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통신

베를린 통신 (31) : <조희연 당선자의 '일류'대학 발언> 등

동숭동지킴이 2014. 6. 5. 22:48

 

지난 며칠 동안 페이스북에 쓴 글을 모아 보았습니다. 가장 최근 것부터 세 글을 실었습니다

 

1)  <조희연 당선자의 "일류"대학 발언에 대한 우려 : 정체성의 문제> (6월 5일)

 

조희연 당선자 등 이른바 진보교육감들의 대거 당선을 축하합니다. 이번 선거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분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교육감 선거결과는 우리의 미래를 규정하는 교육에서의 희망을 내비쳐주는 가슴 뿌듯한 쾌거입니다.

물론 교육감은 교육부 장관의 지휘 하에 놓여 있는 지방교육의 수장입니다. 따라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습니다. 하지만 시장이나 지사와 같은 지방자치단체장보다는 오히려 우리 사회의 변화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김상곤 교육감이 불러온 새바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학교 내의 이런저런 변화를 가져왔음은 물론이고, '복지'를 시대의 화두로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박원순의 서울시장 입성도 오세훈이 어리석게 김상곤의 새바람을 얕잡아본 결과이지요.

 

그런 만큼 이른바 진보교육감들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조심조심하면서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 이와 관련해 조희연 당선자의 발언에 대해 한 마디 '쓴 소리'를 할까 합니다.


조희연 서울 교육감 당선자는 기자회견에서 "일반고에서 일류대학에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발언했습니다. 일반고의 교육환경을 외고 같은 특수고 못지 않게 만들겠다는 의미로 좋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진보교육감이 등장해 학생들 학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류" 운운 하는 발언은 이른바 진보교육감에게는 별로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말하자면 '오버'한 것이지요. 학생들 사이의 학력경쟁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지만, 그게 지나쳐서 모두가 일류대학 가는 데 목을 매는 현실을 개선하려고 진보교육감이 등장한 게 아닌가요.

대학 사이의 '지나친' 서열화나 이른바 일류대학을 졸업해야 이른바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는 대학교육을 담당하지도 않고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를 책임지지도 않는 교육감의 능력 범위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그런 한계 속에서 다들 "일류 대학"에 자식을 보내고 싶어하고, 그런 학부모들의 욕구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학력경쟁(실제는 문제풀기능력 경쟁)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교육감을 국민들이 원했다면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었을 리 없습니다.

그걸 무시하고 일류대학 운운하는 발언을 당선 제1성으로 내던진 것은 다소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오류는 진보적 인사들이 리더가 되었을 때 흔히 저지르는 오류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은 자신의 '반미성향'에 대한 우려를 고려한답시고, 미국에 가서는 "미국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자신이 정치범 수용소에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식의 '아부성' 발언은 반대편으로부터 진정한 신뢰를 얻지는 못하면서 자신의 정체성만 훼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노무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노무현만큼 타격을 입지는 않았지만 취임 초기 김상곤도 이명박과 만나서는 "이명박의 교육정책과 자신의 교육정책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선거 때 "반MB"를 내세우던 것과 도대체 아귀가 맞지 않는 발언이었지요.

이런 식으로 진보파들이 발언하는 것은 자신들에 대한 공격 프레임(틀)에 갖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공격프레임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는 셈입니다. 그래서 친미를 부적절하게 강조하고, 이명박과의 친근성을 부적절하게 표현한 것이지요.

 

다만 노무현은 반대편의 공격 프레임에서 잘 빠져나오지 못하고 많이 허덕였던 반면에, 김상곤은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두 사람이 거둔 성과의 차이를 만들어낸 하나의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희연도 노무현-김상곤의 초기 발언처럼 반대편이 만든 프레임에 무의식적으로 갇혀 있기 때문에 "알고보면 나도 그런 사람 아니예요"라는 식의 발언을 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어쩌다 내뱉은 단어 하나를 가지고 너무 확대해석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단어 하나 사용에서의 실수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이 문제에 대한 평상시 고민(내공)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해 수구파의 공격 프레임에 자신도 모르게 갖히게 되는 것이지요.

 

어쨌든 조당선자의 "일류" 운운하는 발언처럼 정체성을 크게 훼손하는 발언을 하다보면 진보파로부터 공격을 받고, 그 공격 때문에 또 정반대로 극단적인 발언이나 정책을 취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지도자나 나라가 가는 길이 항상 중앙의 올바른 길일 수는 없습니다. 약간 왼쪽으로 가기도 하고, 다시 약간 오른쪽으로 가기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가서 시궁창에 빠져 버리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중용'이란 말을 쉽게 합니다만, 실제로 제대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경지입니다. 조희연 당선자를 비롯한 진보교육감들은 그런 점에 대단히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말했어야 할까요. 우선 "일류"라는 표현은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일반고의 학력 신장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겠다"라고 하면 되는 것이지요. 경우에 따라선 "학력신장과 인격함양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겠다"고 해도 되겠지요.

