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경제민주화를 말한다> 인터뷰

동숭동지킴이 2012. 7. 26. 18:24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 토마토TV라는 케이블 채널에서 진행한 인터뷰 내용입니다. 인터뷰한 내용을 방송사 측에서 요약 정리한 것이라 본인이 말한 것 중 빠진 것도 있고, 의미전달이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예컨대 본인이야말로 '진정한 친재벌론자'이고 전경련 등은 '사이비 친재벌론자'라는 뜻으로 말했는데 그렇게 전달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본인이 말한 내용에 해당하므로 그대로 옮겨 놓습니다.)

 

 

 

(경제민주화를말한다!) 김기원 “재벌개혁만이 재벌의 살 길”
(특별기획)⑤"총수의 무능과 부패, 전문경영인제가 대안"
입력 : 2012-07-22 오후 1:49:53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272099

[뉴스토마토 황민규·이보라기자] "나는 '친재벌론자'다. 오히려 (재계 입장을 대변한다고 하는) 전경련이나 전경련 산하연구원들이 '사이비 재벌론자'다. 배임·횡령 등에 대한 법적 처벌을 강화해 무능하고 부패한 재벌 총수들을 경영에서 물러나게 하고, 전문경영인제를 도입해야 재벌도 선진적인 대그룹으로 거듭날 수 있다."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의 주장이다. 정치,
경제, 사회, 노동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방대한 연구와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진정한 시대상을 모색해 온 김기원 교수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재벌개혁의 방향성을 설파한 '재벌 전문가'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친재벌론자라고 칭하는 김 교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제연구원, 대한상공회의소, 경영자총연합회 등 주요경제단체와 산하 연구기관 등을 사이비 재벌론자라고 비판한다. 김 교수가 주장한 경제민주화는 재벌 입장에서는 분명 '입에 쓴 약(?)'이다.
 
경제민주화를 '양극화 해소'로 정의한 김 교수는 재벌개혁의 명분으로 재벌총수와 재벌그룹의 이해 괴리, 재벌그룹의 이익과 국민경제의 괴리, 재벌과 국가경제의 이익 상충 등을 언급했다.
 
그는 "횡령·배임에 있어서 특정경제가중처벌을 통해 형량을 높여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을 선고해야 재벌 총수의 비리가 근절될 것"이라며 "회사 자금을 자의적으로 유용할 수 없다면 이들도 굳이 경영일선에 나설 필요가 없고, 전문경영인 체제가 정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성장 친화적인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소비력 격차를 줄이기 위해 중소기업에 대해 교육, 주거, 의료 등 국민복지 수준을 높여 실질임금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인력과 기술유출 등을 방어하기 위해 이처럼 장기근속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면 경쟁력이 향상돼 선순환이 일어나고, 노동자간 부당한 격차도 해소된다는 주장이다.
 
인터뷰는 20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1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다음은 김기원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20일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총수의 무능과 부패를 치유할 방안은 전문경영인제 뿐"이라며 "재벌개혁이 결과적으로 재벌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히 경제민주화 광풍이다. 2012년 대한민국 사회를 관통하는 시대 과제로 떠오른 배경을 어떻게 보나. 
 
▲한국 자본주의 발전과정을 보면 고도성장기에는 연 8~9%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고도성장 단계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전체) 생활수준이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로 각종 문제들이 덮어져왔다. 하지만 중성장·저성장 단계로 접어들고, IMF 이후 글로벌화·기술발전이 진행되면서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양극화는 여러 측면이 있다. 먼저 기업 측면을 살펴보면 대기업은 소위 잘 나가는데 중소·중견 기업들은 허덕이고, 자영업자들의 상황은 더 나쁘다. 재벌 대기업에 종사하는 종업원들은 노동귀족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생활수준이 높다. 반면 이들과 중소·중견기업 근로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의 격차는 꽤 크고, 상대적으로 열악하다.기업 간, 근로자 간 양극화가 심각해졌고, 선거국면이라는 시기적인 요인도 작용해서 경제민주화가 부각됐다고 할 수 있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 가릴 것 없이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있다. 각 당이 보였던 이념과 노선, 정체성, 정책 등과는 상당히 배치되는 측면도 있다. 때문에 이른바 중도층을 겨냥한 표심잡기 차원의 접근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치라는 것이 국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것 아니겠나. 선거, 특히 대선 국면은 국민의 요구가 가장 강하게 표출되고 또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지금 경제민주화가 부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듯이, 막상 집권하게 되면 옛날 생각 잊어버리고 권력투쟁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때문에 선거 후 국민들의 열망이던 경제민주화를 외면할까 걱정이다. 경제민주화가 활발하게 논의되는 측면은 오히려 바람직하다.
 
