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서민 외치는데 비정규직 언급 한마디 없어(2007/ 5/ 30) - 한겨레신문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6:10

서민 외치는데 비정규직 언급 한마디 없어

[한겨레 대선자문단 평가]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한나라당 광주토론회에서 썩 자주 등장한 단어 중 하나는 ‘서민’이었다. 특히 군소후보들은 서민경제를 입에 달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이젠 한나라당이 서민정당으로 변신한 것일까. 보통 땐 부자 정당이라 일컬어지는 한나라당도 부자나 서민이나 똑같이 1표만 행사하는 선거에선 본색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일까? 어쨌든 서민담론이 보수정당까지 침투한 것은 이번 선거판이 단순히 경제가 아니라 서민의 삶을 중심 쟁점으로 전개된다는 의미고 그런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서민의 삶과 관련된 핵심 이슈인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 문제를 두고서는 전혀 논란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는 한나라당 후보들이 서민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명박·박근혜 두 유력 후보가 서민을 위한 대책이라고 내놓은 감세공약도 우리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절반은 현재도 면세대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서민에겐 무의미한 내용인 셈이다.

 

  선출 전망이 희박한 군소 후보와는 달리, 물론 이명박·박근혜 두 유력 후보는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전경련과 보수언론이 줄곧 외쳐 오던 주장들을 자신들의 정책기조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규제완화, 감세, 성장 제일주의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전경련과 보수언론의 이념엔 개발독재와 시장 만능주의(곧 기업독재)가 뒤섞여 있다. 그런 탓에 이명박 후보는 박정희식의 개발독재에 더 가깝고 박근혜 후보는 대처식의 시장 만능주의에 더 가깝다는 차이는 엿보인다.

 

  자신의 경제공약에 대한 이해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는 운하가 왜 꼭 필요한지, 다른 성장 동력은 없는지 별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또 이른바 747 공약 중 경제규모 세계 7위 달성목표의 비현실성을 지적받자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다. 자신의 신혼부부 아파트 한 채 공약은 내용도 파악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 고성장 속에서 분배가 개선되지 않았음을 망각하고, 성장하면 분배는 자동으로 해결된다는 구태의연한 주장을 되풀이했다.

 

  박근혜 후보는 ‘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우리 경제는 재정의 비율이나 공무원 비율 면에서 선진국들에 견줘 너무 작은 정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대처가 되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는데, 대처 치하에서 실업자가 늘고 복지도 악화되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자 오늘날 영국경제의 부흥이 대처 덕분이라고 대답했는데, 그렇다면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실업자도 늘리고 복지도 악화시키겠다는 뜻일까?

 

  이제 시작이니 남은 선거기간에 한나라당 후보들은 자신의 철학도 좀더 분명히하고 공약도 다듬기 바란다. 그리고 군소 후보들은 만약 토론회 때의 주장이 자신의 진심이라면 한나라당을 나와 우리나라 정당이 이념과 정책에 따라 재편되는 데 한몫을 하면 어떨까 하는 느낌이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한겨레> 대선자문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