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잠시 깨어 새해 첫날 인사드립니다. 이곳 겨울이 매일 봄날 같아, 간혹 잠이 깨곤 했습니다. 저같은 이들도 더러 있더군요. 따뜻한 기운에 혹하여, 벗꽃이 피고 개나리도 더러 피어났습니다. 하지만, 보아 하니, 인간이 만들어내는 끔찍한 ‘한기’만한 추위는 없습니다. 피할 곳이 없습니다.
잠을 온통 깨운 ‘사건’도 있었습니다. 일년 전에 돌아가신 김기원 교수님의 유고집을 받았습니다. 사모님께서 챙겨 보내시면서 짧은 편지도 보내주셨습니다. 힘들다고 웅크리고 있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워졌습니다. 김기원 선생님은 병석에서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그 결과를 글로 남기셨고, 저는 잠시 콜록대는 감기에 자리를 보전하고 누운 셈입니다. 유고집에 실린 글을 찬찬히 읽으면서, 부끄러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얼굴이 빨갛게 화끈거리곤 했습니다. 마지막에 실린 글은 차마 한번에 읽어내리질 못했습니다.
마지막 글은 선생님을 대신해서 블로그와 페북을 돌보고 사모님이 남편에게 쓴 시입니다. 시작부터 아렸습니다.
“아내가 없는 그곳에서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당신?
당신이 없으면 한발짝도 혼자 못 다니고,
집에서도 갑자기 당신이 보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못하던
당신의 아내입니다.
그래서 출장도 늘 데리고 다니시던 당신이,
이렇게 긴 여행은 왜 혼자서 떠나셨나요?"
그리고는 두 분이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를 그려두었습니다. 때로는 미소 머금은 얼굴이 보이고, 때로는 원망스러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퇴근해 올 시간이 되면/ 아직도 넋 나간 사람처럼/ 문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사모님은 과연 선생의 평생지기답게 시를 마무리합니다.
“당신,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비록 학문적 과제를 이어받을 수 없지만,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당신의 뜻은
조금이라도 이어받으려 노력하겠습니다"
그간 메말라버린 눈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새해에는 이 시를 읽던 마음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그래야, 저들이 만들어 낸 ‘광기의 겨울’을 버티겠지요.
행복하시라는 말, 차마 못하겠습니다... 같이 잘 살아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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