-재벌개혁을 빼놓고 경제민주화를 말할 수 없다. 과연 기득권의 벽을 뚫고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나? 회의적 시각이 만만치 않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 과연 독재정권을 벗어날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를 품었다. 대다수 국민들이 독재를 벗어나기란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곧 6·10항쟁, 6·29선언 등 최소한 형식적 의미에서는 정치민주화(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뤄졌다. 이렇게 정치민주화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급진전이 이뤄졌다.
 
1987년 8~9월에 노동자들이 대투쟁을 벌였다. 1987년 노동자 파업건수가 3600건 정도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노동조합이 대거 설립되고, 어용노조가 민주노조로 바뀌었다. 노동측면에서 노동민주화가 이뤄졌다. 
 
노동민주화가 이뤄지면서 거대기업 정규직과 중소 중견기업, 혹은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가 커지면서 또 다른 불공정의 문제가 생겨났다. 기업들 사이의 문제는 1987년 때도 해결되지 못했다. 그게 재벌체제라는 것이다. 노동자 사이의 부당한 격차(노노 갈등)와 재벌 문제. 이 두 가지가 경제적 차원에서 크게 등장하고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이런 문제들이 단칼에 해결될 수는 없다고 본다. 정치민주화는 직선제로 단칼에 해결된 측면이 있다. 노조설립의 자유가 생기는 등 노동자유화 역시 단칼에 해결되긴 했다. 경제민주화는 다르다.
 
일본 같은 경우는 단칼에 해결됐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재벌을 해체시켰다. 극우파가 재벌총수를 암살할 정도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쟁 직후만큼 정치적 격변기는 아니다. 재벌개혁은 단칼에 해결될 수 없다. 중요한 것들을 하나씩 이룩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의 전략에 비유하자면 진지전에 비유할 수 있다. 기동전은 한 번에 밀어붙이는 방식이지만 진지(참호)전은 하나씩, 하나씩 참호를 획득해 나가는 전략이다. 재벌개혁은 중요한 변화, 즉 진지를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가야 하는 것이다. 이번 국면에서 많은 진지를 획득하고 진전해낼 수 있다면 큰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새누리당은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 복원에,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은 재벌개혁, 특히 지배구조 개선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가지 관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재벌을 뜯어고쳐야 공정한 시장을 만들 수 있다. 공정한 시장경제와 재벌개혁은 결합된 문제다.
 
재벌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재벌총수와 재벌그룹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는다. 1970년대 고도 성장기에는 재벌총수의 이해와 그룹의 이해, 국가경제의 이해관계가 균형을 이뤘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이해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총수에게는 이익이 되는데 그룹에게는 손해가 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그룹에게는 이익이지만 국가경제에는 손해가 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창업주와는 다른 무능한 재벌총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창업주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경영능력이 꼭 유전되는 건 아니다. 창업주의 자손들이 밑바닥에서부터 자란 것도 아니다. 유학 갔다 와서 부장, 상무, 아니면 부사장, 사장으로 바로 올라간다. 또 이 과정에서 부딪혀가며 배우는 게 아니라 떠받들여진다. 직원들이 알아서 왕처럼 모시는데 제대로 기업경영을 배울 수 있겠는가. 무능할 확률이 높아진다. 외국 재벌의 경우에도 세습경영 사례는 없다. 경영능력을 검증받지 않은 창업주의 2세, 3세가 등장하는 것은 한국 같은 후진체제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한편 70·80년대 고도성장기를 지나면서 그룹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지만 총수의 지분은 채 10%도 안된다. 상장회사를 보면 1%도 안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배권은 행사하는데 그룹 재산과 자기 재산의 구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돈을 빼돌릴 욕망이 생긴다. 대기업은 다수의 주주와 은행의 자금이 투여되고, 또 많은 근로자가 종사하고 있어 국민 재산적인 성격을 띤다. 국민재산 관리자로서 경영능력에 문제가 있으면서, 회사돈은 자꾸 빼돌리게 된다. 한화, SK그룹도 그러한 경우다. IMF때 30대 재벌 절반가량이 무너졌다. 무능과 부패의 문제다. 이것이 바로 총수와 그룹의 이익이 불일치하는 문제다.
 
