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순수지주회사 허용 반대론(1998.8) - 공정위 토론문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4:43

순수지주회사 허용  반대론


【 결 론 】

  1. 순수지주회사 허용은 재벌의 은행소유 허용과 더불어 재벌개혁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조치임.
  2. 구조조정은 순수지주회사와 거의 무관하며 현재 허용되어 있는 사업지주회사등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가능함.
  3. 현시점에서의 순수지주회사 허용은 기본적으로 재벌을 2차대전 이전의 일본 재벌체제로 퇴행시키는 시대착오적인 조치임.
  4. 순수지주회사 허용은 경제력집중(재벌의 이중적 독재체제)을 강화시키며 재벌총수의 책임추궁을 곤란하게 만듦.
  5. 따라서 순수지주회사를 금지한 종래의 규정은 마땅히 존속되어야 함. 만약 그것이 곤란하다면 공정위가 마련한 허용 요건에 다음 사항을 추가해야 함.


   첫째로 일정규모(예컨대 97년 10위 재벌의 자산규모에 가까운 10조원)를 초과하는 동일인 및 특수관계인 지배하의 지주회사 그룹을 금지해야 함.

   둘째로 지주회사는 자회사 주식을 100% 보유토록 하며 자회사간의 순환적 주식보유도 완전 해소시켜야 함.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에 인정하는, 자회사의 손회사 주식보유도 마찬가지로 100%여야 함)
   셋째로 지주회사 자체는 부채가 없어야 함.
 

I. 순수지주회사 허용론의 대두 배경과 문제점

 

 1) 재벌체제를 유지.강화하려는 기도

 

  a. 재벌체제의 유지 : 비서실 해체 요구에 대한 대응

     정부의 비서실 해체 요구에 대해 재벌측은 편법을 동원하여 비서실을 사실상 존속시키면서 다른 한편 차제에 비서실을 양성화하는 수단으로서 지주회사(즉 순수지주회사)의 허용을 요구함. 

     비서실은 장차 해체되어야 마땅하지만 총수의 그룹지배가 존재하는 한 불가결한 조직이며 특히 구조조정이 그룹단위로 이루어지는 현 상황에서 비서실의 우선해체를 요구한 것은 전형적인 대증요법이고 무리한 주문이었음. 재벌총수의 소유-지배-경영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함으로써 비서실이 결과적으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었음.
     이러한 수순 착오로 인해 비서실은 일부 축소되긴 했으나 문패만 갈아단 채 여전히 활동하고 있음. 아울러 재벌측은 되로 주고 말로 받기 위해 지주회사 허용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주회사를 허용할 필요는 없음. 이름만 바꾼 비서실에 구조조정 업무를 당분간 맡게 하고 장차는 재벌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비서실이나 지주회사의 필요성이 사라지게 하면 될 것임(만약에 상호주식보유 관계가 존속한다면 사장단회의 정도로 충분함).
  b. 재벌체제의 강화  : 후술
 
 2) 일본의 지주회사 허용(解禁) 


     최근 들어 일본에서는 순수지주회사 금지조항을 완화하였고 그리하여 다이에, 히타치 등이 순수지주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음.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도 일정 규모 이상(사실상 6대 기업집단)의 지주회사 및 일반사업회사와 금융회사를 포괄하는 지주회사는 금지하고 있음.
     더구나 일본의 경우는 이미 2차대전 이후 재벌체제가 해체되어 재벌체제가 강화된 우리와는 사정이 판이함. 일본 지주회사 허용론의 바이블격인 {企業法制硏究會報告書}에서도 지주회사 허용의 근거로 일본에선 이제 재벌부활의 우려가 없다는 점을 반복해서 지적하고 있음. 또한 이러한 일본에서조차도 지주회사 허용에 대한 반대론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실정임(그 대표는 下谷政弘의 {持株會社解禁}임).

 

 3) 정부의 재벌개혁 요구에 대한 저항수단


     정부의 재벌개혁 요구는 불철저하지만 어쨌든 재벌측으로선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음. 그리하여 그에 대한 하나의 저항수단으로서 지주회사 요구를 제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함.
     즉 재벌개혁 담론의 초점을 흐리게 만든다거나 맞불작전을 쓰기 위해 지주회사 논의를 들고 나온 것으로 보임. 현재 재벌 구조조정의 진정한 장애물은 상호채무보증, 상호출자, 불투명경영, 족벌경영체제 및 고용조정문제인데 마치 지주회사가 허용되지 않아 구조조정이 진척되지 않는 것처럼 기만하려는 의도가 엿보임.

