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통신

베를린 통신 (38) : "싸가지 없는 진보"의 자기반성

동숭동지킴이 2014. 9. 2. 13:23

 

<"싸가지 없는 진보"의 자기 반성>

강준만 교수가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다들 잘 알다시피 강교수는 100권 가까운 많은 저서를 출간했고, 특히 <김대중 죽이기>,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을 통해 한국 선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논객입니다.

다만 그는 "노무현 정권' 이후엔 정치적 판단력에 문제를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그는 2012년에 <안철수의 힘>이란 책을 통해 안철수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분명히 드러났듯이, 안철수는 애당초 "안철수 현상"을 담기에는 너무 작은 그릇이었습니다. 정치적 판단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사람을 보는 눈"인데, 강교수는 그 점에선 이제 한계를 드러낸 셈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판단 이외에, 그는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해 여러 중요한 의견을 피력해왔습니다. 이번의 책 <싸가지 없는 진보>도 베를린에 머물고 있는 제가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제목만 가지고도 중요한 문제제기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한국의 진보세력은 싸가지가 없고, 이는 도덕적 우월감 때문이고, 그 때문에 선거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이런 강교수의 저서를 기회라는 듯이 "야당 죽이기"에 왜곡 이용하는 수구보수언론의 작태가 눈꼴사납기는 합니다. 하지만 "야당 살리기" 즉 "야당 거듭나기"를 위해서도 야당을 비롯한 진보파의 자기반성은 필요해 보입니다.

그래서 제 나름으로 이 문제에 대해 느낀 바를 서술해 볼까 합니다. 우선 "싸가지"란 단어부터 살펴보면, 이는 전라도 사투리입니다. 제가 대학시절 전라도출신 직장인과 같이 하숙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단어란 게 어감이 중요한 데, "ㅆ" 덕분인지 "싸가지 없음"이란 단어는 "예의 없음", "몰상식", "형편없는 인간성" 등의 내용을 아주 잘 전달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싸가지 없는 진보의 문제는 강 교수 이외에 다른 분들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여러 달 전 백낙청 선생님이 중앙일보 대담에서 말씀하신 "마음 공부의 부족" 문제도 비슷한 내용입니다. 제가 "진보-보수"의 X축과 더불어 "개혁(상식)-수구(몰상식)"의 Y축으로 표현한 몰상식의 문제도 "싸가지 없음"을 포괄하는 내용이지요. 아니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면, 김영환과 같은 주체사상파의 "품성론"도 "싸가지 없음"의 문제를 치고 나왔던 셈입니다.

물론 한국에선 진보파만 싸가지가 없는 게 아닙니다. 인사청문회 때 주로 잘 드러나는 싸가지 없는 보수세력 행태도 만만치 않지요. 돈과 권력 좀 있다고 저지른 "싸가지 없음"이지요. 보수세력이 세월호 유족에게 퍼부은 싸가지 없는 말들도 얼마나 많았습니까.

게다가 논리적 대결에서 막힐 때 쓰는 상투적인 수법이, "너는 인간성이 글러 먹었다" 즉 "싸가지가 없다"인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진보는 싸가지가 없다"는 비판에는 당연히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종류의 "싸가지 없음" 중에서 "도덕적 우월감"에 근거한 "싸가지 없음"은 진보세력에 상대적으로 더 강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게 정치판 특히 선거판에선 아주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임은 분명합니다. (물론 모든 진보파가 싸가지가 없다는 건 결코 아닙니다. 단지 상당수의 진보파에게서 나타나는 싸가지 없음은 간과할 수 없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우월감 중 "지적 우월감"에 기초한 "싸가지 없음"은 뛰어난(또는 뛰어난 걸로 착각한) 인물에게서 잘 나타납니다. 뛰어난 학문적 예술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 중에 인간관계가 형편없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마르크스만 하더라도 하녀를 건드리는 등 대인관계가 신통찮았지요.

그런데 이런 건 대체로 용납할 수 있습니다. 신이 아닌 인간이 가진 한계로 인정할 수 있지요. 게다가 이들은 사람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를 하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성공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정치활동을 하는 경우엔 싸가지 없음은 치명적입니다. 유시민에 대해 "어떻게 옳은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이 하는가"하고 던져진 비판이 바로 그런 대표적 사례입니다. 유시민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런 비판이 던져졌다는 건 정치인으로선 치명적입니다.

