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희망버스를 보는 두 시선 (경향신문)

동숭동지킴이 2011. 8. 19. 12:29

 

(경향신문 8월 18일자에서 다룬 기사입니다. 기사 제목은 "희망버스를 보는 두 시선"입니다. 본인이 한편의 입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사 중 "대기업정규직과 비정규직(및 중소기업 노동자) 사이의 부당한 격차"라고 본인이 이야기한 것을 기자가 그냥 단순히 "대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부당한 격차"라고 했으니 감안하십시오. )

 

 

희망버스는 어디서 출발했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한진중공업 사태로 촉발된 희망버스는 개별 기업의 노사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사회적 현안에 차례로 정차하면서 새로운 문제의식을 싣고, 또 나아가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본질과 희망버스의 갈 길을 놓고 진보 학계에서 제기되는 논쟁적 시각을 대변하는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58)와 이병천 강원대 교수(59)에게 공통 질문을 던졌다.

한진중공업 직원들이 지난달 4일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조업을 재개하기 위해 청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해법, 어디서부터 찾나

- 세 차례 희망버스가 다녀갔음에도 한진중공업 사태는 여전히 답보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보는지.

김기원 “어느 쪽이든 완승하려 해서는 안된다. 적절한 정리해고 규모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노사 간에 타협이 필요한 것이고, 정부나 국회나 희망버스는 이런 타협이 가능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희망버스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고용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이병천 “기본적으로 정리해고 자체가 부당하므로 정리해고를 철회하는 것이 해법의 출발점이다.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 2007년 합의서를 일방적으로 깨뜨린 것에서부터 비롯됐기 때문에 그 문제부터 조 회장 본인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 희망버스가 떠오른 이유

- 희망버스가 전 사회적 사안으로 떠오른 것은 한진중공업 사태의 어떤 본질적 측면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병천 “패자부활이 어려운 독식·약탈 자본주의 체제라는 것이 문제다.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하면 생계 방도가 없다. 반면 한국 재벌은 파렴치하고 천민적인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라는 정리해고의 요건조차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진중공업의 경우는 더 심해서 완전히 소통의 길이 막혀 있다. 재벌의 행태를 감시·감독하고 규율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재벌의 독식은 더 심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 노동자, 청년 학생을 포함해 모두가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희망버스에 탄 사람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김기원 “노동자의 처지를 고민하지 않은 조 회장에게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사태의 본질은 한편으론 조선업의 세계적 구조조정이고 다른 한편으론 우리의 왜곡된 노동현실이다. 덴마크처럼 구조조정이 원활하더라도 대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 부당한 격차가 존재하지 않고 복지가 잘돼 있으면 심각한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지 못하니 정리해고에 결사투쟁하는 것이다. 또한 시장의 논리와 구조조정 자체를 ‘무조건’ 거부하는 노동계에도 문제가 있다.”

■ 희망버스 최종 목표

- 4차 희망버스가 예정돼 있다. 희망버스는 언제까지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아가 희망버스의 1차적 목표, 그리고 최종적 목표는 무엇이 돼야 한다고 보나.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

김기원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려는 희망버스의 정신은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그 정신을 표출하는 형태는 새로워져야 한다. 새로운 발전형태를 찾지 못해 흐지부지된 듯한 2008년 촛불집회를 상기해보자. 더 이상 희망버스가 부산에 내려가긴 어렵지 않은가. 희망버스 운동이 재벌 총수의 비리와 왜곡된 노동현실을 바로잡고 복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이병천 “4차 버스가 가더라도 원만하고 평화적 해결의 전망은 어둡다. 그럼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생발전’과 ‘자본의 책임’을 얘기했다면 조 회장에게 자본의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공생발전이다. 이것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차원에서 희망버스는 단순히 노동의 요구일 뿐만 아니라 시민의 요구가 결합돼 있다. 희망버스가 가장 바람직한 형태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이러한 연대의 움직임은 계속돼야 한다고 본다.”

■ 현실 변화를 위한 노력

- 국가복지 확충 등의 거시적 대책 도입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간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고, 한편으론 계속해서 정리해고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김기원 “정리해고 반대 같은 데만 매몰되면서 복지강화를 먼 훗날의 과제로 치부함으로써, 외환위기 이후 노동운동이 사회발전의 주력부대에서 밀려났다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 또한 정리해고와 관련해 무조건 반대만 외치기 때문에 컨설팅업체 등을 활용해 정리해고의 정당성과 적절한 규모를 따지는 등의 설득력 있는 노력이 무시됐다.”

이병천 “계속해서 요구를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희망버스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주체의 형성이다. 이념이나 모델로 복지국가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가는 주체가 형성돼야 하는데 희망버스는 함께 체험하면서 연대감을 형성하고 ‘서로 주체’가 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촛불집회에서 노동문제가 빠졌다면 규모는 작지만 그런 부분에서 한 단계 진전됐다고 본다. 이러한 새로운 축제의 형성이 계속 필요하다.”

■ 두 시각의 가장 큰 차이

- 한진중공업 사태의 본질과 해법에 대해 가장 차이를 이루고 있는 지점은 무엇인가.

이병천 강원대 교수

이병천 “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 하나만이 우리가 말하는 대안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희망 시국회의에서 지적한 것도 부당한 해고를 철회하고 그런 해고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이번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에 대한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이 아쉽다. 그저 조 회장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식이다. 특히 사회주의자라는 딱지는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본다.”

김기원 “희망버스 운동에 색깔론을 펼치려는 게 아니다. 정리해고란 자본주의 사회에선 없을 수 없고, 또한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자는 것이다. 그런 전제 위에서 정리해고가 무분별하지 않도록 하고 고통분담이 공평하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 노사 끝장투쟁과 같은 불필요한 사회적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고, 희망버스로 나타나는 따뜻한 마음들을 복지사회 건설로 향하게 할 수 있다.”

■ 청문회서 부각될 점

- 오늘 한진중공업 사태 관련 청문회가 예정돼 있다. 어떤 점이 가장 부각돼야 한다고 보는가.

이병천 “사측에서는 여차저차한 사정 때문에 정당했다고 하겠지만, 아무래도 정리해고의 부당성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나아가 조금만 더 양보하고 타협하면 공생발전의 길이 있는데, 너무 단기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그렇게 가면 오히려 죽는 길이다.”

김기원 “조 회장의 잘못도 물론 따져야 할 것이다. 정리해고가 진행된 배경은 물론이고 그를 둘러싼 노사협상이 왜 부진했는지 밝혀야 한다. 하지만 진행 중인 노·사·정 협상이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청문회가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의 왜곡된 노동현실과 노사관계를 총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