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심포지움 발표문: 2000.11.20] 김대중정부의 구조조정정책

동숭동지킴이 2016. 6. 6. 09:41

(서율대 민교협 주최 심포지움 발표문 2000. 11. 20)

김대중정부의 구조조정정책

김 기 원(방송대 경제학과)

I. 머리말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이제 만 3년이 흘렀다. 그 동안 김대중정부는 재벌, 금융, 공공, 노동 부문의 구조조정과 대외개방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이제 외환보유고가 900억 달러를 넘어섬으로써 일단 외환위기 상황에서는 벗어났고, 제조업가동률도 IMF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으며, 한때 9%에 육박했던 실업률도 3%대로 하락하였다. 선진적인 제도도 다소 갖추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고용구조가 열악해졌다. 또 국가채무의 급증과 급속한 개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2차례나 단행된 재벌과 금융기관의 대규모 부실 정리 역시 미진한 상태이다. 제도정비도 어정쩡한 상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반영하여 김대중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한 평가에서는 그 편차가 대단히 크다. 우선 정부측 자신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기치 아래 독일 프라이부르크 학파의 질서자유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바(재정경제부 한국개발연구원,1998), 여기에 적극적으로 찬동하는 논자가 있는가 하면(양신규,2000) 정부정책에 적대적인 비판을 가하는 입장들도 만만찮게 존재한다.

게다가 이 비판론자들도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두 개의 관점으로 갈라진다. 한쪽은 정부정책을 종속적 신자유주의로 규정한다(김성구,1998 ; 김세균,1999 ; 이병천,1999 ; 손호철,1999 ; 장상환,1998). 그리고 다른 한쪽에선 관치경제의 부활 강화(공병호,1999 ; 유승민,2000), 신중상주의자와 신종속이론자들의 결합(정갑영,1998), 심지어는 자본주의 질서의 부정으로까지 인식하고 있다.

김대중정부의 경제정책은 이처럼 좌우로부터 협공을 받고 있는 샌드위치 처지이다. 모자이크작품과 같아서 평자의 보는 각도 즉 이데올로기에 따라서 정부정책의 모양과 색깔이 달라지는 셈이다. 하지만 정책평가의 복잡한 스펙트럼이 평자들의 이데올로기 차이에만 기인한 것은 아니다.

김대중정부가 처한 역사적 상황 그 자체가 바로 경제정책의 다양성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크게 보아 김대중정부는 한편으로는 시장경제를 정상화하고 발전시켜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경제의 불완정성을 보완하고 폐해를 시정하는 조치도 아울러 강구해야 한다. 이런 이중적 위치로 인해 위기관리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상과 같은 관점 하에서 재벌 금융 공공 노동 4대부문의 구조조정과 개방이라는 대외적 구조조정을 구체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김대중정부 경제정책의 성격을 구명해 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다음 II장에서는 먼저 구조조정의 의미를 자본주의 일반과 한국자본주의의 특수성이라는 두 차원에서 따져 본다. 그리고 III장에서는 김대중정부의 구조조정 과정을 부문별로 나누어 정리해 본다. IV장에서는 이러한 구조조정 정책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특히 신자유주의로 규정하는 것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II. 구조조정의 의미

재벌위기↔금융위기↔외환위기로 전개된 IMF사태는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즉 IMF사태는 첫째로는 자본주의하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공황의 한 형태였지만(김수행 조복현,1999), 둘째로는 한국자본주의의 특수한 대내외적 구조에 연원하고 있었다.

따라서 첫째 측면과 관련하여 IMF사태 이후의 구조조정에서도 자본주의 일반의 구조조정과 마찬가지로 과잉투자를 해소하기 위한 자본과 노동의 재편이 전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본주의란 이렇게 부실한 기업 및 금융기관을 정리하고 노동규율을 재확립함으로써 새로운 축적조건을 갖추어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독점단계에 이르면 거대화한 독점자본의 과잉설비 해소는 용이하지 않다. 또한 글로벌화한 경제에서 일국자본의 과잉성 여부는 세계시장의 여건 변동에 따라 쉽게 달라질 수 있으므로 막연한 기대 속의 무모한 버티기가 계속될 수 있다. 더구나 재벌체제가 갖고 있는 황제경영과 선단경영은 그런 경향을 더욱 강화시킨다. 총자본을 대변하는 정부의 경제개입이 요청되는 소이도 여기에 있는 셈이다.

반면에 과잉투자의 해소가 과도하게 추진될(overkill) 위험성도 존재한다. 원래 과잉투자란 수요와 공급의 상대적 관계 또는 이윤율 수준을 나타낼 뿐이지 절대적 고정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과잉투자 해소를 현존의 수요규모에 억지로 끌어내리는 식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과잉투자 해소에는 버티기와 과도추진이라는 위험성이 항상 존재하며, 그 때문에 정부와 재계가 알력을 빚어 온 셈이다.