 

 4) 재벌관련 연구기관들의 위상 확보 


     그동안 [한국 재벌체제 異狀 無]를 강변해오던 재벌관련 연구기관들은 IMF사태의 도래로 위상이 크게 흔들리게 되었음. 재벌체제 만만세를 더 이상 주장하기 힘들게 되자 이들은 IMF사태의 책임을 전가하고 지주회사 허용론을 제기함으로써 존재의의를 증명하려는 듯함. 사실 총수가 아닌 전문경영진들은 지주회사 설립에 별 관심이 없음.
   
  5) 대통령의 발언


     유럽 순방시 외국인으로부터 한국에는 지주회사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대통령이 지주회사 관련 정책의 선회를 지시한 것으로 판단됨. 그러나 지주회사의 장단점에 대해 대통령이 제대로 알고 있을 리 없음. 따라서 담당부처에서 한국에는 순수지주회사가 허용되고 있지 않을 뿐이지 사업지주회사는 허용되고 있다는 점, 한국에는 외국과는 달리 재벌체제라는 독특한 체제가 존재한다는 점 등을 대통령에게 설명했으면 조용히 끝났을 일을 소신없는 부처에서 일을 잘못된 방향으로 몰고 갔다는 느낌이 짙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작년말에 정한 방침, 즉 재벌체제의 개혁이 완료된 후에 지주회사 도입을 검토한다는 원래 방침으로 돌아가기 바람.
   
  6) IBRD 요구 : 20억불 차관 제공과 관련된 많은 요구사항 중의 하나일 뿐이고 우리쪽의 적극적 해명에 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판단됨.

 

II. 지주회사 장점론의 오류

 

 1) 지주회사 금지가 한국만의 제도라는 논의

 

  a. 지주회사를 금지하는 것은 한국뿐이므로 국제적 기준에 따르기 위해서도 조속히 그러한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음. 그러나 선진국에선 한국과 같은 재벌체제 즉 ['족벌경영 + 다각화된 독점'의 재벌이 국민경제를 지배하는 체제]가 존재하지 않음. 따라서 다른 나라와 무매개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음. 

     또한 한국에선 순수지주회사가 금지되고는 있으나 사업지주회사는 허용되고 있으며 이렇게 볼 때 다른 나라에 비해 지주회사 규제가 약간 강할 뿐임. 독점자본이 발달한 곳에선 독점규제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순수지주회사 금지는 한국적 기업형태에 적합한 한국적 독점규제형태일 따름임.

  b. 그리고 지주회사 금지.제한은 다른 나라에도 존재함. 일본의 경우는 전술한 바 있음. 미국도 경쟁제한적인 지주회사를 금지하고 있고, 공익사업(및 은행업)과 비은행사업을 포괄하는 지주회사를 금지하고 있음. 노르웨이 등에선 지주회사는 자회사에 대해선 주식을 100% 강제 소유해야 함.
   미국의 경우에도 세제상의 차별을 통해 사실상 지주회사의 자회사 주식 보유 비율을 80% 이상으로 높이고 있음.  
   아울러 구미 모두는 지주회사가 자회사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거나 적어도 그 경우 자회사의 소액주주 및 채권자에 대한 보상의무를 규정하고 있음.

  c. 미국은 다른 강력한 독점규제법을 시행했기 때문에 지주회사의 설립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약하게 규제하였음. 그리고 미국에서의 지주회사는 대은행과 공익사업회사인 경우가 많고 일반사업회사에서의 지주회사형태는 드묾.
     유럽의 경우엔 미국보다 지주회사가 널리 보급되어 있음. 그런데 이는 유럽 각국의 자회사들을 통괄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임. 그리고 대표적 순수지주회사로 거론되던 벤쯔사가 96년에 사업지주회사로 전환한 데서 보듯이 지주회사화 전략에 대한 반성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임.
     한국은 미국처럼 독점규제법이 강하지도 않으므로 지주회사를 통해서라도 규제를 강화해야 함. 또한 유럽처럼 인근지역에 널리 자회사를 설치하고 있는 것도 아니므로 지주회사의 경제적 효용도 없는 셈임.

