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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속 김기원(10): 민주노총 때려 김진표 구하려는 치졸한 발상(19.12.12일자 한겨레)

동숭동지킴이 2019. 12. 12. 21:58

[안재승 칼럼] 민주노총 때려 김진표 구하려는 치졸한 발상

등록 :2019-12-11 14:56수정 :2019-12-12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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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승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김진표 총리설’에 강하게 반대하는 것은 진보와 보수의 진영 논리가 아니다. 고 김기원 교수가 생전에 역설했듯이 개혁과 반개혁의 문제가 ‘김진표 논란’의 본질이다.

그래픽 고윤결, 사진 연합뉴스
그래픽 고윤결, 사진 연합뉴스
약탈경제반대행동(11월22일), 경실련(26일), 종교투명성센터(27일), 참여연대(12월2일),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2일), 민주노총(3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3일), 지식인선언네트워크(4일), 한국여성단체연합(4일),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5일) 등등. ‘김진표 총리설’에 반대하는 성명이나 논평을 낸 단체들이다. 그리고 이들 단체가 포함된 41개 시민사회단체가 11일 청와대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김진표 총리 후보 지명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혔다.

지난주 시민사회에서 김진표 총리설에 대한 반대 여론이 확산되자 청와대가 ‘김진표 카드’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경제신문이 민주노총을 제물로 삼아 ‘김진표 구하기’에 나섰다. ‘민주노총 협박 통했나? 김진표 총리 카드 재검토설’(한국경제 12월4일), ‘총리 인선은 민노총이 좌지우지, 광주형 일자리는 낙하산 일자리’(조선일보 7일), ‘민노총이 반대하면 총리 못한다고?’(동아일보 8일).

이들 신문이 김진표 총리설에 반대하는 많은 단체들 가운데 유독 ‘민주노총’만 콕 집어 부각시킨 의도는 뻔하다.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는 민주노총이 반대하면 ‘총리감’이 아니냐는 주장을 하고 싶은 거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민노총이 이제는 총리 인선까지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보니 ‘민노총의 나라’라는 것이 과장이라 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주장했다. 과장도 이런 과장이 없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노총이 불편한 관계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주52시간제, 최저임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주요 현안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에 날 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고 정부와 여당은 민주노총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이 총리 인선을 좌지우지하고 민주노총 협박 때문에 총리 인선을 못한다고 주장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시민사회단체들이 김진표 총리설에 반대하는 것은 ‘진영 논리’가 아니다. 고 김기원 교수는 생전에 “한국 사회에서는 진보-보수의 구분과는 별개로 개혁-수구의 구분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진보와 보수는 균형을 이뤄야 하는 관계이지만 개혁과 수구는 수구를 물리치고 개혁으로 나가야 하는 관계라고 했다. ‘김진표 논란’의 본질은 바로 개혁과 반개혁의 문제다.

김진표 의원은 6일 자신이 반개혁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정부가 지금까지 취해왔던 우리 경제의 여러 개혁 조치들의 중심에 항상 있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금융 실명제, 부동산 실명제, 상속·증여세 강화, 30대 재벌 중 16개를 정리한 재벌 개혁, 금융기관 구조조정 등을 예로 들었다. 모두 김 의원이 참여한 일들이 맞다. 다만 그가 실무책임자였던 재정경제부 국실장 때의 일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이 김진표 의원을 비판하는 근거는 그가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라는 정책결정권자 시절 이후 4선 의원까지의 긴 세월 동안 보여온 언행이다. 법인세 인하 추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 론스타에 외환은행 매각 승인, 종교인 과세 반대, 성소수자 배제, 낙태 금지, 전술핵 재배치 주장 등이다. 이건 보수가 아니고 반개혁이다. 시대를 앞서가기는커녕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 것이다. 이런 그가 총리를 맡으면 개혁이 중단되고 과거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혁신성장을 세 축으로 하는 ‘사람 중심의 포용적 성장’을 내세웠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다만 방향은 옳았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부작용이 부각됐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정부의 준비 부족과 관리 능력 부재 탓이 컸다. 임기가 절반이 지나도록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조급해질 만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공정·정의·포용·평화’와 거리가 먼 인사를 총리로 기용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과 정책 기조를 이어가면서 임기 후반기 미진한 과제를 강력히 추진할 개혁적이면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인물이 필요한 때다.

여권 일각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김진표 카드가 ‘중도 확장’이나 보수 기독교계 표심 잡기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한다. 대단한 착각이다. 김진표 의원을 총리 시킨다고 안 올 표가 오지 않는다. 실망한 ‘촛불 시민’만 떠나갈 가능성이 크다.

논설위원 jsah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0415.html#csidx347c40447b945d28bed4c9ce4e2b9b0