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한진중공업 사태의 올바른 해법은 (<창비주간논평> 기고)

동숭동지킴이 2011. 8. 6. 15:14

 

(8월 3일 <창비주간논평>에 게재한 글입니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올바른 해법은

 

                                                                                                 김 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3차 희망버스로 수천명이 또 부산의 한진중공업을 찾았다. 200일 넘게 초인적으로 크레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씨를 응원하고,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결정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각자 제 살기 바쁜 세상에 이렇게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려는 노력이 물결처럼 일어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증거다. 한진중공업 사태로 표출된 한국의 고용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자각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상황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희망버스가 계속 방문하면 과연 정리해고가 철회될 수 있을까. 정리해고 철회대상자는 회사의 희망퇴직 제안을 거부한 정규직 해고자 94명인가, 아니면 근래 회사에서 쫓겨난 비정규직까지 포함한 수천명인가. 그리고 한진중공업 사태와 같은 일이 거듭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은 바람직한 선진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희망버스로 모아진 뜨거운 가슴에 냉철한 두뇌를 보태어 해법을 모색해보자.

 

'희망버스'가 지핀 희망의 불씨 살리려면

먼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와 관련된 몇가지 사실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언론에서 이를 꼼꼼히 따지지 않아 합리적인 논의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한진중공업이 400명의 정리해고를 발표하면서 염치도 없이 174억원의 배당잔치를 벌였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김진숙씨의 투쟁에 공감하고 희망버스에 동승하게 된 데는 이런 보도가 한몫했다.

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회사는 작년에 570억원의 적자였다. 그래서 현금배당을 하지 않고 100주당 1주의 주식배당을 실시했다. 적자 난 회사들이 주주들에게 이런 식으로 주식배당 하는 경우가 때때로 있다.

이 주식배당을 당시의 주가로 곱해본 금액이 174억원이다. 그런데 그 환산법은 틀렸다. 주식물량이 늘어나면 원칙적으로 그만큼 주가가 하락한다. 다른 요인도 작용했겠으나, 3만 6천원이던 배당 당시의 주가는 요즘 3만 1천원으로 떨어진 상태다.

결국 주주들에게 실질적 혜택은 아무것도 없다. 회사의 경우에도 장부처리가 달라질 뿐 회사 밖으로 빠져나간 건 아무것도 없다. 주주든 회사든 오른쪽 호주머니 돈을 왼쪽 호주머니로 옮긴 것과 매한가지다.

정리해고와 공장이전 반대에 앞서 생각해볼 것들

둘째로, 희망버스를 주도하는 분들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구호로 내걸고 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아니다. 국가가 계획에 의거해 노동력을 배분하는 사회주의체제다.

먼 장래엔 어떨지 모르지만 오늘날 상황에선 사회주의체제가 비효율적이어서 지속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한다면, 그런 구호는 접어야 한다. 목표가 실현 가능해야 운동도 지속 가능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정리해고가 없을 수 없으며, 이를 통해 노동력을 적절한곳으로 재배치한다. 다만 정리해고가 무분별한지 어떤지, 그에 따른 고통분담이 공평한지 어떤지는 나라마다 다르다.

많은 진보파들은 IMF사태 이후 김대중정부가 정리해고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했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IMF사태 이전엔 판례에 의해 정리해고가 실시되었으며, 판례가 생기기 전엔 기업측이 멋대로 노동자 목을 쳤다.

마찬가지로 비정규직도 모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존재한다. 파트타임 노동자를 보라. 다만 비정규직이 남발되는지 어떤지,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 행해지는지 어떤지가 나라별로 다를 뿐이다.

셋째로, 한진중공업이 일감을 영도조선소에서 필리핀조선소로 빼돌렸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필리핀에선 인건비가 1/10밖에 안되고 도크 규모도 훨씬 커서 큰 배를 수지맞게 수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해외 공장이전을 비난하고, 나아가 저지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신발공장, 섬유공장의 해외이전도 막았어야 한다. 부산 사상공단의 신발공장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옮겨갔다.

이리해서 한국의 신발회사나 섬유회사들은 수지를 맞춰갔고, 또 그 덕분에 중국이나 베트남 인민들의 소득이 향상되었다. 이게 맑스도 강조한 자본의 범세계성이다.

조선업에도 그러한 범세계적 구조조정의 파도가 밀어닥치고 있다. 예전에 유럽 조선업이 몰락하고 한국 조선업이 부상했듯이, 중국 조선업의 급부상이 한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는 그 첫 희생양이다.

국내공장이 싼 인건비를 찾아 해외로 이전하면, 국내에선 같은 산업이더라도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거나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전시키는 수밖에 없다. 구미 선진국이 그렇게 해왔으며 우리도 마찬가지다.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숙련노동자들이 기계도입을 반대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벌였다. 기계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역사발전을 거스르는 이 운동이 실패했듯이 공장의 해외이전을 무조건 반대하는 운동은 성공할 수 없다.

정리해고의 부당성 판단, 현실을 고려해야

넷째로,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해당하지 않는 부당한 정리해고라는 주장이 있다. 이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법률적 정리해고 요건이 다소 애매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여러번 재판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판결에선 한진중공업 노조의 부당해고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기서 법원 판단과는 별개로 상식에 입각해서 한번 따져보자.

