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모저모 (2) : ‘그년 서슬이 퍼래서’ 논란
1. 이종걸 의원의 ‘그년’ 논란
이종걸 의원이 사고 쳤습니다. 8월 5일 자신의 트위터(@leejongkul)에 “‘공천헌금’이 아니라 ’공천장사‘입니다. 장사의 수지계산은 직원의 몫이 아니라 주인에게 돌아가지요. 그들의 주인은 박근혜의원인데 그년 서슬이 퍼래서 사과도 하지 않고 얼렁뚱땅 …”이라는 글을 올려 막말파문에 휩싸인 것입니다.
지난 4.11 총선에서 당선된 새누리당의 현영희 비례대표 의원이 공천을 받으려고 친박계의 현기완 전의원에게 3억원을 불법적으로 갖다 바친 게 최근 드러났습니다. 그러면서 이종걸의원이 이런 트위터를 올린 것입니다.
민주당이 계파 챙기기로 공천 잡음이 많았던 데 반해, 새누리당은 비상대책위윈회를 만든다든가 하면서 뭔가 쇄신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새누리당은 오래된 자신의 주특기인 부패공천을 이번에도 저지른 셈입니다. 그래서 이의원이 공세를 취하다가 ‘덜컥’한 셈입니다.
새누리당이 실수하면 민주당도 이에 질세라 실수를 저지르는 게 우리 현실인 것 같습니다. 정치, 특히 한국정치는 “누가 누가 잘 하나” 경쟁이라기보다는 “누가 누가 못하나” 경쟁인 경우가 많다고 하겠습니다.
어쨌든 이의원의 ‘그년’이란 표현이 부적절한 것임은 분명합니다. 입장을 바꿔 민주당 대표를 지냈던 한명숙의원에 대해 새누리당의원이 ‘그년’ 어쩌고 하면 이의원이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2004년 한나라당 의원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해 ‘그년’보다 훨씬 저질스런 욕설을 퍼붓는 연극 <환생경제>를 공연한 바 있습니다. ‘육시랄 놈’ ‘거시기 달 자격도 없는 놈’ 같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던 것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나오듯이 박근혜 의원도 그 연극을 보면서 박장대소했습니다.
따라서 그런 욕설을 퍼부은 새누리당 쪽이 이의원의 ‘그년’ 발언을 욕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의원은 새누리당 쪽에는 아니더라도 국민에게는 비판받아 마땅한 발언을 했습니다. 이의원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국민이 뽑아준 공인(公人)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치인이 결코 해서는 안되는 게 갈팡질팡하는 일입니다. 도대체 신뢰를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의원은 논란이 일자 오타라고 했다가, 더 심하게 표현해야 된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가, 다시 사과를 했습니다. 자기 소신 없이 이리저리 눈치를 보니까 이런 갈팡질팡하는 대응이 나온 것이겠지요.
사실 저는 이의원과는 두어 차례 얼굴을 맞댈 기회가 있었습니다. 잘 아는 선배인 김상곤 교육감의 선거운동 당시 격려차 교육감 선거캠프를 방문했다가 이의원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교육관련 행사 등에서도 이의원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만났을 때 그가 준 인상은 괜찮았습니다. 우선 그리 거들먹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육감 선거에 여러 정치인들이 방문했지만, 얼굴만 비치고 가는 게 아니라 이의원처럼 한번 오면 몇 시간이고 진득하게 앉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진정성이 있는 셈입니다.
게다가 알고 보니 그는 대단한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그의 조부인 이회영선생은 선조 때 활약했던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회영선생은 조선이 일제에 강점당하자 만주로 건너가 온몸과 온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던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청산리전투의 주역을 배출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항일구국연맹을 설립했습니다. 그리해 1932년에 65세의 노령으로 만주 일본군 사령관을 처단할 계획을 추진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순국했습니다. 광복 후 초대 부통령을 지내다 이승만의 독재에 맞서 부통령직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이시영선생이 바로 이회영선생의 아우였습니다.
