%의 가동률 같은 것도 노동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내 목이 잘릴지 모르니 낮은 월급이라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단 ‘산 자’와 ‘죽은 자’가 결정된 다음에 ‘산 자’의 양보를 받아내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제3라인의 노동강도가 지나친 게 아니냐는 의원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새 노조(공장 점거를 주도한 노조집행부 대신에 파업 이후 새로 들어선 노조임. 민주노총에서 탈퇴했음.) 위원장은 공장 라인 구성상 살인적으로 노동강도가 강할 수는 없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어용노조(?)라서 회사편을 들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노조원도 지켜보는 가운데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찌 해야 쫓겨난 노동자들의 복직이 가능할까요. 모 의원은 무급휴직자를 불러들이는 데 매년 약 350억원 정도가 더 소요될 뿐이니 복직시키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이왕 적자가 매년 천억원 이상 나는 판이니, 그 적자를 350억 원 정도 더 늘리는 게 무슨 대수냐는 셈입니다.
이왕 망한 집안, 좀더 망하면 어떠냐는 식이라면 말이 됩니다. 하지만 경영정상화를 목표로 한다면 그렇게 지출을 해서는 안 되겠지요.
다만 생산량 확대 전망을 세우고 그에 따라 무급휴직자를 조금씩이라도 불러들임으로써 그들에게 희망을 줄 필요는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청문회에서는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12만대 수준인 생산량이 16만대로 늘어나면 고용확대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답변 정도뿐이었습니다. 의원들은 이에 대해 더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회사 사장은 쌍용차에 대해 오히려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쌍용차가 흑자를 낸 것은 2002년과 2003년인데, 그건 체어맨이나 렉스턴 같은 고급차가 처음 나왔을 때 히트를 쳤기 때문이고, 그 효과는 이제는 사라졌다고 합니다.
또 1 차종당 30만대는 생산해야 수지가 맞는데, 7개 차종으로 24만대를 생산하게끔 되어 있는 현재 시스템(실제 생산은 12만대 정도)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식의 발언도 했습니다. 지금 생산되는 차종은 기존 모델을 약간 손질(face-lift)했을 뿐으로, 신차를 개발할 돈이 없어 시장확대가 힘들 것 같은 뉴앙스의 말도 했습니다.
만약에 사장의 분석과 전망이 옳다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쌍용차는 정상화될 수 없습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입니다. 반대로 현 사장의 분석과 전망이 틀리다면, 그런 틀린 생각을 갖고 있는 인물이 사장으로 있는 한 역시 경영정상화는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현재 상하이차에 이어서 쌍용차를 인수한 인도의 ‘마힌드라&마힌드라’는 인수자금은 투입했지만 새로운 투자자금은 투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의 적자 상태와 장래 전망을 생각하고 있는 셈이지요.
만약에 '마힌드라&마힌드라'도 손을 털기로 하면 쌍용차는 또다시 2009년도와 같은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경영진-노조-사회구조라면 2009년과 마찬가지로 현명치 못한 대처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안타깝습니다.
4. 회계조작 문제
저는 회계전문가가 아닙니다. 청문회를 지켜보기는 했지만, 위의 한겨레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청문회가 호통 청문회로 일관해 진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회계전문가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보고 내린 결론을 위의 한겨레 칼럼에서 쓴 것입니다.
2007년도 회계에서 자산(토지, 건물, 기계 등)을 평가한 것과 2008년도 회계(2009년에 발표됨)의 평가가 차이가 난 이유는 위에서 설명 드렸습니다.