물론 우리 진보세력의 문제점은 "싸가지 없음"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진정성, 비전, 전략전술"에서도 한계가 많습니다. 극단적인 경우로, "싸가지 없음"을 품성론으로 극복하려고 한 주체사상파는 남한과 북한 사회에 대한 인식의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으니, 싸가지가 있어본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논리가 옳으면 싸가지는 없어도 무방한가 하면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싸가지가 없으면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상대편인 보수파가 너무 형편 없어서 어쩌다 진보파가 비록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나라를 제대로 꾸려나갈 수 없습니다. 극단적으론, 대중을 억지로 이념에 끼워맞추려 한 폴포트의 크메르처럼 대참사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싸가지가 없다는 건 단순히 태도가 겸손하지 않고 건방지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건 인간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나타냅니다. 인간본성이 갖고 있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를 이해해야 제대로 인간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보파는 특히 어두운 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그리고 신이 아닌 인간은 언제나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념에서 출발한 진보파는 자기확신이 넘칩니다. 또한 대화하는 상대편을 비롯한 대중들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이 부족합니다. 아마도 대중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을 "대중추수주의(대중영합)"라고 배격하는 자세가 더 강할 것입니다.

물론 대중의 밝은 면이 아닌 어두운 면에 무조건 영합해서는 안되겠지요. 하지만 동시에 대중의 마음을 읽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정치적으로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렇게 도덕적 우월감, 이념적 우월감만으로 사람을 대하고 나라를 꾸려가려고 하다간 큰 코 다치지요.

제 희미한 기억으로는, 모택동이 <실천론>에서 감성적 인식이 이성적 인식에 앞선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그가 내린 결론이고, 인간이란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

세상사에는 당연히 이성적 논리가 필요하지만, 이성적 논리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싸가지가 없으면 감성적으로 대중의 거부반응을 불러오기 십상입니다. 그래선 많은 부동층을 자기편으로 끌어올 수 없지요. 그런데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진보파가 많습니다.

한국인은 전반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합니다. 그동안의 험한 세상에서 자기 코가 석자였기 때문입니다. 이건 보수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보수파는 인간의 탐욕이라든가 하는 어두운 본성을 잘 이해하고 따라서 우월감이 덜한 반면, 진보파는 우월감에 기인한 배려부족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셈입니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이 지역구 행사장에 내려와서 도열한 지역유지들과 악수할 때의 모습입니다.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그때는 그런 국회의원들은 악수를 할 때 악수하는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다음 사람 쪽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반대로 보수파 국회의원들은 악수하는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악수 한번 한번에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대중의 마음을 얻는 자세를 아는 것이지요. 비록 당선되고 나면 대중을 배반하더라도, 적어도 사기치는 방법은 아는 셈입니다.

진보파 정치인들은 자기들은 사기치지 않는다는 우월감 속에서 대중위에서 대중을 가르치려고만 하고(물론 가르칠 땐 가르쳐야 하지만), 더 나아가면 대중을 경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악수할 때 제대로 눈맞추기도 안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인간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가지고 뜻을 펼치기는 힘들지요.

그리고 싸가지를 갖추는 일은 정치판에서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들을 배려하는 것은 우리 문화에서 대단히 낙후된 부분입니다. 한국 보수파들은 사회적 강자의 눈치를 보고 그들에게 '아부'를 잘 하기는 하지만, 그건 진정한 '배려'가 아니지요.

이를 바로잡으면 사회가 격상되는 셈입니다. 거기에 진보파 정치인들이 앞장섰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자기들이 승리하는 길이고, 동시에 한국을 바람직한 선진사회로 이끌어가는 길입니다.

한편, 진보파는 정치인만이 아니라 지식인 또는 언론인들도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저도 싸가지 없는 진보파를 많이 접했으니까요. 저 자신은 어떠냐고요. 마찬가지입니다.

제딴에는 옳은 이야기를 했는데 상대편이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 경우엔 아예 틀린 이야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교만한 자세로 이야기했기 때문일 가능성도 많습니다.

그래서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의 말씀대로 하루에 세번씩 반성은 못 하더라도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반성하려고 합니다. 이래야 조금 덜 싸가지가 없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교수의 책 등이 우리 진보파가 총체적으로 자기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