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형 보수와 진보로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그렇고 그럴 것 같던 이번 선거가 탄핵사태로 인해 갑자기 건곤일척의 대승부로 되었다. 현재 판세가 지속된다면 정치구조가 환골탈태될 전망이다. 전근대적 지역주의에 기생하던 세력들이 퇴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보수와 진보의 대립구도도 선진국형으로 거듭날 희망이 보이고 있다.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같은 식의 정치판이 서막을 여는 듯한 느낌이다.
여기서 대처의 보수당과 어금버금한 블레어 노동당이나 분배문제를 별로 개선하지 못한 클린턴 민주당을 과연 진보 쪽에 끼워줄 수 있느냐는 반박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는 ‘역사상황과 비교대상’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상대적 개념이다. 중종 때 혁신파 조광조의 사상이 지금 세상에 오면 어디에 속할까. 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한나라당에선 좌경이라고 비난했고 민주노동당에선 전경련과 한통속으로 몰아쳤다.
세계사적으로도 프랑스혁명 땐 자유․평등․박애가 진보의 가치를 압축적으로 표현했다면 마르크스 이후엔 마르크스주의가 진보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련체제가 붕괴할 즈음엔 소련의 마르크스주의자는 수구세력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이처럼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사회에선 보수가 사회적 강자(기득권층)와 자본의 논리(시장경제와 경쟁)를, 진보가 사회적 약자(소외계층)와 인권의 논리(민주주의와 공생)를 대변한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자본주의라 하더라도 후진국형이었다. 상당 기간 동안 보수세력이 군사독재 방식으로 사회를 지배했던 것이다. 이 땐 김영삼, 김대중도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진보세력이었다. 군사독재가 종식된 후엔 보수는 김영삼의 ‘패권적’ 지역주의와, 진보는 김대중의 ‘저항적’ 지역주의와 결합되었다. 나아가 노무현의 몸부림은 이런 지역주의일반과 결별하려는 노력이었고, 그 과정에서 탄핵추진파 보수와 탄핵반대파 진보가 격돌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이 무슨 진보냐고 어이없어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그때의 주요한 정치적 대립전선에서 볼 때 이들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시기가 있었다는 뜻이다. 민노당이 훨씬 더 진보적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노무현에 이르는 정치적 진보세력들은 노동계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상대적으로 더 가깝긴 했으나 그들을 주된 지지기반에 포함시키진 않았다. 선진국형 진보와 바로 그 점에서 다른 것이다. 스웨덴과 독일의 사민당은 물론이고 영국노동당이나 미국민주당에서도 노동계는 주요 지지기반의 하나다.
한편 선진국형 보수는 군사독재 형태를 취하지 않고 지역주의에 근거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번 탄핵폭거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도 선진국형 보수가 자리잡을 길을 열었다. 영남, 호남, 충청의 지역주의들이 짝짜꿍함으로써 자멸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구태의연한 지역주의의 역사적 시효소멸을 지역민심이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민노당의 원내진출은 떼 논 당상이다. 비록 몇 석 안 될지 모르나 노동계의 정치세력화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셈이다. 장차 스웨덴 사민당처럼 발전하지 말란 법도 없다.
예컨대 ‘열린우리당 대 민노당’ 같은 식의 양당구도가 만들어져 각각이 보수와 진보를 대변할 수 있다면 우리 정치도 선진국형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보수와 진보의 대립전선을 이렇게 옮기려면 후진국형 지역주의세력들이 완전히 맥을 못 추게 해야 한다. 그들에 대한 조종은 울려 펴졌지만 장례식이 꽤 길어질 수도 있다. 우선 이번 선거에서 새판 짜기를 확실히 시작해야 한다. 다행히 지역후보투표와 정당투표가 분리되었다. 진보진영은 지난 대선 때만큼 고민할 필요가 없을 듯싶다. 지역후보투표에선 당선 가능한 덜 보수적인 쪽에 표를 몰아주고, 정당투표에선 더 진보적인 쪽에 힘을 모으는 건 어떨까. 탄핵이라는 진통을 통해 선진국형 보수와 진보라는 옥동자를 낳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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