한편 과잉투자는 생산능력 과잉과 이윤율 저하라는 두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해소도 두 방향으로 전개된다. 우선 전자와 관련해서는 설비와 인력의 축소가 추구된다. 그리고 후자와 관련해서는 기업의 헐값 매각이나 부채탕감을 통해 자기자본이나 타인자본의 가치파괴가 이루어지며 임금 등 근로조건도 악화된다. 따라서 과잉투자의 해소를 둘러싸고 기업 채권금융기관 노동자 사이에서 자신의 손실분담을 최소화하려는 알력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IMF사태 이후 과잉투자 해소를 위한 구조조정에는 자본들 사이의 갈등과 자본과 노동 사이의 갈등에 대한 조정이 불가피해진다. 그리고 이런 조정 과정에는 시장뿐만 아니라 국가권력도 총자본과 총노동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다. 시장이 왜곡되어 있고 미발달되어 있는 한국자본주의에선 자본들 간의 갈등조정에서조차 국가의 역할이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 또한 자본과 노동의 갈등조정에서는 1원1표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와 1인1표 민주성을 추구하는 인권의 윤리 사이의 갈등을 국가가 조정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IMF사태의 둘째 측면과 관련하여 IMF사태 이후의 구조조정은 과잉투자의 해소과정일 뿐만 아니라 1960년대 이후 성장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경제운용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정부, 금융기관, 국내외자본, 노동자 등 경제주체들 각각의 내적 구조와 더불어 경제주체들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구조조정은 과거에 대한 투쟁인 동시에 미래를 둘러싼 투쟁이다. 우선 이때까지의 낙후된 금융시스템, 전근대적인 재벌체제, 비효율적인 공공부문, 비생산적인 노사관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주어진 과제이다. 갖가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의 저항도 필연적이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 여부가 구조조정의 성공여부를 판가름할 것이다.

또한 구조조정 과정은 미래의 한국사회를 규정한다. 자본주의 자체의 극복을 추구할 것인가, 그렇지 않고 자본주의를 전제로 한다면 영미식의 주주자본주의를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독일 일본식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지향할 것인가, 혹은 우리 나름의 독자적인 길을 모색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도 첫째의 과잉투자 해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원1표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와 1인1표 민주성을 추구하는 인권의 윤리가 갈등하게 된다. 그리하여 양자의 벡터의 합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형성하는 것이다. 효율성과 민주성 모두 긍정적인 가치이므로 둘 다 발전시켜야 마땅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용이하지는 않다.

게다가 IMF사태 이후의 구조조정은 IMF IBRD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놓이고, 이것이 과연 우리 경제를 선진화하는가 아니면 종속화하는가 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또 선진화한다 하더라도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은 신자유주의의 덫에 빠트리는 것은 아니냐 하는 우려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III. 구조조정의 전개와 평가

1) 재벌 구조조정

재벌 구조조정은 정부와 재벌총수가 합의한 [5+3] 원칙에 의해 추진되었다. 1998년 1월에 맺어진 5대 원칙은 ①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②상호지급보증의 해소 ③재무구조의 획기적 개선 ④핵심부문의 설정 및 중소기업과의 협력관계 강화 ⑤지배주주 및 경영진의 책임강화였고 1999년의 8.15 경축사에서 제시된 3대 보완과제는 ①산업자본의 금융지배 차단 ②순환출자와 부당 내부거래의 억제 ③변칙상속의 차단이었다.

이들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구성되는 바, 첫째가 과잉투자의 해소이고 둘째가 재벌총수의 재벌기업지배 체제를 개혁하는 것이고 셋째가 재벌기업의 국민경제지배 체제를 개혁하는 것이다. 첫째 과잉투자의 해소를 위해서 정부는 '금융기관 주도에 의한 기업구조조정 추진'이라는 원칙을 설정하고 채권단으로 하여금 재벌계열사들을 정상, 회생가능, 회생불가의 3 종류로 구분케 하였다.

그리하여 회생불가 기업은 퇴출시키기로 하여 1998년 6월에 1차로 55개 기업, 2000년 11월에 2차로 9개 기업을 퇴출대상으로 집단적으로 지목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지정된 퇴출기업에는 대기업들이 별로 포함되지 않아서 재벌의 과잉투자 해소에는 그다지 도움되지 않는 숫자놀음의 성격이 강하였다.

그리고 회생가능 기업에 대해선 6대 이하 재벌의 경우엔 워크아웃, 5대 재벌의 경우엔 빅딜(대규모 사업거래)이라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그리하여 104개 기업이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되어 그 중 58개 회사가 조기종료 및 퇴출되고 46개 회사가 잔존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워크아웃 대상에는 사실상 회생이 불가능한 기업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또 5대재벌은 워크아웃에서 제외하기로 했다가 대우그룹의 경우 1999년 8월에 워크아웃에 집어넣는 등 혼선을 빚었다. 애당초 5대와 6대 이하를 구분한 것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한편 5대재벌의 빅딜은 정권 출범 무렵 잠깐 거론된 후 한동안 잠복되었다가 다시 1998년 8월 이후 반도체, 항공기 등 7대 부문을 대상으로 본격 추진되었다. 그러나 반도체 빅딜에 대해선 많은 잡음이 일었고, 자동차-전자 빅딜과 석유화학 빅딜은 결국 실패하였다. 또 빅딜에 성공한 것 같은 철도차량과 항공기도 법인을 통합했을 뿐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되지는 않고 있는 실정이다.