한진중공업은 도산 위기에 처해 있지는 않다. 앞으로 필리핀조선소가 잘 돌아가면 영도조선소가 부진해도 회사 전체로 흑자를 낼 수 있다. 이런 점만으로 판단하면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런데 영도조선소의 일감이 앞으로도 계속 부족하다면 어찌될까. 필리핀에서 번 돈으로 일하지 않는 영도 노동자들을 계속해서 먹여살리라는 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일감 떨어진 영도조선소도 최근 6척의 선박을 수주했다. 그것만으론 모자라더라도 이런 식으로 수주가 확대돼간다면, 회사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고용을 늘린다. 반대로 일감이 변변찮으면 남은 인력도 해고된다.

시장 폐해 바로잡을 국가적·산업 차원의 방안은

이상 한진중공업 사태와 연관된 '불편한 진실'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이런 '운명' 같은 현실에 무조건 복종할 수밖에 없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시장원리를 인정하되 그에 따른 폐해를 시정할 수 있다. 그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다.

먼저 나라경제 차원에서 구조조정에 따른 '삶의 불안정성'을 해소해야 한다. 구조조정 당하는 기업의 종사자에게 실업수당을 넉넉히 지급하고 재취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의 '유연안정성'은 바로 이처럼 노동과 자본이 유연하게 움직이되 삶의 안정성은 보장받는 시스템이다.

그 나라들은 해외의존도가 높아 빈번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고, 따라서 그게 원활히 이뤄지도록 복지를 강화했던 것이다.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고 해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씨스템을 갖춰야 한다.

복지가 강화되면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및 비정규직)의 실질소득 격차가 축소된다. 그리되면 쌍용차나 한진중공업에서와 같은 결사적인 정리해고 반대투쟁이 사라진다. 대기업 정규직에서 중소기업으로 옮기는 건 귀족에서 노예로 전락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우리 현실이다.

다음으로 조선산업 차원에서 공동 구조조정기금을 마련하면 좋겠다. 한진중공업에서와 같은 일이 다른 조선소에도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아니 이미 작은 조선소에선 노동자들이 많이 해고되었다.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대형조선소들은 조선 이외의 사업, 예컨대 해양 플랜트 등의 비중을 늘리고 또 고부가가치선으로 수주 선박을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인력조정의 시기가 닥쳐올 가능성이 크다.

신발이나 섬유와 달리 조선업노동자는 남성가장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구조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2000년대 중반 조선업계는 초호황 속에서 많은 이익을 향유했으므로 구조조정기금을 확보할 여유는 있을 것이다.

기업 총수의 책임지는 자세와 결단 바란다

마지막으로 한진중공업 총수의 책무를 따져보자. 청문회를 앞두고 출국한 조남호 회장은 계속 해외에 머물고 있다. 총수 아닌 임원들은 머슴에 불과한 게 재벌체제다. 따라서 조회장이 돌아와 노조, 시민대책위, 부산시와 의논해 결단을 내리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결단이 필요한 사안으론 우선 정리해고 규모가 적절한지 검토해봐야 한다. 정리해고를 전면 철회할 순 없더라도 재취업이 곤란한 노동자를 선별 복직시키는 방안을 논의해볼 수 있다.

그리고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해 조회장이 제대로 고통을 분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물론 회사가 적자 본 것도 대주주인 총수에게 일종의 고통이기는 하다. 하지만 구조조정 시의 ‘부실책임과 부담능력에 따른 고통분담’ 원칙을 상기해보자.

경영부실에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생계의 터전을 잃은 노동자의 고통과 비교해보라. 조선업 초호황 때 조회장은 많은 이익을 챙겼는데, 이번 위기에 그런 사재의 일부라도 내놓는 등의 책임지는 자세가 결여돼 있다.

오히려 조회장은 이것저것 챙겼다. 조회장이 지분의 절반을 소유한 한진홀딩스(한진중공업의 지주회사)가 그전에는 받지 않던 브랜드사용료 50억원을 작년엔 한진중공업에서 징수했다.

또 한진홀딩스는 다른 산하 계열사가 이익 냈다는 걸 명분으로 그룹 전체론 적자인데도 50억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했다. 한진중공업 임원숫자를 줄여 조회장과 아들의 보수도 대폭 인상했다.

이래서야 한진노동자와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아이어코카는 크라이슬러 위기 때 1달러의 연봉만 받았고, IMF사태를 맞아 재벌총수들은 사재를 털었다. 마찬가지로 조회장은 사재를 내놔 정리해고 노동자의 생활을 돕고 재취업을 지원해야 한다. 사원아파트에 거주하는 정리해고 노동자에게 당장 방 빼라는 몰인정한 요구도 철회해야 한다.

논의를 마무리해보자. 군사독재와의 투쟁에선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는 자세가 존경받았다. 그러나 시장과의 투쟁에선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유연성이 필요하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기본적으로 시장투쟁이다. 시장의 논리를 이해하는 속에서 실현 가능한 요구를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복지사회 건설을 통해 구조조정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근원적으로 해소해가야 할 것이다.

2011.8.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