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김우중씨의 고백을 기다리며 <{한겨레신문} 2005년 6월 1일자>

동숭동지킴이 2011. 2. 17. 15:48

 

<{한겨레신문} 2005년 6월 1일자>

 

김우중씨의 고백을 기다리며

 

김 기 원 (방송대 교수, 경제학)

 

  김우중씨 귀국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이 한창이다. 과거 대우의 일부 직원들을 중심으로 김씨 재평가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불법자금 관련 경제인에 대한 정부의 사면조치도 여기에 힘을 붙이는 것 같다. 사실 해외 도피생활 6년째로 나이 70 가까운 김씨에게 동정심을 갖는 건 인지상정이다. 의식주가 불편 없더라도 객지는 객지 아니겠는가. 전두환에 대한 장세동의 충성처럼 옛 회장을 보살피려는 직원들의 모습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김우중씨는 호메이니가 아니다. 그런데도 단순한 동정심 차원이 아니라 김씨의 경영방식에 별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호도하려 하고 있어 우려를 금치 않을 수 없다. 물론 개똥도 약에 쓸 데가 있는데, 김씨가 한 일에 어찌 나쁜 일만 있겠는가. 골프도 치지 않고 사업에 몰두한 자세나, 일찍부터 글로벌경영에 눈을 돌린 점은 인정해 줄 만하다.

 

  그러나 그의 경영방식은 외환위기를 초래한 우리 재벌체제의 모순을 응축하고 있었다. 정치실력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기업을 키워나간 정경유착,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지 않는 황제경영, 대마불사의 신화 속에 함부로 사업을 벌인 선단문어발경영이 바로 그것이다. 글로벌경영도 한국 홍보효과는 있었지만, 기술과 수익성을 도외시한 사상누각이었다. 그 결과 22조 원의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그룹을 도산시켜, 30조 원 가량의 공적 자금을 투입케 만들었다. 일자리를 잃은 대우직원은 또 얼마인가.

 

  최근 박정희 군사독재에 대한 향수와 함께 낡은 재벌체제를 고수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김씨 재평가도 이런 퇴영적 유행에 편승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여기에 휘둘려 그가 준 가장 큰 교훈인 “김우중씨 식으로 기업을 경영하면 큰일 난다”는 사실을 잊어선 곤란하다. 조만간 김씨는 귀국해서 법의 심판을 받을 듯싶다. 엄정하게 그를 심판하되, 정상을 참작할 여지는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정경유착의 실상을 얼마나 솔직하게 고백하는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김씨의 귀국과 심판을 우리 사회가 거듭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