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정책검증이냐 인격검증이냐

동숭동지킴이 2012. 11. 1. 07:42

(한겨레 11월 1일자 칼럼입니다.)

 

 

<정책검증이냐 인격검증이냐>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그에 따라 한편으로 후보들이 한반도를 어떻게 이끌고 갈지에 관한 정책공약이 도마 위에 오르고, 다른 한편으로 그들이 살아온 자취에 대한 인격검증이 이뤄지고 있다. 민주주의란 이런 검증과정을 통해 더 나은, 아니 적어도 덜 나쁜 인물을 선택하려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정책검증과 인격검증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할까. 선거에서는 흔히들 인격을 파헤치는 네거티브 공세 대신에 정책경쟁을 하자고 말한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과거보다는 미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공약이 반드시 실천되는 게 아니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명박 정권의 경우를 돌이켜보자. 747공약(7% 성장, 4만달러 소득, 세계 7위 경제)은 완전한 헛말이 되고 말았으며, 대운하 공약은 4대강 정비사업으로 변질되었다. 재임 중에 친형이 구속된 판이니, 측근 비리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명박 이전의 역대 정권도 결코 공약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하기 힘들다.

 

 

이번 선거는 어떨까. 박근혜 후보는 이미지 정치에 치중해 구체적인 공약을 그다지 내놓지 않았다. ‘창조경제’, ‘행복교육’처럼 준수 여부를 따지기 곤란한 추상적인 공약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어쩌다 제시한 ‘하우스푸어’ 대책 같은 구체적인 공약은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그리고 새누리당 일각에서 이미 제출한 경제민주화 법안에 대해서도 박 후보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 이처럼 정책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지조차 알기 힘든 박 후보가 내놓는 공약을 어찌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반면에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그런대로 구체적인 공약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두 후보에게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이들이 대통령이 된 경우에 여소야대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이다. 법안이든 예산안이든 새누리당이 반대하면 관철이 불가능하다.

 

탁월한 정치력으로 새누리당에 대해 강력한 국민적 압력을 동원하거나, 아니면 일부 새누리당 의원을 자기편으로 끌어오는 정치변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못한다면 상당수 공약이 물거품이 된다.

 

 

이런 형편이니 정책내용 못지않게 그 정책을 실천할 진정성과 정치력이 중요해지는 셈이다. 여기서 진정성과 정치력을 묶어서 인격으로 표현한다면, 대선에서는 인격검증이 정책검증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의의를 갖는 것이다.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될 인물의 사생활은 무조건 보호해야 할 프라이버시가 아니다. 예컨대 박 후보의 경우 청와대 시절과 그 이후 1998년의 국회의원 첫 당선까지 어떤 삶을 보냈는지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문 후보나 안 후보의 삶의 행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후보 개인의 인격뿐만 아니라 후보와 함께 나라를 이끌어갈 집단의 인격도 살펴봐야 한다. 후보들을 뒷받침하는 정당이나 캠프의 성향이 바로 그에 해당한다. 세 후보가 내건 대북정책이 얼핏 비슷한 듯해도, 집단인격을 비교해보면 박 후보 쪽과 문·안 후보 쪽이 실제로 추진할 대북정책에 커다란 차이가 존재함은 금방 알 수 있지 않은가.

 

 

우리가 대통령을 선택할 때 후보들의 세세한 개별 공약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제대로 집행될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뒤흔들 굵직한 정책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놓는 공약들의 총체적 방향성에 주목하면 된다.

 

그리고 후보 개인 및 그를 둘러싼 집단의 인격을 검증해야 한다. 다만 인격검증은 ‘아니면 말고’ 식의 흑색선전이어선 안 되고 분명한 근거를 가져야 한다. 이참에 흑색선전을 일삼는 언론이나 정치인도 챙겨놓자. 공직후보자에 대해 올바른 인격검증이 이뤄지는 나라가 곧 바람직한 선진국이 아닐까 싶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