이의원은 이런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므로 일제의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졸업하고 일본 관동군에 근무했던 박정희(일본명 高木正雄)의 딸 박근혜의원이 나라를 통치하려는 데 대해 역겨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게 ‘그년’이라는 욕지거리를 내뱉게 된 배경이 아닐까싶습니다.
그러나 박근혜의원이 아버지 후광으로 출세한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면 이의원도 마찬가지로 할아버지 후광을 바탕으로 박의원을 깔봐선 안 됩니다. ‘그년’이란 말 자체가 깔보는 말투가 아닙니까.
이의원은 연예인 장자연씨가 자살했을 때 국회에서 조선일보 사주 일가와 장자연씨의 관계에 대해 터트린 바 있습니다. 그 폭로의 진실 여부는 별개로 하고, 정치인이 조선일보와 일전을 불사할 자세를 보인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예전에 노무현 정도가 그런 기개를 보인 바 있습니다. 지금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한 어떤 후보가 오래 전에 사석에서 “조선일보의 힘은 대단합니다”라고 하던 게 기억납니다. 적어도 이의원은 그 정치인보다는 용기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싶습니다.
하지만 용기는 품위와 결합되는 게 좋습니다. 품위 없는 용기는 ‘한 건 하려는’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 즉 그저 인지도를 높이려는 정치적 술수로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그년’ 발언으로 인해 조선일보와의 싸움에서 보여준 기백도 다소 퇴색하는 느낌입니다.
이종걸 의원은 아직 앞날이 창창합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역사적 정통성을 가진 인물들의 후손이 정치적으로도 큰 역할을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선일보와의 싸움 등등을 볼 때 그에겐 그런 기본자질은 엿보입니다.
하지만 내공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예컨대 박근혜의원을 공격하더라도 욕지거리로 하는 게 아니라 점잖게 하면서도 급소를 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책을 공부해 나라를 이끌어갈 비전을 갖추어야 하고, 정치력을 키워 국민과 당내의 지지를 확대해야 합니다.
이종걸 의원의 공식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그의 학력이 나옵니다. 거기선 그가 명문 경기고(이른바 뺑뺑이 세대가 아님)를 거쳐 서울대법대를 수석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의원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법대에 곧바로 들어간 게 아닙니다. 그는 경기고 당시 유신 반대 데모를 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던 탓인지 모르지만, 성균관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가 반정부 학생으로 지목돼 군대에 끌려가면서 중퇴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서울대 인문계열에 입학해서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그러고선 법대에 학사 편입했던 것입니다. 대학이 좀 복잡하지요.
이런데도 그는 성균관대와 서울대 국사학과를 거친 것을 학력에서 빠트리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학력 부분을 간단히 쓰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이 두 학력이 그리 멋지지 않아서 그랬다면, 적어도 그건 대중정치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정치인은 한 명이라도 많은 지지자를 끌어 모아야 하는데, 성균관대와 서울대 국사학과를 다닌 걸 밝히면 그쪽 출신 지지자도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자기 약점(?)도 드러낼 줄 알아야 대중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요컨대 이의원에겐 많은 다른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호흡하는 정치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엘리트 출신의 정치인, 특히 엘리트 출신 진보파 정치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약점입니다. 이의원도 이런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의 인생경력은 그냥 한 명의 국회의원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년’ 파문을 계기로 이의원이 자신의 정치적 삶을 깊이 돌이켜보고 어떻게 도약할 수 있을지 고민했으면 합니다. 트위터도 깊은 성찰에는 방해가 되므로 당분간 중단하는 게 어떨까싶습니다.
말이 난 김에 트위터란 게 정치인에겐 참으로 조심이 필요한 도구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트위터에선 남보다 빨리 멋진 말(문구)을 퍼트리는 게 중요하므로 ‘덜컥 수’를 놓을 위험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미국 있을 때 보니 신문과 달리 방송의 엉터리가 적지 않았습니다. 상업방송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사실을 제대로 확인할 시간이 없고 또 선정성을 강조하기 때문이었던 듯싶습니다.