빅딜은 기본적으로 1980년 공황 시에 전두환정부가 실시한 중화학공업 투자조정과 같은 성격의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핵심역량을 다소 집중시키기는 하지만 과잉투자를 직접적으로 해소하지는 않는다. 또 빅딜이 마치 재벌개혁의 핵심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정권 출범 후 1년 동안의 귀중한 시간과 개혁역량이 여기에 집중되었고, 그리하여 정작 중요한 재벌개혁인 소유-지배구조의 개혁이 등한시되어버렸다. 재벌의 헤게모니가 가장 취약한 시점에서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할 기회를 빅딜 소동으로 놓친 셈이다.

이상의 퇴출조치, 워크아웃, 빅딜과는 별도로 경기침체와 부채비율 저하 요구에 의해서도 재벌 구조조정이 진행되었다. 우선 30대 그룹의 계열사가 1997년 4월 819개이던 것이 585개로 축소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친인척 간의 지분정리와 단순한 합병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고 완전 정리한 경우도 영세사업체가 많은 한계를 가졌다. 또 부채비율도 대체로 200% 이하로 축소되었지만 계열사 사이의 유상증자에 의한 숫자놀음으로 그 의미가 반감되었다. 부채비율이 200% 이하로 하락했지만 부채총액은 그다지 줄지 않은 현대그룹의 위기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다음 둘째로 재벌총수의 재벌기업 지배체제 즉 왕조적 독재체제를 바로잡는 개혁조치로는 우선 소수주주권의 강화를 들 수 있다. 이는 김대중정부 재벌개혁 중 분명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부분이다. 다만 무임승차 문제 등으로 인해 참여연대와 일부 노동조합이 활용하고 있는 정도이다. 또 결합재무제표가 도입되고 회계관계인의 책임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사외이사제가 도입되고 1999년에는 사외이사의 비율을 늘리는 조치가 취해졌다. 이에 의해 이사회가 이전보다 활성화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는 했다. 하지만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곤 사외이사 임명권을 여전히 총수와 경영진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들러리나 로비스트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집단소송제와 집중투표제에 대한 실시 요구가 강력하게 제기되었으나 잘 해야 집단소송제는 제한적으로 도입되고 집중투표제의 의무화는 무산될 전망이다.

종업원지주제의 개선에 의한 종업원 소유-경영 참여를 통해 재벌개혁과 생산적 노사관계 구축을 동시에 진전시키려는 시도도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제기된 바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사주조합의 운영을 다소 민주화시킬 수 있는 조치가 취해졌지만, 다른 한편 보유의무기간을 1년으로 단축함으로써 종업원들을 소유-경영 참여보다는 단기적인 시세차익 추구에 매몰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초래하였다.

금융자본에 대한 산업자본의 지배를 제대로 차단하면 고객자금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재벌의 소유구조를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금융기관(주요 제2금융권)에 대한 소유제한이나 계열분리 명령제와 같은 적극적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대출제한과 같은 소극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불법 변칙 상속을 막기 위해 제한적 포괄주의의 도입이 검토되고 있으나 기존에 저질러진 불법 변칙에 대해서조차 묵인하고 있는 검찰과 국세청에 기대할 바는 크지 않다. 출자총액제한도 IMF사태 직후 폐지해 버림으로써 재벌의 소유구조에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다음 뒤늦게 다시 부활키로 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셋째로 재벌기업의 국민경제지배체제 개혁으로서는 먼저 정부의 벤처육성 방침을 들 수 있다. 이리하여 벤처 붐이 일고 한 때는 마치 벤처가 재벌의 대안인 것으로 착각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벤처는 기본적으로 정보산업에 국한된 현상이었고, 벤처가 재벌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 재벌의 선단문어발 경영을 시정하려는 조치들도 재벌의 국민경제지배체제 개혁과 관련이 있었다. 그리하여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었고, 상호채무보증을 해소토록 하였으며, 비서실 조직을 해체토록 하였다. 하지만 계좌추적권, 이행강제금 부과제도 등과 관련하여 공정위의 권한이 제한되어 있고, 상호채무보증 해소의 효과는 출자총액제한 폐지에 의해 상쇄되었으며, 비서실 해체와 같은 대증요법은 당연히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리고 재벌이 국민경제를 지배하기 위해 구축한 정치권 정부 언론계 학계와의 네트워크도 정권교체, 일부 언론사 계열분리 등을 통해 다소 흐트러지기는 했지만 그 기본구조는 동요하지 않고 있다. 대우의 파산과 현대의 위기에 의해 상위재벌의 지배력도 약화되기는 했으나 그 대신 삼성의 지배력이 돌출적으로 우위에 서게 되었다.

