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통신

베를린 통신 (35) : <이제 "징병제 폐지"를 논할 때가 아닌가> 등등

동숭동지킴이 2014. 8. 6. 18:10

최근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 몇 개를 아래에 소개합니다.

 

1.  <이제 "징병제 폐지"를 논할 때가 아닌가> : 8월 6일

윤일병에 대한 학대와 폭행사망으로 나라가 떠들썩하고 육군참모총장까지 옷을 벗었습니다. 군대가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번 사태로 한국 군대의 어두운 면이 다시 한번 부각된 셈입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우리 군대도 나아진 면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배를 곯는 일은 없습니다. 군대 보낸 아들 둔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옛날 군대가 아닌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군기가 빠졌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군대 내에는 여전히 인권이 무지막지하게 침해당하는 낙후된 문화가 존재하는 것 역시 분명합니다. 그래서 윤일병 사건이나, 거꾸로 지난 6월의 임병장처럼 인권침해에 극단적으로 저항하는 총기 난사사건이 터지는 것이지요.

한국사회가 물질적으로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고,정치적으로 불완전하나마 민주화가 달성되었는데도, 사회가 골고루 발전하지 않은 탓에 세월호 사건이나 윤일병 사건처럼 어처구니없는 참담한 일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문화수준이 고양되어야 하며, 그를 위한 '문화혁명'의 필요성은 제가 이전에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문화혁명을 위해서도 제도의 개선이 요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윤일병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제 '징병제도'의 문제를 재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징병제도'라고 하면 이제까지는 "여호와의 증인"을 비롯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문제만이 주로 다루어졌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글자 그대로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들의 경우 매년 수백명이 집총을 거부함으로써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없고, 감옥 갔다 오고선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습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사람을 죽이지 않으려는 게 죄가 되어 감옥살이하고 평생 낙인을 찍히고 사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인가요. 아마도 한국 사회 이외에 이런 사회는 과거 히틀러 치하의 독일밖에는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런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노무현 정권 시절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려고 했습니다. 예전의 독일이나 대만에 있던 제도를 우리도 시행하려 했던 것인데, 수구세력의 반대로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윤일병 사건을 계기로 대체복무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통크게 "징병제 폐지"를 본격적으로 논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미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은 물론 거의 모든 나라들이 징병제를 폐지했습니다. 중국공산당의 위협하에 있는 대만까지도 최근 징병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으니까요.

물론 "징병제 폐지"에 따른 부작용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과 대치하는 분단현실을 무시하는 게 아니냐, 가난한 집 아들들만 군대 가는 것 아니냐, 모병들은 정권의 하수인이 될 위험성이 더 큰 게 아니냐 등등 진보-보수 여러 방향에서 우려와 공격이 가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사람 머리 수로 전쟁하는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첨단기술과 정예병으로 안보를 튼튼히 해야 할 시대가 되었습니다. 군대도 어엿한 직장의 하나로 직업군인들은 제대로 된 대우와 월급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은 쿠데타를 생각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이런 군대제도 변화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와 같은 긴장-대결의 남북한 관계가 아니라 대화-협력의 남북한 관계를 촉진합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남북한 관계 개선과 징병제 폐지는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요.)

 

이리 되면 윤일병 사건 같은 게 일어날 가능성은 크게 낮아집니다. 그런 열악한 대우를 계속해서는 필요한 군대인력을 확보할 수가 없으니까요. 윤일병 사건 같은 걸로 한번 떠들썩하고는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게 아니고,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근본적으로 사태를 바로잡는 것이지요. 군대에 자식을 보내 놓고 매일매일 가슴졸이는 부모들도 없어질 것입니다.

 

일반직장 수준에 맞추어 월급주는 군인들로 군대를 조직할 때 재정부담이 너무 커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병제에 따라 우선 군인들의 숫자가 줄게 되면 재정부담은 줄어듭니다.

