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대통령 후보 감별법 (한겨레 칼럼)

동숭동지킴이 2012. 7. 12. 08:02

 

(<한겨레> 2012년 7월 12일자에 실린 칼럼입니다.)

                                          대통령 후보 감별법

 

                                                                  김 기 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대통령 후보들의 면면이 대부분 드러났다. ‘저녁이 있는 삶’, ‘보통사람이 주인인 나라’, ‘평등국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등 멋진 슬로건도 나부끼고 있다.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만이 난무하는 선거보다는 긍정적인 비전과 정책으로 승부하는 선거가 훨씬 아름답다. 지난 총선에서도 엠비(MB) 비판에만 치중한 야당은 패배하고 말았다.

 

 

하지만 멋진 슬로건이 곧바로 멋진 정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경제 살리기’나 ‘747’(7% 성장, 4만달러 소득, 세계 7위 경제)같이 혹할 만한 약속을 내걸었던 이명박 정권에서 측근 비리가 만연하고, 민생경제가 어려워졌으며,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남북한 관계가 파탄나지 않았던가. 슬로건에 속아 이렇게 잘못 선택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국민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첫째로, 대선 후보와 그를 둘러싼 정치세력의 진정성에 주목해야 한다. 선거 때 말끝마다 서민을 들먹였던 이명박 정권은 취임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재벌과 부자에 대한 감세부터 단행했던 것이다. 후보가 내던지는 말에 휘둘릴 게 아니라 그의 이력, 지지기반의 성격, 그리고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점검해 진정성을 따졌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선 여야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세운다. 따라서 진정성은 재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경제민주화의 시늉만 하는지, 재벌체제의 급소를 찌르는 정책을 내놓는지에서 드러난다. 복지 강화를 위해 재벌과 부자에 대한 세금을 어찌할 것인지도 후보자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다수당인 여권의 후보에 대해선 그의 진정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길도 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에 관련된 법률을 대선 이전에 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하는지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박근혜 후보 캠프의 정책위원회에는 경제민주화를 대변해온 김종인씨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삼성과 전경련을 대변해온 현명관씨도 같은 정책위원회의 멤버다. 이 경우 어느 쪽이 실세고 어느 쪽이 장식품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박근혜 후보가 2007년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 공약에서 오늘의 경제민주화·복지 공약으로의 전환을 얼마나 납득이 가게 설명하는지도 진정성 확인을 위해 지켜볼 대목이다.

 

 

둘째로, 후보들의 비전과 전략도 따져보아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과 이명박 정권의 ‘비바람정책’ 중 각 후보가 기본적으로 어느 쪽을 비전으로 삼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교육문제에서도 현재 진보교육감과 보수교육감의 노선 중 어느 쪽을 받아들일 것인지 차이를 분명히 식별해야 한다. 북유럽식과 영미식 자본주의 중 후보들 자신이 어느 쪽으로 더 끌리는지도 털어놓게 해야 한다.

 

 

그리고 비전을 실천할 전략(정치력)을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비전과 진정성만 있다고 성과를 거둘 수는 없다. 기대에 못 미친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바로 그 증거다. 진보·개혁·평화를 지향하는 후보라면 뒤엉킨 한국 사회 모순의 핵심 고리를 찾아내고 재벌, 수구언론, 관료 및 특수이익집단의 저항을 돌파할 전략을 갖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오늘날 한반도 대중의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바람직한 선진국 체제를 수립해 가려면 여권 후보든 야권 후보든 진정성, 비전, 전략이 남달라야 한다. 이를테면 노무현의 진정성, 김대중의 비전, 그리고 꼴통세력과 일전불사할 전략 같은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걸 다 갖춘 후보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멋진 슬로건보다 이런 자질을 기준으로 후보를 고를 때 우리의 삶이 한 걸음이라도 전진하고 실망은 작아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