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해 볼 수 없는 정치판에 대한 무력감>
오래 전에 읽은 불경의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인도의 어느 왕국이 다른 왕국을 침략하러 나섰습니다. 이게 옳지 않다고 생각한 석가는 그 길목에서 왕을 설득해 침략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좀 흐른 다음에 침략군이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이번에도 석가는 길목에서 왕을 설득해서 침략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세번째로 침략군이 나서자 석가는 마침내 포기하고 길에서 비켜섰습니다. 석가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세상사가 있었던 것이지요.
...성인인 석가가 아닌 저같은 보통 사람의 인력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일은 훨씬 더 많기 마련입니다. 이번 7.30 선거와 관련해서도 그걸 또다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첫째가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의 공천 탈락입니다 . 저는 그의 도지사 출마를 강력하게 반대했었고, 교육감 3선출마를 신신당부하고 독일로 떠나 왔었습니다. 그럼에도 김상곤은 지사에 출마해 고배를 마셨습니다.
저는 그의 도지사 내부경선 탈락 이후 "김상곤을 안타까워하며"라는 글을 썼습니다.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느낌이 있었음에도 굳이 그 글을 쓴 것은 국회의원 출마 같은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글에서 저는 그가 국회의원이 되어도 별로 할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으로 나서려는 과정에서 망가질 위험성이 크다고 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또 그는 저의 권고와는 다른 길로 나가서 결국 또다시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그에게는 제가 그다지 신뢰를 주는 인물이 아니었나 봅니다. 제가 삶을 제대로 살지 않은 업보인 셈이겠지요.
둘째로 안철수의 정치적 자질을 사람들이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점이 저에게 커다란 무력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굳이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엉망진창인 이번 공천은 기본적으로 지도부 탓이고, 특히 안철수와의 합작과 관련이 큽니다.
저는 대충 (적어도 이만큼은 아닐지라도) 공천이 엉망이 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이 지키지 않는 조건 하에서의) "기초단체 정당 무공천"이라는 황당무계한 방침을 고집할 때부터 이미 안철수가 계속해서 선거를 엉망으로 만들 것임은 예상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페북과 블로그를 통해 여러 차례 안철수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저는 안철수 측근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있지만, 그게 없더라도 지난 대선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행태를 보면 안철수의 자질은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철수 진영에 참가하려는 교수들에게 기분 나쁠 정도의 표현까지 써가면서 말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결국 참가했고, 시간이 상당히 흐른 다음에서야 떨어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계속 안철수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고 그게 민주당과 안철수의 합당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야당은 더욱 지리멸렬해지고 있는 것이지요. 어떻게 사람들은 그렇게도 안철수를 파악하지 못할까요.
특히 제가 안타까운 것은, 기존의 정치판에 물든 인물들이 아니라 시민단체 등에서 새민련에 들어간 새로운 인사들이 안철수의 행태에 대해서 거의 아무런 발언도 해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자중지란이라는 비판을 받을까봐 겁이 나서인가요. 조그만 부분이라도 개혁하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인가요. 복잡하게 머리 굴리지 말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새누리당에선 대부분의 엉망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래도 남경필이나 원희룡처럼 (도지사 당선이후 적어도 지금까지는) 참신한 시도를 하고 있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새민련에서는 이런 인물조차 씨가 말랐나요.
허탈하네요.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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