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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1뉴스: '진보에도 쓴소리' 故 김기원 교수 유고집으로 만난다

동숭동지킴이 2015. 12. 23. 22:03

[새책]'개혁적 진보의 메아리… '부끄러움도, 직업윤리도 잊은 문화' 비판

 

© News1


"한국의 진보개혁파는 당위론에 몰두하는 탓에 현실의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직업윤리를 망각한 문화가 유력층으로부터 사회 전반에 퍼져갔다."

타계 1주기를 맞는 진보진영의 대표적 경제학자 고(故) 김기원(1953~2014) 방송대 교수의 유고집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창비)가 출간됐다. 책에는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별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이론이나 의견에 대한 비판이 주로 담겼다. 이같은 '쓴소리'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밉지 않고 가슴속에 독특한 울림을 준다.

김기원추모사업회는 타계1주기를 맞아 고 김교수가 2011년 3월부터 2014년 9월까지 자신의 블로그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에 쓴 글들을 주제별로 뽑아 이 책에 엮었다.

김 교수는 갑작스럽게 암 판정을 받았지만 타계 직전까지도 블로그에 글을 올릴 정도로 정열적으로 연구와 집필에 전념했다. 그는 진보적인 입장에 있으면서도 진보주의가 갖기 쉬운 경직성이나 도그마를 경계하고, 개혁과 혁신을 강조했으며, ‘현실에 기반한 진단과 대안'을 제시하려고 애썼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는 김 교수가 우리 사회 개혁의 밑바탕으로 꼽고 평생 헌신해온 주제다.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연구한 사람은 많지만 김기원 교수처럼 실증을 통해 분석하고 현실을 바탕으로 진단한 학자는 드물었다.

또한 김교수는 진보·보수진영 양측의 주장을 모두 치밀하게 검증하고 그 상투성을 비판하며, 조금이라도 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추구했다.

예를 들어 김 교수는 "진보 개혁파 지식인들이 당위론에 몰두해 현실의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그 예로 '부자증세' 문제를 들었다. '복지확대를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다'는 진보지식인들의 주장에 앞서 18세기 프랑스혁명이 국왕의 증세 시도에서 비롯됐듯 '세금의 정치학'을 면밀히 봐야 하는데도 이를 보지 못했다며 비판한다.

또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는 진보 지식인들이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를 참사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한 것을 비판했다. 김 교수는 "1970년대에도 비슷한 남영호 참사가 일어났고 신자유주의가 더 극성인 미국이나 영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그는 사태의 원인으로 "식민지와 전쟁을 경험하면서 무조건 살아남는 게 장땡인 상황에서 힘센 자에게 아부하고 부끄러움을 따지지 않는 문화가 자리잡은 게 아닌가" 추정했다. 그리고 이같은 문화가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불신'과 '직업윤리의 부재'를 낳았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저자는 이외에도 '신정아 씨의 억울함과 우리 사회의 치사함'을 지적하고 페미니스트들이 지지하는 '성매매처벌법'의 복합적인 면을 파헤친다. 또한 한국정치를 분석하기 위해 보수와 진보의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선 ‘수구적 보수-개혁적 보수-수구적 진보-개혁적 진보’의 ‘4분면의 프리즘’을 고안해낸다.

귀에 거슬릴 법한 쓴소리는 '너무나 소시민으로 살고 싶어한 당신, 신림동 산자락에서 살고 싶어했고, 동대문 시장에서 산 만원짜리 티셔츠를 좋아했던 당신'이라며 그를 기억하는 아내의 발문에서 보듯 그의 서민에 대한 애정과, 따뜻하고 소탈한 인간적인 면모에 바탕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읽기에 어렵지 않으며 유머러스한 인간적인 면모는 책 갈피마다 따뜻하고 은은하게 살아나고 있다.(김기원 지음·창비·376쪽·1만8000원)
권영미 기자(ungaung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