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이재용씨 아들과 경제민주화 ('창비주간논평' 6월 5일)

동숭동지킴이 2013. 6. 5. 18:25

 

 

(<창비주간논평> 6월 5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이재용씨 아들과 경제민주화

2013/06/05


김기원 / 방송대 경제학과 교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 사건이 물의를 빚었다. 올해초 영훈 국제중학교에 '사회적 배려 대상자' 자격으로 입학해 논란을 일으키더니, 최근 그 학교의 입시성적 조작 사실마저 드러나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만 것이다.

재벌가문에서 자식을 원정출산하고, 형제간에 꼴사나운 재산분쟁을 벌이고, 탈법적으로 엄청난 재산을 자식에게 넘겨온 행태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귀족학교(?) 부정입학사건이 벌어진 셈이다.

한국사회에서 재벌은 한편으로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으나 다른 한편으로 이 과정에서 정계·관계·법조계·언론계·학계를 멋대로 주무르려는 괴물로 자라왔다. 그리고 이러한 안하무인적 자세가 재벌가문의 온갖 추태를 연출하고 있는 듯싶다.

재벌가문도 경제민주화는 필요하다

그런데 이번 사태 속에서 이재용씨 아들의 처지를 한번 생각해보자. 이제 그 아이는 학교서 사귄 동무들을 떠나야 하고 주위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형편이 되었다. 이 무슨 가여운 모습인가.

만약에 영훈국제중학교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들어가게 해달라고 그 아이가 떼를 썼다면 자신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주위에서 알아서 처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어린애는 애꿎게 피해를 입은 셈이다. 이미 부모의 이혼으로 받은 상처가 작지 않을 텐데 또다시 타격이 가해진 꼴이다. 어린애가 무슨 죄가 있는가. 부모 잘못 만나 괜한 고생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재벌가문에 태어나는 게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닌 셈이다.

그리고 이런 트라우마를 갖고 자라 나중에 삼성그룹을 물려받게 된다면, 한국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그룹을 온전하게 이끌지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의 불행이 나라의 불행으로 이어질 위험성도 존재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사실 이런 사태를 막아보려는 노릇이다. 뜬금없이 들릴지 모르지만, 경제민주화는 나라경제의 온전한 발전은 물론이고 재벌가문이 진정한 행복을 되찾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다.

안팎의 경제독재를 바로잡는 일

경제민주화가 과연 뭘 의미하는지를 둘러싸고 그동안 논란이 많았다. 그런데 어떤 용어의 뜻이 애매할 땐 그 반대말을 찾아보면 이해하기 쉬운 경우가 적지 않다. 경제민주화의 반대말은 '경제독재'라 할 수 있다. 정치민주화의 반대말이 정치독재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경제민주화는 경제독재를 바로잡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경제독재는 크게 노동 측면과 자본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노동의 측면에서는, 거대기업(공공부문 포함) 정규직이 집단적 지배력(일종의 독재)으로 중소기업 노동자(및 비정규직)에 비해 부당하게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자본의 측면에서는 재벌체제 문제가 그 핵심이다. 재벌체제는 재벌 외부적으로는 재벌그룹이 중소기업을 포함해 나라(경제)를 '갑'의 지위에서 멋대로 주무르고, 재벌 내부적으로는 총수의 왕조적(세습적) 독재체제가 지속되는 ‘이중적 독재체제’다.

재벌의 외부적 독재체제를 바로잡으려면,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공정거래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대리점이나 하청업체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단체협상력을 제고하든가, 부당거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강화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이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복지강화도 포함된다. 사회적 복지가 강화돼야 중소기업 노동자의 근속연수가 늘어나 숙련이 향상된다. 또 사회적 복지는 부당한 거래를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기도 한다.

정계·관계·법조계·언론계·학계가 재벌의 품에서 벗어나 자율성과 품위를 지키는 일도 물론 필요하다. 특히 검찰이 바로서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재벌에 의해 함부로 농락당하는 일이 사라진다.

