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논설위원
안녕하시오, 김 기자. 나, 김기원이오. 그렇소, 방송통신대에서 ‘훈장’ 노릇하던 그 김기원. 이곳 저승으로 이주한 게 2014년 12월이었으니, 3년이 넘었소. 언젠가 관악산 과천 쪽 자락 문원폭포 뒤로 펼쳐진 마당바위에서 마주쳤던 일이 기억나는군요. 요즘도 산에 자주 다니시는지. 저승 이주를 3년5개월만 늦췄더라면 4·27 남북정상회담을 텔레비전으로나마 지켜보았을 텐데, 아쉽소.
경제학 교수 노릇 하는 동안 재벌문제에 천착하던 내가 후반부에 북한 경제의 변화에 주목했던 것은 김 기자도 잘 알 것이오. <경제학 포털>(필맥, 2006년)에 밝혀놓았듯이 2005, 2006년엔 북한에 가보기도 했더랬소.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선언하고 후속 실행 단계로 숨 가쁘게 접어드는 모습을 보니 설렙디다. 정치적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경제적 문제 해결로 옮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하니 말입니다. 이미 그런 조짐이 있더군요. 10·4 선언(2007년)에 담겼던 남북 경제 번영 사업들을 재추진하고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도로를 연결하기로 합의(‘판문점 선언’ 제1조 제6항)했으니 말이오.
개성공단기업협회 신한용 회장을 비롯한 입주기업 관계자들이 4월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개성공단 재가동의 불씨가 살아나길 기대하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순간을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이 비핵화 실행에 이어 삶의 문제로 얽히고 맺어지는 것은 경제적 발전을 꾀할 뿐 아니라, 비핵화 흐름의 역진을 막는 ‘지속가능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 아니겠소. 비단 북한에만 유익한 게 아닐 것이오. 성장 돌파구를 찾지 못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남한 경제에도 단비가 될 겁니다. 개성공단에 입주했다가 갑작스러운 공단 폐쇄로 부랴부랴 철수해야 했던 기업인들의 ‘97%가 재입주 뜻을 밝히고 있다’는 설문조사(중소기업중앙회와 개성공단기업협회, 3~4월) 결과가 바로 그런 사정을 일깨워주는 정황 아니겠소. 개성공단의 유일한 은행 창구였던 우리은행 개성지점에서 일했던 분의 얘기를 들어보니, 공단에서 철수한 기업인들이 베트남, 인도네시아로 가봤는데 물류비가 비쌀 뿐 아니라 무엇보다 말이 통하지 않아 너무 갑갑했다고 한다네요. 인력의 질 문제도 있고.
지하철 4호선 회현역 근방의 우리은행 본점 지하1층 한 귀퉁이 사무실 앞에는 ‘우리은행 개성지점 임시영업점’이란 간판이 서 있습디다. 지점장 포함 2명의 직원이 여기서 일하고 있는데, 2016년 2월 개성공단에서 철수한 뒤에도 영업을 이어왔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개성의 꿈’은 미약하게나마 우리 옆에 살아 있었던 겁니다. 이 영업점을 맡고 있는 최아무개 지점장은 2년3개월 전 갑자기 철수해야 했던 800여 입주민 중 맨 마지막에 내려온 둘 중 한명이었다고 합디다. 남북 화해 기운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요.
남북경협은 공단 재가동과 관광 재개 수준에 머물지 않을 것이란 정황이 여러 곳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군요. 마땅히 그래야지요. 우리의 땅을 잇고(철도·도로 연결), 가꾸고(개성공단), 둘러보는(금강산 관광) 일은 이미 해보지 않았소. 이걸 되살리는 데서만 그칠 수는 없겠지요.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서해안과 동해안, 비무장지대(DMZ)를 ‘H’자 모양으로 동시 개발한다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누가 망상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소. 점(개성, 금강산)과 선(철도·도로)을 넘어 씨줄과 날줄의 그물망으로 한반도를 촘촘히 엮는 한 차원 높은 경협을 통해 우리도 이제 ‘전쟁 부담금’(코리아 디스카운트)을 털어내고 ‘평화 배당금’(코리아 프리미엄)을 챙겨야 마땅하지 않겠소. 낙관은 금물이라느니,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는 희떠운 소리에 쪼그라들지 말고 마음껏 긍정하고, 낙관하고,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길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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