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특경가법 강화 > 갑론을박

동숭동지킴이 2012. 9. 3. 15:46

 

한국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이 발간하는 {경영계} 9월호의 '갑론을박'란에 실린 글들입니다.

첫번째 글은 한국경제연구원의 최원락 박사가 쓴 글이고, 그 다음이 제가 쓴 글입니다.

 

 

<정치 포퓰리즘 양형재량권 침해 소지>     최원락

 

총선에 이어 대선이 이어지는 선거의 계절을 맞이하여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가 선을 넘어서고 있다. 유럽재정위기가 심화된 가운데 미국경제의 회복이 지연되고 그동안 고속성장을 지속해온 중국경제도 멈칫하는 등 암울해진 세계경제 전망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암울한 세계경제 전망과 성장잠재력 저하로 기업의 투자의욕을 북돋아도 모자를 때에 연일 대기업 때리기에 몰두하고 있어 걱정스럽다.

 

지난 7월 16일 국회에 제출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은 횡령과 배임에 대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횡령·배임 등의 특정재산범죄에 대해 종전에는 재산 이득액 ‘5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과 ‘50억 원 이상’의 두 단계로 구분하여 가중처벌하던 것을 ‘300억 원’구간을 새로 추가하여 횡령배임 금액이 300억 원 이상인 경우 무기 또는 15년 이상, 50억에서 300억 원이면 10년 이상, 5억 원에서 50억 원인 경우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새 법률안이 통과될 경우 5억 원 이상 횡령·배임한 경우에는 사법부가 정상을 참작하여 형량의 절반을 감형해도 형이 3년 이하로 내려가지 못하여 집행유예가 불가능해 진다. 참고로 현행 형량은 횡령·배임금액 5억 원에서 50억 원 미만은 3년 이상의 징역, 50억 원 이상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경제범죄에 대한 적법한 처벌이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초라는 점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5억 원을 횡령하였을 경우의 최저형량을 현행 형법상 살인의 최저형량 5년보다 높은 7년으로 한 것은 도를 넘은 느낌이다. 법안의 제안이유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대기업그룹 총수들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사법기관의 양형 재량권을 침해할 소지도 우려된다.

 

 

이처럼 문제가 있는 법안이 발의된 것은 대선에 집착한 정치권의 선명성 경쟁이 선을 넘어 선 결과로 풀이된다. 정치권은 최근 차기정부의 선결과제에 관한 민간경제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 일반 국민들이 개념조차 모호한 경제민주화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세울만한 자원 하나 가지지 못한 우리경제가 지금과 같이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대기업 오너들의 위험을 회피하지 않는 불굴의 기업가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이번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은 일부 기업인들의 잘못을 들어 전체 기업인들을 죄인시함으로써 뿌리깊은 반기업정서만 부추기고 소뿔 고치려다 소를 잃는 ‘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밖으로는 EU의 재정위기로 인한 세계경제의 침체와 안으로는 2.4%에 머무는 저성장과 수출증가율의 마이너스 전환으로 경제가 안팎으로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는 현실을 깊이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특경가법 강화는 입에 쓴 약>        김기원

 

 

김승연 한화 회장이 수천억 원의 배임·횡령죄로 실형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개인적으로는 안 된 일이지만, 회사와 나라의 발전을 위해 정의가 바로 서는 계기다. 재벌총수의 범죄에 대한 이때까지의 솜방망이처벌 관행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김 회장 구속으로 회사경영이 위태롭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지만, 엄청난 회사 돈을 멋대로 빼돌리는 총수는 경영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오히려 회사에 보탬이 된다.

 

이번 판결은 2009년 사법부에서 정한 양형위원회 규정에 따른 것이다. 다만 이 양형기준은 권고사항이므로, 처벌의 확실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이 제출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가법) 개정안은 바로 그런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5억 원 이상의 횡령·배임에 대한 최저 형량을 7년으로 높임으로써, 일단 유죄로 인정되면 판사가 정상참작 하더라도 실형을 언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런 처벌강화가 지나친 게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이 수천만 원 도둑질하면 대체로 실형을 살게 마련이다. 그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회사로부터 도둑질한 범죄에 대해 실형 살게 하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미국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특경가법의 재산국외도피에 관한 처벌에 비해서도 기존의 횡령·배임 양형은 지나치게 낮다.

 

일각에선 개정안대로 하면 살인죄보다 처벌이 더 무거워진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모든 횡령·배임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게끔 하자는 것이 아니다. 일정금액 이상에 대해서만 해당되며, 살인죄도 범죄의 성격에 따라 양형이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개정안은 재벌총수를 겨냥한 게 아니라 ‘특정 금액 이상’의 횡령·배임에 대한 처벌조항이다. 개정 법안을 검토한 국회입법조사처에서도 이미 개정안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내놓은 상태다. 전경련 관계자도 개정안에 대해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에 따라 기업인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법을 집행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한 바 있다.


특경가법 강화는 총수들을 감옥 보내는 게 긍극적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불법을 저지를 엄두를 내지 않게 해서, 총수가 검찰과 법원에 불려다니는 일이 없게끔 하려는 것이다. 결국은 총수에게도 보탬이 되는 법이다.

 

필자가 최근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라는 책에서 강조했듯이, 치열한 국제경쟁 속의 원활한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선 구조조정시의 고통을 총수가 공평하게 분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횡령·배임을 저지르는 총수로서는 불가피한 구조조정이라도 추진할 명분이 없다. 또 특경가법 강화는 정치권의 뇌물을 거부할 구실도 제공해준다. 요컨대 특경가법 강화는 기업과 나라를 거듭나게 하는 ‘입에 쓴 약’인 셈이다.

<편집자 주>

얼마 전 새누리당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고 기업인의 배임·횡령 등에 대한 처벌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