요컨대 재벌 구조조정은 일부 부실 기업 사업이 정리되고, 재무비율이 개선되었으며, 소수주주권이 강화되었고, 상호채무보증이 해소되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두 차례나 일괄 퇴출을 발표했는데도 아직 부실정리는 미흡한 상황이다. 더구나 재벌의 황제경영(왕조적 독재체제)과 선단문어발경영도 본질적으로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일차적으로 정권의 권력적 이데올로기적 한계와 개혁세력의 미결집에 기인한다. 그리고 상호지급보증 해소를 요구하면서 출자총액제한을 폐지한 조치와 같이 개혁의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은 탓도 있다. 하지만 개혁전술 면에서는 재벌체제의 핵심 고리이면서 약한 고리인 총수지배체제를 적절하게 공략하여 책임전문경영체제를 수립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못한 탓이 가장 크다 할 것이다.

2) 금융 구조조정

재벌의 구조조정이 효율성 측면에서는 과거의 누적된 부실을 떨어내고 미래의 부실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었음은 금융 구조조정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그리하여 정부의 금융구조조정은 크게 두 가지 내용 즉 첫째로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금융기관 부실을 정리하는 일과 둘째로 금융감독체계를 재정비하는 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째 금융기관 부실을 정리하기 위해 정부는 우선 회생 불가능한 금융기관을 퇴출시켜 나갔다. 즉 1997년 말의 종금사에 대한 영업정지를 필두로 사상 초유의 대규모 금융기관 퇴출이 단행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은행은 5개가 인가취소되고 6개가 합병되었으며 제일은행은 해외매각되었다. 또 종금사는 1997년 말의 30개에서 6개만 정상으로 남아 있는 상태이고, 증권사는 6개가 인가취소되고, 상호신용금고는 43개가 인가취소되었으며 19개가 합병되는 등 제2금융권도 대대적인 정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전체 금융기관의 23.2%가 인가취소 합병 해산 등으로 정리되었다.

한편 회생 가능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공적 자금을 지원하여 자본을 충실화시키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퇴출 금융기관에 대한 예금대지급과 회생가능 금융기관의 증자 및 부실채권 정리 등을 위해 공적 자금 64조원을 조성하고 그 자금의 재사용과 공공자금 분까지 포함하여 총 110조원을 투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의 부실표면화 기피와 대우사태로 인해 금융기관의 부실이 다시 누적되어 2000년 11월의 은행구조조정을 시작으로 2단계 금융구조조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또 현대건설, 대우자동차를 비롯한 대기업의 부실이 금융권 대차대조표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2단계 금융 구조조정 역시 마찬가지 한계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2단계 금융구조조정에서는 부실 금융기관들을 퇴출시키기보다는 금융지주회사로 묶으려는 방침을 세우고 있는데 자칫 부실의 대형화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 구조조정의 둘째 요소인 금융감독체계의 재정비를 위해 정부는 기구 면에서는 금융감독위원회를 설립하고 분산되었던 금융감독기능을 금융감독원으로 일원화하였다. 그리고 BIS비율(은행, 종금사), 영업용 순자본비율(증권사), 지급여력비율(보험사) 등 각종 건전성 규제 기준을 마련하고 이에 의거해 부실을 사전에 예방하는 적기시정조치를 확립하였다.

나아가 은행의 고정 및 요주의 여신의 분류기준을 변경하고, 예전의 자산건전성 분류기준이 원리금의 연체기간만을 따지는 과거실적 위주였던 데 반해 1999년 말부터는 미래의 채무상환 능력을 감안하는 새로운 자산건전성 분류기준을 도입하였다. 편중 여신의 규제를 위해 동일인 동일계열 거액 여신한도도 개편 강화하였다.

이상의 금융 구조조정과정을 통해 금융자본의 과잉투자(overbanking) 문제 완화, 대차대조표의 건전화,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방지가 다소 진전되었다. 그러나 아직 미해결 문제도 산적되어 있다. 부실금융기관 정리는 부실기업 정리와 맞물리는 것이므로 미진한 부실기업정리가 금융기관 부실을 그대로 잠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금융기관의 소유-지배-경영 구조는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위기극복을 위한 긴급처방으로 국유화한 은행들을 2002년 하반기부터 민영화하기로 하였는데 그 소유구조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은행의 소유한도를 상향조정하여 재벌의 소유를 허용하는 방향이 얼핏 내비쳐지는 형국이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금융기관에도 사외이사제를 강화하기는 했으나 그 효과는 아직 미지수이다.

