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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통신 (29) : 김상곤을 안타까워하며 (1)

동숭동지킴이 2014. 5. 15. 04:24

 

김상곤을 안타까워하며 (1)

 

경기도지사 예선에서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 탈락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랫동안 힘들여 쌓아온 공든 탑이 단번에 무너진 느낌입니다. 그저 지사가 될 수 없어서 안타까운 게 아닙니다. 한국의 장래를 이끌어갈 지도자감이 길을 잃고 쓰러졌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합니다. 한번 패배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났다고 할 수는 없다는 뜻이지요. 김대중은 34(34)했고, 노무현도 여러 번 고배를 마셨습니다. 따라서 그런 사례들을 본다면 김상곤도 얼마든지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과정에서 그가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보여준 자질을 갖고 있지 않음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김상곤은 그냥 한 번의 전투에서 패배한 게 아닙니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승부에서 쓰러진 것이며, 히틀러군대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괴멸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고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사실 제가 좋아하는 선배인 김상곤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저 자신의 마음도 착잡합니다. 그러나 냉철한 현실인식 없이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김상곤호의 좌초는 김상곤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보개혁세력 전체에 대한 엄청난 타격입니다. 경기도 교육감에 당선되면서부터 그는 진보개혁세력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가 횃불로 우뚝 섰다가 오늘의 좌초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진보개혁세력 스스로를 반성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저와 김상곤의 관계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원래 저의 대학선배이고, 예전에 그가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을 창립할 때 같이 의논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교육감선거 때는 여러 차례 선거캠프에 들렀으며, 이런저런 방식으로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 처음 당선되고 나서 김교육감은 수구보수 세력의 저열한 공세에 크게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다 더 깊숙이 개입했습니다.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교육감 측근들 모임엔 자주 참석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김교육감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쏟은 최측근들에 비하면 저의 노력은 별 게 아니지요. 하지만 일체의 다른 선거캠프에 참가한 일이 없는 저로서는 공을 많이 들인 편입니다.

 

측근들과의 회의 이외에 생각나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취임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도 성남의 한 여고 정문 근처에서 그 학교생 1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1명은 중상을 입은 일이 있었습니다. 학교 앞 길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생긴 사고였습니다. 교장의 대처도 미흡했습니다.

 

그때 김교육감은 교육청 관료들이 말리는 바람에 그 사고학교를 방문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세월호참사 때 박대통령이 여러 날 꾸물거린 것과 비슷하지요. 당시 교육청 홈페이지엔 교육감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구하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갈협박하다시피 말을 전했습니다. 인간적 도리로서도 당연히 최고책임자가 사고현장과 병원을 방문해야 하며, 어린 여학생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교육책임자가 코빼기도 안 비쳤다고 다음 선거에서 다른 후보가 공격하면 어쩔 것이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금방 말을 이해해 교육감은 사고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김교육감이 이명박과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이명박이 전국의 교육감들을 소집한 자리였습니다. 거기서 교육감은 대통령님 생각과 제 생각이 같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당시 이명박이 사교육비 절감을 이야기한 바 있고, 그 점을 교육감이 강조한 셈입니다.

 

그러나 김상곤은 선거 당시 MB 교육을 기치로 내세워 당선됐습니다. 그런데 당선되자마자 갑자기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 셈입니다. 굳이 사교육 문제에서의 공통점을 강조하려면, ‘일제고사 ---에서는 생각이 다르지만, 사교육을 줄여야 한다는 점에서 대통령과 생각이 같습니다라고 MB와의 대립각은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요.

 

정체성을 망각하는 이런 종류의 오류는 진보개혁진영이 정권을 잡을 때 쉽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노무현정권의 경우와 비교하면서 꽤 긴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런 제 이야기도 교육감은 이해했습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김상곤을 김문수 지사가 괴롭히는 일이 벌어지면서 제가 한겨레에 김문수 대 김상곤이라는 글을 두 번이나 쓰기도 했습니다.

(http://blog.daum.net/kkkwkim/109 http://blog.daum.net/kkkwkim/110 참고)

 

김교육감은 첫 임기 기간 동안 수구보수세력들이 무상급식정책을 비난하고 방해한 덕택에일약 진보개혁진영의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원래 선거 당시에 이 정책이 크게 쟁점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거 이후에 오히려 반대편이 쟁점으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옳은 일은 때로는 이렇게 적까지 도와주는 법이지요.>

 

이리해 김상곤은 그동안 한국에서 경시되던 복지라는 이슈를 크게 부각시키고, 심지어 지금의 박근혜마저 적어도 선거 때는 내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지요.(물론 화장실 갈 때와 볼 일 보고 나서의 생각이 다른 것처럼, 박근혜는 자기 공약을 대부분 내팽개쳤습니다만.)