 

 2) 구조조정 촉진수단으로서의 지주회사론

 

  a. 재벌의 구조조정은 사업재편과 책임전문경영체제 구축의 둘로 나누어짐. 이중 사업재편의 진정한 장애는 상호채무보증, 상호출자, 불투명경영, 족벌경영, 고용조정문제이지 지주회사 금지규정이 아님. 이밖에도 가격이 서로 안맞는다든가 총수가 뒷돈을 요구함으로써 재벌기업의 외국매각이 부진함.
      재벌측도 구조조정을 위해 지주회사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는 것같음. 이는 지주회사 관련 공청회에 참가한 재벌측 인사가 누차 밝힌 바 있음.
     일본의 지주회사 허용은 사업의 확장 즉 기존의 사업부문을 분할하여 조직을 활성화하자는 것이 주된 명분이었음. 그런데 우리의 재벌개혁에선 오히려 사업을 축소해야 할 판이므로 구조조정 수단으로서의 지주회사 허용은 의미가 없음.

  b. 또한 사업재편은 현재의 사업지주회사로써도 충분히 가능함. 굳이 순수지주회사를 허용해야 할 필요가 없음. 미국에서 대표적으로(또한 예외적으로) 다각화된 회사인 GE는 끊임없이 사업재편(퇴출과 확장)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GE 역시 순수지주회사체제가 아님.
     재벌의 구조조정에서 순수지주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곤란하다는 사례는 확인된 바 없음. 과문한 탓인지 지주회사허용론에서도 구체적으로 지주회사가 없어서 이러저러하게 구조조정이 힘들다는 논거나 실례를 제시한 것을 보지 못했음. 기껏해야 비서실이 없어졌으니 구조조정을 하기 힘드니까 지주회사를 허용하라는 정도임. 이러한 구조조정은 명패를 바꾼 비서실조직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함.
     지주회사를 만드는 과정이 구조조정을 촉진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것도 별 설득력이 없음. 다만 순환적 상호출자의 완전해소를 허용조건으로 한다면 다소 의미는 있을 것임.

  c. 기업의 경영구조는 기업의 자유선택에 맡겨야 하므로 지주회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음. 그러나 지주회사 허용여부는 기업내 경영구조가 아니라 기업간 관계구조와 관련되는 문제이며, 이를 자유방임한다면 애시당초 독점규제란 것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임.  지주회사 허용은 재벌총수에겐 이익이 될지 모르지만, 현재로선 재벌기업이나 국민경제에겐 해로운 것임.
    선진국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자본주의발전과 더불어 기업구조도 선진화된 경우와 압축적으로 자본주의화가 이루어진 후진국의 사정은 다름. 압축적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누적된 기업체제의 모순은 압축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듦. 그 때문에 일본에서도 2차대전 후 강권적인 재벌해체가 이루어진 것임.
   

 3) 외국자본 유치 용이론

 

  a. 재벌을 지주회사체제로 재편한 다음 그 지주회사 주식을 매각함으로써 재벌을 통째로 외국에 넘길 생각이라면 지주회사체제는 외국자본 유치에 유리함. 그러나 이런 의도로써 지주회사 허용을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임.
     그렇지 않고 재벌의 일부 계열사나 사업부문을 외국에 매각하는 데는 현재의 사업지주회사 구조로써 아무 지장이 없음. 외국자본 유치의 주요 장애물은 회계불투명성과 상호채무보증 등이지 지주회사 금지가 아님.

  b. 그리고 외국인 투자사업 영위의 경우엔 예외조항으로 이미 지주회사가 허용되어 있음.  따라서 구조조정전문회사를 위한 순수지주회사등 외국인 투자사업인 경우엔 현행 법조항으로 충분함.

  c. 재벌기업이 현물등을 출자하고 거기에 외국인 자본을 끌어들이고 그것을 지주회사가 지배하게 하려는 경우 : 이런 식의 외국인 자본유치는 재벌기업의 회계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외국인이 선호할 수 있다는 것임. 그러나 이 경우엔 자산인수나 P&A 등 기존의 방식으로 충분히 가능함. 게다가 이런 경우에 대해서는 우리가 요구하는 허용요건을 추가하여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음.

  d. 재벌이 만든 지주회사에 외국인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경우 : 여기에 들어올 외국인 자본이라면 기존의 회사에 들어오지 않을 이유가 없음. 따라서 이를 위해 특별히 순수지주회사를 허용할 필요는 없음. 이는 외국인자본 유치가 목적이 아니라 재벌의 지배력 강화가 목적이고 거기에 외자가 동원될 뿐임.