그리고 군대 가는 대신에 직접적 경제활동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이 많게 되면, 그만큼 나라 전체의 생산은 늘게 마련입니다. 이리하여 직업군대의 재정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에서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했던 것이지요.

과거엔 군대에서 "빡빡 기는" 경험이 중동 사막에서의 힘든 노동을 견뎌내게 하는 등 군대생활의 경제적 효능이 일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한국에서 그런 시대는 끝났습니다. 국방은 정예병이 담당하고, 다수 인력은 창조적인 경제활동을 단절 없이 해나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박근혜정권이 아무 내용 없이 내뱉은 '창조경제'는 사실 바로 이런 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부모들의 가슴졸임을 없애주고 나라 인력을 창조적으로 재배분하는 게 국민의 절실한 과제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게 정치입니다. 무얼 제시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까 고민하는 정치인들, 특히 야당 정치인들이 국민의 이런 일상생활에서 출발할 때 내세울 중요한 이슈의 하나가 바로 "징병제 폐지(모병제)"인 것이지요.

물론 이런 이슈를 내거는 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강한 역풍이 불 테니까요. 그걸 이겨낼 내공이 되어 있는 정치인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담대한 정치인이라야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아울러 우리 국민들의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을 해소해 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지난 2012년 대선의 민주당 예선에서 한 후보가 "징병제 폐지"를 내건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선거전 돌입과 동시에 그 이슈를 들고 나오라는 제의를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주위의 반대에 흔들린 것이지요.

그래서 지지율이 떨어져 약발이 받지 않을 시점에 가서 비로소 "징병제 폐지"를 제안했습니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이슈를 던지니 "하다하다 안되니 발악을 한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그가 이 이슈를 던지자 그의 낮았던 지지율은 두 배 가까이로 뛰어오르긴 했습니다.

7월 재보선의 참패로 야당은 새판짜기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리더십의 발휘방식,공천방식, 군소정당과의 관계, 당 하부조직의 문제 등등 고민할 부분이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정당 혁신의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는 국민의 절실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 절실한 요구 중의 하나는 군대의 "문화혁명"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화혁명을 위한 담대한 방안의 하나가 어쩌면 "징병제 폐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과연 그런 이슈를 야당 정치인 중 누가 제대로 치고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걸 통해 야당 나아가 한국정치의 미래도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 8월 1일

지난 주에는 뉘른베르크를 찾았습니다. 뉘른베르크는 히틀러가 아주 좋아했던 도시로서, 거기선 거창한 나치전당대회가 개최된 바 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전범 재판도 거기서 열렸지요.

전당대회에서 히틀러가 광기어린 목소리로 연설하는 장면은 "Triumpf des Willens"(의지의 승리)라는 다큐멘터리 속에 2분 정도의 분량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만 따로 유튜브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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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전체는 아래의 유튜브 링크를 클릭하시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히틀러 전체주의의 모습은 박정희 유신체제나 북한 절대왕조체제도 아울러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mZE51mtlVc

그런데 나치 전당대회가 열렸던 Zeppelinfeld 바로 옆에는 Dutzendteich라는 호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호수 옆을 거닐면서 우연히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미운 오리새끼" 가족을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첨부한 사진을 보십시오. 백조 가족이 놀고 있는 가운데, 오른쪽 앞의 어린 백조는 짙은 갈색 깃털로 뒤덮인 "미운 오리새끼"이고, 좀더 성숙한 왼쪽 및 가운데 앞의 백조들은 갈색 깃털과 하얀 깃털이 반반씩 섞여 있고, 어른 백조가 되면 눈부시게 하얀 백조가 되지요.