다만 미래의 수익가치를 예상하는 것은 주관적인 요소가 다분히 개입됩니다. 장차 차가 얼마 팔릴지는 신이 아닌 이상 누구도 정확히 예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2009년도 회계에서 자산 가치를 5000억원 이상 떨어트린 것이 정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일부러 회계를 조작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2009년도에 안진회계법인이 평가한 것 외에 한국감정평가원에게도 평가를 맡겼는데 이 둘 사이에도 역시 차이가 납니다.(가장 큰 차이는 토지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
그러면 왜 회사는 두 개의 평가 중 한국감정평가원의 평가가 아닌 안진의 평가를 채택했는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런데 호통 청문회에선 이에 대한 답변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한국감정원에서는 토지를 시가로 평가했는데, 경영진에 따르면 토지를 시가로 평가하는 것은 토지를 팔아치우고 공장을 문닫을 작정을 할 때 계산하는 방식이라고 답하는 듯했습니다. 정확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 평가를 선택하느냐는 발주자인 회사 마음이니까 어느 하나를 선택했다고 해서 반드시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선택과정에서 혹시 무슨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를 밝힐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회사는 회계문제와 정리해고 문제는 무관하다고 합니다. 이미 돌아오는 빚 2,400억원(어음 약 900억원과 회사채 약 1,500억원)을 갚아야 하는데, 수중에 돈은 약 100억원밖에 없어 법정관리를 신청했답니다. 법정관리 신청 후에, 법원이 정리해고와 산업은행의 융자 약속이 없으면 회사를 파산시키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정리해고를 단행했다는 식으로 답변한 것 같았습니다. 충분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만, 이걸로 판단을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 의원은 2,400억 원의 빚에 대해 중국의 은행과 산업은행에서 돈 약 2600억원을 빌릴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대출한도(credit line)가 설정되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대출한도가 설정되어 있다는 말은, 회사가 요구만 하면 은행이 자동적으로 돈을 빌려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은행이 상황도 판단하고 담보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중국 은행들에 대해선 회사의 대출 요구가 거부되었다고 경영진이 청문회에서 답했습니다. 의원들이 왜 거부되었는지를 따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중국 은행들(중국공상은행?)이 회사 전망을 어둡게 보았을 수 있고, 또 상하이차의 중국 내 자산을 담보로 내놓기를 요구했을 수도 있습니다. 쌍용차를 흑자로 만들 자신이 없었다면, 상하이차가 중국 내 자산까지 위험에 처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 경영진에 따르면, 상하이차가 새로 돈(3200억원?)을 집어넣는 조건하에서만 한국의 산업은행도 대출을 해줄 수 있다고 한 것 같습니다. 일종의 매칭 펀드(matching fund)이지요. 이에 대해 상하이차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판단하고, 더 이상 돈을 집어넣지 않고 법정관리로 간 듯싶습니다.
5. 이른바 ‘먹튀’ 문제
상하이차는 쌍용차로부터 기술만 빼가고 날랐다는 게 이른바 ‘먹튀’ 논란입니다. 여기엔 원천적으로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하지 않고 다른 방안이 있었을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자동차 전문가라도 답을 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저는 뭐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한국, 일본의 자동차 공장들을 경제학도 중에서는 꽤 많이 방문한 편이지만 감히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여러 해 전에 한국 자동차 업계의 옛날 고위층으로부터 10여 차례 넘게 한국 자동차산업에 대해 인터뷰하면서 공부한 일이 있습니다. 조만간 그분을 다시 뵙게 되면, 이 문제에 대해 여쭙고 그 내용을 이 블로그 글에 추가하겠습니다.
외국회사가 한국 회사를 인수한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볼보가 삼성의 지게차 부문을 인수한 것이나 GM이 대우차를 인수한 것은 선진국 기업이 우리나라 회사를 인수한 사례입니다. 쌍용차의 경우는 후진국 기업이 우리나라 회사를 인수한 경우입니다. 돈이 넘쳐나는 중국이 최근 이렇게 여러 외국 기업을 인수한 것이지요.
이런 인수 동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국내시장,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축적된 기술력 등을 노리겠지요. 쌍용차의 경우엔 축적된 기술력이 주된 목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런 축적된 기술을 빼갔으니 ‘먹튀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후진국 기업이 선진국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엔 당연히 그 기술을 노립니다. 한국 대기업이 일본이나 구미의 기업을 인수할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다만 한국은 거기에 별로 성공하지 못했고, 주로 외국연수를 가거나, 기술자를 빼오거나, 로열티를 지불하는 방법으로 선진기술을 습득했습니다.
따라서 상하이차가 쌍용차의 기술을 습득하려고 한 것 자체를 비난하기는 힘듭니다. 쌍용차 기술이 한국경제에 정말로 중요했다면 아예 인수를 허가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다만 문제는 상하이차가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쌍용차 기술을 습득해 갔는지 여부입니다.
상하이차는 쌍용차에 기술 대가를 일부 지불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가 제값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며, 청문회에서도 제대로 따지지 않았습니다.
‘먹튀’ 운운하는데, 그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그 대가지불과 관련해서 그렇습니다. 사장도 기술유출에 대한 질문에서는 '아니다'라고 단정하지 않고 '모르겠다'라고 답했습니다. 답하는 태도만 보면, 기술 유출이 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자기 소관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에, 모른다고 답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쌍용차가 적자가 아닌 흑자 상태였다면, 또는 가까운 장래에 적자를 벗어날 전망이 있었다면, 상하이차가 억지로 한국을 떠날(튈) 이유가 없습니다. 흑자로 수익을 챙기면서 동시에 기술을 계속 빼가면 될테니까요.
따라서 상하이차가 떠난 이유는 기본적으로 경영의 적자상태를 벗어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한국 검찰이 기술유출을 수사한다고 하니, 안 그래도 전망이 서지 않는데 만정이 떨어져 빨리 손 떼자는 식으로 결론을 내렸을 수는 있겠습니다.