 

 4) 기타

 

  a. 지주회사가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옥상옥 구조 때문에 의사결정이 오히려 복잡하고 더뎌진다는 지적도 있음.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책임성 여부는 지주회사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책임전문경영체제의 수립과 기업관료제의 혁파 여부에 달려 있음.

  b. 지주회사를 통해 전략적 그룹경영과 사업경영을 분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사업부제나 사업지주회사로도 충분함. 또 한국 재벌체제에선 부적격 총수의 자의적 독단적인 의사결정구조 혁파가 핵심과제임.

  c. 역설적으로 지주회사를 허용하여 재벌체제의 모순을 더욱 악화시켜 아예 곪아터지게 하는 것도 생각할 수는 있음. 이는 지주회사 허용의 百害一益중 一益이라면 一益인 셈임. 그러나 이 과정은 어쩌면 IMF사태 이상의 국민 피해를 초래할지도 모름.

 

III. 지주회사 허용의 폐해

 

 1) 현재의 재벌개혁 노선과 상충

 

  a. 대통령과 재벌총수가 합의한 5대 개혁 방안은 기본적으로 옳다고 판단됨. 그런데 정부의 정책 중에는 이런 개혁방향과 상충되는 것들도 추진되고 있고 지주회사 허용은 金融假名制 부활, 출자총액제한 철폐, 재벌의 은행소유 허용과 더불어 대표적인 反改革조치임.
  b. 비서실 해체를 지시한 후에 지주회사를 허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임. 비서실 해체요구는 그것이 불법조직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재벌계열사들의 독립성을 강화하여 총수의 독단적 경영을 완화할 목적으로 취해진 조치임. 그런데 이제 다시 지주회사를 허용하면 정책이 뒤죽박죽이 됨. 전술했듯이 비서실 해체 요구는 수순상에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바로잡는 길은 지주회사 허용이 아니라 재벌체제를 止揚해 가는 것임.

 

 2) 재벌의 경제력집중(재벌의 이중적 독재체제)의 폐해를 심화시킴

 

  a. 재벌총수의 세습독재 체제하에서 지주회사를 도입하면 한국의 재벌형태는 기본적으로 2차대전 이전의 일본 재벌체제와 같아짐. 

     2차대전 이후 일본에선 경제민주화조치의 일환으로 재벌해체를 단행하였는 바, 그 핵심이 총수 가족의 재벌지배를 가능케 만든 구조인 지주회사의 해체였음. 간혹 미국이 일본의 재벌을 징벌하기 위해 해체시킨 것으로 오해하지만, 사실은 재벌해체는 천민적인 자본주의를 선진적인 자본주의로 개혁시킨 발전적인 조치였음. 그 결과 일본은 재벌체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고도성장을 달성하였음.
     그런데 이제 한국에서 지주회사를 허용하면 이는 일본 역사발전의 교훈을 청개구리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임. 전술한 지주회사 허용론 바이블에서도 "지주회사는 총수의 주식을 일괄 보유하는 데 편리한 형태"이며 이러한 "가족지배를 위한 지주회사는 사회적으로 유익하지 않다"고 지적하였음. 다만 지금의 일본에선 이러한 舊재벌 형태가 부활할 수 없을 만큼 주식소유가 분산되어 있고 전문경영인체제가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지주회사를 허용하자고 주장하였음.
     따라서 이미 재벌이 해체되어 부활이 어려운 일본과는 상황이 판이한 한국에서 지주회사를 허용하면 이는 총수의 세습독재를 더욱 용이하게 함으로써 재벌체제의 모순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임. 그리하여 국민경제는 물론이고 재벌기업 자체도 정체.몰락의 길로 끌고갈 가능성이 농후함.
     일본의 재벌체제에서는 자회사간의 순환출자도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많은 폐해를 초래하였는데 한국의 재벌체제에선 자회사간의 순환출자도 이루어지고 있고 출자총액제한도 폐지된 상태이므로 순수지주회사 허용은 일본의 戰前 재벌체제보다 더  큰 해악을 초래할 것임.

  b. 순수지주회사를 통해 재벌의 이중적 독재체제(재벌기업의 국민경제 독재 및 총수의 재벌기업 독재)가 심화되는 메카니즘은 다음과 같이 예상됨.   
   공정위측에선 기존의 사업지주회사 방식이 순수지주회사 방식보다 더 많은 회사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순수지주회사 허용에 따른 경제력집중의 폐해가 더 커질 이유는 없다고 함.
   그러나 이는 순수지주회사를 통해 재벌의 지배사다리에 있어서 새로운 지배단계가 추가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음. 이를 몇 개의 재벌 유형을 가지고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음.