백조라고 하면 어릴 때부터 백조인 것으로 어렴풋하게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백조가 이렇게 털갈이를 한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니 새삼 자연의 신비스러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안데르센의 동화는 어찌 보면 오리와 백조의 신분적 차별을 강조하는 듯해서 약간 떨떠름한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각 개인에겐 숨겨진 잠재적 역량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아래 사진을 확대해서 한번 감상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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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승패의 정치를 넘어서> : 7월 31일

재보선 결과가 나왔습니다. 대체로 예상한 대로였습니다. 한국정치는 대단히 역동적이라서 예측이 쉽지 않지만, 큰 흐름은 읽을 수 있는 게 한국정치입니다. 멀리 베를린에서도 야당의 참패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2012년부터 제가 줄기차게 말씀드린 대로, 안철수는 결코 메시아가 아닐뿐더러 국회의원 이상의 정치적 역량을 기대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 정치적 역량은 갈고 닦는다고 비약할 수 없는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담기에는 애당초 너무 작은 그릇인 셈이지요. 그릇은 갈고 닦으면 반들반들해질 수는 있지만 크기가 커지지는 않지요. 

이런 인물에게 대표를 맡길 수밖에 없었던 야당이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야당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헤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야당이 어찌하면 승리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승리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어쩌다 승리한들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아예 발상을 근본적으로 전환해, 여당과 야당 모두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해 봤으면 합니다. 수준 낮은 정당들 사이에서 누가 이긴들 한국사회가 나아질 전망이 없지 않겠습니까.

여당쪽을 보십시오.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7시간 동안 행방이 묘연한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고도 끄덕 없습니다. 이게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지요. 여당의 지도부는 또 어떻습니까.

철학이나 비전 따위는 찾아보기 힘든 조폭 두목 같은 인물들이 여당을 이끌고 있지 않나요. 선거에서 이기는 기술은 야당보다 나을지 모르지만, 나라를 맡기기에는 너무나 걱정스런 집단이지요.

새민련과 정의당 등 야당의 한심한 작태는 굳이 여기서 더 언급할 필요도 없지요. 도대체 한때 날리던 맹장들도 정치판에 들어가서는 맥을 못추고 있지요. 어디서부터 손을 보아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지요.

하지만 정치권을 비난만 하는 건 무책임한 일일 것입니다.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 비난은 자위행위일 뿐이지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해법을 찾아보는 데 힘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여권에서는 남경필과 원희룡의 시도 즉 통합정치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그런 시도가 자신들의 입지확보를 위한 술수적 성격을 일부 갖고 있다 할지라도 이런 시도는 우리 모두가 지원해줄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야당지지층이라도 이런 시도에는 박수를 보냅시다.

그리고 야권은 어차피 재편이 불가피할 텐데, 이게 어찌하면 야권이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고민했으면 합니다. 그저 패거리들의 이합집산이 아니라 정치수준을 한 단계라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여야 정치인들은 승패의 정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밥줄이 달린 일이니까요. 하지만 언론계 또는 지식인들은 이제 승패의 정치를 넘어 여야의 수준 즉 '정치문화'를 고양시키는 방향에 더 힘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그렇게 정치문화를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사회가 관심을 기울이면, 정치인들도 자신의 수준을 높임으로써 밥줄을 확보하는 쪽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해야 독일처럼 보수파나 진보파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나라가 개판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4. <한 발 삐끗하면 늪에 빠지는 정치판> : 7월 19일

새민련의 공천에서 탈락한 천정배를 어제 경향신문에서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인터뷰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7191334581&code=910100

새민련 지도부가 천정배와 기동민을 광주에서 밀어내고 권은희를 밀어넣음으로써, 이번 공천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는 데는 많은 분들이 동의할 것입니다. 친구 사이를 치고받게 만든 동작구의 우스꽝스런 모습도 거기서 기인했지요.

저는 권은희를 개인적으론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그냥 경찰에 머물러 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국회의원 출마 이전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쉽지는 않았겠지만, 억지로 쫓아내지 않...는 한 경찰 내부에서 꿋꿋이 버티고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경찰과 같은 권력조직에서 그는 보석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나요.