재벌개혁은 무능과 부패 바로잡는 일

그리고 재벌의 내부적 독재와 관련해선, 재벌총수의 독재에 기인한 '무능과 부패'를 바로잡아야 한다. 무능의 문제는 단지 총수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능력의 검증도 없이 사실상 국민재산인 재벌그룹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라앉아, 그룹과 나라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 문제는 IMF사태 무렵에 재벌그룹의 절반 정도가 도산한 주요 요인의 하나였다. 또한 요즘 재벌총수들이 제대로 된 투자는 기피하면서 물티슈 따위를 수입하고 골목상권을 휘젓는 식의 ‘기업가정신 부재’도 이에 기인하는 측면이 강하다.

총수의 부패란 지금 CJ그룹 조사에서 드러나고 있는 대로, 총수가 회사재산을 마치 자기호주머니 장난감처럼 생각해 횡령·배임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 이런 재벌총수들의 부패는 정치권이나 관료 심지어 노조간부의 부패와도 무관하지 않다. 총수가 회사의 돈을 빼돌려 자기 몫을 챙기는 한편 이들까지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자식과 관련된 재벌총수의 부패도 이런 현상의 연장선상에 자리잡고 있다. 재벌총수들이 자식에게 그룹을 물려주려고 온갖 불법과 비리를 일삼은 것을 우리는 익히 보아왔다. 이재용 부회장이 겨우 수십억원의 세금만 내고 수조원의 재산가가 된 것도 이런 부패의 결과였고, 그 때문에 이건희 회장이 재판까지 받았던 것이다.

이재용씨 아들 사건도 이상과 같은 재벌의 이중적 독재체제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온갖 탈법과 비리를 저질러도 재벌의 경우엔 큰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무리한 입학을 저질렀던 셈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린애 마음의 상처였다. 재벌체제가 재벌가문에게도 결코 행복의 체제가 되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재벌가문의 이런 불행마저 바로잡아주려는 것이다. 억압-피억압 관계를 바로잡는 것은 피억압자만이 아니라 억압자도 해방시키려는 것임을 명심하자.

재벌개혁이라 하면 재벌에 대한 증오감에서 비롯된 '재벌 죽이기'로 오해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우리 경제성장의 견인차이기도 한 재벌을 죽여 무슨 득이 있겠는가.

국민의 사랑 받는 선진적 대기업을 바란다

진정한 재벌개혁이란 재벌의 긍정적 측면은 살리고 부정적 측면은 해소하는 '재벌 거듭나기'이다. 그래서 예컨대 스웨덴의 발렌베리(Wallenberg) 그룹처럼 국민의 사랑을 받는 선진적 대기업이 되도록 도와주자는 것이다.

발렌베리 가문 사람들은 한국의 재벌총수처럼 요새 같은 집에 살지 않는다. 평범한 이웃과 마주치면서, 주말이면 운전기사를 쉬게 하고 직접 차를 몰아 백화점에 쇼핑도 가고, 애들 학교의 학부모회에 참석해 다른 부모들과도 어울린다. 이렇게 특권의식이 없으니 국민들이 저절로 존경하는 것이다.

재벌총수 문제와 관련해 나는 총수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엄벌, 즉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을 강화해 일정금액 이상의 횡령과 배임은 실형이 불가피하게 하자는 것을 강조해왔다. 그리해 그 법안이 지금 국회에 상정돼 있다.

그런데 이 법안의 진정한 취지는 총수들을 우르르 감옥에 처넣자는 게 아니다. 그런 엄벌조항을 통해 초기엔 감옥 가는 총수들도 생기겠지만 장차는 아예 불법을 저지를 엄두를 못 내게 하려는 것이다.

이때까지는 처벌조항이 약하고 불확실해서 총수들이 적어도 감옥에 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해 일단 불법을 저지르고 본 측면이 강하다. 그리해 많은 총수들이 검찰조사를 받고 재판정에 섰다. 총수들은 나라의 지도자인 셈인데, 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자신들은 물론 국민교육면에서도 결코 좋지 않다. 경제민주화는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다.

뒷간 갈 때와 볼일 보고 나서의 생각이 다르듯이, 박근혜정권은 점점 경제민주화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수구언론들은 경제위기론 따위의 상투적인 논조로 그걸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부당한 경제질서를 개혁해 경제의 활력을 되살려 어려움을 벗어나려는 것이다. 아울러 재벌가문이 발렌베리 가문처럼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윈-윈(win-win) 게임이기도 하다. 부디 조금씩이라도 그 길로 진전했으면 좋겠다.

2013.6.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