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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0일자 추억의 글: <독일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는 금물 : 치안 문제>

동숭동지킴이 2021. 2. 10. 00:15

근년에 독일경제가 다른 유럽에 비해 호조를 보임에 따라 '독일 붐'이 한국에서도 불었습니다. 이건 일정 정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이나 사회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는 금물"이라는 철칙은 독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훌륭하다고 알려진 개인의 진면목이 드러나면서 환멸을 가져다 준 사례가 하나 둘이 아니지요.)

독일을 떠날 무렵에 독일 사회의 장점과 단점을 총정리할 생각이지만, 우선 제가 최근에 겪은 사례를 통해 독일 사회의 문제점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소비자의 불편 등등 앞으로 정리할 사례는 많습니다.)

일주일 전 토요일밤~ 일요일 새벽에 제가 있는 연구동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1층 문을 부수고 들어와 온 방을 휩쓸고 다니면서 결국 제 노트북 하나와 다른 연구원의 자석바둑판을 가져갔습니다. 한국에서처럼 저는 학교에 컴퓨터를 두고 다녔기 때문에, 제 노트북만 도난당한 것입니다.

제 노트북보다 값비싼 데스크탑 컴퓨터가 여러 대 있었지만 그건 무거웠기 때문인지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20년전 일본에서나 10년 전 미국에서도 경험한 일이 없는 황당한 사건입니다. 일본은 원래 낮은 외국인비율 덕분인지 범죄율이 낮고, 미국은 범죄와는 거리가 먼 모르몬교인이 중심인 유타라는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대학 연구실에 뭐 훔쳐갈 게 있다고 쳐들어왔는지 황당했습니다. 훔친 노트북을 팔아서 몇 푼 받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대학연구실까지 도둑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독일(또는 베를린)의 치안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제 주위 몇 명 안 되는 사람들 중에 이미 여러 사람이 피해를 겪은 것입니다. 한국학과 직원 한 분의 경우,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소매치기 일당이 그 직원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고는 순간적으로 등의 배낭을 뒤져서 지갑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제가 베를린에 오기 전에 있던 연구교수는 부인이 장을 보면서 지갑을 도둑맞았습니다. 모집단이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 이 정도의 피해자면 범죄 비율이 굉장히 높은 셈입니다.

사실은 제가 직접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일본인이 독일을 소개한 책에서도 쾰른에서 집이 몽땅 털린 경우를 읽은 바 있고, 제가 도둑맞은 이야기를 다른 한국인 교수가 독일인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했더니 그 독일인 가족도 집을 털린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독일의 정확한 범죄율은 모릅니다. 물론 독일이 미국처럼 높은 (강력)범죄율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로마나 파리처럼 잡범이 들끓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상 사회로서의 완벽한 치안상태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독일은 외국인을 열쇠 노이로제에 걸리게 만들 만큼 열쇠가 복잡하고 많으며, 방안에 두고 나오거나 잃어버리면 아주 골치아파집니다. 그리고 저희가 장보러 가는 곳에는 안전을 위한 제품만을 별도로 파는 전문점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하철 차량 내부에는 범죄방지를 위해 비디오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오히려 한국의 치안이 더 안전한 게 아닌가하는 주장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옛날에 비해 한국의 치안은 상당히 나아졌습니다. 공중화장실이 깨끗해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정말로 한국의 치안이 독일보다 나은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실제 제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범죄율은 한국이 더 낮습니다. 저에게 독일어를 가르치는 독일여학생도 한국에 있을 때 치근거리는 한국인(교수 포함)은 있었지만 안전 문제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런 단편적인 사례로 일반화시키면 안됩니다. 다만 만약에 치안상태로 독일을 한국사회와 비교한다면, 독일은 그리 이상사회가 아닌 셈입니다. 그리고 한국이 그리 나쁜 사회도 아닌 셈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건 단편적인 경험입니다. 어쨌든 씁쓸한 경험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