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북한의 변화와 남한의 대선 (한겨레 칼럼)

동숭동지킴이 2012. 8. 9. 06:39

 

 

 

<북한의 변화와 남한의 대선> (한겨레 8월 9일)

 

 

런던올림픽에서 북한이 선전하고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의 메달 획득 수준과 엇비슷하다. 메달만으로 따지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지속된 어려움을 극복한 듯싶다. 물론 메달 수가 곧바로 나라의 형편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근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와 뭉뚱그려 보면 심상찮은 변화의 조짐을 느낄 수 있다.

 

북한의 과거 폐쇄체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휴대전화 이용자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자동차가 늘어나 평양에선 교통정체가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고르바초프처럼 부인을 대동하고 대중 앞에 나타난다. 짧은 치마의 무희와 미키마우스가 등장하는 공연을 김정은 부부가 관람하기도 했다. 게다가 김정은은 군부 강경파를 축출했고, 경제 개선을 위해선 자본주의 방식의 도입도 꺼리지 말라고 했다.

 

몇년 전 만난 연변의 조선족 교수는 북한이 중국처럼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가능성에 대해 극히 회의적이었다. 중국과 달리, 세습 권력체제라 윗대의 노선을 부정할 수 없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남한이라는 위협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럴듯한 견해였다. 그동안 북한의 개혁·개방이 ‘2보 전진, 1보 후퇴’와 같은 식으로 답답한 모습을 보인 게 설명이 된다.

 

그러나 북한에 주어진 제약조건이 영구불변은 아니다. 김일성은 1970년대에 외국 자본을 도입하는 개방정책을 시도한 바 있고, 김정일은 그보다 적극적인 개방론자였다. 따라서 김정은의 개방 추진이 반드시 윗대의 노선에 위배되는 건 아니다. 기업과 농장 경영에서의 개혁도 김정일 치하에서 이미 어느 정도 선을 보인 바 있다. 시장의 확장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결국 북한의 개혁·개방에서 진짜 문제는 미국과 남한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미국도 어느 정도는 남한의 눈치를 보므로, 남한이 북한의 미래를 규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한이 북한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제공하면, 북한이 안심하고 개혁·개방의 궤도 위에서 순조롭게 전진할 가능성이 커진다. 남북한 사이의 평화협정이나 국가연합은 바로 그런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필자가 최근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라는 책에서 밝혔듯이, 우리 사회의 모순구조는 ‘진보↔보수’, ‘개혁↔수구’, ‘남북한 평화협력↔긴장대결’의 3차원으로 구성돼 있다. 선거에서의 정책논쟁도 대체로 이런 모순을 둘러싸고 펼쳐져 왔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선 새누리당마저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복지나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선 각 후보의 진정성을 따지는 정도고, 각이 서는 쟁점은 남북한 관계에서 찾아야 할 형편이다.

 

한국의 대통령을 두고 제왕적 대통령 운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과장이다. 특히 개혁진보진영의 대통령은 운신에 엄청난 제약을 받는다. 재벌, 관료, 검찰, 거대언론이라는 과점적 권력집단에 포위당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대통령이 정책적 차별성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분야는 기득권 저항이 상대적으로 덜한 남북한 관계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과 이명박 정권의 비바람정책을 비교해보라.

 

김정은이 개혁·개방의 파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게 일시적 제스처에 그치지 않고 정상궤도에 올라서게끔 해야 한다. 북한이 동독처럼 갑자기 붕괴할 때 생길 수 있는 수백만 난민을 남한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하자. 한반도의 대전환을 이끌어갈 담대한 남한의 지도자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런 인물이라야 복지와 경제민주화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다. 대선의 초점을 여기에 맞춰보면 어떨까.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