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쌍용차를 둘러싼 논쟁

동숭동지킴이 2012. 10. 18. 10:03

 

 

쌍용차를 둘러싼 논쟁

 

 

(제가 쓴 10월 4일치 한겨레 칼럼에 대해 한진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이 10월 10일치 한겨레에 반론을 실었습니다. 그에 대한 재반론을 제가 10월 16일치 한겨레에 실었습니다. 이 논쟁들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1. 쌍용차 청문회에 대한 왜곡, 무엇이 두려운가

10월4일치 김기원 교수의 칼럼 ‘안타까운 쌍용차 청문회’를 읽고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지난 9월20일 열린 쌍용차 청문회에서는 고의 부도, 회계 조작, 회생법 위반, 생산성 왜곡 등 그동안 쌍용차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들이 다뤄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중요한 사실들도 밝혀졌다.

 

상하이차 철수가 유동성 위기가 아닌 기술 유출 수사 등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는 정황이 외교통상부 대외비 문서를 통해 드러났고, 쌍용차 재무구조 악화의 결정적 이유가 됐던 유형자산 감액은 쌍용차 설비를 고철 덩어리로 간주한 상태에서 이뤄져 회계법 위반 여지가 크다는 점도 밝혀졌다.

 

이는 사측이 법정에서 정리해고가 정당했다고 밝히는 핵심 이유들을 정면 부정하는 내용들이다. 사측은 지금까지 정리해고가 유동성 위기, 재무구조 악화, 생산성 열위로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문회 결과에 따르면 이는 모두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2646명을 해고하고, 23명을 죽음으로 내몬 구조조정의 중요한 이유가 석연치 않은 것이다.

 

청문회 이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뻔한 반응을 내놨다. 정치권 때문에 기업 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으니 이런 청문회는 그만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청문회에 대한 의외의 비판도 있었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가 10월4일치 <한겨레> ‘세상 읽기’ 칼럼에서 쌍용차 부도는 쌍용차 적자 때문이고, 정리해고 역시 어쩔 수 없었다고 쓴 것이다. 김기원 교수는 예전 대우차 정리해고나 최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때도 기업 경영상의 정리해고는 불가피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밝혔듯이 쌍용차 부도 사태는 상하이차가 기술 유출 이후 자본 철수를 위해 유동성 위기를 고의로 발생시키며 이뤄진 일이다. 중국과 한국 당국도 인정하는 바다. 쌍용차 부도와 정리해고는 김 교수의 주장과 달리 적자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회계조작 역시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자본 철수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고 했지만, 큰 전후방 산업 효과를 만들어내는 완성차 기업의 처리 문제는 단순히 한 기업에 관한 것이 아니라 꽤나 심각한 정치적 이슈라는 점을 간과한 이야기다.

 

지엠(GM)이 2009년 유럽의 오펠을 매각하려 할 때 미국 정부가 독일 정부와 긴 시간 정치적 협상을 해야만 했던 전례만 봐도 그렇다. 또한 우리 외교부 문서에도 나오듯이 한-중간에는 쌍용차 철수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있었고, 이 와중에 발표된 재무제표는 쌍용차를 회복 불가능한 부실기업으로 만들어 정치적 갈등을 매듭짓는 역할을 했다.

 

재벌들이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분식회계를 밥 먹듯이 해왔다는 사실, 최근 10여년간 중국 기업의 해외기업 인수합병이 주로 영업상의 이익이 아닌 기술획득, 자원획득을 위해서였다는 사실은 상식에 가깝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김 교수가 왜 이런 상식을 쌍용차 정리해고에서는 인정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조직적 폭력, 경제 권력들의 담합, 정리해고 제도의 문제점 등이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 바로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다. 한 기업의 정리해고 문제가 아닌 한국 사회 정리해고의 구조적 문제점이 응축된 것이 바로 쌍용차 사태다. 김 교수와 같은 경제민주화 전문가들도 이제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한다.