 

2010년의 교육감 재선은 1년 동안 교육감이 보여준 대활약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거 캠프에 거의 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선거 끝나고 나서 교육감 2기에 제 오랜 친구인 정치전략가를 측근 참모로 발탁되도록 해서 교육감을 돕도록 했습니다. (그 친구는 저의 기대와 어긋나게, 끝까지 교육감을 보좌하지 않고 2012년 대선판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러다가 2012년 대선판이 벌어지자, 일각에서 김상곤을 대선후보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출판기념회를 서울에서 크게 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지율 측정대상에조차 들어가지 않은 형편이었고, 저도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출판기념회에서도 이게 대선출정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으며, 교육감 면전에서 딴(?) 생각 품지 마시라고 직언했습니다. 다른 후보보다 김교육감의 인물이 떨어져서가 아닙니다. 자기 분야에서 분명한 성과를 뿌리내린 다음에,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더 큰 일을 도모하는 게 옳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세월호에서 참혹하게 드러난 우리의 직업윤리 문제와도 관련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리해 대선은 지나가고, 2013년이 되어 2014년 지방선거와 관련된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7월쯤엔 김교육감이 도지사 선거에 나갈 것이라는 예측이 언론에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교육청 관료들 사이에선 2010년 재선되고 얼마 안 있어, 교육감이 장차 지사로 갈아탈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결과적으로 사람들의 경향성을 닳고 닳은 관료들이 더 정확하게 파악한 셈이지요.)

 

그래서 제가 생각을 해보았더니, 교육감의 경기도 지사 출마는 대의명분과 정치도의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내용을 제 블로그에 김상곤 교육감을 경기도 지사가 아니라 교육대통령으로라는 제목의 글로 썼고, 적어도 교육감 최측근들 몇 명은 그 글을 읽었습니다.

(블로그 링크는 http://blog.daum.net/kkkwkim/218)

 

대의명분과 정치도의에 어긋나는 이유는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내걸은 3대 과제 중 무상급식인권조례는 어느 정도 자리 잡았지만, ‘혁신학교는 양적으로 확대가 되었을 뿐 질적으로 아직 초보단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교육현장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질적으로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반대성향의 인물이 교육감이 된다 하더라도 쉽게 되돌릴 수 없어야 합니다. 경기도는 결코 그런 상태가 아닙니다.

 

그리고 눈칫밥 먹이지 않고 인권 지키는 것은 교육의 전제이지 그게 교육의 본체는 아닙니다. ‘혁신학교야말로 교육의 본체와 관련된 사안입니다. 지사 쪽으로 방향 전환하는 것은 이런 교육의 본체를 내팽개치는 행위입니다.

 

또한 그는 민주당 인사들의 도움으로 보수수구세력의 공격을 버텨왔습니다. 원혜영과 김진표는 그의 지원부대였습니다. 그런 그들과 경기지사 자리를 놓고 다투는 것은 정치도의에 어긋나지요.

 

물론 대의를 위해선 친구와도 싸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지사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그런 대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사는 교육감과 동급입니다. 더 큰 일을 하는, 더 높은 자리가 아닌 것이지요. 그리고 경기도 교육감직을 수행하면서 부딪친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경기도 지사 자리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지사와 교육감이 서로 호흡이 맞으면 교육을 바로잡는데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리 결정적이지 않습니다. 김문수 지사의 치졸한 방해공작을 뚫고 김교육감은 나름대로 할 일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걸림돌은 대통령이지요. 그런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대통령으로 바로 나서는 게 명분이 서는 일이지 지사가 그 명분이 될 수 없습니다. 김상곤은 지사 출마의 주요 명분으로 교육의 걸림돌 제거를 내세우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실제 보수수구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지사보다 교육감의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밑에서 박원순시장이나 안희정지사가 정권과 크게 부딪친 사례가 있나요. 없습니다. 반면에 김교육감은 그들 정권과 얼마나 많이 부딪쳤나요. 여러 번 재판정에 서야 했지요.