한국의 일부 진보파 유명인사들이 트위터에서 저지르는 실수도 이와 비슷한 차원입니다. 정치인은 특히 말 한 마디에 정치적 생명이 좌우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트위터 검열(?)참모를 반드시 한두 명 두어야 하지 않을까싶습니다.
또 ‘그년’ 발언과 관련해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년’과 ‘그놈’의 차이입니다. 여자에 대한 ‘그년’과 남자에 대한 ‘그놈’에서, ‘그놈’은 ‘그년’만큼 어감이 나쁘지 않습니다. 남자꼬마에 대해 ‘그놈(또는 고놈) 참 똑똑하다’는 말도 씁니다. 그런데 여자애에 대해 “그년(고년) 참 예쁘장하다”는 말은 좋은 어감으로는 잘 안 씁니다. 왜 그럴까요.
2. ‘서슬 퍼런’ 박근혜 의원 ?
이종걸 의원은 트위터에서 “그년 서슬이 퍼래서”라고 했습니다. ‘그년’이라는 표현이 잘못되기는 했는데, ‘서슬이 퍼래서’라는 표현은 어떨까요. 어쩌면 이 부분이 중요한데 이건 아예 논란이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들이 다툴 때 당신이란 말을 썼다고 “뭐 당신이라고” 하면서 화를 내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다툼의 내용보다 형식이 더 중요해지는 셈입니다. 각자 주장의 옳고 그름보다 상대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표현을 사용하느냐 어떠냐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지요.
하지만 박근혜의원이 서슬이 퍼런 인물인가 어떤가는 ‘그년’ 어쩌고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안입니다. 누구 말처럼 효율과 성장 만능주의의 박정희 시대와 달리 오늘의 시대에선 ‘소통과 통합’이 요구된다고 하면, 지도자가 ‘서슬이 퍼래선’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의원이 서슬 퍼런 정치인이 아닌가 하는 걱정은 많이 퍼져 있습니다. ‘얼음 공주’라는 별명이 그것을 잘 나타내 줍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거나 서슬이 퍼런 거나 다 같은 말입니다.
오랫동안 박의원을 지켜본 바 있는 윤여준씨는 경향신문에서 박의원에 대해 “내가 말하면 끝”이라고 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위민(爲民)적 비전과 폐쇄적 리더십이 결합한 ‘궁정정치’의 연장이라고도 했습니다.
박의원의 반대파인 유시민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더 혹독하게 비판했습니다. “박의원이 대통령이 되면 신공안통치로 간다. 박의원은 민주주의 사회지도자로서 기본자질을 갖추지 못했다. 정책적인 면에서 무능하고 분별력이 없어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 … 너무 위험한 정치인이다.”라고 했습니다. 유시민씨 발언의 앞부분은 ‘서슬 퍼런’ 정치인임을 비판한 것입니다.
이런 비판은 새누리당으로부터도 나오고 있습니다. 친박계의 핵심으로 2007년 대선에서 활약한 바 있는 유승민 의원은 다음과 같이 박의원에 대해 평가했습니다.
“박위원장과 대화할 때 한계를 느낀다. 박위원장이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 판단에 문제가 생긴다. 쓴 소리를 하는 사람도 박위원장을 만나야 한다. 그런데 만나기는커녕 전화 통화도 어렵다”고 했던 것입니다.
아래 두 개의 박의원 사진을 보십시오. 어느 쪽 사진이 박의원의 본 모습일까요. 만약에 왼쪽 사진이 박의원의 본 모습이거나 적어도 중요한 부분이라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박의원은 최저임금액수를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한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매년 바뀌는 최저임금액수를 정확히 기억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사실 경제학이 전공인 저도 정확한 최저임금액을 알려면 인터넷을 뒤집니다. 이런 것은 대통령의 자격과는 무관합니다.
