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노무현 정권의 마무리는 어떻게(2007/3/20) - 한겨레신문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6:08

 

[세상읽기] 노무현 정권의 마무리는 어떻게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결단의 순간에 들어섰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가 협정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여러 국회의원도 늦게나마 반대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이 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과 관련해 주목할 현상이 하나 있다. 사사건건 현 정부를 트집잡는 수구신문들이 유독 여기서만은 정부 편에 선 것이다. 웬일일까?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서일까. 훼손당한 언론권력을 복원하는 데만 혈안인 그들이 그럴 수 있을까.  

 

  오히려 미국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숭미주의자여서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게 협정의 정치적 효과다. 협정 체결은 반수구 세력을 더욱 분열시키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구신문의 악선전과 노무현 정권의 과오로 반수구 세력은 지리멸렬해졌다. 그 마지막 결정타가 바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다. 수구신문의 이런 정치적 노림수에 넘어갈 것인가.  

 

  협정을 체결한다고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한국이 미국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도 아니고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 스스로 내세웠던 긍정적 효과가 거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섬유 등에서 미국 쪽은 도대체 양보하려 들지 않고, 서비스업의 선진적 구조개혁도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에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비롯해 농민의 피해, 의료비 증가 등 부정적 효과는 만만찮다. 이런 판에 허겁지겁 협정을 체결할 이유가 없다. 경부고속도로처럼 일단 건설해 놓고 나중에 보수해도 되는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이 뭔가 업적을 남기려고 초조하게 협정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남녀노소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노무현 욕하기’가 유행이 된 지 오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의 공적이 꽤 있다. 정경유착 완화, 권위주의 청산, 남북관계 진전, 사법부의 개혁적 물갈이, 사회복지 개선이 그런 것들이다. 이회창 정권에서라면 이만큼이라도 되었겠는가. 물론 지지세력의 기대에 못미치는 부분도 많았다. 지역대립과 노사갈등을 해결하지 못했고, 신용불량자나 부동산 문제에서는 갈팡질팡했다. 거시적 경제지표가 나쁘지는 않지만 미시적 차원에서 영세 자영업자나 비정규직의 어려움 같은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지 못했다. 다만 이 역시 이회창 정권이었다면 더 악화되지 않았을까.  

 

  노 정권의 잘못은 정책보다 정치면에서 더 두드러진다. 자기편을 떨쳐내고 반대편을 묶어세운 결과를 보라. 이는 대통령이 여당과의 생산적 관계정립에 실패한 게 한 원인이다. 여기다 실언도 크게 작용했다. 품위 없는(구수한?) 말투도 논란거리였지만, 국민들 마음에 상처 주는 어법이 훨씬 더 큰 문제였다. 노동자가 분신했는데 “분신으로 문제를 해결하던 시대는 지났다”라든가 호남사람들에게 “내가 좋아서 찍은 게 아니지 않으냐”고 말한 게 그 대표적 사례다. 장인의 전력 문제가 불거지자 “대통령 되려고 마누라를 버리란 말입니까”할 때처럼 마음을 울리는 감동은 사라지고 냉소적 논리로 사람들을 대했으니 지지율이 어찌 안 떨어지겠는가.  

 

  요컨대 정책 면에선 성과가 없지 않은데 정치적 실언으로 평가가 아주 나빠진 셈이다. 그렇다고 자포자기에 빠질 정도는 아니다. 정치적 실언은 진심으로 크게 사과하면 국민이 받아준다. 중요한 것은 정책면에서의 마무리다. 대연정처럼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접어버리고 다음 정권에서 차근차근 재검토하게끔 하고, 대신에 남북 정상회담을 화해와 실리의 상징인 개성쯤에서 개최하면 모양이 좋다. 여기다 바람직한 정책, 예컨대 사학법이나 종합부동산세 같은 것들을 굳게 지키고, 매주 한 번씩 전국의 서민대중들을 찾아가 마음을 나눈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대통령으로 기억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