앞으로 친전교조 교육감이라는 공격 프레임도 작동할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그 프레임에 걸려 들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서 친전교조라고 비난받을 것인가 아닌가가 주요 고려사항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옳은 정책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지 친전교조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지요.

 

"나는 친전교조가 아니다"라고 몸부림칠 게 아니라, "나는 학생, 학부모, 교직원을 위해선 전교조든 교총이든 어떤 분들의 목소리도 경청하겠다"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미묘한 차이 같지만 "전교조냐 아니냐"의 프레임을 벗어나서 "학생, 학부모, 교직원을 위하는 것이냐 아니냐"로 프레임을 바꾸는 전략입니다.

 

그리고 이는 수구진영의 공격에 대한 대화 상의 단순한 프레임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진보교육감이 실제로 취해야 할 정책적 기본자세에 관련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진보교육감은 전교조에 지나치게 편향되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전교조 특히 그 지도부의 정책에는 현실과 괴리된 부분도 있고, 전교조 조직이 그동안 초기의 참교육 정신과 달리 이익집단화한 측면도 전혀 없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친전교조 정책이라고 비난받을 만한 정책이라고 해서 애써 회피하는 자세 역시 수구진영의 프레임에 갖혀서 진보의 정체성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정체성은 '자기 중심'이고, 정체성을 잃으면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무엇이 학생, 학부모, 교직원에게 진정으로 좋은 정책인가를 기준으로 일을 해나가야 하겠지요.

 

조 당선자는 극적 승리로 인해 언론에 크게 주목을 받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인터뷰 요청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인의 교육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인터뷰가 아니라면, 가급적 당분간 자제하는 게 좋습니다. 꼬투리를 잡으려고 수구언론들이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니까요.

조 당선자는 아이디어도 많고 말도 잘 하는 편이지만 100 마디 옳은 말 하다가 한 마디 실수하면 치명상("한 방에 훅")을 입을 수도 있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당분간은 자신의 "말을 하기"보다는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쪽"에 치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제 기우가 지나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진보교육감들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하면서 뚜벅뚜벅 걸어나갔으면 합니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주기를 바라겠습니다.

 

2)  <조희연후보의 5천만원 기부 : 진보진영의 반성과 조후보의 남다름> (6월 2일)

조희연 교수가 민주화운동에 따른 피해보상금 5천만원을 시민단체에 기부했다는 사실을 저도 아래 글을 읽고서야 알았습니다.

같은 대학 동료 교수가 쓴 관련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희연 교육감 후보는) 긴급조치 무죄판결로 받은 보상금 5천만원을 아시아 NGO 활동가 훈련 기금으로 기부 하셨다고 하네요..
이 기부금은 선거 나오기 한참전에 이루어 졌구요... 누구처럼 높은 자리 제안 받고 사회에 기부하지 않았습니다. 메이저 대학의 교수들 처럼 큰 연봉도 못받고, 대학생 아들 둘이나 둔 가장이 선뜻 기부도 하시고.. "
...
사실 저는 이 민주화운동 보상금의 처리방식에 대해 작은(?)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치하에서 민주화운동을 한 것이 보상금 받기 위해서 한 것은 결코 아닌데, 여러 사람들이 그 보상금을 그냥 받았던 것이 아쉬웠던 것입니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예외로 하더라도, 그동안 보상금을 기대하지 않고 생활하던 사람들은 그 보상금을 그냥 받을 게 아니라 그 돈들을(전부가 아니면 절반이라도) 내놓아 기금을 조성했더라면, 진보진영이 사회적으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것입니다.

물론 그건 쉬운 결정은 아닙니다. 일반인의 경우엔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민주화운동 할 당시의 맑은 정신을 되돌아보다는 의미에서 자기 자신과 사회에 "울림"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감옥 갈 각오하고 운동할 때 가졌던 희생정신의 절반정도만 남아 있었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요. 이랬더라면 "보수나 진보나 그놈이 그놈이다"는 말을 듣게 되지는 않았겠지요. (참고로 저도 긴급조치로 일주일간 유치장에 있었으니, 보상금을 신청하면 혹시 푼돈 얼마라도 받았을지 모르지만, 귀찮아서 하지 않았습니다.)