 

사람들은 자치단체장은 정치가고 교육감은 교육자라고 생각합니다. 형식적으로는 그렇지만, 이는 한국의 실제 현실과는 다릅니다. 자치단체장은 그냥 행정가고, 진보개혁교육감이야말로 보수수구정권과 싸우는 진정한 정치가인 것입니다. 그래서 김교육감은 진보개혁진영의 선봉장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교육감이 지사쪽으로 방향전환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마도 지사라는 정치가경력을 밟고서 최고의 정치가 자리인 대통령을 지향하기 위해서였던 듯싶습니다. 그의 대통령 지향 여부와 관련해선 직접 그와 깊게 이야기를 나눈 일은 없습니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지향성은 이미 2012년 대선 때도 얼핏얼핏 드러났고, 이심전심으로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지사출마는 그런 지향성 하에서 이명박의 사례를 염두에 둔 것이겠지요. 이명박의 청계천사업과 같은 큰 사업을 성공시켜 그걸로 국민의 지지를 확보할 수 길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가 지사출마 후 제대로 된  큰 사업을 제시한 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지사가 되어본들 아무런 충격적인 성공사례를 만들 수 없습니다.

 

만약에 대통령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진보교육감이라는 진짜 정치가경력을 더 쌓은 다음에 그걸 통해서 최고의 정치가인 대통령 자리를 지향하는 게 올바른 길이었습니다. 게다가 혁신학교를 뿌리내리게 하면 그것은 청계천을 훨씬 능가하는 성과일 것입니다.

 

혹시 대통령에 나설 만큼 지지도가 높아지지 않아서 교육감으로 끝나게 되면 또 어떻습니까. 한국 교육체제의 혁신은 대통령 역할에 못지않은 중요한 일입니다. 대통령은 5년 단임으로 끝나지만 김교육감은 이번 3선을 통해 10년 가까이 한국의 교육을 바로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교육감의 지사출마설이 나오면서 저는 김교육감의 최측근들과 이런 식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나누었습니다. 그리해서 대체적인 동의를 받았습니다. 100% 동의하지는 않고 90%만 동의한다는 측근도 있어서 약간 불안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독일로 오기 직전에 교육감을 직접 만나 지사출마는 불가하다는 말을 전했고, 실질적인 교육대통령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추진해야 할 구체적인 사업 몇 가지도 제안했습니다. 이에 대해 교육감의 반론이 없었으므로 안심하고 작년 9월 한국을 떠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모양이 되었으니 참으로 허탈합니다. 물론 저의 판단착오가 있었습니다. 김교육감의 모든 최측근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고, 반론을 펴지 않고 말로 동의한다고 해서 그걸 진짜 동의한 걸로 이해한 것입니다.

 

아니 측근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사출마 결정은 기본적으로 교육감 본인의 결단으로 생각됩니다. 측근들은 그냥 따라간 걸로 보입니다. 그러니 측근들을 설득하고 교육감을 한번 만나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김상곤은 성품이 온유한 인격자로 말하기보다 듣기를 주로 하는 편인데, 그걸 감안하고 좀더 따지고 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 번 교육감을 만나야 했던 것이지요. 변명하자면, 제 직업은 교육감 보좌가 아니라 교수이므로 그런 설득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도 없었습니다.

 

독일에 와 있으니 금년 들어 언론에 지사 출마 이야기가 자꾸만 강해지고, 제가 교육대통령 역할을 위해 제안했던 사업이 추진된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딴쪽으로  쏠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측근들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측근들 사이에선 출마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교육감 3선은 쉬운 일이고 지사 당선은 어려운 일이다. 지도자라면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 모양입니다. 얼핏 들으면 그럴싸 하지만 따져보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논리입니다. 

 

쉬운 일이냐 어려운 일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가 중요합니다. 옿은 일을 어렵다고 마다하지 않아야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그걸 제대로 따지지 않고 하고 싶으니까 어려운 일이라도 하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고 옳은 지도자의 길도 아니지요.

 

 

너무 길게 김상곤과 저의 관계를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지사출마 이후 김상곤의 행보를 통해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짚어보겠습니다. 대의명분과 정치도의에 어긋나는 결정을 하면 그 이후 행보가 꼬입니다.(정치권에선 이걸 춤에서처럼 "스텝이 꼬인다"고 표현합니다.)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