제2금융권에 대한 재벌 특히 상위재벌의 영향력은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되었다.(박경서,1999) 그리하여 관치금융 정치금융 재벌금융의 폐해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정부도 부실금융기관 정리와 감독체계 정비에 주력했지 내부 경영체제를 비롯한 소유-지배 구조 문제에는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IMF사태 직후의 고금리정책을 비롯하여 갑작스런 BIS비율 적용과 같은 금융 구조조정방식이 과연 한국에 적절했는가 하는 논란이 일어났었다.(박영철 외,2000) 또 영미식으로 직접금융의 위상을 제고하는 금융 구조조정이 과연 바람직한지, 외국자본에 의한 은행 등 금융기관의 지배가 미칠 폐단은 없는지 등 금융구조조정의 근본방향과 관련된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2001년부터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이라는 구호아래 시행하는 예금부분보장제도의 위험성이 거론되면서 보장한도를 상향조정하는 보완조치가 취해졌다. 그런데 이것으로 금융시스템의 안정성 확보가 충분한지, 아니면 거꾸로 이런 보완조치에 의해 원래 취지가 크게 훼손된 것은 아닌지 하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금융 구조조정에서 민주성이 등한시된 것은 커다란 한계였다. 정부가 중소기업 벤처에 대한 지원을 강구하기는 했지만 재벌이 직접금융 간접금융을 지배하고 있는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금융기관의 경영에서 밑으로부터의 생산적 견제가 작동할 수 있는 장치에 대한 고려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울러 금융감독기관의 행정을 투명화하여 민주적 감시가 작동할 수 있도록 하지 않음으로써, 권한과 비대칭적인 책임구조를 만들고 비리를 온존시키고 있다. 공적 자금의 집행과 관련된 민주적 감시 역시 이제서야 운위되고 있지만 형식적인 위원회 설치 등에 그칠 공산이 크다.

3) 공공부문 구조조정

공공부문은 재벌 금융기관과는 달리 부실이 누적되어 도산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그리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지는 않았다. 다만 1987년 이후 민영화는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IMF사태 이후의 공공부문 구조조정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또 IMF사태 이후 국민적 고통분담 차원에서 구조조정이 단행된 측면도 있었다.

그리하여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첫째가 인원감축이었고 둘째가 민영화였다. 인원감축은 대략 정부부문에서 1만 7천명(17%), 공기업에서 3만 2천명(19%)의 감축이 이루어졌다. 민영화는 국정교과서, 한국종합기술금융, 남해화학, 청열의 매각이 완료되고 포철과 한전의 해외 DR발행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앞으로 한전의 일부 발전소, 한중 등의 민영화가 일정에 올라 있다.

이러한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민영화를 강력히 주창하는 측에서 보면 극도로 지지부진한 형국이다. 특히 한전이나 한중의 경우엔 노조의 기득권에 구조조정이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정부의 민영화가 국가의 기간산업을 재벌이나 외국자본에 팔아 넘기는 게 아니냐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재벌체제가 온존한 상황에서 민간에의 매각은 재벌로의 매각이 되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이를 피하려면 외자로의 매각이 불가피한 듯한 상황이다.

사실 전근대적 관료지배체제하의 비효율적인 공공부문을 개혁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다른 개혁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과정에서 효율성과 민주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발전시키는가가 문제이다. 아마도 1인1표의 민주성이 더 중요한 사업이라면 공기업 형태를 유지하면서 경영혁신을 도모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고, 1원1표의 효율성이 더 중요한 사업이라면 매각하되 재벌구조가 아닌 선진적인 소유-지배 구조를 갖추는 모범사례가 되도록 하려는 배려가 필요하다. 이러한 비전의 부재가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원감축과 민영화 이외의 경영혁신은 거의 진전되지 않았다. 기껏 퇴직금누진제의 폐지와 같은 복지후생 저하조치가 취해졌을 뿐이고, 자율경영 책임경영의 강화는 거의 진전되지 않았다. 사외이사의 숫자는 늘었으나 정부가 사실상 임명권을 쥐고 있으므로 별로 효과가 없다. 낙하산 인사도 과거에 비해 약간 정도가 완화되었을 뿐이다. 정부 시스템의 구조가 별로 달라지지 않았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4) 노동부문 구조조정

노동부문의 구조조정은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두 측면에서 진행되었다. 첫째 노동시장 면에서는 IMF의 요구에 따라 정리해고제를 조기실시하고 파견근로제를 시행함으로써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추구하였다. 1998년도엔 임금이 하락하기까지 함으로써 임금의 유연성도 어느 정도 증대한 셈이었다. 그리고 도산과 정리해고제에 따라 발생하는 대량실업에 대해선 고용보험제도를 강화하고 공공지출 예산을 증대하여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려고 하였다.