이것을 바로 잡으려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 내가 말한 내용이 얼마 전 발의됐다. 횡령·배임에 있어서 특정경제가중처벌을 통해 형량을 높이자는 것이다. 여태까지 80% 이상이 다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집행유예는 아무 의미가 없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형량을 높이면 유죄를 받을 경우 감옥을 가게 되어 있다. 판사가 절반정도 감형을 한다고 해도 3년6개월이다. 3년 이상 형량을 받으면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회사 돈을 빼돌릴 수 없게 된다. 회사 자금을 자의적으로 유용할 수 없다면 이들도 굳이 경영일선에 나설 필요가 없다.
 
이러면 전문경영인 체제가 등장한다. 전문경영인 역시 돈을 빼돌릴 동기가 사라진다. 다시 말해 경영이 투명해진다. 세습경영이 사라지면 일감몰아주기, 회사자금 유용 등이 사라지게 된다. 총수 지분이 많은 회사에 이익을 몰아줘서 총수가 이득을 많이 가져가도록 하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하려는 동기도 줄어들 것이다.
 
◇김기원 교수는 "횡령·배임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해 유전무죄 무전유죄 풍토를 없애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전문경영인 체제가 도입돼 경영이 투명해지고 일감 몰아주기, 회사자금 유용, 무분별한 사업확장 등을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출총제 부활은 일종의 대증요법이다. 배임·횡령에 대한 특가법을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다. 순환출자 규제 등은 모두 부차적인 얘기다. 핵심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자는 것. 범죄를 저지르면 감옥을 가야한다는 거다. 죄짓는 자에 대해서는 엄벌해야한다. 보통 직원이 수천만원을 횡령했을 경우 무조건 실형을 산다. 그런데 그보다 10배 ·100배의 회사 돈을 도둑질하는 사람에게는 왜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 말은 곧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없애자는 거다. 여기에 대해서는 재벌들도 제대로 반발하기 힘들 것이다.
 
다만 벌이 과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특가법 제 4조를 보면 국외재산도피에 대한 범죄가 있는데, 횡령·배임 모두 형량이 높고 실형이다. 자기재산을 외국으로 빼돌리는 것은 실형 살게 됐는데 회사 돈을 빼돌리는 사람에게 집행유예를 준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대법원의 양형위원회에서도 이런 흐름으로 가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이것을 전체당론으로 결정할지 모르겠지만 소수의 위원회에서 그 법안을 발의했고, 민주당도 비슷한 법안을 내놓았다. 이것을 대선 전에 통과시키면 된다.
 
두 번째로, 그룹의 이익과 국민경제의 이익과 맞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중소중견기업이 재벌의 압박 때문에 재대로 크지 못하고 근근이 버티고 있다. 구조적으로 중소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중소중견에서 대기업으로 큰 사례는 얼마 없다. 재벌이 이들을 간신히 먹고 살 정도로만 해준다. 공정거래법 강화해서 대기업이 이들을 수탈하는 것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 수탈했을 때 하청업체들이 고발하면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중소중견기업들의 경쟁력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중소중견기업들의 경쟁력이 커지면 재벌 하나와의 거래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재벌이나 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기업이 제 값을 쳐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정부가 보호하고 처벌하고 이런 것은 부차적인 문제로 중소중견기업이 힘을 갖게 해줘야 한다.
 
중소중견기업의 힘이 왜 약한가 생각해보면 기술의 숙련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근속년수가 적어 기술이 축적되지 않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과 근속년수는 약 5년 정도 차이난다. 재벌과는 10년까지도 차이 난다. 오래 근무하게 해야 하는 거다. 재벌기업의 월급을 깎으라고 할 수 없으니(공기업 등은 월급 동결 할 수 있지만) 실질임금의 격차를 줄여가야 한다.
 
소비력의 격차를 줄이자는 말이다. 교육, 주거, 의료 등 국민복지수준을 높여주면 실질(소비)지출이 줄어들어 실질임금격차가 줄어든다. 오래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이러면 경쟁력 향상돼 선순환이 일어나 월급도 올라간다. 복지도 재벌개혁과도 연결된다. 노동자들 간의 부당한 격차해소에도 연결된다. 복지는 무조건 퍼주기가 아닌 성장친화적인 복지를 해야한다.
 
성장에 도움이 되는 직원의 숙련도 향상, 중소·중견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커나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당장 이것이 힘들다면 중소중견기업 노동자들의 힘이 약하니 이들이 협상력을 키워줘야 한다. 특정 업종에 종사하는 하청(협력)업체들은 모아서 단체협상 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 협동조합에 협상신청권에서 더 나아가 재벌기업과 협상을 할 수 있게끔 하는 방법도 있다.
 