보상금을 받기 시작할 때 그런 보상금 모으기 운동을 전개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남아 있습니다. 처음에 그런 방향을 설정하지 않았으니 나중엔 새롭게 방향잡기가 힘들었지요.

그런데 조희연 교수는 개인적으로 그걸 실천했습니다. 진보를 말로만 떠든 게 아니라 실제로 실천한 것이지요.

말보다 행동을 보고 사람의 인격을 평가해야 한다는 점을 볼 때, 다른 후보들과 조후보는 이런 점에서도 확실히 다르네요. 선거 캠프나 지지자들은 이런 사실을 어제 말씀드린 다단계 홍보에서도 널리 퍼트리면 좋겠습니다.

3) <피 흘리는 독일대학> (5월 29일)

어제는 튀빙엔(Tübingen) 대학에 연구년으로 와 계시는 분이 베를린으로 와서 특강을 했습니다. 특강이 끝나고 나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다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은 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할까 합니다.

지난 5월 19일에 튀빙엔 대학에서 4000여명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고 합니다(아래 사진). 이런 규모의 시위는 근 40년 만의 일이라고 합니다. 시위의 주요 슬로건은 “대학이 피 흘...린다”(Die Universitäten bluten aus.)였다고 하네요.

 

 

                                                    

대학의 재정이 핍박을 받아 300명 정도의 교직원을 잘라야 하고, 강좌의 15~20%를 없애야 하는 상황에 대한 항의시위였습니다. 독일의 대학등록금이 무료인 것은 좋은 일인데, 재정이 이렇게 핍박받는 독일 대학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재정이 핍박받아 교육지출이 크게 줄고 등록금을 대폭 인상하는 상황과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위에는 놀랍게도 교직원도 동참했습니다. 의대학장이 의사가운을 입고 시위에 참가했는가 하면, 대학총장이 시위대 앞에서 지지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대학의 구조조정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독일에선 총장까지 가두로 나선 형편인 것이지요. (미국의 Salt Lake city에 체재할 때 시장이 이라크 침공 반대시위에 동참했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한 가지 재미 있는 일은 항의의 표시로 대학에서 24시간 연속 강좌를 개최했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부당하게 해임된 교수가 강의를 강행하는 경우는 있지만, 독일에선 이렇게 대학 전체가 항의의 표시로 특별 연속강좌를 열기도 하네요.

그리고 특기할 사항은, 튀빙겐 대학이 연구와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부실한 대학이 아니라 얼마 전 독일연방정부가 특별히 지원하기로 한 상위(?) ‘엘리트 대학’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대학재정 지원을 직접 담당하는 주 정부는 보수정당이 아니라 사민당-녹색당이 연정을 꾸리고 있는데도 이렇게 상황이 어려운 것이지요.

총장까지 데모에 나선다고 하니 주정부에서 협상하자고 했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두고 보아야 하겠습니다만, 교육을 포함한 복지의 양과 질을 어떤 수준으로 이끌고 가야 하는가는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총장은 폐지되었던 대학등록금을 다시 받자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열악한 대학재정 상황은 다른 면에서도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어제 베를린에 오신 튀빙엔 연구교수는 그 대학 영빈관(Guest House)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숙소의 화장실이나 부엌이 같이 붙어 있지 않고 다른 층에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식사 챙기고 세수하려면 계단을 여러 차례 오르내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방 사이의 방음도 제대로 되지 않아 옆방 다른 사람의 기침소리까지 들리는 형편이니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지요.

그리고 매주 1시간 30분의 강좌를 담당하고 있는데, 그 강사료가 16주 1학기(한 달이 아닙니다!)에 700유로(100만 원)이라고 하네요. 1000유로 정도인 베를린자유대학 수준도 낮지만, 그보다도 더 낮지요.

그분은 연구년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월급이 나오니 생활에 문제가 없지만, 독일에서의 강사료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그 강사료만으로 생활이 가능할지 의문이었습니다.

정식 교수(한국의 정교수보다 사실상 더 높은 지위)가 되면 사정은 다르지만, 그 이전에 한국으로 따지자면 전임강사나 조교수의 소득은 한국에 비해 아주 낮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같이 식사하러 가면 손님인 그 초빙교수가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그 대학에서 저보고 한번 와서 특강을 해달라고 했는데, 강사료는 없고 차비와 숙박비만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열악한 재정형편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물론 이런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독일의 대학상황에 대해 섣부른 결론을 내릴 수는 없겠습니다. 앞으로 시간 나는 대로 독일의 대학 상황을 좀 더 들여다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