하지만 김지태씨의 재산을 박정희가 강제로 빼앗아 만든 정수장학회(예전 이름은 5.16 장학회였습니다)의 최필립 이사장 가족으로부터 박의원이 수천만원의 정치헌금을 받은 것은 사정이 다릅니다. 정수장학회가 박의원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말이 허언(虛言)인 셈이니까요.
그리고 박의원에 대해선 최태민씨와의 관계 문제가 거론된 바 있습니다. 한겨레에서 얼마 전에 이를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두 개의 기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42931.html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42932.html
그런데 박의원의 이상과 같은 문제점보다 어쩌면 더 심각할 수 있는 문제점이 ‘서슬 퍼런’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민주주의와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시대와는 세상이 달라 군사독재체제가 되지는 않는다손 치더라도, 민심을 거스르고 독선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큰 것입니다.
박의원을 연좌제에 걸어 독재자의 딸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박의원이 아버지의 스타일을 물려받았다면 이건 큰일입니다. 박의원이 독재자의 딸이라서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가 독재자라면 이건 비판할 수밖에 없지요.
윤여준씨 등의 지적을 접어두더라도, 5.16쿠데타를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긍정하는 박의원의 의식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 발언이 비판을 받자 박의원은 “역사논쟁 그만 하고 민생을 살피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의식(역사관)이 제대로 서 있지 않으면 민생을 제대로 살필 수 없습니다. 역사의식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지도자가 미래를 이끌어갈 시대정신을 제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이지요.
박의원 옆에서 정확히 어떤 인물들이 핵심참모 역할을 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 보도된 대로 7인 멤버 어쩌고 하면서 박정희 시대의 인물들이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게 사실이라면, 이 역시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박의원을 아버지 박정희 모시듯 할 테니까요.
박정희 시대 독재의 폐해에 대해선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입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니까요. 여기서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금도 끔찍하게 여기는 사건 하나만 소개하겠습니다.
박정희 시대에, 근로자들의 인권이 억압받고, 독재에 반대하는 학생과 민주인사들이 고초를 겪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게 독재체제니까요. 그런데 제가 정말로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은 박정희의 부하였던 정치인들이 처참하게 당한 사건입니다.
1971년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오치성에 대한 야당의 해임건의안에 대해 공화당 일부가 찬성표를 던 진 게 10.2 항명파동이었습니다. 오치성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김성곤 당중앙위원장(쌍용재벌 창업자), 길재호사무총장(5.16 쿠데타 주체) 등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일이었다.
그런데 해임건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을 불러 주동자를 잡아서 족치라고 지시합니다. 그래서 이후락은 중앙정보부 요원이 아니라 더 무시무시한 보안사령부 요원을 동원해 공화당 국회의원 23명을 잡아다 모진 고문을 가한 것입니다. (참고로 제가 대학 조교를 할 때 학교를 들락거린 중앙정보부 요원과 보안사 요원들을 본 적이 있는데, 보안사 요원들이 훨씬 살기가 등등했던 걸로 기억납니다.)
김성곤 의원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카이제르 콧수염을 반쯤 뽑혔습니다. 그리고 유도로 단련된 건강체였던 그는 고문후유증과 화병으로 몇 해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길재호 의원은 연행될 때 저항하다가 요원의 몽둥이에 머리가 깨졌으며, 고문 후유증으로 풀려 나올 때 지팡이를 짚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쿠데타와 3선을 도와준 부하들에 대해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피비린내 나는 고문과 수모를 가한 인물이 박정희인 것입니다. 그들은 범죄를 저지른 인물들도 아니었고 어엿한 국회의원들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건방지면(?) 서슬 퍼렇게 본때를 보인 셈입니다.
만의 하나 박근혜의원이 이런 서슬 퍼런 박정희의 피를 물려받았거나, 그 스타일을 알게 모르게 체득해 있다면 보통 큰일이 아닙니다. 신 공안통치 또는 불통( 不通) 속의 독선으로 나라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대선 과정에서 혹시 그런지 안 그런지를 검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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