국회의원 출마가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폭로한 그의 순수성을 의심케 만들었다는 점 때문만으로 안타까웠던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각종 국가기관 내의 용기 있는 인물들이 그 기관에서 다 나와버리면 그런 조직의 장래는 자꾸만 어두워져 가지 않겠습니까. 시쳇말로 "소는 누가 키웁니까".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국가기관 내에서는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작용해, 높은 지위로 올라갈수록 괜찮은 인물을 찾기가 힘듭니다. 여기에다 권은희같은 인물마저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 나중에 진보개혁정권이 들어서도 각 국가기관 내에서 발탁할 인물이 아예 없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권은희를 출마시킨 새민련 지도부의 바보 같은 행태는 자꾸 말하기 싫을 정도입니다. 물론 그런 인물들을 지도부로 선출한 새민련도 한심하고, 그런 새민련을 지지한 국민들도 책임의 일부를 공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난장판과 같은 이런 한국의 정치세계에서 어떻게 뜻을 펼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와 관련해 천정배를 한번 생각해볼까 합니다. 저는 천정배를 그런 대로 괜찮은, 아니 현재 새민련 지도부보다는 훨씬 나은 인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근년의 그의 정치적 행보는 썩 잘 하고 있다고 보기 힘듭니다. 권은희의 출마와는 별개로 이걸 따져 보았으면 합니다.

그가 정치적으로 한 발 삐끗하게 된 것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출마입니다. 그는 경기도 안산의 국회의원인데도 경기도가 아닌 서울의 시장으로 나서려 했던 것입니다. 대통령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서울시장을 생각하고, 대의명분이 뚜렸하지 않은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김상곤이 대통령 자리를 목표로 경기도 교육감을 그만두고 지사에 출마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리해 천정배는 안산 국회의원 자리도 내던졌습니다. 그리고 2012년의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송파에서 낙선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재보선에서는 후배의원들에게서 물러서라는 민망한 말까지 듣고, 마침내 새민련지도부에 의해 강제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다만 그는 권은희가 나선다고 하자 깨끗히 양보할 줄 아는 좋은 인물입니다.

어쨌든 이처럼 정치적 행보에서는 중요한 대목에서 한 발 삐끗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쉽습니다. 낭떠러지로 떨어지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다음 행보(스텝)가 꼬이기 마련입니다. 이건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70년대 학생운동의 주역으로 김근태와 함께 이름을 날렸던 장기표를 보십시오. 그는 제도정치권에 들어올 기회를 놓치면서 점점 망가져갔고, 민정당 사람인 김윤환과 함께 정당을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저질렀습니다.

꼭 그 정도는 아니지만, 노회찬도 계속해서 스텝이 꼬이고 있습니다. 오세훈과 한명숙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맞붙었을 때, 그는 사퇴하지 않고 결국 오세훈 당선에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동작 선거에서는 승산이 희박한 선거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리되면 이번 선거가 끝나고 그는 지리멸렬해질 가능성이 작지 않습니다. 한때는 진보의 아이콘으로까지 여겨졌던 이정희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거와 관련해 망가진 것도 비슷하지요.

이처럼 정치판의 명망가도 한 발 삐끗하면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게 한국정치판입니다. 아니 원래 격동기의 정치는 그처럼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유명한 마르크스경제학자였던 우노코죠는 자신이 머리가 나빠서 (천재적 직관력이 부족해) 직업적 정치가의 길에 나서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정치에 대해선 아무나 한마디씩 합니다. 그만큼 쉬운 걸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누구나 한 마디씩 하는 주제가 정말로 어려운 주제입니다. 교육 문제도 비슷하지요. 한국의 정치에 대해 욕하고 비분강개하기는 쉽지만 제대로 실천 가능한 해결방안을 내놓는 사람이 잘 있나요.

정치판을 무조건 욕함으로써 아예 양화가 접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악화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술책입니다. 당연히 가급적 많은 좋은 사람들이 정치에 뛰어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치지망생들은 정치 특히 한국의 정치판이 한 발 삐끗하면 늪에 빠질 정도로 위험한 곳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겠습니다. 따라서 공부도 많이 하면서 내공을 쌓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