이 결과 실업률이 1999년 상반기엔 9%에까지 육박하였다가 경기회복으로 4% 밑으로 하락했지만 IMF사태 이전의 2% 대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또 고용구조 면에서는 IMF사태 이전의 비정규직 증대경향이 가속화되어 급기야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상회하였다. IMF사태 이후 분배구조 악화에는 이와 같은 실업증대와 고용의 불안정성 심화가 작용한 셈이다.

한편 이런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하여 노동계는 IMF위기 초반에는 동의하였으나, 민주노총 집행부가 밑으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사임하면서 노선의 선회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후 노동계는 구조조정에 대해 계속해서 저항하는 세력으로 남게 되었다.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하고, 재취업시장이 발달되어 있지 않으며, 고용조정의 원칙도 정비되어 있지 않고, 공평한 고통분담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으므로 노동계는 구조조정에 대해 반사적인 저항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강력한 조직력을 보유하고 있고 다른 노동계층에 비해 상대적인 기득권을 갖고 있는 대공장 노조와 공기업 노조에서 특히 그 저항이 두드러졌다.

둘째로 노사관계 면에서는 민주노총과 교원노조를 합법화시키고 노조의 정치활동을 허용하는 등의 개혁조치를 취하였다. 그리고 노사정위원회를 설치하여 노동참여적 위기탈출전략을(김형기,1999:239) 시도하였다. 그리하여 제1기 노사정 간의 합의를 비롯하여 2000년 말의 노동시간 단축 합의에 이르기까지 몇 가지 합의를 이끌어 냈고 현대자동차사태 등 대형 분규에서 조정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실업자 조합원자격 인정 등의 노사정위원회 합의사항을 정부가 법제화하지 않았고 금융기관 퇴출 등과 관련하여 다른 정부 기관이 노사정위원회를 소외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정리해고제 합의 등 노사정위원회의 활동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지도부까지 교체시킨 바 있는 민주노총은 마침내 탈퇴해 버렸고 한국노총도 탈퇴와 복귀를 반복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면에서 이루어진 구조조정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노사관계 면에서의 일부 개혁 조치와 노사정위원회라는 새로운 노사관계 모델을 통해 김대중정부는 노동계에 대해 제한적이나마 포섭전략을 의도했다고 볼 수 있다(김대환,2000). 사회보장제도도 과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진전되었다.

그러나 노동시장 면에서의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과 노사정위원회의 위상 약화로 말미암아 이런 개혁적 시도들은 거의 묻혀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과 같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노동탄압 사례들은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과거 정권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친노동자적이라고 이해되던 김대중정부가 IMF사태라는 위기를 맞이하면서 그 친노동자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약 주고 병 주고 하면서 노동자들과 대립하게 된 셈이다.

물론 김대중정부의 상대적 친노동자성이라는 것도 대통령 개인과 극소수 대통령 주변인물들의 성향이지 정권 전체의 속성이 아니었다. 더구나 정부관료들은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데 급급해야 했고 외자유치 지상주의가 정책 기조가 되었으니 구조조정과 외자유치에 저항하는 노동계는 점차 김대중정부의 경제정책에 걸림돌로 비치게 된 것이다.

개별사업장의 교섭과 투쟁에만 익숙해온 노동계가 국가적 위기에 대처할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도 이런 악화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노동부문 구조조정은 1기 노사정합의 이후엔 눈앞의 과제 해결에 매몰되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발전이나 생산적 노사관계의 기반구축과 같이 보다 근본적인 과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5) 개방

IMF사태 이후 IMF의 강력한 요구 하에 진행된 대외 개방은 외환자유화 자본자유화 무역자유화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외환자유화와 관련하여 제한폭 없는 자유변동환율제로 이행하였고 1999년 4월과 2001년 1월의 2단계에 걸친 외환자유화를 실시하였다. 외환자유화는 1990년대에 들어와 점진적으로 추진되고 있었으나, IMF사태 이후 이것이 급진전된 것이다. 그리하여 1단계 자유화에서는 기업 및 금융기관의 외환거래를 자유화하였으며 2단계 자유화에서는 개인의 외환거래를 자유화하였다.

그런데 이 외환자유화의 추진과정에서 환투기와 자본유출의 위험성이 지적됨으로써 몇 가지 보완조치가 취해졌다. 즉 고액자금의 대외지급 시에 취득경위 등을 보고토록 하고, 대외채권의 회수의무를 유지시키고, 국세청 및 관세청에 대한 통보제를 강화하고, 금융정보분석기구(FIU)를 설치하고, 자본거래허가제와 가변예치의무제 등 유사시의 안전장치(Safeguard)를 제도화하고, 비거주자의 원화 투기거래를 제한하였다.

둘째로 자본자유화로서는 외국인의 주식투자한도를 대부분 철폐하였으며, 외국인의 국내단기금융상품 및 회사채 매입제한을 철폐하였고, 외국인직접투자에 대한 제한축소와 우대를 위한 외국인투자촉진법을 제정하였으며, 적대적 M&A를 허용하였다. 셋째로 무역자유화조치로는 수입다변화제도를 폐지하였고, 무역관련 보조금 4개 항목을 폐지하였다.