세 번째로, 재벌과 국가경제의 이익이 상충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재벌들 중에서 일부 상위 재벌은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옛날에는 보험 차원에서 정계, 관료계, 법조계, 학계, 언론계에 뇌물을 제공했다. 하지만 지금은 재벌기업들이 나라를 오염시키는 오염원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학계의 자정작용이 필요하다. 일단 학계부터 나서서 재벌에게 돈 받는 프로젝트를 하지 말아야 한다. 학계, 법조계, 정계 등이 뇌물을 안 받기 시작하면 좋은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광고를 받더라도 자율성이 커진다. 이렇게 되면 재벌들이 나라 지배하게 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선진국도 가끔 엔론사태 같은 스캔들이 있지만 한국처럼 스캔들이 만연한 나라는 없다. 횡령배임에 관한 처벌이 강화되면 뇌물을 제공할 돈도 없게 된다. 돈을 안 주게 되면 대그룹들도 사업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다.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이다. 재벌개혁은 죽이기나 혼내주기가 아니라 재벌이 바람직한 선진적인 대그룹으로 거듭나도록 돕는 것이다. 중도 제 머리를 잘 못 깎는다. 몸에 좋지만 입에 쓴 약을 권하는 것이다.
 
-오너경영의 장점도 있질 않나. 삼성전자 같은 경우 이건희 체제 하에서 과거에 비해 비약할 정도로 성장했다. 오너의 빠른 결단력이 급변하는 경쟁체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건희 회장이 새로 벌인 사업은 거의 망했다. 자동차, 영상비디오, 부동산, 유통 등 독자적으로 주도한 사업은 거의 망했다. 그렇다면 삼성은 왜 잘 될까. 삼성은 한국에서 전문경영인체제가 가장 발달한 곳이다. 다른 재벌기업은 총수가 온갖 시시콜콜한 것까지 관여한다. ‘조직의 삼성,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다른 재벌에 비해서 전문경연인의 자율성이 보장받고 있다. 특히 삼성에서 제일 잘 나가는 삼성전자 같은 경우 이병철 회장 때부터 만들어진 시스템에 의해 자라온 전문경영인들이 경영했다.
 
이건희 회장은 불량품을 불 태운다거나 때때로 “잘못됐다”고 호통 치는 식의 이벤트, 쇼만 벌였지 경영에는 별로 관여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품기획실의 경우 정주영 전 회장이 큰 자율성을 부여했다. 대우차의 경우에는 김우중 회장이 다 개입했다. 대우차 중 성공한 모델은 마티즈인데, 워낙 소형 모델이라 관여를 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대형 제품에는 많이 관여했다. 오너가 관여하지 않은 제품에서 성공한 것이다. 이렇듯 전문경영인 체제로 삼성이 발전한 것이다. 전문경영인체제가 단기적 이익에 치중한다는 이야기는 틀렸다.
 
또 GE가 주주자본주의 때문에 망했다는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엉터리다. 사실이 아니다. 전문경영인이라고 해서 단기적인 시야에서만 경영하지 않는다. 주주들이 전문경영인이 잘하는 것을 두고 본다. 가족기업의 경우 CEO를 갈아치울 지배권은 있지만 유럽의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거의 전문경영인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들이 전문경영인이라고 해서 단기이익에만 치중한다는 말인가. 성립되지 않는다. 가깝게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총수들은 진정한 행복을 잘 모르고 있다. 경영능력이 없다면 물러서는 것이 총수들에게도 진정으로 행복한 일이다. 진정한 행복이 아닌 당장 눈앞의 이득을 획득하려는 행위를 전경련이나 전경련에 아부하는 집단들이 옹호하려는 해괴한 논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친재벌론자’다. 오히려 전경련이나 전경련 산하연구원들이 ‘사이비 재벌론자’다. 재벌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 같지만 이것은 궁극적으로 재벌을 망치는 길이다. 반면에 나는 현재 재벌 체제에는 비판적이지만 진정으로 재벌과 재벌총수가 잘되길 원하는 친재벌론자다.
 
우리나라도 존경받는 부자를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유한양행의 유일한 선생은 존경받는 부자였다. 이 분은 미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확고한 철학으로 기업을 운영했다. 지금의 재벌 대기업에는 이런 분이 없다. 다 재판정에 들락거린다. 이건 교육적으로도 좋지 않다. 존경받는 기업가를 많이 만들어야한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기업인들 중 삼분의 일이라도 존경받는 기업가가 나올 수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여야가 내세운 경제민주화. 전문가적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새누리당이 지난 총선에서 내놓은 것이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였다. 슬로건 자체는 괜찮다. 민주당과도 남북관계 정도의 시각이 다를 뿐 나머지 부분에서는 큰 차이가 없고 총론은 비슷하다. 다만 각론에 있어 알맹이가 없다.
 