 

 

2. 다시 '안타까운 쌍용차 청문회'

 

11일치 왜냐면 ‘쌍용차 청문회에 대한 왜곡, 무엇이 두려운가?’를 읽고

 

필자의 10월4일치 <한겨레> 칼럼 ‘안타까운 쌍용차 청문회’에 대해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이 지난 11일치 ‘왜냐면’에 반론을 실었다. 좋은 일이다. 이런 논쟁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올바른 해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실장의 글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아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필자의 칼럼은 국회에서 열린 쌍용차 청문회의 형식과 내용에 대해 비판한 것이었다. 한씨는 청문회 형식에 관한 필자의 평가에는 반론하지 않았고, 내용 중 일부에 대해서만 필자와 다른 생각을 표시했다. 이를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쌍용차 문제를 재점검해보자.

 

 

첫째로 상하이차의 철수가 기술유출 수사 때문이었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한 실장은 주장한다. 검찰의 기술유출 수사가 경영에 압박을 가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게 철수의 결정적 사건인지는 알 수 없고, 나중에 기술유출 혐의는 무죄로 판결났다. 또 적자를 벗어나 돈을 벌 자신이 있었다면, 상하이차가 기술을 빼가지 못하더라도 한국을 떠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철수의 기본 요인은 경영의 적자 상태다.

 

 

둘째로 재무구조 악화, 유동성 위기, 생산성 열위로 정리해고가 불가피했다는 사측 주장이 조작된 것이라고 한 실장은 썼다. 이 중 재무구조 평가에는 미래의 수익성 예측이라는 주관적 요소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채비율 급증과 같은 재무구조 악화가 과장되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 곧바로 조작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대출한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국회의원이 청문회에서 유동성 위기를 부정하려 했지만, 이는 그릇된 추궁이었다. 은행과 대출한도 계약이 맺어져 있다고 해서, 은행이 자동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다. 회사 전망을 어둡게 보면 안 빌려준다. 그리고 생산성 열위란 쌍용차에 일감이 없어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나 노동밀도가 낮아져서 나타난 결과다. 10월10일 방영된 <한국방송>(KBS)의 ‘추적 60분’에서 경영진도 이렇게 밝혔다. 결국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론 고의적 회계조작이라고 보기 힘들다.

 

 

셋째로 한 실장은 완성차 기업의 철수는 심각한 이슈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특별한 사전 계약이 없는 한 적자 상태인 회사의 경영에서 손을 떼지 못할 이유가 없다. 최근 미쓰비시 자동차는 네덜란드 공장을 단돈 1유로에 팔아치우고 철수했다. 임금을 체불하고 본국으로 야반도주하는 경우가 있지만 쌍용차가 그런 상태는 아니었다.

 

 

넷째로 한 실장은 재벌들이 분식회계를 일삼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분식회계는 은행에서 대출받으려고 장부를 좋게 꾸미거나, 총수가 돈을 빼돌리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억지로 장부를 나쁘게 만드는 건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다. 쌍용차는 어느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쌍용차는 갚아야 할 빚을 감당하기 어려워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경우에 만약 일부러 장부를 나쁘게 만든다면, 그 이유는 정리해고를 위해서라기보다 아예 회사를 청산해 땅값을 챙기려 했을 수는 있겠다. 정리해고는 기본적으로 일감 부족 및 경영적자와 관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

 

 

얼마 전 쌍용차 대주주인 마힌드라의 대표는 쌍용차 무급휴직자의 단계적 복직계획을 과거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쌍용차 사장은 무급휴직자와 만날 용의를 표명했다. 이런 식으로 희망과 대화가 진전되길 바란다. 그리고 쌍용차와 관련된 더 상세한 내용은 필자의 블로그(http://blog.daum.net/kkkwkim/190)를 참고했으면 한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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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1) 한지원 실장의 재반론

 