이러한 개방화 중 외환자유화의 효과는 아직 불분명하다. 하지만 자본자유화에 따른 외자의 유입은 현저하다(유용주,2000). 외국인은 주식보유비중에서 전체의 30%, 외환선물환 거래에서 전체의 60% 정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제일은행의 경영권을 인수하였고, 대다수 시중은행에 지분 참여하였으며, 증권 보험업에의 진출도 활발하다. 비금융업의 경우에도 석유화학 제지 식품에서 외자계가 50% 이상의 시장을 점유하는 등 외자의 비중이 크게 증대하였다. 무역자유화 면의 효과로는 일본 전자제품의 수입급증을 들 수 있다.

IMF사태 이후 이처럼 전개된 대외개방은 자본의 범세계적 운동이라는 대세에 합치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고, 정략적인 국부유출론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또 대외개방만을 갖고서 한국경제의 중남미화를 운운하는 데에도(이찬근,2000.11.8)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 게다가 외자유입에 의해 빠르게 외환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난감했던 일부 부실사업체 처리도 마무리지을 수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외자에 의해 선진경영 방식이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은 이런 개방의 긍정성에만 도취되어 외자 지상주의, 개방 지상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외자와 개방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것이다. IMF사태의 한국적 특성이란 것도 근본적으로는 국내 재벌 금융 체제의 낙후성이지만, 그런 낙후된 체제를 갖고서도 함부로 대외개방에 나섰던 점도 있다. 그런데 그런 교훈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자본운동에 대해서는 민주적 견제가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즉 효율성과 민주성의 균형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의 글로벌화는 거의 고삐풀린 망아지 꼴이다. 세계시민사회와 세계민주주의에 의한 세계적 관리(global governance)가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선후진국 자본의 힘은 대등하지 않으며, 자본의 세계적 운동이 일국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후진국에선 산업정책의 필요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의 개방과 외자도입은 주체적 선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의 정책기조는 외압을 통한 내부개혁이라는 일종의 배수진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IV. 김대중정부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인가

이상과 같은 구조조정을 중심으로 한 김대중정부의 경제정책은 어떻게 규정될 수 있을까. 머리말에서 서술한 대로 김대중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극단을 달리고 있다. 여기서는 IMF사태 이후 하나의 화두 또는 유행어가 되어버린 일부 진보진영의 신자유주의 규정을 검토하는 데서 실마리를 풀어보기로 하자.

신자유주의는 1원1표의 시장원리를 만능시하는 사상과 정책이다. 이는 자본의 이윤극대화를 제약하는 1인1표의 논리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고, 특히 자본의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그 힘을 강화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발흥초기의 구자유주의와 다른 점은 이것이 서구의 강력한 노조와 복지정책에 대한 자본의 반격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앞에서 고찰한 김대중정부의 경제정책에는 분명히 신자유주의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갑자기 강력해진 노조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증대시키는 정책으로서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가 들어 있는 것이다. 외환 자본 자유화도 신자유주의 색채가 짙다. 이런 사안들은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IMF가 요구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대중정부 정책은 이런 신자유주의 일색으로 되어 있지는 않다. 복지체제가 극도로 미비되어 있던 우리에게 복지정책에 대한 반격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총자본에 있어서도 IMF사태 이후엔 과도한 복지가 문제가 아니라 과소한 복지가 오히려 문제였다. 따라서 이와 관련해서 사회적 안정망을 강화하는 사회민주주의 정책이 실시된 셈이다. 노사정위원회도 마찬가지 시도이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에다 생산적 복지를 1999년에 와서 새로운 국정지표로 명시적으로 추가한 것이다.

또한 한국자본주의에는 재벌의 왕조적 독재체제와 정경유착이라는 전근대성을 비롯하여 공공부문의 전근대적 비효율이 존재한다.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저해하는 경영의 불투명성도 심각하다. 이것들은 모두 압축적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이때까지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던 것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혁파하는 구자유주의적 개혁이 필요해진 셈이다.

이상의 신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구자유주의라는 세 요소가 모두 김대중정부 정책이 지향하는 바였다. 하지만 물론 그 주관적 의도가 실천과정에서 제대로 발휘되기는 쉽지 않았다. 우선 정권 출범 초부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냐 '민주적 시장경제'냐 하면서 이념상의 혼란이 빚어졌고(김균 박순성,1998:369-377),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사이의 긴장관계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였다. 또 정책을 입안 실행하는 정당조직과 관료조직은 그 자체가 개혁대상인 구태의연한 존재였다. 게다가 위기관리라는 당면과제 해결에 급급하면서 빅딜과 같은 개발독재적 경제정책도 사용하게 되었다.