    ㄱ. 중핵지배형 재벌(삼성, 현대, 선경 등과 유사)
                          총수
                        ↙    ↘
              중핵기업A        중핵기업B
                        ↘    ↙    
                        지주회사
                           ↓
            ┌───┬───┬───┬───┐
          계열사   계열사  계열사  계열사  계열사  ...


     이는 총수가 중핵기업(모기업)을 통해 많은 계열사를 지배하던 경우임. 여기선 중핵기업이 자신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지주회사에 출자하고, 거기다 부채를 동원하고 외부자본을 끌어들임으로써 계열사 지배력을 확장할 수 있게 됨. 중핵기업들의 지분을 합쳐도 30%(또는 50%)에 미달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이는 부채, 외부자본 조달로 충당 가능함. 아니면 중핵기업이 계열사에 대한 지분을 먼저 늘린 다음 그 지분을 지주회사에 출자하면 문제는 해결됨. 그리고 지주회사 산하에 모든 계열사를 포괄하지 않고 일부 계열사는 종래와 같은 순환출자 방식에 의해 총수가 지배권을 보유할 수도 있음.

 

    ㄴ. 총수 직접 지배형(대림등이 이에 유사)
                          총수    주력기업
                           ↓     
                        지주회사
                             
            ┌───┬───┬───┬───┐                
             계열사 계열사  계열사 계열사 계열사

      이는 총수가 직접 또는 주력기업과 공동으로 많은 계열사를 지배하던 경우임. 여기선 이들이 보유한 주식을 지주회사에 출자하고 부채 및 외부자본을 끌어들임으로써 지배력을 확장할 수 있음. 부채비율 100%와 외부자본 100%로 계산한다면 재벌(총수)의 지배력은 4배로 늘어남.
      공정위측은 이 경우 순수지주회사를 만드는 것보다 새로 사업지주회사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재벌측에 유리하므로 순수지주회사를 통한 지배력 확장의 위험성은 없다고 함. 그러나 새롭게 사업지주회사를 만들어서 수행할 마땅한 새 사업을 찾기란 쉽지가 않음. 따라서 공정위측의 주장은 근거가 없음.

 

    ㄷ. 이 방법외에도 재벌들은 갖가지 기기묘묘한 방법을 동원할 것이 충분히 예상됨. 우리 나라 정부는 대체로 재벌들의 행태에 뒷북만 쳐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음. 폐해가 발생하면 그 때 가서 법을 개정하면 된다고 공정위측은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어려움. 재벌들 특히 상위 재벌들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상기할 것(금융부문의 힘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고 일반사업 부문도 지금 일시적으로 위축되었을 뿐임).