기술 유출에 대한 혐의는 법원에서 무혐의로 결론 났기는 합니다. 유출된 기술은 하이브리드와 관련된 정비기술 수준으로서 별 것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물론 검찰과 법원도 모르게 비밀리에 불법적으로 기술을 빼갔을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기술이란 게 묘해서 문외한은 잘 모르니까요.
게다가 중국기업은 외국기업과 합작법인을 중국 내에서 만들었을 때, 그 외국기업의 기술을 몰래 빼가는 걸로 악명이 높습니다. 상하이차가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리고 상하이차의 철수와 정리해고의 관련성 문제를 보겠습니다. 일단 상하이차의 철수와 정리해고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힘듭니다. 상하이차가 철수를 결정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한 다음에, 법원이 정리해고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정리해고를 하든 말든 떠나는 상하이차가 그런 데 관심을 가질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혹시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하면서 한국정부 또는 은행과 비밀계약을 맺었다고 칩시다.
그 계약 때문에 법정관리 상태가 아니라면 쉽게 한국을 떠나지 못하게끔 되어 있다면 사정은 다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청문회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실제 그런 사정이 있을 가능성도 크지 않습니다. 만약에 있었다면 이명박정부가 노무현정부 때 이루어진 상하이차 인수 건을 비리의 사례로 터트리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모 의원은 1조 3천억 원짜리 자산을 가진 쌍용차를 5천억원에 마힌드라&마힌드라에 넘겼다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터무니없는 헐값으로 팔아치웠다는 뜻이겠지요.
그 의원의 진정성은 제가 좋아합니다. 평소에 잘 아는 사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호통은 ‘자산=부채+자본총계’라는 기업회계의 기본을 모르기 때문에 나온 소치입니다.
자산이 아무리 많더라도 부채가 많으면, 회사를 인수하는 것과 관련된 자본총계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 미쓰비시 자동차의 네덜란드 공장은 단돈 1유로 받고 VDL에게 매각키로 결정되었습니다. 매각가격은 그 공장의 자산가치와는 무관한 것입니다.
이런 기초상식은 의원들이 스스로 경영학을 모르더라도 회계전문가에게 문의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어서인지, 회계전문가들은 모두 노동자의 적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물어보기조차 안 한 것 같습니다. 기업을 모르고 어떻게 기업문제를 다룰 수 있을까요.
그리고 청문회에서 하버(Harbour) 리포트의 오류가 크게 부각되었는데, 그거 별게 아닙니다. 회계컨설팅 업체가 그 리포트를 인용하면서 쌍용차의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걸 지적했던 일입니다. 사실은 하버 리포트에서는 쌍용자동차의 노동생산성을 측정하지 않았고, 그 수치는 쌍용차 자체가 계산한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누가 계산하든 가동률이 낮은 쌍용차의 노동생산성이 낮게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닌가요. 문제는 쌍용자동차에서 생산한 자동차가 잘 팔리지 않고, 따라서 일감이 없고 적자가 누적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 대해 노동자가 특별히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영진이 잘못했을 가능성이 크고, 이제 회사 자체가 전망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이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현실입니다. 만약에 자본주의 틀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는 길이 우선입니다. 그런 기조 위에서 무분별한 정리해고가 없도록 해야 하겠지요.
쌍용차의 경우에도 청문회를 제대로 하려 했다면 혹시 정리해고가 무분별하지 않았는지 등등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아울러 향후 대책 쪽에 더 초점이 놓였어야 하지요.
(앞으로 더 많은 정보가 수집되면 글을 보완할 생각입니다.)
-------------------------
(추가 2) 2012. 10. 9
10월 8일에 쌍용차 희망퇴직자 1명이 당뇨병에 따른 합병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지병을 갖고 있는데다, 퇴직 뒤 특별한 직업을 구하지 못해, 고생하다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쌍용차의 최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마힌드라' 측 대표가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무급휴직자에 대해 단계적 복직 계획을 밝혔습니다. 2~3 개월 내에 복직을 시작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이때까지보다 진전된 내용입니다.
아래에 이와 관련된 한겨레 및 조선일보 기사를 링크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4897.html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8/2012100803152.html
----------------
'블로그 고유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선 이모저모 (4) : 문·안 캠프의 의사결정구조 // 마이너 후보들의 행진 (0) | 2012.11.19 |
---|---|
대선 이모저모 (3) : 경제민주화와 정치혁명 (0) | 2012.10.17 |
곽교육감을 구치소로 보내며 (0) | 2012.09.28 |
김강자 교수의 발언을 계기로 성매매처벌법을 재음미한다 (0) | 2012.09.13 |
공지영의 '의자놀이'와 쌍용차 해법 (0) | 2012.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