결국 김대중정부 정책은 세 가지 요소를 불완전하게 지향하면서 동시에 과거로부터 개발독재라는 한 가지 요소를 답습함으로써 네 요소로 구성되게 되었다. 이 중 어느 부분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머리말에서처럼 논자들의 평가가 제각기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 중 어느 요소가 지배적이냐 하는 논의가 제기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이런 식의 논의도 유의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파악된 지배적인 요소만으로는 김대중정부 정책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우리의 구체적 현실을 한 발이라도 진전시키려는 실천적 입장에서는 부정적인 요소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긍정적인 요소를 최대한으로 발전시키는 일이 지배적 요소를 확정하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비판이 유행하면서 시장원리에 대한 과도한 부정이 횡행하는 것 같은 점도 우려되는 바이다. 물론 시장의 폭력성과 불안정성을 시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 때문에 이 글에서도 시장(자본)의 논리와 인권의 논리를 균형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시장이 갖고 있는 긍정성을 무시할 수는 없으며, 더구나 시장원리에도 못 미치는 전근대성을 탈근대성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전근대적인 재벌체제를 뭔가 새로운 진보적인 모델인 것처럼 추켜세우는 것도 이런 착각의 연장선상에 있는 오류이다.

한편 김대중정부 정책을 종속적 신자유주의로 규정하는 논자들 중엔 재벌개혁과 같은 김대중정부 정책이 자본주의 틀 내의 개혁이므로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김성구,1998 ; 채만수,1999). 이것은 하나의 철학적 관점이기 때문에 그 나름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전두환 치하의 자본주의보다 김대중 치하의 자본주의에서 국민대중의 삶이 더 낫고, 인도네시아 자본주의보다 스웨덴 자본주의에서 국민대중의 삶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면 이들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V. 맺음말

IMF사태 이후 김대중정부의 구조조정은 과잉투자를 해소한다고 하는 자본주의 일반의 측면과 1960년대 이후 압축적 고도성장체제의 모순을 시정한다고 하는 한국사회 고유의 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구조조정은 1원1표의 효율성 원리와 1인1표의 민주성 원리라는 두 개의 원리가 긴장관계 속에서 복잡다기하게 작동하는 과정이었다.

그리하여 재벌, 금융, 공공, 노동이라는 이른바 4대부문과 대외관계 면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또한 과거 정권처럼 통과의례로서 한 차례 개혁이 주창되는 게 아니라, 어쨌든 IMF사태 이후 3년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개혁이 정권의 모토가 되고 있다. 정권의 정략적 의도도 깔려 있겠지만 그만큼 누적된 모순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재벌 구조조정에서는 부실기업 정리와 지배구조 개선에서 약간의 진전이 이루어졌다. 부실금융기관도 아울러 정리되고 금융감독체계도 정비되었다. 공공 부문에선 인원이 대거 감축되고 민영화가 추진 중이다.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에서도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가 도입된 한편 민주노총 교원노조가 합법화되고 노사정위원회라는 새로운 모색도 이루어졌다. IMF사태 이전 점진적으로 추진되던 외환 및 자본 자유화는 일거에 급진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방위적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효율성과 민주성이라는 두 개의 잣대를 기준으로 할 때, 그 성과는 어정쩡한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경우에 따라선 퇴행한 부분도 존재한다. 부실한 재벌 금융기관의 대량정리를 한 차례로 마무리짓지 못하여 다시 2단계 구조조정에 착수했지만 앞으로 3단계 구조조정이 필요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재벌의 황제경영과 선단문어발경영도 온존되고 있으며, 금융기관의 경영시스템 개혁도 지지부진하다. 공공부문에서는 효율성이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으며, 노동부문에선 참여와 협력에 기초한 생산적 노사관계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근로조건만 악화되었다. 외환 자본 자유화의 속도 및 범위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내걸고 등장한 김대중정부의 이런 경제정책에 대해선 전혀 상반된 평가들이 난무하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선풍과 그에 대한 비판이론이 맹목적으로 수입되면서 일부 진보진영에선 김대중정부의 경제정책을 종속적 신자유주의로 매도하고 있다. 하지만 김대중정부의 정책에는 신자유주의로 환원될 수 없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또한 국민대중의 삶을 한 걸음이라도 전진시키려는 실천적 입장에 선다면 김대중정부 정책의 다중성과 역동성을 이해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원래 한국경제는 압축적 고도성장을 달성해 왔고 그 과정에서 누적된 모순을 압축적으로 개혁하려 하다 보니 김대중정부 정책의 성격이 다중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즉 과거의 개발독재 체질을 계승한 채 신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구자유주의라는 세 요소를 지향함으로써 결국 네 가지 규정성을 갖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과제는 이 네 요소 중 긍정적인 요소를 확대 강화하고 부정적인 요소를 축소 약화시키는 일이다. 물론 정권의 속성과 전술적 과오로 인해 개혁은 만족스럽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역사란 우여곡절을 거치더라도 결국 발전한다는 입장에 선다면, 그 과정의 희생을 최소화하고 시간을 단축하고 가능한 한 최선의 코스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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