특히 박근혜 후보가 내놓은 재벌개혁안에 대한 각론의 알맹이가 없다. 일전에 토론회를 열기 위해 각 당에 토론할만한 사람을 섭외했었는데 새누리당 쪽에서는 재벌 문제에 이야기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것에 대해 전공한 사람이 없었다. 이제부터 각론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재계의 로비는 이미 시작됐다. 점점 더 치열해질 것이다. 그 로비 속에서 박근혜 후보가 의미있는 어떤 공약을 내놓을 것인지는 지켜봐야할 것이다. 남경필 의원이 주축이 된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 내가 제안했던 횡령배임에 대한 처벌강화를 제1호 법안으로 제출했다. 2호법안으로 내놓은 일감몰아주기, 3호법안인 순환출자에 관한 것 등 대안들은 모두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당과 국회에서 이 안을 통과시킬지 두고봐야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박근혜 후보가 받아들여 주길 바란다. 이를 보면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에 대한 진정성 여부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새누리당 전체가 이것을 받아들일 것인지 박후보 캠프에서 관련 법안을 진정성 있는 공약으로 내놓을 것인가도 두고봐야한다. 김종인 박사에게 역시 각론은 없다. 박 후보 캠프의 김재원 의원도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하게 하자고 주장하지만 이것이 핵심사항이 아니다. 현명관씨도 삼성 출신에 전경련 출신이다. 캠프 내에서 누가 실세고 아닌지, 박 후보가 어느 쪽을 방안을 받아들일 것인지도 두고봐야 한다.
 
민주당은 후보들 간의 차이가 없다. 실천여부가 문제다. 법이 통과되어야하는데 새누리당이 일제히 반대하면 통과가 안된다. 새누리당 일부라도 가세해주면 되겠지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경제민주화실천모임도 일종의 ‘쇼’일 수도 있다. 진정성이 있길 바랄 뿐이다. 올해 대선에서 민주당쪽 인사가 당선돼 법안 내놓는다 해도 새누리당이 반대하면 도리가 없다. 국민들의 압력으로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는 당선자의 정치력의 문제일 것이다.
 
-장하준식 경제민주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복지확충을 위해 세금을 더 걷자는 주장은 타당하다. 장하준 교수는 재벌의 경영권을 보장하면서 세금을 더 거두자고 주장한다. 문제는 그냥 징수해도 되는데 대체 왜 경영권을 보장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재벌들도 이런 주장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콧방귀를 뀔 것이다. 경영권을 보장한다는 것이 횡령 배임하도록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전문경영인체제가 되면 경영권 필요 없이 일정부분의 지배권만 있으면 된다. 황제경영을 인정 해줄테니 돈을 더 내라는 이야기는 무능하고 부패한 재벌체제가 계속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은 얘기를 장 교수가 계속 주장하는 것이다. 분명히 틀렸다. 사실관계가 틀린 얘기를 계속한다.
 
-정부의 강력한 시장 개입이 답이 될 수 있을까.
 
▲시장과 국가의 역할이 있다. 국가는 룰 즉, 규칙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압축적 고도성장 과정에서 생긴 왜곡된 부분을 바로 잡아줘야 한다. 복지를 강화하고 중소기업에 힘을 실어주는 등 룰을 잡아주고 그 다음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의 역할은 예전과 다르다. 중소 중견기업을 어떻게 육성하고 첨단산업을 키워나가기 위해 기초과학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등 고도성장기와는 다른 현재시점에 맞는 산업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하준 교수는 박정희 식의 개발정책이 좋다고 주장한다. 그때의 공과 과가 있다. 재벌이 고도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맞다. 하지만 왜곡된 부분은 바로잡아서 공정경쟁을 할 수 있도록 기업과 국가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얘기다. 기업을 국가 통제 하에 두자는 주장은 사회주의하자는 얘기다.
 
바람직한 북유럽식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북유럽의 기본정신은 ‘유연안전성’이다. 기본적으로 북유럽식은 자본과 노동이 유연하다. 동시에 노동자들의 삶은 소득이 안정적이다.
 
한국이 이 방식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유연안전성이 효율성도 높다. 노동과 자본이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고, 망할 기업은 빨리 망하고 새롭게 또 만들어내면서 고용조정도 유연하게 해내는 동시에 국민들의 삶은 안전적일 수 있다. 이 나라들이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다. 이 원리를 받아들이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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