  c. 지주회사의 부채동원이나 외부자금 조달이 어려우므로 폐해가 없다는 논리도 성립하지 않음. 만약 그렇다면 시민.노동단체의 주장대로 부채금지 조항등을 포함시켜도 문제될 게 없을 것임.
     공정위측은 현재 실질배당률이 낮고 금리가 높아서 부채조달이 곤란하다고 함. 그러나 지주회사 허용은 기업구조의 장기적인 변화와 관련되는 것이므로 공정위측의 주장은 근거가 없음. 앞으로 배당률이나 금리는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음. 또 만약 공정위측 사고대로 지주회사 허용이 지금 당장의 구조조정과 관련될 뿐이라면, 지주회사 허용을 한시적 예컨대 2년간으로 제한해야 함.
     공정위가 외부자금의 조달이 곤란하다고 한 점도 납득이 가지 않음. 외국자본 및 대주주, 기관투자가 등에 의한 조달이 가능할 뿐 아니라 소액주주 동원도 가능함. 소액주주 동원과 관련하여 공정위측은 '설립 후 5년 등' 상장 요건이 어렵다고 함. 그러나 지주회사 허용의 폐해는 지금 당장의 문제가 아니라 재벌구조를 개악시키는 쪽으로의 방향전환의 문제임을 재차 강조하고자 함.  
     또 공정위측은 "장기적으로는 지주회사가 상장되면 그룹전체의 소유분산이 촉진되고 외부경영감시가 강화된다"고 하고 있음. 그러나 만인이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의 상장에 의해 재벌문제가 완화된 것이 아니라 더 악화되었음을 상기해야 함. 단순한 소유분산은 오히려 총수의 지배력을 확장시키는 수단이었음. 물론 앞으론 소액주주권 강화등으로 다소 경영은 투명해질 것임. 하지만 재벌체제가 지양되지 않는 한, 크게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임.
   d. 또한 상속을 통한 총수의 세습지배도 훨씬 용이해짐. 지주회사를 이용하여 총수의 지배력이 확대될 수 있는 만큼 상속세 납부로 2, 3세에게 주식 양도분이 절대적으로 줄어들더라도 지배력 유지에는 영향이 없게됨. 아울러 주식상속시 일일이 계열사 지분을 상속할 필요없이 지주회사의 주식만을 상속하면 되므로 부와 지배력의 세습은 더욱 간편해짐. 그리하여 조세제도에 의한 세습체제 문제 해결은 갈수록 요원해짐.
   e. 지주회사 허용은 이처럼 국민경제에 대한 재벌의 지배력 집중을 더욱 심화시키고, 그 집중된 지배력이 총수의 왕조적 독재체제하에 놓임으로써 남용.오용의 위험성을 가중시킴. (판단력이 흐려진 창업주와 경영에 부적격한 2,3세에 의한 무리한 투자 및 부실한 경영이 재벌기업과 국민경제를 파탄에 빠트렸음을 상기할 것 : 총수이익≠재벌기업이익≠국민경제이익). 그런데 이는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경영투명화와 책임경영 조치만으론 해결이 곤란한 부분임(최근 삼성전자의 경우 소액주주들의 노력으로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는 했으나 삼성의 재벌체제를 충분히 개혁하지는 못했음에 유의할 것).
     시장기능에 맡겨 부적격한 총수가 지배하는 재벌은 망하게 한다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으로 생각될 수는 있음. 그러나 재벌 몇 개가 망하면 국민경제가 흔들리는 판이므로 사전예방이 필요함.
     총수의 출자분은 재벌 총자산의 2-3%임에도 불구하고 총수는 그 수십배의 자산을 지배하고 있음. 즉 재벌의 최고경영진은 국민재산의 관리를 수탁받은 셈이고 재벌은 사실상 公器인 셈임. 따라서 公器로서의 성격에 걸맞게 재벌체제가 책임전문경영체제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결코 재벌과 그 총수의 지배력을 증폭시키는 지주회사를 허용해서는 안됨.

 

 3). 총수의 경영책임 회피- 소액주주권, 노사관계 등과의 관련

 

   a. 공정위측은 지주회사를 통해 투명성이 높아지고 소액주주의 감시가 보다 용이해 진다고 함. 그런데 총수독재와 자회사간의 상호순환출자를 여전히 허용하는 등 재벌구조를 별로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것으로 판단됨.
      순수지주회사의 허용은 새로운 지배단계를 추가하는 것이므로 경영이 오히려 불투명해지고 책임도 묻기가 더 힘들어진다고 보아야 함.
      지주회사를 허용하고 있는 유럽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지주회사의 문제점이 널리 지적되고 있으며 일본의 지주회사 허용과 관련해서도 이러한 폐해가 널리 지적되었음.
   b. 한편 종래 재벌 총수들은 법적 근거도 없는 회장이라는 직함하에 그룹 경영을 專斷해왔음. 이는 재벌총수들이 지배주주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데 그 결과 총수는 책임은 별로 지지 않고 권리만 행사해왔음. 이번에 재벌총수를 주력 계열사의 대표이사로 등재케 함으로써 이러한 불합리성은 상당히 해소되었음. 우리의 경우 이번에 재벌총수들을 주력계열사의 대표이사로 등재시킴으로써 간신히 소액주주들이 총수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음.
      그런데 지주회사를 허용하면 총수들을 다시 지주회사로 도망가버려, 계열사 소액주주들은 총수의 책임을 묻기 힘들어짐. 지주회사의 소액주주도 비슷한 곤란에 처할 수 있음. 이런 경우들에 총수의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아무런 법적 장치도 공정위측은 마련하고 있지 않음.
   c. 노사관계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총수가 지주회사로 도망가 버리면, 총수는 뒤에서 조종만 하면서 책임은 지지않는 과거의 작태가 그대로 반복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