한실장은 위의 제 글에 대해 10월17일씨 <매일노동뉴스>에 또다시 반론을 썼습니다. 반론의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4263

 

그런데 한 실장은 이 매일노동뉴스 글에서 저의 재반론 글 중 다른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오직 "정리해고는 기본적으로 일감부족 및 경영적자와 관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라는 문장에 대해서 만 이리저리 시비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비는 제 문장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소치입니다. "정리해고는 기본적으로 일감부족 및 경영적자와 관계가 있다"는 말에서 "기본적으로"라는 단어에 주목해주기 바랍니다.  정리해고 중에는 한실장이 예를 든 바와 같은 무분별한 정리해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해서 쓴 글에서 강조했듯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한, 정리해고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됩니다.(사실 한실장이 소속된 단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그 단체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습니다만.) 

 

하지만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더라도,  정리해고가 무분별해서는 안되고, 공평한 고통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제가 칼럼이나 책에서 누누히 강조했던 것입니다. 한실장이 제시한 사례들 중에는 이런 원칙이 훼손된 듯이 보이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물론 더 따져볼 부분이 있겠습니다만).

 

다만 쌍용차의 경우가 한실장이 매일노동뉴스 글에서 제시한 사례와 같다는 증거는 현재까지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청문회에서도 그걸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걸 제가 강조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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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2)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발표 (10. 29 작성)

 

10월 29일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쌍용자동차 특별조사단'이 쌍용차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00일 간에 걸친 조사 끝에 발표한 내용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할 것입니다. 그 보고서 전문은 서울지방변호사회(www.seoulbar.or.kr) 사이트에 들어가 '보도자료' 부분을 클릭하면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내용에서는 회사 측 주장도 검토하면서 적어도 국회의 청문회보다는 심도 있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노고를 치하하는 바입니다. 일부 진보교수도 동참해 외치고 있는 "정리해고자의 무조건 복직' 같은 비합리적 요구 대신에 노사 간의 대화와 타협을 권하고 있는 부분도 잘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보고서에는 파업진압과 관련된 상세한 기술이 들어 있고, 특히 앞으로의 제언과 관련해 법원이 법정관리 문제를 다룰 때는 노동자의 입장을 들어보는 자리를 가지라는 등 경청할 대목도 적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위의 제 글과 관련해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은 부분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1) 손상차손의 인식 필요성이 이미 2008년 11월에 안진회계법인에 의해 지적되었다는 점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바로 회계조작이라고 단정할 수 없음은 변호사 조사단의 보고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회계법인 등이 좀더 명확하게 회계처리 과정을 밝혀야 할 필요성을 지적하고는 있고, 그것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2) 대출한도 (credit line)를 상하이차측이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위의 제 글에서도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왜 상하이차가 중국은행 등에서 대출을 끌어당기지 않는가 하는 점에 대해 보고서는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 지적대로 상하이차가 쌍용차의 미래를 어둡게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3) 1년 후 무급휴직자 복직 문제에 대해, 보고서는 합의문에 대한 노동자측과 회사측 주장을 소개한 다음에, 노동자측 주장이 옳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 블로그 글에서 밝힌 대로, 국회청문회에서 사장의 합의문 해석에 대해 합의당사자였던 전 노조위원장은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론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함으로써 사실상 사장의 해석에 동조했던 셈입니다.

 

4)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회사가 정리해고자 등을 '재고용할 여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노조측 주장과 회사측 주장을 단순히 소개만 하고 있습니다. 여러 부분에서 노조측 주장에 동조한 변호사들이 보기에도, 노조측 주장을 편들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대목입니다.

 

결국, 보고서를 보더라도 위의 제 글에서 바로잡을 부분은 적어도 아직은 없어 보입니다. 물론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제 글의 옳고 그름보다는 쌍용차 문제, 나아가 우리 사회의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법이 찾아지는 것입니다. 변호사들의 보고서도 그런 해법 모색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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