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또 하나의 패인분석 (한겨레 칼럼)

동숭동지킴이 2012. 12. 27. 00:10

 

(대선 패배요인에 관해 한겨레에 게재한 칼럼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내년 들어 보다 본격적으로 대선과정을 돌이켜보는 글들을 여기 블로그에서 써볼까 어쩔까 생각 중입니다.)

 

 

<또 하나의 패인분석>  : 한겨레 칼럼 (12월 27일)

 

진보개혁세력이 대선에서 패배했다. 많은 이들이 허탈해하고 있다. 게다가 박근혜 당선인이 적어도 엠비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으니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선거 과정에서 그가 엠비에 비해 현실 파악 능력이나 소통하는 자세가 오히려 더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졌던 것이다.

 

필자는 어느 선거캠프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거기서 활동한 지인들이 있었다. 덕분에 그들을 통해 선거의 속살을 조금은 들여다봤고, 몇 가지 아이디어를 건네기도 했다. 여기선 그중 채택됐더라면 승리할 수도 있지 않았나 싶은 두 가지 제안을 통해 나름대로 패인을 따져보고자 한다.

 

첫째로, 단일화와 관련된 안철수 쪽 최후통첩을 문재인 쪽이 통 크게 그냥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아름다운 단일화’가 성사되어 박근혜 쪽과의 싸움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물론 안철수 쪽은 단일화 과정에서 억지를 많이 부렸다. 이런 억지 부리기나 의원 총수 줄이기에 집착하는 모습 따위에서 보듯이, 안철수씨나 안철수 캠프는 이른바 안철수 현상을 담아내기에는 너무나 작은 그릇이었다.

 

하지만 안 쪽의 억지까지도 껴안는 자세를 취했을 때, 대중은 문 쪽의 통 큰 모습에 감동했을 것이다. 우리 선거판은 보수수구세력의 거대언론 장악과 낙후된 북한 체제라는 객관적 여건이 진보개혁세력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기울어진 운동장 경기’다. 여기선 감동을 주지 않고선 진보개혁 후보가 이기기 힘들다.

 

안 쪽 요구대로 했으면 문 쪽이 여론조사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문 후보의 몇 차례 양보로 지지율이 문 쪽으로 역전돼 가고 있었다. 한번 더 양보하면 그 순간 지지율이 더 쏠리게 마련이다. 또 만에 하나 안 후보에게 지더라도 박 후보에게 지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민주통합당은 구심력이 약해서 캠프 안에 강력한 총참모장을 둘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승부수를 던질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둘째로, 대통합 내각에 새누리당의 합리적(개혁적) 보수파까지 포용한다고 애초부터 문 후보가 천명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예컨대 “새누리당과 사전에 협의해 총리를 임명하고,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일부 각료는 새누리당에 선임권을 넘긴다”고 했더라면 하는 마음이다.

 

문 쪽은 처음엔 마치 안 쪽과의 통합 내각인 듯이 말하다가 마지막 토론에서 비로소 새누리당과의 협력 관계를 거론했다. 그렇게 조심조심해서는 선거판을 주도할 수 없다. 선거란 자기편을 결집시키고, 중간층을 끌어당기고, 반대편을 흐트러뜨리는 일이다. 새누리당까지 포괄하는 대통합 내각은 중간층을 끌어당기고 반대편을 흐트러뜨리는 폭발력 있는 이슈였다.

 

참여정부의 대연정에 대한 연상 때문에 또는 제 몫이 줄어들까 봐 반대하는 참모들이 있을 것이다. 안철수 쪽이 토라질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여소야대 상황과 대통합이라는 시대정신을 들어 반대파를 설득했어야 한다. 이리 못한 것은 담대함의 부족과 작은 권력욕 때문이다. 또한 진보는 선이고 보수는 악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새누리당 내 합리적 보수파의 존재를 인정하기도 힘들었다.

 

요컨대 더 나은 비전과 정책 제시도 중요하지만, 야권의 구조 면에서 한편으론 계파 챙기기를 벗어나 유능한 인재를 적극 활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구심력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중도층에 대한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이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게 중도층이다. 그들을 획득하려면 극좌는 당연히 배격해야 한다. 하지만 중도층 잡는다고 어설프게 우편향하면서 오락가락하기보다는 담대함과 포용력 같은 리더십 함양에 주력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엔 승산이 있을 듯싶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